서울--(뉴스와이어)--성매매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금지가 시행된 지 이제 반년이 넘었다. 반년은 그런 조치의 장기적 효과들이 뚜렷이 나타나기엔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드러난 몇 가지 경향들은 우리에게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기를 요구한다.

성매매 금지 조치에 대한 평가는 물론 엇갈린다. 성매매 금지를 추진한 사람들은 성매매가 줄어들었다고 보고 그 사실을 성취로 여긴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9월에서 올 3월까지 집창촌 성매매업소들은 1,679개에서 1,071개로 줄었고 성매매 여성들도 5,567 명에서 2,736명으로 줄었다.

성매매 금지를 반대한 사람들은 우려했던 부작용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먼저, 성매매 금지는 그것을 잠복하게 만들 뿐이지 실제로 못 줄인다는 정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이전에 비교적 건전했던 유흥업소들이 성매매 공간들로 바뀌었고, 집창촌은 떠났던 여성들이 많이 되돌아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다음엔, 많은 시민들을 ‘피해자 없는 범죄자’들로 만들었다. 그들이 받은 손실은 엄청나지만, 그런 손실로 우리 사회가 얻은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 손실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 가장 가난한 계층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특히 큰 사회적 해악이었다. 성적 범죄의 증가, 성병의 만연, 조직 범죄의 증가와 같은 성매매 금지에 따른 부작용들은 아직 조사된 바가 없지만, 그런 사회악들이 늘어날 징후들은 차츰 눈에 뜨인다.

개인들의 성매매를 사회가 강제로 막는 일이 안은 문제들은 철학적 문제들과 현실적 문제들로 나누어 살피는 것이 편리하다. 성매매의 사회적 금지가 워낙 많은 부작용들을 부르므로, 성매매에 관한 논의들은 거의 언제나 현실적 문제들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자연히, 철학적 문제들은 흔히 잊혀진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 보아도,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성찰 없이 현실적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기 어렵다는 점은 뚜렷해진다.

철학적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성매매의 사회적 금지가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인 자유주의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되도록 많이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되도록 받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사람들의 자유는 서로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실제로는, 그런 범위를 깔끔하게 정하기 힘들고 당사자들 사이의 타협으로 정하기도 쉽지 않으므로, 사회가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하게 된다.

사회적 강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침해다. 개인들의 행위들이 다른 사람들의 자유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사회가 개인들의 자유를 제약한 논리적 근거가 없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거래들은 대체로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런 거래들에서 나오는 부작용들은 원천적으로 적고 세금과 같은 합리적 대책들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자발적 성매매는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들에겐 아주 큰 이익을 준다. 실은 성 범죄의 감소와 같은 긍정적 효과들을 지녔다. 따라서 사회가 그것을 막을 철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성매매의 사회적 금지는 정당화되지 않은 사회적 강제의 표본이며 개인들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성매매의 사회적 금지를 주장한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한 합리적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내놓은 논거는 성매매의 허용이 ‘인신 매매’를 부른다는 주장뿐이다. 이것은 아주 허술한 주장이다. ‘인신 매매’는 성매매와는 실질적 관계가 없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의 문제며 폭력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성매매가 성 노예를 낳으므로 성매매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노동력의 매매가 강제 노역을 낳으니 노동력의 매매를, 즉 고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논리적으로 같다. 게다가 그런 주장은 현상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나왔다. 성매매의 금지는 필연적으로 조직 범죄를 낳고 성 노예를 부추긴다. 모든 사례들은 자유로운 성매매가 성 노예를 막는 가장 현실적 방안임을 가리킨다.

이처럼 개인들의 판단에 맡길 일을 사회가 강제로 막는 것은 전체주의적 태도로서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주의에 어긋난다. 이번 일을 더욱 안타깝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전체주의 사조의 징후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적대감, 재산권에 대한 제도적 및 자의적 침해, 정부 부문의 꾸준한 확장, ‘과거사 청산’과 같은 학문의 영역에 대한 정부의 침투, 이혼에 대한 규제의 강화와 같은 시민들의 사생활에 대한 사회적 간섭 ? 이것들 모두가 빠르게 높아진 전체주의적 사조의 징후들이다. 성매매의 금지는 이런 추세와 깊은 관련이 있고, 그래서 더욱 걱정스럽다.

성매매는 성욕의 해결을 위한 거래이므로, 성매매는 일차적으로 성욕의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성욕은 생명체들의 생식을 위해서 생겨난 메커니즘이다. 그래서 성욕은 무슨 욕구보다도 강하다.

이 점은 성의 본질을 살피면 이내 뚜렷해진다. 성(sexuality)의 본질적 특질은 반수염색체 배우자들(haploid gametes)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같은 종류의 염색체를 하나만 지닌 반수염색체 배우자들은 뒤에 배우자융합(syngamy)을 통해서 배수염색체들을 갖춘 접합자(zygote)를 이루어 개체로 자라나게 된다. 반수염색체 배우자들이 서로 만나서 융합하는 일엔 큰 비용과 위험이 따른다. 그런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도록 하는 장치가 바로 성욕이다.

성욕이 강해서 되도록 많은 이성 개체들과 성교를 하고 성교를 위해선 다른 많은 것들을 희생하는, 심지어 목숨에 대한 위협까지도 무릅쓰는, 개체들은 자연스럽게 자식들을 더 많이 낳을 수 있었다. 즉 성욕은 자연에 의해서 선택되었다. 결정적 순간에선 유전자들의 전파를 위한 생식이 개체의 목숨의 유지보다 우선한다. 성욕에 대한 논의에선 이 점이 늘 강조되어야 한다. 성욕은 생명의 본질에서 나온 핵심적 욕망이므로, 그것은 개인들이 의지로 통제하기 어렵고 사회가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없다.

인류 사회에서 성욕을 해결하는 기구는 결혼이다. 결혼은 성욕을 잘 해결할 뿐 아니라 결혼을 통한 가족의 성립은 성욕의 궁극적 목적인 출산과 육아에 잘 이바지한다. 결혼이라는 기구 없이는 인류의 사회와 문명이 나오고 발전할 수 없었을 터이다. 그렇게 멋진 기구지만, 결혼이 성욕을 늘 만족스럽게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성욕이 결혼에 맞추어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늘 인식해야 한다. 지구의 생물들이 성을 발명한 것은 아주 오래 전이다. 인류가 나온 것은 몇 백만 년 전이고, 결혼은 물론 그보다 훨씬 뒤에 나왔다.

이처럼 성매매 금지는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인 자유주의에 어긋나는 전체주의적 조치다. 그나마 생물학적 바탕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는다. 자연히, 그것은 개인들의 자유와 복리를 크게 해치고 사회적 고통만 늘린다.

성매매를 막으려는 모든 시도들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성매매 금지도 조만간 실패하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우리는 그런 실패가 뜻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길을 찾아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세력에 그냥 이끌려가는 사회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복 거 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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