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4명 중 3명, ‘자아정체감’ 취약

서울--(뉴스와이어)--40대 직장인 A씨는 안정적인 대기업의 차장이다. 얼마 전까지 성실하고 능력 있는 10년차 직장인으로서 별 문제없이 직장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으로 인해 회사로부터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다.

지금껏 안정된 직장에서 일반 사무업무(관리직)만을 해왔던 터라, 자신의 전문성, 적성, 관심 분야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뒤늦게 뛰어든 취업전선은 혹독하기만 하다.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답답함만 늘어갈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술을 많이 마셨고, 건강도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소장 : 이동수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2005년부터 진행 중인 <한국인의 정체성 연구>를 통해 한국인의 자아정체감이 매우 취약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인 성인남녀 199명을 심층 면담해 자아정체감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4명 중 3명이 위의 A씨와 유사하게 ▲정체성 폐쇄 지위 즉, 자아정체감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소장팀에 따르면, ▲안정지향적이며 현실순응형이지만 위기에 약한 ‘폐쇄군’이 74.4%(148명)로 가장 많았으며, ▲능동적이고 진취적 개척자형인 ‘성취군’은 12.6%(25명)로 두 번째로 많았다. 또한 ▲수동적이며 무기력한 방관자형인 ‘혼미군’ 은 10.6%(21명), ▲고민이 많은 대기만성형인 ‘유예군’이 2.5%(5명) 순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은 남녀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연령대별로 자아정체감의 발달 수준을 탐색한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폐쇄군은 높아졌다. 즉,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헌신도는 높아지지만 탐색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반면, 나이가 젊을수록 혼미군이 증가했는데 이는 젊을수록 자아정체감이 덜 정립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학력이 높을수록 성취군이 많고 폐쇄군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즉, 성취군이 중졸 이하의 경우 전무했으나 대학원졸 이상은 41.2%로 조사됐으며, 폐쇄군은 중졸이하가 80%로 높은 반면, 대학원졸 이상은 52.9%에 불과해 학력에 따라 정체감 형성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아정체감이 취약한 사람들은 평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뚜렷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스트레스를 높게 경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실직이나 이혼 등으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되면 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과도한 음주나 자살과 같은 비합리적 선택을 하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OECD 자살율 1위, 양주 소비율 1위와 같은 한국 사회의 사회병리적 현상들이 이와 같이 한국인의 자아정체감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폐쇄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체면이나 명분, 서열을 지나치게 따지는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자존심이나 체면이 손상됐다고 느끼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동수 소장은 이와 같이 한국인의 자아정체감이 취약하게 된 원인에 대해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급속한 발전 과정에서 집단의 목표가 강조되고,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면서 ‘자아정체감’ 발달이 성숙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 자아정체감 폐쇄 유형: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영역(직업, 결혼, 양육, 종교, 정치)에서 주어진 업무에 대해서는 성실하지만, 자신의 적성, 흥미 등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나 고민 없이 환경에 순응하는 유형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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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이선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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