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내외는 4.19 기념탑에 참배한 후 박유철 보훈처장, 강재식 4.19민주혁명회장, 원제만 4.19유족회장, 배자옥 4.19공로자회장 등과 함께 희생자 187위, 부상자 70위, 공로자 17위의 넋이 모셔져 있는 유영(遺影)봉안소로 가 묵념했다.
강재식 회장은 노 대통령 내외에게 “4.19 당시 학생들이 가장 많이 희생됐는데, 오히려 대학생들보다는 중고생들이 많았다”며 “당시 146명이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 대통령 내외는 묘역 내에 전시된 기념사진을 관람했다. 마산 3.15의거 당시 항의 시위에 참가했던 김주열 군이 실종 20여일만에 마산시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됐던 사진 앞에 이르자 노 대통령은 “최루탄이 불발인 채로 날아와 (머리에) 박힌 거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함께 한 관계자가 “당시 경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군의 시체를 마산 앞바다에 버렸고, 4.19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어릴 때지만 다 기억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승만 정권의 퇴진 시위를 벌이는 어머니들의 모습에 담긴 사진을 보고서는 “민심이 험하긴 험했나 보네요”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이제는 90대가 된 미망인 등 유가족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으며 위로했다. 노 대통령은 묘역을 나서며 박유철 보훈처장 등 관계자들에게 “이만큼이라도 못 살리면 (4.19 영령들이) 얼마나 억울하겠느냐”며 “묻혀버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