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FTA 서두를 일인가
경제통합, 혹은 자유무역지대(FTA: Free Trade Area, Free Trade Agreement)를 추진하는 데는 크게 2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동동한 국가 간에 이뤄지는 경제권의 수평적 확대다. 초기 유럽공동체(EC)의 설립과정이 그 사례다. 다른 하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나타나듯이 일국의 주도에 따른 경제권 확대다. EC 설립 과정에서 동등한 경제세력 간에 수평적인 경제권 확대가 이뤄졌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다. 첫째,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등 협상을 주도한 세 강국의 인구와 경제 규모가 비슷했다. 둘째, 베네룩스 삼국이 삼국관세동맹에 힘입어 이들 강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주도하고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NAFTA 성립 과정에서는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의 표현에 빌리자면, 미국은 NAFTA에서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economic supremacy)를 점하고 있으며 이것이 긍정적으로 기능할 경우 역내의‘공공재’역할을 할 수 있다. 앞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FTA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북아 FTA 혹은 동아시아 FTA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경제적 우위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한, 중, 일 세 나라로 이뤄지는‘동북아 FTA’를 추진할 경우에도 한국은 미국보다는 캐나다나 멕시코의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의 경우 NAFTA 체결로 직접투자가 급격히 감소됐다. FTA 체결로 관세가 인하되자 직접투자(FDI)의 상당부분이 무역으로 대체된 것이다. FDI는 현지시장에서의 생산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수평적 FDI와 중간 생산단계 구성을 위한 수직적 FDI로 나뉜다. FTA가 성립돼 관세가 인하되면 수평적FDI는 쉽게 무역으로 대체된다. 일본 기업의 한국에 대한 FDI 중 상당부분은 높은 관세장벽(평균 관세율 7.9%)을 회피하는 수단(tariff jumping)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중·일FTA가 체결되면 한국에 투자된 자본을 자국으로 철수해 무역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 FTA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갈 경우 원치 않은 구조조정을 겪을 수도 있다. 멕시코의 경우 1994년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NAFTA 체결(1994년 1월 1일)의 덕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 후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도 한·중·일 FTA 체결로 제조업 공동화, 농업부문의 궤멸 등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에서 소국의 입장을 관철한 베네룩스 3국
베네룩스 3국은 세계 2차대전 막바지인 1944년 영국에서 삼국 간 관세동맹을 체결했다. 1949년 발효된 관세동맹은 초기 EC통합과정에서 베네룩스 3국이 EC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3국은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조인한 파리조약 (1951년4월)과 그 결과물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1952년)에 적극 참여했다. 벨기에 외무장관 스파크가 주도한‘스파크 보고서'는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와 유럽핵에너지공동체(EURATOM)의 설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스파크 보고서’는 당시 유럽이 소규모의 국가들로 분열되어 전문화, 표준화 등에 뒤져 있으며 이를 해결하려면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지적했다. 아울러 회원국 간 경제 정책을 접근시켜 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했다. 나아가 3국은 유럽통합의 기초가 되는 1957년 로마조약(EEC와 EURATOM 창설조약) 비준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냈다. 파리선언 및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의 창설을 주도했던 프랑스가 1954년 유럽방위공동체 조약(EDC: European Defence Community)의 좌절에 따른 충격으로 유럽 경제권의 추진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EC가 유럽의 약소국을 포함해 꾸준히 세를 불려나간 데는 이처럼 베네룩스 3국의 소국간 동맹이 강대국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가 바탕이 됐다. 베네룩스의 협력은 EC 내 각종 정책의 표결과정에서도 관철됐다. 이들은 공동체 내부 기구들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투표권을 할당받았다. 이로써 각국별로 1명씩 할당된 각료이사회에서뿐 아니라 인구비례로 소집되는 각종 위원회, 유럽의회 등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초기 유럽의회의 경우 총 78명의 의원 가운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 강국이 각각 18석을 확보한 데 비해 베네룩스 3국은 벨기에와 네덜란드 각 10명, 룩셈부르크가 4명 등 모두 24석을 확보했다. 집행위원회에서도 총 9명의 위원 가운데 세 강국은 각 2명, 베네룩스는 3명의 위원을 배출했다. 베네룩스 3국의 발언권이 강화된 데는 프랑스와 독일 주도의 유럽통합에 대한 소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강대국들의 배려도 작용했다. 이러한 소국에 대한 배려원칙은 유럽 연합의 확대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철 되었고 이는 무엇보다 베네룩스 3국이 한 목소리로 소국의 입장을 적극 반영시킨 결과이다.
동북아 FTA와 동아시아 FTA
한·중·일 삼국의 동북아 FTA 논의는 1999년 11월 마닐라에서 이뤄진 한·중·일 3국간의 첫정상회담에서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0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2차 정상회의에서 3국 국책연구기관 간 공동연구가 결정됐으며 그 연구결과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한·일간 및 한·중 간 FTA도 국내 국책 및 민간 연구소들에 의해 적극 연구되고 있다. 아무튼 한·중·일 3국간 경제협력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성과들에 따르면 한국은 한·중·일 3국간 FTA를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동북아 FTA는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FTA(혹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는 발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중·일과 ASEAN까지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FTA 보다 한·중·일 만의 동북아 FTA를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주요 논거는 동북아국
가와 ASEAN 국가 간에 경제규모나 발전수준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동아시아 FTA 논의가 진행돼 온 과정을 돌아볼 때 한국 정부의 FTA에 대한 접근이 중국, 일본, ASEAN 등 협상상대국에 비해 수동적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아셈(ASEM)회의를 통해 유럽과의 협상이 임박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 ASEAN+3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자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긴밀한 경제교류를 하고 있는 중국, 일본과의 FTA 논의가 급부상했다. ASEAN과의 FTA 논의의 출발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보다 먼저 경쟁적으로 ASEAN과의 FTA를 추진하는 중국과 일본이ASEAN 시장을 선점하게 될 우려가 커지자 ‘동북아 FTA가 우선시되지만 한·ASEAN 간의FTA도 병행 추진해야 한다’는 식이다. 중국이 2001년 11월 중·ASEAN 정상회담에서 10년 이내에 중·ASEAN FTA를 체결하기로 합의했고, 일본은 이에 자극을 받아 기존의‘대 ASEAN 국가 간 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중심의 국가별 경제협력’및‘개별 국가와의 점진적 FTA 추진’방침을‘ASEAN 전체와의 FTA 추진’으로 전면 수정한 바 있다.
동북아 FTA 우선이 과연 올바른 전략일까
한국의 GDP 규모는 일본의 1/10, 중국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도 일본이 중국의 1/10, 우리는 다시 일본의 1/3수준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한·중·일 FTA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자칫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반면 한국이 먼저 ASEAN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한다고 치자. 이 경우 한+ASEAN의 인구는 6억7천만 명으로 중국의 절반, 일본의 5배에 이른다. GDP 규모는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중국이나 일본과 대등한 처지에서 수평적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강대국이 경제협력을 주도해 나갈 때‘공공재’기능하는 경우는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 현실에서는 소수 강대국들이 FTA의 이득을 과점하는 ‘클럽재(club goods)’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1970년대 석유위기 당시 석유 소비국들 간의‘긴급석유공유체제(emergency oil sharing system)’를 위한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가 과점적 국제협력체제의 두드러진 사례다. 약소국들은‘에너지위기의 공동 극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형성된 이 체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상도 중국과 일본에 의한 과점적 협력체제로 변질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한·ASEAN 연합을 추진하려면 협상상대방인 ASEAN의 의사가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향후 ASEAN 국가들이 아시아권 강대국인 중국이나 일본과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규모 경제권으로서 협상력 약세를 만회하는 수단으로서 한국과의 수준 높은 경제협력을 활용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 전략이 요구된다. 예컨대 2003년 아셈 정상회담에서 팽기란 마쇼르아마드 ASEAN 부 사무총장이“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지역에서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는 데, 이는 ASEAN 역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대중국 및 대일본 FTA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부담과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 등의 문제로 인해 ASEAN과의 협력 강화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농산물 시장에서 ASEAN보다 더 큰 위협이 되는 상대는 중국이다. 또한 노동력 이동은 경제협력의 초기 단계인 FTA 체결 단계에서는 선택적으로 추진되는 의제다.
한 차원 높은 한·ASEAN 간의 경제 협력 필요
한·ASEAN 연합을 동아시아FTA의 시발점을 만들려면 다양한 측면에서 심도 있는 경제협력이 필요하다. 공동 무역정책, 공동 정부조달시장, 거시경제정책 협조 등의 경제협력이 관세인하, 무역 및 투자 촉진 등 FTA 정책과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 공동 무역정책이란 단순한 상호간 관세 인하를 넘어 역외 국가들에 대한 공동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를 공동 추진하는 것이다. 공동 정부조달시장은 원칙적으로 1993년 12월 GATT의 정부조달협상 타결로 이미 개방돼 있다. 하지만 정부조달시장에는 여전히 기술개발 촉진, 특정산업 보호, 중소기업 육성 등을 위한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이 남아 있다. 거시경제정책에서의 협조도 중요하다.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다. 양측은 현재 국제 핫머니의 공격, 중국 위안화 절상 등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다. 이외에도 추후 경제협력이 더 심화됨에 따라 공동 경쟁정책이나 공동의 표준화 추진 등도 가능할 것이다. 일단 한·ASEAN 연합을 중심으로 중국 및 일본을 포괄하는 동아시아 FTA가 더 심도있게 진행이 되어 말레이시아에서의 1차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논의가 시작될 (유럽 연합 설립 이전의 유럽공동체(EC)를 모델로 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성립까지 이르게 되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기타 여러 나라들과 FTA를 추진하는 데에서도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ASEAN 연합을 디딤돌로 동아시아FTA를 완성할 경우 FTA를 추진하는 우리 측의 협상력이 커지면서 다른 나라들과의 FTA 협상에 있어서도 더욱 유리한 협상당사자로서의 지위 확보가 가능해질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서원 정책분석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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