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국도 7호선 및 동해북부선 철도연결구간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개최
일 시 : 2005. 4. 23(토) 14:00
장 소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발굴조사 현장
조사기관 : 강원문화재연구소
발굴기간 : 2004년 12월 1일~현재
동해북부선(저진-군사분계선) 철도연결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2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 조사명칭 : 동해북부선(저진-군사분계선) 철도연결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2. 유적의 위치· 면적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사천리 일원(74,397㎡)
3. 발굴조사 기관 : 강원문화재연구소
4. 발굴조사 기간 : 2004년 12월 1일 ~ 4월 14일(75일간)
5. 조사단 구성
○ 단 장 : 지현병(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 지도 위원 : 김동현(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문화재위원)
조유전(前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지건길(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이건무(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
최병현(숭실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심정보(한밭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이영문(목포대학교 교수)
이홍종(고려대학교 교수)
○ 책임조사원 : 고동순(강원문화재연구소 조사 1팀장)
○ 조 사 원 : 이창현(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조현경(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이건충(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박수영(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6. 조사경위 및 목적
철도청에서는 남·북한이 협의하여 동해북부선(저진-군사분계선) 철도연결공사를 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철도계획노선에 대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지표조사를 의뢰하여 지난 2002년 9월부터 2003년 4월까지 동 지역에 대하여 3차례에 걸쳐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지표조사시 전체 공사구간은 9km이나 조사가능지역은 저진-통일전망대까지 4.8km이고, 통일전망대-군사분계선까지 4.2km는 지뢰 미 제거작업 및 지뢰제거 작업으로 대부분지역이 이미 훼손되거나 유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조사가능 지역인 저진-통일전망대 구간에서의 지표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8개소에서 유적이 확인되었고 이중 철도역사 및 출입관리시설 예정부지가 위치할 통일전망대에서 남쪽으로 2km지점까지만 이번 사업지역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송현리 유물산포지A, 송현리 유물산포지B, 송현리 유물산포지C, 사천리 유물산포지에 해당하며, 이에 철도청에서는 지난 2003년 6월 2일자로 본 연구소에 시굴조사를 의뢰하여 왔다.
이에 본 연구소에서는 관계 전문가로 조사단을 구성하여 시굴조사 계획서를 제출하여 2003년 9월 22자로 문화재청으로부터 시굴허가(허가 제 2003-437호)를 받았으나, 조사지역의 토지수용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약 1년간 조사의 착수가 미루어졌다. 이후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1년만인 2004년 8월 30일자로 시공업체인 현대건설과 60일간 시굴조사 계약을 하여, 계약과 동시에 바로 조사를 착수하였다.
조사 지역은 지연지형에 따라 크게 4개의 지구로 구분할 수 있으며, 그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송현리 유물산포지 A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B, C, D지구라 정하였다. 시굴조사는 각각의 능선에 그리드 설정을 위한 B.M을 정하고 전 지역에 10× 10m의 그리드를 구획하였다. 이후 유구확인을 위한 트렌치를 각 그리드마다 2개씩 지형을 고려하여 설치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A지구에서는 파괴된 주거지 1기만이 확인되었으며, B지구에서 약 13~14기, C지구에서 약 14~15기, D지구에서는 12~1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전면적인 발굴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본 연구소에서는 관계당국의 허가(허가 제2004-820호)를 받아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발굴조사는 공사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상대적으로 시급한 지역인 C지구, B지구, D지구의 순서로 진행하고 있는데, B지구와 C지구는 전면 제토하여 유구를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결과 B지구에서 주거지 12기, 석관묘 1기, 수혈유구 1기, 溝유구 2기 등 총 16기의 유구와 C지구에서 주거지 25기, 수혈유구 11기 등 총 36기의 유구가 확인·조사되어 2004년 12월 27일 1차로 지도위원회를 개최하였으며, 현재 공사가 진행 중에 있다. D지구는 C·D지구 완료 후 동절기 한파로 인하여 약 한 달 보름간 현장을 철수한 후 2005년 3월 2일 재착수 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3기, 수혈유구 13기, 민묘 6기 등 총 3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동해북부선 철도연결 구간 내 발굴조사 결과 주거지 50기, 수혈유구 25기, 석관묘 1기, 溝유구 2기, 민묘 6기 등 총 84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7. 유적의 위치 및 환경
1) 유적의 위치 및 자연환경
이번 발굴조사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고성군은 강원도 동해안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북쪽은 금강산을 사이에 두고 통천군과 접하나 실제로는 휴전선과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東海, 서쪽은 향로봉을 경계로 인제군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속초시 장사동을 경계로 하고 있다. 경·위도상으로는 동경 128°35′18″~128°13′41″, 북위 38°11′06″~38°36′38″에 위치하며, 남북간 길이는 약 48.12km, 면적은 621.10㎢이다.
고성군은 금강산에서 향로봉,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가로 지르고 있으며, 간성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목에 진부령이 있고, 그 동쪽 사면은 점점 낮아지면서 동해로 이어진다. 북쪽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과 신계천이 고성읍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해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진부령 부근에서 발원한 남천과 북천이 간성읍 남·북쪽을 거쳐 동해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하천은 그 길이가 짧고 유속이 빠른 것이 특징이며, 하류에는 충적평야들이 비교적 넓게 전개되어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해안선을 따라서는 해식애(海蝕崖)와 사빈(沙濱), 사구(砂丘)가 교대로 나타난다. 사구의 발달로 인하여 만의 입구가 막혀 형성된 삼일포, 화진포, 송지호 등의 석호와 솔섬, 삼섬, 형제섬 등의 섬이 산재해 있다. 토양은 갈색 삼림토가 주를 이루고 있고, 지형적인 영향으로 금강내라는 높새바람이 불어, 같은 위도상에 있는 서해안 보다 온난하다. 가을과 겨울의 강수량도 다른 지방에 비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평균기온은 11.3℃ 내외이고, 1월 평균기온은 -2.5℃내외, 8월 평균기온은 24.3℃내외이다. 연 강수량은 1,128mm이다.
이번 조사지역인 동해북부선 철도연결구간(저진-군사분계선)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와 저진리 일대로 민간인 통제지역이다. 동 지역은 간성읍에서 7번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민통선이 나오고 민통선을 지나 통일전망대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중간쯤에 사천교가 나온다. 이 사천교를 지나면서 보이는 좌측의 구릉일대가 이번 조사지역이다. 조사지역은 향로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향로봉산맥에서 다시 동으로 뻗어내린 해발 20m~30m 높이의 작은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C지구와 D지구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뜰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이 뜰의 가운데로 사천천이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사지역은 자연지형에 따라 크게 4개의 지구로 구분된다. 송현리 A지구는 3개의 구릉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통일전망대가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송현리 B지구는 A지구에서 폭 40m의 작은 곡간지역을 지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지표조사 시 청동기시대 검파두식과 미완성 반월형석도편이 채집되었다. 송현리 C지구는 B지구에서 남쪽으로 폭 50m의 경작지를 지나 구릉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화층이 잘 발달되어 있어 청동기시대 유적이 위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한편 사천리 유물산포지는 C.I.Q부지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구릉에 해당한다.
현재 조사지역은 지난 2000년에 발생한 산불로 수목은 모두 타고 새로 자란 잡목만이 자라고 있고, 그 사이의 작은 곡간지역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2) 고고학적 환경
고성지방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해방전인 1937년 澤俊一이 거진리에서 출토된 鎔范을 발견 보고한 적이 있고, 그후 1942년에 고성군 전지역에 대한 문화유적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또한 1962년과 1966년에 이화여대의 최숙경이 화진포 주변의 선사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1987년에는 강원도에서 민통선 북방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고성군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한 바 있고, 1998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고성군에서는 처음으로 문암리에서 신석기시대 원형주거지 2기 등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발견되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여기서는 4개 이상의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양양 오산리 유적과 연관시킬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북한 동북지방의 서포항, 강상리, 농포동유적 등과 중국의 東北地方, 러시아의 아무르강 유역에서도 유사한 양상의 토기가 출토된 바가 있어 토기제작과 관련된 선사시대의 문화계통과 전파과정 등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 같이 고성지방은 한반도의 중부 동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동북지방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한국선사문화의 교류와 전파문제의 규명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지역이다. 특히 화진포 일대에는 이미 많은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유적들이 조사보고 되어 있어 선사문화의 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 조사방법 및 조사내용
1) 조사방법
이번 발굴조사 지역인 D지구는 C.I.Q 부지로 예정되어 있는 지역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구릉에 해당된다. 시굴조사 시에 12~13기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므로, 전면제토를 실시하였다. 제토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13기, 수혈유구 13기, 민묘 6기 등 총 3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주거지 및 수혈유구는 B, C지구와 시기를 같이하는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유구이다.
2) 조사내용
D지구는 이번 조사지역에서 가장 남쪽에 해당하고 현재 C.I.Q 건설부지에서 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첫 번째 구릉에 해당하며, 지표조사시 사천리 유물산포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사천천과 사천뜰을 사이에 두고 C지구와 마주보고 있다. 현재 조사지역의 남서쪽에는 무명용사 묘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무명용사 묘역으로 올라가는 절토된 부분에 주거지의 단면이 노출되어 있다.
조사지역인 D지구 구릉은 정점인 해발 45.5m를 기준으로 북쪽과 서쪽으로 대체로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며, 북서쪽과 동쪽사면은 급경사이며, 남쪽사면은 완만한 편이다. 따라서 유구는 조사지역 구릉의 북쪽과 서쪽으로 뻗어 내리는 능선과 남쪽사면에 분포하는데, 특히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사면에 대부분의 유구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북쪽의 급경사에도 일부의 수혈유구가 분포하고 있다. D지구에서는 모두 32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청동기시대 관련 유구가 24기, 시기불명 유구가 2기이며, 후대 민묘도 6기가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 유구는 주거지가 13기, 수혈유구가 11기가 확인·조사되었다. 시기불명의 유구는 내부에서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는데, 내부토의 상황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유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민묘는 대부분이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중 1기에서 경식이 출토되어 시기가 고려~조선시대의 것으로 판단된다.
(1) 주거지
대부분이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의 주거지이다. 모두 13기가 확인·조사되었다. 구릉의 정점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위치하는 1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쪽의 능선과 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 7호 주거지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해발 38m지점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5m지점에 4·5·6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서쪽 6m지점에 8호가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서벽은 삭평되었다. 주축방향은 N-80°-E이며, 길이 5.2m, 너비 4,7m, 현 깊이 약 1m로 화재에 의하여 폐기되었다. 토층은 8개층으로 나뉘어 지는데, 토층의 양상으로 볼 때 Ⅰ~Ⅲ층은 자연적인 퇴적의 양상으로 판단되며, Ⅳ~Ⅷ층은 화재 발생시 진화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채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즉 Ⅳ층을 제외하고는 불의 영향에 의하여 상당히 소토화가 진행되었는데, 아래층으로 갈수록 소토화의 정도는 강해진다. 바닥에는 다량의 목탄과 재 및 무너진 벽체로 판단되는 소토덩어리들이 확인되었다. 바닥은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내부시설로는 Bed상 시설, 노지, 주혈, 작업공, 저장공 등이 확인된다. Bed상 시설은 ㄷ자의 형태로 서벽을 제외한 세 벽에서 확인되는데, 바닥면과 최대 20cm 정도의 단차를 가지고 있으며 그 폭은 1~1.6m로, 성토가 아닌 중앙부를 삭토하여 만들었다. 남벽쪽의 시설에는 작업공으로 추정되는 부정형의 수혈이 확인이 되며, 북벽쪽과 동북모서리에서 부정형과 방형의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동벽쪽에는 벽주혈 외에는 확인되는 것이 없다. 이것으로 볼 때 남벽쪽은 작업과 관련된 공간으로 판단되며, 노지가 확인되는 중앙부와 북벽쪽은 취사를 위한 공간, 그리고 동벽쪽은 취침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어 공간의 분할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노지는 주축방향의 중앙에서 동벽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확인되는데, 무시설식으로 상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주혈은 주축방향의 주주혈과 벽주 그리고 중앙부와 Bed상 시설과의 경계를 따라 설치된 보조주혈로 구성된 것으로 보인다. 주주혈은 직경 약 25cm, 깊이 25cm로 깊은 편이며, 벽주 및 보조주혈은 직경 20cm 미만, 깊이 5~10cm로 얕은 편이다. 또한 주혈의 내부 및 주변에서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다수의 석기들이 출토되었는데, 동벽쪽에서 석촉 및 석부, 미완성석기가, 남벽쪽에서 완형과 반파의 석도가 2점, 남쪽 침상과 동쪽 침상의 경계부분에서 검파두식 2점이 출토되었으며, 퇴적토 내에서도 다수의 토기편과 석촉 및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 10호 주거지
해발 31m지점에 위치하며, 서쪽 3m지점에 13호가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남쪽일부가 삭평되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잔존상태로 보아 방형으로 추정된다. 주축방향은 N-84°-E이며, 길이 4.2m, 현 너비 2.6m, 추정 너비 3.6m, 현 깊이 40cm이다. 내부에는 암적갈색의 점질토가 채워져 있었으며, 바닥은 암반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내부시설로는 주혈 및 작업공이 확인되었는데,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의 형태를 하고 있다. 즉 주거지의 중앙부에 두 개의 중심 주혈을 두고 그 사이에 타원형의 수혈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벽을 따라 벽주를 배치하였다. 주주혈은 직경 약 30cm, 깊이 50cm, 주혈간 거리는 60cm이다. 벽주혈은 벽면을 따라 11개가 확인되었는데, 직경 약10~20cm, 깊이 10cm 미만으로 얕은 편이다. 중앙의 타원형 수혈은 장축 45cm, 단축 35cm로 내부에 30cm 정도의 수혈을 2단으로 설치했는데, 내부에 지석이나 대석을 놓아 작업을 하기 위한 시설로 판단된다. 출토유물은 타원형 수혈의 주변으로 무문토기편들이 다량 확인되었으며, 토제방추차 및 미완성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 18호 주거지
해발 30m지점인 조사지역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 3m지점에 17호가 위치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주축방향은 E-W이다. 길이 4.4m, 너비 3.3m, 현 깊이 10cm이다. 내부에는 소토와 목탄이 혼입된 암적갈색의 점질토가 단일층으로 채워져 있었다.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는데, 내부에는 다수의 목탄이 확인되었으며, 주거지의 중앙부로 소토가 다수 확인되었다. 소토의 범위가 중앙부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 해체 후에 발생한 폐기물을 소각처리한 결과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내부시설로는 노지, 주혈, 저장공 등이 확인되었다. 노지는 남동모서리 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확인되었는데, 무시설식으로 상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직경 약 60cm의 원형의 범위로 소결되었다. 주혈은 벽주만이 확인되는데 50~80cm의 간격으로 네 벽을 따라 16개가 확인되었다. 직경 약 15~20cm, 깊이는 10cm 미만으로 얕은 편이다. 저장공은 북동모서리 부근에서 확인되었는데, 직경 55cm의 원형으로 깊이는 25cm로 내부에서 출토된 것은 없다. 출토유물은 석창과 석도편이 확인되었다.
① 평면형태
완전한 형태를 가진 것과 삭평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거의 반반인데, 잔존하고 있는 상태로 볼 때 방형과 장방형으로 대별되며 방형이 5기, 장방형 7기, 부정형도 1기가 있다. 주거지 전체 및 각각의 평면형태에 따른 주거지 배치의 정형성은 관찰되지 않으며, 주거지간의 중복양상은 16호와 17호만이 확인되었으며, 주거지와 수혈간의 중복(8호·20호)도 확인되었다.
② 규모
삭평에 의하여 파괴된 주거지가 많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잔존상태로 추정할 경우에 장방형 주거지는 길이가 3.8~8.6m이며, 너비는 2.6~4.8m, 잔존 깊이가 10~70cm로 대(17호)·중(8호)·소형(1·11·13·18·19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장폭비는 소형과 대형은 1.8 : 1을 상회하지 않으며, 중형은 너비가 정확하지 않아 확언할 수 는 없으나 잔존하고 있는 주혈의 배치상태로 볼 때 2 : 1을 넘을 것으로 판단된다. 방형 주거지는 폭 4.0m이상의 것과 3.0m이하의 두 종류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깊이가 40cm이상으로 수혈이 깊이가 깊은 편이다. 이상에서 볼 때 주거지의 규모에서 2배 이상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주거지 배치의 정형성, 출토유물 및 내부시설의 차이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것이 위계나 기능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③ 주축방향
대부분의 주거지는 능선과 사면의 위치에 상관없이 등고선 방향과 평행한 북서-남동향을 나타낸다. 다만 17호보다 선축된 주거지인 16호와 북쪽 능선의 1호 주거지만이 남-북향이다. 그러나 1호 주거지는 등고선과 평행한 방향이며, 16호는 능선에 위치하고 있고, 출토유물 상으로 볼 때 다른 주거지들과 시기적인 차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므로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④ 내부시설
주거지의 내부시설로는 노지와 주혈, 벽구, 추정 작업공 및 저장공 등이 확인되었으며, 출입과 관련된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주거지의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일부 주거지에서는 사용에 의하여 바닥면이 경화된 경우도 확인이 되었다. 또한 7호 주거지의 경우 Bed상 시설로 판단되는 바닥면과 20cm 정도의 단차를 가진 시설이 ㄷ자형으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 노지
10기의 주거지에서 확인이 되었는데, 모두 무시설식 노지로 상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1·7·11·12·13·16·17·19호)과 토광형(8·17호)이 확인되었는데, 토광형도 수혈의 깊이는 그리 깊지 않은 편이다. 장방형 주거지는 모두 노지를 갖추고 있으며, 노지의 수는 주거지의 규모에 상관없이 하나씩이며, 위치는 정형성을 갖추지 않는데, 주거지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것(17호), 주축방향의 중앙에서 단벽으로 치우쳐서 위치하는 것(7·11·13·16호), 장벽과 단벽쪽으로 치우쳐서 위치하는 것(1·8·12·18·19호) 등 다양하다. 규모는 직경 50~60cm 정도의 원형이 대부분으로, 소결의 정도는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다.
㉡ 주혈
대부분의 주거지에서 주혈이 확인되는데, 각 주거지간에 주혈배치의 정형성은 보이지 않으며, 다양한 형태의 주혈배치를 나타내고 있다. 주축방향의 중앙으로 2~3개의 중심 주혈을 두고 벽주혈을 갖춘 경우가 많으며, 중심 주혈 없이 등간격의 벽주혈만을 배치한 것(18호)도 있다. 그리고 대형인 17호의 경우 2× 5열의 주혈배치를 갖추고 있으나, 그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주혈의 규모는 중심주혈의 경우 직경 15~20여cm이며, 벽주혈의 경우 10~15cm 정도로 작은 편이다. 깊이는 5~10cm가 대부분인데, 다만 10호 주거지의 경우 평면형태는 소위‘송국리형주거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중앙의 두 주혈의 깊이가 50cm이상으로 깊은 편이다.
㉢ 벽구
조사지역에서 벽구가 확인된 주거지는 8·11·12·13호의 4기로 적은 편이다. 벽구는 한 벽면에서만 확인되는데, 한쪽 벽면 거의 전체를 돌린 13호를 제외하고는 한쪽 벽면의 일부에서만 확인되었다. 13호의 경우는 벽구 내에서 주혈도 확인되며, 벽구 바깥에 붙어 상면에 벽구 내 주혈과 교차되어 주혈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벽주를 세운 후 벽구 내의 주혈과 상면에 배치된 주혈 사이의 간격에 판재를 조립하여 끼워 넣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벽구의 폭은 대부분 15cm를 넘지 않으며 그 깊이는 10cm 미만이다. 다만 8호의 경우 벽구의 폭이 40cm이상으로 넓은 편인데, 벽체를 세우기 위한 보조의 기능보다는 배수의 기능을 위한 시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작업공 및 저장공
일부의 주거지에서 작업공 및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수혈들이 확인되는데, 그 형태는 원형 및 타원형, 부정형으로 다양하다. 작업공 및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수혈들 내부에서 작업 및 저장과 관련된 유물들이 출토되지 않아 이러한 기능을 했는지 확언 할 수 없다. 그러나 수혈들의 위치 및 형태 깊이 등에서 차이가 있어 기능상의 차이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작업공으로 추정되는 수혈들의 위치는 다양하고, 그 깊이가 얕은데 비해, 저장공으로 추정되는 수혈들의 위치는 대부분 주거지의 모서리나 벽면쪽으로 치우쳐서 확인이 되고 그 깊이가 상당히 깊은 편으로 토기 및 곡물 등을 저장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10호 주거지의 경우 전술했듯이 소위 송국리형 주거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중앙의 두 주혈 사이의 타원형 수혈 내에 다시 타원형의 수혈을 단을 두어 설치했는데, 규모 및 깊이로 보아서 지석이나 대석 등을 놓아 작업을 시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작업공의 규모는 다양한 편이며, 저장공의 규모는 직경 50cm 정도이며, 깊이는 20cm이상으로 깊은 편이다.
⑤ 폐기양상
화재와 관련 없는 일반 주거지는 토층 및 내부양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주거지는 해체 후 자연적인 퇴적에 의하여 매몰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내부에서 화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목탄과 소토, 소결상태가 보이는 주거지(1·7·11·12·16·17·18호)가 문제가 되는데, 이 역시 내부의 양상으로 볼 때 7호를 제외하고는 불의의 화재에 의한 폐기라기보다는 인위적인 폐기로 보인다. 즉 7호 주거지의 경우 토층과 목탄의 양, 목탄의 출토상태, 바닥과 벽면의 피열정도로 보아 불의의 화재에 의한 무의도적인 폐기로 판단되지만, 다른 주거지들은 목탄의 양이 극히 적으며, 목탄과 소결의 범위가 어느 한 곳에 집중되는 점 등으로 보아 주거지 해체 후에 발생한 폐기물 등을 소각 처리한 후 어느 정도 매몰시켜 폐기한 것으로 판단된다.
⑥ 출토유물
출토유물은 극히 적은편이다. 토기류로는 완형은 출토되지 않았으며, 출토량 또한 적은편이다. 원형점토대토기편, 외반구연토기편, 우각형파수, 방추차,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 또한 양은 많지 않으나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석촉·석창·석부·석도·검파두식·방추차·지석·불명석기 등이 확인되었는데, 석촉의 수가 가장 많다.
(2) 수혈유구
수혈유구는 모두 13기가 확인·조사되었는데, 주거지와 시기를 같이하는 유구가 11기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2기는 유물의 검출이 없어 그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매몰토의 양상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관련 유구일 가능성이 크다. 평면형태는 원형 및 타원형이 7기, 장방형 3기, 부정형 2기 및 말각제형 1기로 그 형태가 다양한 편이다. 주거지에 인접하여 위치하는 것도 있으나. 주거지와는 별개로 떨어져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급경사인 북쪽 사면에서도 4기가 확인되었다. 규모도 평면형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데, 원형 및 타원형은 대부분이 직경 1m를 넘지 않은 소형의 수혈이며, 부정형 및 말각제형은 그 보다도 크다. 깊이는 주거지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주축방향은 역시 주거지들과 마찬가지로 등고선과 평행한 형태를 하고 있다. 내부시설로는 2호와 14호에서 수혈의 바깥으로 폭 15~20cm, 길이 약 2m 정도의 구가 뻗어나가는데, 배수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리고 3·21·22·24호의 내부에서는 소토와 목탄들이 다량 확인되며, 일부에서 벽면의 소결현상도 관찰된다. 출토유물이 극히 적어 확언할 수는 없으나, 토제품의 소성과 관련된 유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 외의 수혈 유구에서는 소량의 무문토기편 외에 확인되는 것이 없어 그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3) 민묘
조사지역에서는 모두 6기의 민묘가 확인되었다. 북서쪽 사면에 3기가 위치하며, 남쪽 사면에 3기가 위치한다. 그 중 북서쪽 사면에 위치한 2기를 조사하였는데, 1기는 단장묘이며, 다른 하나는 규모와 인골의 출토위치로 보아 합장묘로 판단된다. 두 기의 축조방법은 동일한데,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다가 관을 안치할 부분에 폭 15~20cm 정도 단을 만든 후 약 15cm 깊이로 더 굴착하였다. 관을 안치하고 묘광과 관 사이의 공간에는 풍화암반토와 회를 섞어 보강한 후 그 위로는 풍화암반토를 이용하여 묘광에 채우고 봉분을 만들었다. 단장묘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합장묘에서는 유리제 경식 1개가 두개골 부근에서 확인되어 고려~조선시대 민묘로 판단된다.
9. 토의사항
1) 조사된 유구의 성격 및 시기검토
2) 유적의 처리문제
3) 기타 제반사항
고성 국도7호선(남북연결도로) 공사구간내 유적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1. 조사명칭 : 고성 국도7호선(남북연결도로) 공사구간내 유적조사
2. 유적의 위치· 면적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사천리 일원(30,107㎡)
3. 시굴조사 기관 : 강원문화재연구소
4. 시굴조사 기간 : 2004년 12월 6일 ~ 2005년 4월 현재까지.
5. 조사단 구성
○ 단 장 : 지현병(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
○ 지도 위원 : 김동현(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 문화재위원)
조유전(前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문화재위원)
지건길(前 국립중앙박물관장)
이건무(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위원)
최병현(숭실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심정보(한밭대학교 교수, 문화재위원)
이영문(목포대학교 교수)
이홍종(고려대학교 교수)
○ 책임조사원 : 고동순(강원문화재연구소 조사 1팀장)
○ 조 사 원 : 이창현(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박수영(강원문화재연구소 연구원)
6. 조사경위 및 목적
강원도 동쪽을 남북으로 종관하고 있는 국도 7호선(부산~온정)은 근래에 들어 교통량의 증가에 따른 심한 정체성, 험한 지형여건에 의한 교통하고의 위험성, 주요 지역간의 접근성 불리 등 도로의 역기능 현상이 초래됨에 따라, 이 구간에 대하여 장래 교통수요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지역개발 촉진 및 국토의 균형발전 도모, 물류비 절감, 해안 관광개발계획에 의한 관광교통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이미 국도 7호선 일부 구간에 대한 4차선 확장 및 포장 공사를 하고 있으며, 일부 구간은 추진계획 중에 있다.
강원도 고성군 명파-송현간 7번국도 확·포장공사는 민통선 내 현내면 명파리 부터 송현리까지 총 연장 6.51km의 구간을 현재의 2차선에서 4차선으로 약간의 노선변경과 함께 확·포장하는 공사로 원주국토관리청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다. 동 사업지구에 대하여는 지난 2001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송현리 유물산포지 A, 송현리 유물산포지 B, 사천리 유물산포지 A, 사천리 유물산포지 B 등 총 4개 지역에서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에 원주국토관리청에서는 우선 사천리(출입국관리시설)에서 명호리(통일전망대) 구간에 우선 공사를 실시하기로 하여, 이번 시굴조사는 송현리 유물산포지 A, 송현리 유물산포지 B의 2개소에 한하여 시굴조사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이후 시굴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사천리 유물산포지 A지구의 북쪽 구릉에서 지표조사시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사도중 새로운 유적인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번 시굴조사는 총 3개지역에 대하여 실시하게 되었으며, 자연지형에 따라 크게 3개의 지구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송현리 유물산포지 A를 시작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B, C지구라 정하였다.
금번 조사의 목적은 이러한 도로건설 과정에서 형질변경되는 지역에 한하여 사전에 문화유적의 분포 및 성격을 파악하여 이를 토대로 문화재의 발굴·보전·복원 등 효율적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얻는데 주된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7. 유적의 위치 및 환경
1) 유적의 위치 및 자연환경
이번 조사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고성군은 강원도 동해안의 북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으로서 북쪽은 금강산을 사이에 두고 통천군과 접하나 실제로는 휴전선과 접하고 있으며, 동쪽은 東海, 서쪽은 향로봉을 경계로 인제군과 접하고, 남쪽으로는 속초시 장사동을 경계로 하고 있다. 경·위도상으로는 동경 128°35′18″~128°13′41″, 북위 38°11′06″~38°36′38″에 위치하며, 남북간 길이는 약 48.12km, 면적은 621.10㎢이다.
고성군은 금강산에서 향로봉,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간성에서 인제로 넘어가는 길목에 진부령이 있고, 그 동쪽 사면은 점점 낮아지면서 동해로 이어진다. 북쪽은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과 신계천이 고성읍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해로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진부령 부근에서 발원한 남천과 북천이 간성읍 남·북쪽을 거쳐 동해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하천은 그 길이가 짧고 유속이 빠른 것이 특징이며, 하류에는 충적평야들이 비교적 넓게 전개되어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해안선을 따라서는 해식애(海蝕崖)와 사빈(沙濱), 사구(砂丘)가 교대로 나타난다. 사구의 발달로 인해 만의 입구가 막혀 형성된 삼일포, 화진포, 송지호 등의 석호와 솔섬, 삼섬, 형제섬 등의 섬이 산재해 있다. 토양은 갈색 삼림토가 주를 이루고 있고, 지형적인 영향으로 금강내라는 높새바람이 불어, 같은 위도상에 있는 서해안 보다 온난하다. 가을과 겨울의 강수량도 다른 지방에 비해 많은 것이 특징이다. 평균기온은 11.3℃ 내외이고, 1월 평균기온은 -2.5℃내외, 8월 평균기온은 24.3℃내외이다. 연 강수량은 1,128mm이다.
이번 조사지역인 고성 국도 7호선(남북연결도로)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와 사천리 일대로 민간인 통제지역이다. 동 지역은 간성읍에서 7번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민통선이 나오고 민통선을 지나 통일전망대쪽으로 계속 가다보면 중간쯤에 사천교가 나온다. 이 사천교를 지나면서 보이는 좌측의 구릉일대가 이번 조사지역이다. 조사지역은 향로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향로봉산맥에서 다시 동으로 뻗어내린 해발 20m~30m 높이의 작은 구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C지구와 D지구 사이에는 비교적 넓은 뜰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이 뜰의 가운데로 사천천이 서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어 선사인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조사지역은 자연지형에 따라 크게 3개의 지구로 구분된다. A지구는 2개의 구릉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통일전망대가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B지구는 A지구에서 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구릉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지표조사시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었다. C지구는 사천천에서 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는 첫 번째 구릉에 해당하며, 지표조사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유적이다.
2) 고고학적 환경
고성지방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해방전인 1937년 澤俊一이 거진리에서 출토된 鎔范을 발견 보고한 적이 있고, 그후 1942년에 고성군 전지역에 대한 문화유적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또한 1962년과 1966년에 이화여대의 최숙경이 화진포 주변의 선사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1987년에는 강원도에서 민통선 북방지역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고성군에 대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체계적으로 실시한 바 있고, 1998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고성군에서는 처음으로 문암리에서 신석기시대 원형주거지 2기 등 신석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유적이 발견되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여기서는 4개 이상의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양양 오산리 유적과 연관시킬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북한 동북지방의 서포항, 강상리, 농포동유적 등과 중국의 東北地方, 러시아의 아무르강 유역에서도 유사한 양상의 토기가 출토된 바가 있어 토기제작과 관련된 선사시대의 문화계통과 전파과정 등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와 같이 고성지방은 한반도의 중부 동해안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동북지방과 동남지방을 연결하는 한국선사문화의 교류와 전파문제의 규명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지역이다. 특히 화진포 일대에는 이미 많은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 유적들이 조사보고 되어 있어 선사문화의 寶庫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 조사방법 및 조사내용
1) 조사방법
이번 조사 지역은 자연지형에 따라 크게 3개의 지구로 구분되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송현리 유물산포지를 A지구로 정하고, 남쪽으로 가면서 B, C지구라 정하였다. 조사는 먼저 조사 전 유적에 대한 현황을 사진촬영 하였으며, 조사대상 지역에 대한 잡목제거를 실시하였다. 이후 각각의 지구에 B.M점을 정한 후 전 조사지역에 대한 10m×10m 크기의 방형 그리드를 설정하였으며, 각각의 그리드 마다 2m×8m의 트랜치 1~2개씩을 지형을 고려하여 설치하였고, 유구와 유물의 존재를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때 교란된 부분은 원토층까지 제거하였으며, 확인된 유구 중 일부는 유구에 대한 정확한 성격파악을 위하여 정밀발굴조사를 원칙으로 하였다.
2) 조사내용
현재까지 조사 결과 A, B지구에서는 유구나 유물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으며, 다만 B지구에서는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토기편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유구는 주로 능선의 서쪽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C지구는 지표조사 과정에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번 조사가 시작된 후 발견된 유적으로 유적의 동쪽 끝부분의 일부는 공사로 인하여 절토된 상태이다. 조사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로 11여기 확인되었으며, 현재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는 중이다.
(1) A지구
A지구는 이번 조사지역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표조사시 백자편이 채집되었던 지역이다. 그리드 설정을 위한 B.M은 서쪽의 능선 정상부에 정하고 구릉의 방향에 따라 10m×10m의 그리드를 구획하였다. 이후 각 그리드마다 2m×8m의 트랜치를 설정하여 유구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였다. 조사결과 구릉의 정상부쪽으로 비교적 삭평이 심한 상태로 표토층을 걷어내자 바로 풍화 암반이 노출되었으며, 기타 유구와 유물은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2) B지구
B지구는 A지구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지표조사시 신석기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었던 곳이다. 그리드 설정을 위한 B.M은 서북쪽의 능선 정상부에 정하고 구릉의 방향에 따라 10m×10m의 그리드를 구획하였다. 이후 각 그리드마다 2m×8m크기의 트랜치를 1~2개를 설정하여 유구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였다.
조사결과 이번 조사구역에서는 유구나 유물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으며, 다만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는 무문토기편이 채집되는 것으로 보아 유구의 분포는 주로 조사지역의 서쪽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 C지구
C지구는 사천천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첫 번째 구릉에 해당되며, 이번 조사가 시작된 후 발견된 유적이다. 유적의 서쪽으로 약 200m정도 떨어진 곳에는 철도구간의 D지구가 위치하고 있으며, 유적의 동쪽 끝부분은 이미 공사로 인하여 일부가 절토된 상태이다. 그리드 설정을 위한 B.M은 조사지역의 서쪽 능선 정상부에 정하고, 전 조사구역에 구릉의 방향에 따라 10m×10m의 그리드를 구획하였다. 이후 각 그리드마다 2m×8m의 트랜치 1~2개를 설정하여 유구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였다.
트렌치에서 확인된 유구를 전면 확장하여 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1기가 확인되었으며, 현재 정밀 발굴조사 중에 있다. 유구는 주로 능선상을 따라 분포하고, 평면형태는 대부분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능선과 직교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주로 두형토기, 공렬토기, 이중구연토기, 단사선문토기, 구순각목토기 등 청동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점토대토기는 1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쪽으로 약 200여m 정도 떨어진 곳의 철도부지내 D지구에서는 주로 점토대토기가 공반되는 주거지가 조사된 것과 비교하여 시기적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① C-1호, C-2호 주거지
C-1호와 C-2호 주거지는 E40 그리드에서 서로 중첩되어 윤곽선이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1호 주거지가 먼저 축조되었으며, 2호 주거지가 1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후축되었고, 두 주거지간의 바닥레벨 차이는 약 15cm이다. 1호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15°)으로 하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동쪽 대부분이 2호 주거지에 의해 파괴되었고, 규모는 남-북 장축 5.7m, 현존 동-서 단축 1.8m, 깊이 55cm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직각으로 굴착하고 조성하였으며, 바닥에는 점토를 깔았고, 일부 소토환된 곳이 확인되고 있다. 내부시설로는 서장벽쪽에 벽구가 확인되었으며, 출토유물은 두형토기 1점이 있다.
2호 주거지는 1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후축 되었으며,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25°)으로 하는 장방형으로 추정된다. 규모는 남-북 장축 9.7m, 현존 동-서 단축 3.6m, 깊이 60cm고, 주거지의 동장벽은 삭평에 의해 결실되었으며, 서장벽쪽에는 벽구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과 반파된 반월형석도 2점, 화살촉 1점, 미완성 석기 3점이 있다.
② C-3호, C-4호 주거지
C-3호, C-4호 주거지는 S10,E20 그리드에서 윤곽선이 확인되었으며, 내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4호 주거지가 먼저 축조되었고, 3호 주거를 파괴하고 축조된 것을 확인하였다. 두 주거간의 바닥레벨 차이는 약 20cm 정도로 C-3호 주거지가 낮다.
3호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30°)으로 하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동쪽 대부분이 4호 주거지에 의해 파괴되었고, 규모는 남-북 장축 6.6m, 현존 동서 단축 3.3m, 깊이 60cm, 면적은 약 20.7㎡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직각으로 굴착하고 조성하였으며, 바닥에는 점토를 깔았다. 북장벽에는 주거지가 화재시 일부 소토화된 곳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방추차 2점, 돌도끼 1점, 지석 1점, 반파된 반월형석도 2점이 있다.
4호 주거지는 3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내부에 후축 되었으며,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30°)으로 하는 장방형이다. 규모는 남북장축 5.6m, 동서 단축 3.7m 깊이 50cm이고, 바닥은 현재 조사중에 있으며, 출토유물은 구순각목된 무문토기편과 화살촉 2점, 토제와 석제 방추차가 각각 1점씩 있다.
③ C-5호 주거지
C-4호 주거지는 E20 그리드에서 확인되어 주변으로 확장조사를 실시하였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동-서(W→N 35°)방향으로 동쪽 장벽은 삭평에 의하여 결실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동-서 장축 6.4m, 현존 남-북 장축 4.9m, 현 깊이 50cm, 면적은 31.3㎡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주거지를 조성하였는데,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졌으며, 벽쪽으로는 화재시 딱딱하게 소토화 되었다.
출토유물은 북단벽 쪽에서 작업대 2개와 갈돌이 출토되었으며, 화살촉 4점, 지석 1점이 출토되었다. 작업대는 오랫동안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특히 갈돌과 지석은 파손되어 서로 떨어진 곳에서 출토되어 북장벽쪽이 석기를 제작하였던 작업공간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장벽에서는 돌도끼 3점, 화살촉 2점, 석재 방추차 1점, 어망추 1점, 반월형 석도 1점이 출토되었다. 아직 바닥조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벽쪽으로는 주혈이 일부 나타나고 있으며, 동쪽 장벽에서는 저장공이 확인되었다. 토기는 완형으로 복원할 수 있는 것이 2점 출토되었으며, 심발형으로 보인다.
④ C-6호, C-7호 주거지
C-6호와 C-7호 주거지는 구릉의 가장 정상부인 E10 그리드에서 서로 중첩되어 윤곽선이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6호 주거지가 먼저 축조되었으며, 7호 주거지가 6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후축되었고, 두 주거지간의 바닥레벨 차이는 약 15cm이다. 6호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30°)으로 하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서쪽 대부분이 7호 주거지에 의해 파괴되었고, 남쪽은 삭평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주거지의 규모는 현존 남-북 장축 4.5m, 현존 동-서 단축 2.5m, 깊이 15cm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직각으로 굴착하고 조성하였다. 바닥에는 점토를 깔았으며, 주거지가 화재시 일부 소토화된 곳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북동쪽 모서리에서 집중석으로 출토되고 있으며, 심발형토기 2점, 이중구연에 삼각거치문이 시문되었고, 구순각목된 구연부편이 있다. 석기로는 돌도끼 1점, 석검편, 구형석기 등이 있다.
7호 주거지는 6호 주거지를 파괴하고 북서쪽으로 약간 치우쳐 후축 되었으며, 평면형태는 남북을 장축(N-E30°)으로 하는 세장방형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주거지의 규모는 현존 남북 장축 10.1m, 동 서 단축 4.2m, 깊이 20cm, 면적은 약 42.4㎡고, 주거지의 남단벽과 서장벽 일부가 삭평에 의해 결실되었다. 바닥은 현재 조사중에 있으며, 일부 저장공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과 반파된 반월형석도 2점, 화살촉 3점, 미완성 석도 1점, 지석 2점, 방추차 1점이 있다.
⑤ C-8호 주거지
C-8호 주거지는 N10,E100 그리드에서 확인되어 주변으로 확장조사를 실시하였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동-서(W→N 10°)방향으로 북쪽 장벽은 삭평에 의하여 결실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동-서 장축 6.5m, 현존 남-북 단축4.6m, 현 깊이 60cm, 면적은 약 30㎡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주거지를 조성하였으며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졌다. 남장벽에는 벽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벽구 안쪽으로는 턱을 두어 주거지의 바닥과 구별하고 있다. 현재 바닥조사가 진행중이며, 동단벽 쪽으로는 일부 저장공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편 2개체와 지석 1점이 있다.
⑥ C-9호 주거지
C-9호 주거지는 N20 그리드에서 확인되어 주변으로 확장조사를 실시하였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동-서(W→S 10°)방향으로 북쪽 장벽은 삭평에 의하여 결실되었다. 주거지의 규모는 동-서 장축 6.7m, 현존 남-북 단축 5.2m, 깊이 55cm, 면적은 약 34.8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주거지를 조성하였으며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졌고, 벽쪽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화재시 소토화 되었다. 현재 바닥조사가 진행중이며, 동단벽 쪽으로는 일부 저장공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무문토기편과 돌도끼 3점, 반월형석도 1점, 화살촉 3점, 지석 1점, 석검편 1점이 있다.
⑦ C-10호 주거지
C-9호 주거지는 N20 그리드에서 확인되어 주변으로 확장조사를 실시하였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거의 방형에 가까우며, 장축방향은 동-서(W→S 30°)방향이고, 규모는 동-서 장축 4.8m, 남-북 단축 4.4m, 깊이 55cm로 면적은 21.1㎡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층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주거지를 조성하였으며 바닥은 점토를 깔아 다졌고, 벽쪽으로 일부 소토가 확인되고 있다. 현재 바닥조사가 진행중이며, 동단벽 쪽으로는 일부 저장공이 확인되고 있다. 출토유물은 공렬토기 2개체분, 구연부에 단사선이 시문된 무문토기 1점, 이중구연토기편, 심발형토기 1점, 방추차 1점이 있으며, 석기는 반월형석도 3점, 돌도끼편 1점이 있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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