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성명-교육과학기술부는 초등학교 한자교육 방침을 즉각 거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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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연대
2010-02-01 10:23
서울--(뉴스와이어)--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12월 23일에 발표한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에 한자교육을 시킬 근거를 마련해 넣었다. 개정 교육과정 총론 중 ‘초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중점’이라는 항목에서 ‘6. 정보통신활용교육, 보건교육, 한자교육 등은 관련 교과(군)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활용하여 체계적인 지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이전의 초등 교육과정에 언급되지 않던 한자교육을 공식적으로 집어넣었다. 이 교육과정은 2011년에 1~2학년, 2012년에 3~4학년, 2013년에 5~6학년에 적용된다.

물론 이 교육과정의 지침은 한자교육을 초등학교의 정규 수업과목으로 새로이 보태는 내용은 아니지만, 이미 아침 자습 시간이나 재량활동/특별활동(창의적 체험활동으로 합쳐짐) 시간에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는 많은 초등학교에서 교과와 연계하여 더욱 많은 시간을 한자교육에 쓸 가능성이 높아졌고, 각 시도 교육청에서 교재를 만들어 뿌리고 교사연수를 시킬 명분이 커졌다. 즉 한자교육, 특히 사교육 바람이 거세게 불 위험이 커진 셈이다.

초등 교사들의 증언에 따르자면, 2009년 내내 개정 교육과정 공청회에서 한자교육 부분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11월 중순의 마지막 공청회에서 위와 같이 이미 실행하고 있던 정보통신활용교육이나 보건교육에 묻어가는 식으로 슬쩍 끼워 넣었다고 한다. 교육 현장의 반대 의견이 일어날 틈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에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용역 의뢰한 연구 결과를 초등 한자교육 도입의 근거로 삼은 듯하다. 연구결과 보고서는 초등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3%가 초등 한자교육에 찬성하고 있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 교사들은 한자교육의 이점으로 ‘어휘력 신장’을, 학부모는 ‘교과의 주요 개념 이해’를 꼽았다 한다.

그러나 이 연구는 방법론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설문조사에서는 이 연구주제가 “초등학교의 바람직한 한자 교육 방안”임을 밝히고 있고, 연구 주체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자교육방안 연구실이라는 점에서, 이미 초등학교에 한자교육을 도입한다는 전제 아래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객관성이 매우 부족하다. 둘째, 설문 문항 설계도 당연히 매우 의도적이다. 교사나 부모의 한자 학습 경험을 되살리는 쓸데없는 질문을 한참 늘어놓고, 한자교육의 이점이라든가 교육실태, 한자교육 진행에서 어려운 점 등을 묻는 식으로 찬성 분위기를 조장하는 수많은 질문 끝에 한자교육에 대한 찬성 여부를 묻는 식이다. 참으로 졸렬한 짓이다. 그리고 보고서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한글전용을 원칙으로 삼는 우리나라의 어문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국어공동체와의 합의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으나, 그런 논의는 전혀 없었고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이루어졌으니 민주적이지 않음도 또 하나의 비판 요소다.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창립 이래 지금까지 10년 동안 한자교육 부활을 꿈꾸는 망령과 꾸준히 맞서며, 이들의 주장이 허황됨을 비판하였다. 따라서 이를 다시 반복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우리가 문제로 삼고자하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교육 정상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방안을 만드는 대신 정치적 외압에 줏대 없이 따라감으로써 초등학교 교육을 파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 첫 단원의 제목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다. 대학을 나온 학부모에게 ‘인문 환경’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과연 우물쭈물하지 않고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99.9%는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용어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셀 수도 없이 많이 나오므로 교사들은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다 써야하니, 실제 교과서에서 추구하는 활동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당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한자 낱말의 뜻을 잘 모르니 시험을 보면 성적이 좋게 나올 리 없다. 이 하나의 과정을 놓고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의 어휘력 신장”,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과의 주요 개념 이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요구가 나온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은 아이들이 한자를 모르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려운 한자어 낱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교과서의 잘못인가? 당연히 교과서 집필자들이 구체적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추상적이며 학문적인 낱말을 사용하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가 영어 교과서에는 어느 학년까지 어떤 수준의 낱말 몇 개를 써야 한다는 세부 규정까지 다 만들면서, 국어를 비롯하여 우리말로 이루어진 모든 교과서에 대해 사용하는 낱말의 어렵고 쉬움과 마땅함을 연구, 분석, 검증한 적은 없다. 심지어 그런 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조차 발견하기 힘들다. 모든 교육은 언어를 주요 수단으로 하여 이루어지는데, 아직까지도 이런 연구가 학제 간 협동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공교육의 기초가 매우 허약하다는 반증이다. 이는 마치 정부의 각종 문서나 학계의 연구보고서에 등장하는 한자어와 영어가 일반 국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주는 양상과 매우 비슷하다.

이에 우리 한글문화연대는 교육과학기술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한자 사교육 바람을 부르고, 아이들에게 학습의 무거운 짐을 얹는 초등 한자교육 방침을 ‘개정 교육과정’에서 없애라.

2. 초등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낱말의 난이도와 적절성에 대해 교육과정의 근본 목적에 비추어 연구하고 검증하는 장기적인 작업을 시작하라.

2010년 2월 1일 한글문화연대 대표 고경희

한글문화연대 개요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에 창립한 국어운동 시민단체로,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섰으며, ‘언어는 인권’이라는 믿음으로 알 권리를 지키고자 공공기관과 언론의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는 활동을 한다.

웹사이트: http://www.uri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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