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3월26일(금)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 추모미사
사실, 일제치하의 제도교회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암살했던 안중근(토마)을 정당화하지 않고 단죄했었다. 그러나 안의사 순국 84년 만인 1993년에 김수환 추기경의 공개 사과로 의거의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8월 21일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공식 미사로 김수환 추기경과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가 마련되었다. 이는 제도교회를 대표하는 현직 교구장이 공식 집전한 첫 번째 추모 미사로 일제 치하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범한 과오를 사과하고 바로 잡은 것은 한국 현대교회사의 일대 전환점으로 평가되었다. 이후 안의사의 정당성을 기원하는 신자들과 학계인사들은 그의 의거를 현양했다.
대구, 천주교-국채보상운동-안중근 특별전
대구에서 마련되는 이번 미사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을 추모함과 동시에, 내년(2011년)이면 서울에 이어 대구에 가톨릭교구가 설립된 지 100년을 맞이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뜻깊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인 대구에서 그 중심인물들이 가톨릭 신자였고, 안중근 의사가 가톨릭인으로서 평양지역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100년전, 대구 계산성당에서는 뤼순 옥중의 안의사를 위해 성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하였다.
국립대구박물관은 <순국 100년 안중근> 특별전을 개최하며, 그의 독립투사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미처 알지 못했던 안의사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전해 줄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다. 전시기간 중에는 국내 안중근 연구의 전문가들이 벌이는 릴레이 강연인 <동양평화학교>, 한 · 중 · 일 대표학자들이 각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안중근 <동양평화포럼-안중근 ‘동양평화론’ 100년과 동아시아의 오늘>, 이상화 · 이육사 · 한용운 시인 등 <민족시인을 기리는-시詩강연회> 등 다채로운 행사도 펼쳐진다.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우리나라 근대역사에 있어 ‘안중근’ 이란 인물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대 차이에 구별없이 안중근 의사를 아는 아이부터 노인까지 그를 민족의 의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념적 대결과 관계없이 남북한 모두가 그를 독립을 위한 의로운 희생으로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일제의 침략에 항거했던 독립투사로서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이지만 안의사의 개인적인 부분에는 종교적 신앙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안의사 인생의 전환점이 된 천주교 입교는 부친 안태훈(베드로)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홍석구(조셉 빌렘) 신부와 민덕효(찰스 뮈텔) 주교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천주교를 개인의 구복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천주교의 교리에서 암울한 세상을 바꾸어 새 시대를 여는 열쇠를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종교와 신앙심은 향후 민권·민족의식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민족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 의사를 주목하고 오늘날 그의 명예를 높이 존중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daegu.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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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실
정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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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7일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