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와이어)--문화재청(청장 유홍준·兪弘濬)이 허가하여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서 발굴조사 중인 「인천 계양산성내 동문 및 북문추정지」의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를 아래와 같이 개최한다.

일 시 : 2005. 4. 30(토) 16 : 00
장 소 : 인천 계양산성 동문지 발굴조사 현장
조사기관 : 선문대학교 고고학연구소
발굴기간 : 2005년 3월 14일~현재


계양산성(桂陽山城) 내 동문 및 북문추정지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자료

1. 조사경위 및 목적

본 발굴조사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성 내 동문추정지(舊 체육시설)일원과 북문추정지에 대한 조사이다.
계양산성이 위치해 있는 계양구는 지리적으로 인천광역시 동북부에 자리잡고 있고 북쪽은 김포시 고촌면과 서구의 검단지역, 동쪽은 부천시 오정구, 서쪽은 서구, 남쪽은 부평구와 접하고 있다. 또 위도 상으로 계양구는 부평구와 함께 우리나라 중심에 위치하고 동북으로 한강유역의 김포평야와 서남으로 서해의 관문인 인천항과 연결되는 요충지이자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하다.
역사적으로도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치·군사적으로는 물론 대외무역의 주요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또한 왜구의 극심한 침입으로부터 계양산성과 문학산성이 적극적인 저항선이 되기도 했다. 계양산성은 이 지역의 외적방어에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계양구에서 계양산성의 복원사업에 대한 자료 축적을 위해 이번 발굴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번 발굴조사에 앞서 2003년에 제 1차 계양산성내 서벽발굴을 실시하여 계양산성의 구조를 파악한 바 있다. 그 후 제 2차로 동문추정지와 북문추정지를 조사하게 되었다.
특히 계양산성 내 동문추정지의 지형은 산 능선이 완만하게 내려가는 모습으로 계곡을 막아 성벽으로 형성되었는데 폐성 이후 오랜 시일동안 퇴적된 상태였다. 최근 그 위에 체육시설을 설치하여 주민들이 체육활동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번 조사 시에 지표아래에서 근대 시멘트우물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로 미루어보아 동문 추정지 내 집수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이에 초점을 맞추었다.

2. 조사단구성

조사기관은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이며, 조사단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조사단장 겸 책임연구원 이형구(선문대학교 교수 겸 고고연구소장)
지 도 위 원 조유전(문화재위원)
심정보(문화재위원)
이 재(문화재전문위원)
조 사 위 원 박경식(단국대학교 교수)
조 사 연 구 원 김영수(선문대학교 강사)
황용순(동양고고학연구소 연구원)
조 사 원 이상오(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조교, 대학원생)
라경화(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조교, 대학원생)
이왕호(중앙대학교 대학원생)
이은숙(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조교)
박용상(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조교)
조 사 보 조 원 오운형(선문대학교 역사학과 4년)
이인경(선문대학교 역사학과 4년)
김은혜(선문대학교 역사학과 3년)
재학생 다수

3. 조사내용

1) 동문지추정지

본 조사지역 중 동문추정지의 지형은 산 능선이 완만하게 비탈지면서 성벽이 가로질렀고, 성벽 밖으로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조사는 먼저 기존의 체육시설을 제거하고 구역을 설정하여 격자법으로 총 9개의 피트(pit)를 설치하여 확인하였다. 북동쪽에서 남동쪽으로 1~5번 pit로 구획하고 북서쪽에서 남서쪽으로 6~9번 pit를 설치하였다. 그 결과 pit 1에서 크기 1m×1m, 깊이 1m의 시멘트로 만든 우물지가 발견되었다. 우물 바닥을 성벽에 있는 돌을 깔고 시멘트로 덮었고, 우물지안에 물은 계속 차 있었다.

서쪽에 위치한 pit 6~pit 8은 지표면을 제토하자 규칙성 없이 석축과 기와편들이 산재해 있었으며, 동쪽에 위치한 pit 2~pit 4는 깊이 60cm 가량 제토결과 석축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pit 4, pit 5, pit 9에는 깊이 50~60cm 아래 몇 구의 인골이 발견되었으나 일부는 뼈가 뒤섞여 있어 급박한 상황에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인골 중에 아말감 의치로 미루어 보아 근대의 인골로 보였는데, 6.25때 이 곳에서 주민들이 학살된 적이 있다고 하는 주민의 증언과 부합된다.

이 후에는 남북 둑과 동서 중앙 둑 만 남기고 각각의 pit를 통합하여 북동구역부터 시계방향으로 Ⅰ · Ⅱ · Ⅲ · Ⅳ로 다시 구획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남쪽의 ⅡㆍⅢ구역은 호안석축(護岸石築)의 형태가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호안석축은 원형을 띠고 있으며, 안쪽으로 또 하나의 열을 지어 형성되었다. 호안석축의 바깥열의 최대너비는 직경 약 12m이고, 안쪽열의 최소너비는 직경 약 10m이다. 또한 호안석축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아 고저차가 발생하는데, 최대너비의 고저차는 1.66m, 최소너비의 고저차는 1.60m이다. 깊이는 최대너비의 가장 높은 점에서 4.5m이고, 가장 낮은 점에서 2.8m이다. 또 최소너비의 가장 높은 점에서 4.1m, 가장 낮은 점에서 2.5m이다.

① 토층및 출토유물
호안석축 안의 토층은 총 7개로 나뉘는데, 제 1층은 표토층으로 우각형파수부와 토기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고, 제 2층은 적갈색 사질점토층으로 사질의 성격이 강하고, 토기편과 기와편, 잡석 등이 섞였다. 제 3층은 황갈색 사질점토층으로 약 40cm 형성하고 있고, 점질의 성격이 강하며 기와편과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또한 유수작용에 의해 얇은 적갈색의 망간이 제 4층까지 미치고 있다. 제 4층은 암회색 사질점토층으로 사질의 성격과 점질의 성격이 반반이며 출토유물은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며, 제 5층은 암청색 점토층으로 완전한 점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제 6층은 암회색의 사질층이 형성되었으며, 그 아래로 호안석축의 바닥면까지 제 7층인 흑색 점토층으로 형성되었다. 흑색 점토층 또한 기와편과 광구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바닥면은 기와와 돌이 부정형하게 깔려있으며, 대형기와와 토기편, 우각형파수부편 등이 출토되었고 길이가 1m가 넘는 나무가지들이 그대로 묻혀있었다.
호안석축 밖의 토층은 총 3개로 나뉘는데, 제 1층과 제 2층은 호안석축 안과 같고, 제 3층은 석축의 보강토로 할석과 기와편, 토기편, 목탄등과 점질토로 단단하게 보축하였다. 또한 석축 아래로 단단한 적갈색의 사질점토로 다짐을 한 것으로 보아 호안석축을 보강한 시설로 보인다.
호안석축 안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다량의 기와편이 출토 되었는데, 대체로 선문과 사선문으로 골이 깊고 선의 간격도 넓은 편이다. 토기는 소형단경호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그 외 경질토기편 등이었다.
제 5층부터의 점토층에는 해감 등 많은 유기물질과 식물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호안석축 밖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기와와 토기편이고, 지표에서 인화문토기, 병형토기와 크기가 다양한 우각형파수부편이 출토되었다. 또한 Ⅰ구역에서는 호안석축 외에 적갈색 사질점토층에서 다양한 토기의 구연부편이 출토되었고, 투각기대와 광구호 등이 출토되었다.

2) 북문지추정지
동문추정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130m 지점에 북문추정지지가 위치하고 있다. 북문추정지가 위치한 이 지역은 성내에 비교적 넓은 지역이 펼쳐져있어 건물들이 들어서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소로가 나있는 부분은 주위보다 돌출되어 있으며 성벽이 허물어져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이 소로길 바로 옆(북쪽으로)에 오목하게 성벽이 단절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이 북문지로 보여지고 있다.
문지입구의 하부 폭은 약 4m이고, 상부 폭이 약 14m이다. 문지의 양쪽 성벽은 이미 허물어져 있는 상태로 기고와 폭을 추정하기가 어려워 문지의 정확한 기고와 폭을 알 수가 없다. 다만 성문안쪽에 양옆으로 높이 1m의 단이 쌓여 있어 성으로 들어오는 진입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북문추정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기와편과 경질토기편으로 기와편의 무늬는 주로 선문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토기편은 회색경질토기편이 주로 나오고 있다.
이번 북문추정지 발굴은 성벽위치 확인과 문지 · 석축의 위치 확인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어 더 세밀한 광역 발굴 조사는 차후로 기대 할 수 밖에 없다.

4. 조사의의

조사구역내 동문추정지에서 물이 스며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이 물과 많은 관련이 있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동문추정지 안쪽으로 평탄지가 형성되었는데, 1994년에 주민 체육시설을 설치하였다. 동문추정지에서 서쪽 능선 위에 약 12m 너비로 편평하고 석축을 가로질러 쌓은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아직도 바닥은 물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1차 저수 시설로 추정된다. 이 저수 시설에서 동쪽으로 약 10m 지점에 있는 우물에서 폭 3m 정도의 웅덩이가 형성되었다. 이들이 성벽 안의 집수시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1차 저수지에서 물을 받아서 우물을 거쳐 현 집수지(集水井)로 물을 모이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사결과 근대 시멘트 우물지가 발견되어 체육시설이 설치되기 전(1994년)까지는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며 현 호안석축 안에서 약 1m가 넘는 점토층으로 보아 오랜 시간동안 물을 모아두었던 집수시설로써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이며, 연못이라기보다는 우물(集水井)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출토되는 토기편을 볼 때 물을 떠 올리던가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로 사용된 토기였음을 알 수 있다.
토기의 종류는 광구호, 단경호, 대형옹 등이며, 기대로 투각기대도 보이고 있으며, 기와는 선문으로부터 집선문, 기하문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이들은 삼국 시기의 토기로 추정되고 있다. 북측 호안 석석 상부에서 출토 된 기와 가운데 「□夫吐」명의 기와는 혹 『삼국사기』잡지에 이 일대를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고 지칭한 사례와 관계된 명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호안석축의 형태로 보아 최대너비의 호안에서 약 2m 안으로 또 하나의 석렬이 있는데 이는 후에 다시 축소하거나 보완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호안석축이 집수시설의 보호벽으로써 우물(집수정) 벽의 보호시설일 뿐 아니라 정수(靜水) 장치의 역할을 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5. 향후계획

앞으로 현 호안석축의 서쪽 능선위에 약 12m 너비의 제1 연못 추정지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우물과 호안석축안의 집수정과의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되며 앞으로 이를 제1 연못지와 우물 부근도, 발굴조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호안석축의 내외부토를 채취해 토양분석을 실시하고, 점토층에서 나오는 유기물질과 식물 등을 채취하여 수종분석을 실시하여 계양 산성의 성격을 규명 할 것이며 호안석축은 물론 축조방법을 밝혀 그 당시의 계양산성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하고자한다.

문화재청 개요
우리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고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 온 문화재 체계, 시대 흐름에 맞춰 새롭게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60년간 지속된 문화재 체계가 국가유산 체계로 변화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국민과 함께 누리는 미래가치를 위해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국민과 공감하고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를 지키며 과거와 현재, 국내와 해외의 경계를 넘어 다양성의 가치를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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