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옥천골 깊은 골짜기에는 빈도림씨의 꿀초 공방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 재료인 밀랍으로 초를 만드는 독일인 빈도림씨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아내와 함께 초를 만들고 독일어와 한국어를 번역하며 느린 삶을 살고 있다.
흔히 밀랍이라고 하면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벌집의 뼈대를 이루는 밀랍을 정제하면 달콤한 꿀 향과 노란 색채를 띤 따뜻한 액체이자 덩어리가 된다. 꿀초 공방을 꾸린 빈도림씨는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이다. 국문학을 공부해 훌륭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주한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부인 이영희씨는 반대로 독문학을 전공했다. 서울토박이지만 시골 아낙으로 사는 것이 체질에 맞는지 집 풍경과 그림처럼 어울린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번역가로 일하던 그녀는 빈도림씨와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꿀초를 만들고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투잡(Two-job)에 공동 작업이지만 이 부부에게는 그런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물 흐르듯 때가 되면 초를 만들고 의뢰가 들어오면 함께 번역작업을 하는 식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텃밭을 돌보고 개들에게 사료를 먹이고 밥을 짓고, 또 일을 한다. 이것이 일과다. 밀랍으로 초를 만들게 된 것은 빈도림씨 말대로 ‘우연처럼 찾아온 운명’이었다.
이곳 옥천골에 집을 짓고 정착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즈음 군립묘지가 들어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담양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 집터를 찾다가 추월산 자락에 자리한 어느 한봉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집을 보러 농가에 들렀다가 벌집채로 꿀을 먹었는데, 꿀만 빨아먹고 입 안에 남은 밀랍을 내뱉다가 꿀을 내려서 팔고 나면 밀랍이 남을 텐데, 그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사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버린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밀랍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초를 만들어준다고 한 것이 꿀초 만들기의 시작이다. 벌꿀이 6배의 꿀을 먹어야 생산해낸다는 귀한 밀랍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무척 아까웠던 것이다.
빈도림씨는 독일에서 벌집을 가열한 뒤 죽은 벌이나 애벌레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갖가지 모양의 틀에 담아 노란 초를 만드는 것을 봤던 기억을 더듬어 책과 인터넷 등의 정보를 토대로 초를 만들어봤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독일까지 날아가 초 만드는 기술을 배워왔다.
한국에는 파라핀으로 만든 양초가 들어오면서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밀랍초의 명맥이 끊겼고 제작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버려지는 밀랍을 이용해 아름다운 초를 만드는 빈도림씨의 작업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는 양봉과는 달리 파라핀을 사용하지 않고 벌들이 혼자 힘으로 집을 짓도록 하는 한봉 밀랍만을 사용한다. 초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다. 길쭉한 모양의 초는 옷걸이를 이용해 직접 만든 초틀에 심지를 매달고, 밀랍을 녹여 부은 커다란 통에 수십 번씩 담갔다 빼는 담금질을 해서 만든다. 용기를 이용한 초는 대나무나 도자기 등 각종 틀에 심지를 세우고 밀랍을 녹여 붓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일체의 화학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만큼 노동은 위험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독일인 ‘빈도림’의 삶의 철학이 담긴 꿀초의 향기를 따라가 보자.
아리랑TV 데일리 매거진쇼 <Arirang Today>
꿀초 만드는 독일인 ‘빈도림’
4월 2일(금) 오전 7시 (재방송 - 오전 11:30,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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