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대법관 6년, 시민사회 가치에 부합해 긍정적 평가

서울--(뉴스와이어)--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김영란 대법관 재임중 주요 판결들을 분석·평가한 결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켜려 노력했고, 환경권·노동권 등 국민들의 기본권 보호를 강조”하는 등 대체적으로 시민사회의 가치기준에 부합하는 판결들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했다.

참여연대는 22일 < 주요 판결을 통해서 본 김영란 대법관의 6년 >이라는 제목의 19쪽짜리 보고서를 발표했다.이 보고서는 참여연대가 각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김영란 대법관이 임명된 2004년 8월부터 지난 2010년 5월 20일 현재까지 김 대법관이 관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주심으로 관여한 소부 판결 등 모두 548개의 판결을 분석·평가한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이 판결들 가운데 긍정적 평가를 받은 판결 15개와 아쉬운 판결 5개 등 모두 20개 판결을 선정해 약평을 덧붙였다.

이 보고서에서 참여연대는 분석대상이 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83개 중 “반대의견 14건이었다는 점에서 종래 다른 대법관들에 비해 반대의견을 충실히 개진”했다고 평가했다.또 국책사업이더라도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며 사업을 취소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밝힌 새만금간척사업 판결,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소수 입장에 서거나 채권추심원·대학시간강사 등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는 등 노동법의 본래 취지에 충실한 법해석을 내놓은 노동 관련 판결, 소수의견을 통해 공소장일본주의 위배의 위법성을 지적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전 대표 판결, 안락사를 인정한 판결 등을 예로 들며 “환경권, 노동권, 피고인의 방어권, 불치병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여타 기본권 보호에도 강조점을 두는 판결들을 남겼다”고 평가했다.뿐만 아니라, 여성에 종중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관습법이 잘못되었다는 판결,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소수의견, 학교의 종교행사 참여 강요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한 강의석 사건 등에 대해서는 “여성·아동·청소년·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 문제가 없다고 한 판결이나 국가보안법에 대해 대법원의 보수적 법해석을 답습한 ‘범민련 남측본부 사건’과 ‘일심회 사건’ 판결, 노동자들의 비폭력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인정한 ‘대한항공 운항승무원 노조 파업 사건’ 판결 등을 아쉬운 판결들로 들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보고서의 말미에서 최근 김영란 대법관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김 대법관의 전임자이기도 했던 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러했듯, ‘아름다운 대법관’으로 남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주요 판결을 통해서 본김영란 대법관의 6년>

자료 취지

지난 2004년 8월 당시 조무제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헌정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 된 김영란 대법관이 6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8월 24일 퇴임한다. 김영란 대법관은 당시 참여연대를 비롯해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4개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한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4명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이들 4개 단체는 “▲법원개혁에 대한 소신 ▲여성, 노동, 환경 등 사회경제적인 약자의 입장 대변하고 인권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지 ▲행정 입법기관에 대한 적극적 견제 의지 ▲법관 이외의 다양한 사회활동 경험” 등의 기준에 비추어 김 대법관 등을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당시 대전고법 부장판사였던 김영란 대법관은 소년보호관찰제도와 이혼심판실무에 관한 다수의 논문 등을 통해서 가족법과 소년법 문제에 정통하다는 평가가 높았다. 뿐만 아니라,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경력과 함께 여성과 관련된 구체적 판결을 통해서 전향적 견해를 제시하며 당시 남성일변도였던 대법원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았다. 2003년에도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시민추천후보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로부터 기대를 받아왔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사회적 합의가 관철되어 사법시험 기수 등 연공서열을 훌쩍 뛰어넘은 첫 여성 대법관이었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김영란 대법관의 6년 활동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민사회의 시각으로 김 대법관의 주요 판결들을 되짚어보는 작업을 통해 김 대법관이 보여준 역할의 긍정적 측면과 아쉬운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과 여당인 한나라당의 국회 과반수 의석 점유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축이 무너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는 결국 ‘법치’라는 이름을 앞세운 ‘인권과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의 역사와 그간의 사법개혁으로 이룬 성과인 ‘사법부의 독립’마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대법원이 행정·입법부에 대한 법제도적 견제를 통해 퇴행하고 있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나마 지켜내야 한다는 명제는 단순히 ‘권력분립’이라는 정치적 수사로서가 아니라, 이제 엄연한 시대적 소명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영란 대법관이 6년간 관여한 주요 판결들을 분석·평가하는 작업은 2004년 김 대법관을 추천할 당시 뿐 아니라, 여전히 의미가 있는 시민사회의 대법관 인선기준에 비추어 이 시대와 우리 사회가 바라는 대법관의 자질과 덕목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이 같은 평가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신영철 대법관 사태 등으로 신뢰를 잃은 사법부가 국민들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함께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I. 분석 및 평가 방법

이 보고서에서는 김영란 대법관이 임명된 2004년 8월부터 지난 2010년 5월 20일 현재까지의 대법원 판결들 가운데 김 대법관이 관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과 김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소부 사건을 분석 및 평가대상으로 삼았다.

분석대상 판결들에 대한 평가는 정량적 평가와 정성적 평가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량적 평가의 경우, 전원합의체 판결과 소부 판결을 각각 민사사건, 형사사건, 행정사건, 기타사건(가사·특허·선거특별·신청·보호사건 등을 묶어)으로 나누어 그 수를 파악했다. 아울러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다수의견에 함께한 사건(다수의견에 대한 보충·별개의견 포함)과 소수(반대)의견을 제시한 사건으로 나누어 살피고, 이를 정성적 평가 자료로 삼았다. 정성적 평가의 경우,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의지, ▲인권과 헌법적 기본권을 옹호하려는 의지, ▲행정·입법기관에 대한 적극적 견제 의지 등을 평가의 잣대로 삼았다.

이는 2004년 7월 당시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김영란 판사 등을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로 추천할 당시의 기준이며, 그동안 시민사회가 대법관 및 헌법재판관 후보를 추천 또는 평가할 때나 법원 및 검찰 인사 등을 평가할 때도 누차 밝힌 바 있는 기준들이기도 하다. 특히 앞서 밝힌 큰 틀의 기준을 바탕으로 각각의 판결에 대해서는 인권 전반, 여성 등 소수자 권리, 노동 관련, 환경 관련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세부평가를 진행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 평가와 여성·아동 권련 판결은 임지봉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가, 인권·기본권 관련 판결은 김갑배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환경 관련 판결은 박태현 교수(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노동 관련 판결은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가 분석 및 평가를 맡았다.

II. 정량적 평가

김영란 대법관이 임명된 후 지난 2010년 5월 20일 현재까지 전원합의체 사건은 83건(이 중 주심을 맡은 사건은 4건), 소부 사건에서 주심을 맡은 사건만 465건이다. 그 중에 민사사건이 194건, 형사사건이 141건, 행정사건이 104건, 나머지가 기타사건(가사·특허·선거특별·신청·보호사건)이었다. 주심 대법관으로서 상당히 많은 수의 판결문을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소부 사건들에서 4인의 관여 대법관 중 반대의견이 있을 때 전원합의체로 이 사건이 회부된다.

김영란 대법관은 같은 시기에 총 83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에 관여했다. 그 중 다수의견에 가담한 것은 69건, 반대의견 14건, 다수에 대한 별개·보충의견 6건, 반대의 보충의견 4건씩이 발견된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83건 중 반대의견이 14건이었다는 것은 종래 다른 대법관들에 비해 반대의견을 충실히 개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III. 정성적 평가

김영란 대법관이 관여한 주요 판결을 크게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는 판결들과 아쉬운 판결들로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또한 각 판결들을 여성·아동 관련, 인권·기본권 관련, 환경 관련, 노동 관련 등 분야별로 나누어 분석했으며, 각 사건에 대한 평가내용 또한 각 분야별로 과거에서부터 최근 판결의 순으로 정리해 소개했다, 그 결과, 여성·아동 관련 판결이 3건, 인권·기본권 관련 판결이 7건(아쉬운 판결 3건 포함), 환경 관련 판결이 1건, 노동 관련 판결이 9건(아쉬운 판결 2건 포함) 등 모두 20건의 판결이 평가대상 사건으로 정해졌다.

1. 여성·아동 관련 주요 판결

1. “여성에게 종중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 관습은 잘못”

(대법원 2005.7.21. 선고, 2002다1178 전원합의체 판결 [종회회원확인])

여성의 종중원 지위를 인정하며 종래의 관습을 뒤집은 판결로 김영란 대법관은 여성에게도 종중원의 지위를 인정하는 만장일치 의견에 함께했다.

당시 대법관들은 만장일치로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 관습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법적 확신은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약화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남녀평등의 원칙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전제한 후,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종족단체로서 공동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후손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는 것임에도,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등 종중의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출생에서 비롯되는 성별만에 의하여 생래적으로 부여하거나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은 이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판시했다.

2. “장남, 아들만 제사주재자 승계하나? 제사주재자 분쟁은 각 사건별로 판단해야”

(대법원 2008.11.20. 선고, 2007다27670 전원합의체 판결 [유체인도등])

자녀들 가운데 제사주재자를 정함에 있어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남의 아들, 즉 장손자)이 제사주재자가 되고, 공동상속인들 중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망인의 장녀가 제사주재자가 된다.”고 판시한 다수의견에 대해 김영란 대법관은 김지형 대법관과 함께 한 반대의견을 통해 “누가 제사주재자로 가장 적합한 것인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여 제사주재자의 지위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민법 제1008조의3의 문언적 해석과 그 입법 취지에 충실하면서도 인격의 존엄과 남녀의 평등을 기본으로 하고 가정평화와 친족상조의 미풍양속을 유지·향상한다고 하는 가사에 관한 소송의 이념 및 다양한 관련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개별 사건에서 당사자들의 주장의 당부를 심리·판단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밝히며 여성차별적인 다수의견의 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3. “성폭력 피해 아동 본인 처벌의사 철회했더라도 법정대리인 동의 없으면 무효”

(대법원 2009.11.19. 선고, 2009도6058 전원합의체 판결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특수강간)[인정된죄명: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13세미만미성년자강간등)·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청소년강간등)])

성폭력 희생자인 아동의 권리와 관련된 판결로 대법관 다수는 피해자가 제1심 법정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당시 나이가 14세 10개월이었더라도 그 철회의 의사표시가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었더라도 유효하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에 대한 공소사실 중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의 점의 공소를 기각한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은 유일하게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의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가 개시되도록 하여 처벌의 실효성을 제고함으로써 청소년을 보다 두텁게 보호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을 뿐, 처벌의 유무를 오로지 청소년인 피해자 본인의 의사에만 맡기고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의 후견적 역할을 배제하려고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의 반의사불벌죄규정의 취지를 설명한 다음, “형사소송법 등에서 친고죄와 달리 반의사불벌죄에 대하여는 법정대리인이 관여할 수 있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피해 청소년이 그와 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송행위를 단독으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헌법이 요구하는 국가의 책무인 청소년에 대한 보호를 방기하는 결과로 될 것이다.”라면서 피해 아동이 처벌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할 당시 나이가 14세 10개월이었다면 그 철회의 의사표시가 의사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행해졌더라도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었으면 무효라는 의견을 밝혔다. 성폭력 피해 여아에 대한 보호에 보다 더 깊은 배려를 하려 한 판결 성향을 읽을 수 있다.

2. 인권·기본권 관련 주요 판결

4.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은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대법원 2006.6.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개명·호적정정])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상 성별 기재의 정정 허용 여부에 대해 다룬 전원합의체 판결로 김영란 대법관은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상 성별 기재의 정정을 허용하는 다수의견에 함께함으로써 ‘성적 소수자’라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판결 성향을 보여주었다.

이 판결에서 대법관 다수는 “성전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증명되는 경우에는 호적법 제120조의 절차에 따라 그 전환된 성과 호적의 성별란 기재를 일치시킴으로써 호적기재가 진정한 신분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호적법 제120조의 입법 취지에 합치되는 합리적인 해석”이라며, “수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밝힌 대법관들은 “성전환자의 경우는 선천적으로 불완전한 성적 특징을 가진 자에 대하여 착오나 출생신고 당시 오인으로 인하여 호적에 잘못된 성별로 기재한 경우와 달리, 처음부터 잘못 기재된 호적을 출생시에 소급하여 정정하기 위한 호적법 제120조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5. “불치병 환자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 결정했다면 허용돼야”

(대법원 2009.5.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거등]‘안락사 사건’)

김 대법관은 안락사와 관련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신장시키려는 입장에 서며, 안락사를 합법화한 다수의견에 함께했다.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되므로, 이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여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6. “공소장일본주의 위반한 공소제기 자체가 위법”

(대법원 2009.10.22. 선고, 2009도7436 전원합의체 판결 [공직선거법위반·정치자금법위반]‘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사건’)

피고인의 권리와 관련해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을 다룬 판결로 당시 대법관 다수의견은 정당의 후보자 추천 관련 금품수수 범행의 공소사실에 범죄사실 이전 단계의 정황과 경위, 범행을 전후하여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 등을 장황하게 기재한 사안에서, “공소제기의 절차가 공소장일본주의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반대의견을 개진했다. 우선 “재판의 공정은 재판을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 보장되어야 하는 중요한 원칙이므로, 재판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공소장일본주의는 공판절차가 어느 단계에 가 있든 항상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공소장일본주의가 추구하는 재판의 공정 이념은 우선적 가치를 가진 근본이념으로서, 재판의 신속·경제를 위해 재판의 공정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면서 공소장일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공소장일본주의의 의미와 기능을 생각해 볼 때에, 법관이 예단을 가진 채로 불공정한 공판절차를 진행하게 된다는 심각하고도 치유될 수 없는 흠을 초래하게 되는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은 그 자체로 이미 중대한 위법상태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그 위반의 정도나 경중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위법한 공소제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펼쳐 피고인의 방어권을 신장시키려는 판결 성향을 보여주었다.

7. “학교의 종교행사 참여 강요는 ‘종교의 자유’ 침해한 위법”

(대법원 2010.4.22.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강의석 사건’)

강의석군이 종립학교 학원인 대광학원을 상대로 그 퇴학처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김영란 대법관은 주심 법관으로 다수의견을 썼다. 당시 다수의견은 “종립학교가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에 따라 강제배정된 학생들을 상대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종파적인 종교행사와 종교과목 수업을 실시하면서 참가 거부가 사실상 불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체과목을 개설하지 않는 등 신앙을 갖지 않거나 학교와 다른 신앙을 가진 학생의 기본권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학생의 종교에 관한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이고, 그로 인하여 인격적 법익을 침해받는 학생이 있을 것임이 충분히 예견가능하고 그 침해가 회피 가능하므로 과실 역시 인정된다.”며 학교와의 관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의 종교·신앙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판결을 남겼다.

3. 환경 관련 주요 판결

8. “새만금 간척사업은 지나친 비용과 희생 강요. 취소돼야”

(대법원 2006.3.16. 선고, 2006두330 전원합의체 판결 [정부조치계획취소등]‘새만금간척사업 사건’)

2006년 새만금간척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김영란 대법관은 환경권을 신장시키려는 입장에 섰다.

이 판결에서 대법관 다수는 당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중단하여야 할 정도로 중대한 사정변경이나 공익상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한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영란 대법관은 박시환 대법관과 함께한 반대의견을 통해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계속 시행하는 경우 과다한 비용과 희생이 요구됨으로써 사업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종국적인 목적을 실현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사정변경에 해당하고,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위한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및 농지개량사업 시행인가처분을 취소하여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 자체를 중단하는 것 외에 다른 조치 또는 처분만으로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이므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을 취소할 공익상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구 농림수산부장관이 환경영향평가 대상지역 주민으로부터 위 공유수면매립면허처분 등을 취소해 달라는 신청을 받았음에도 필요한 처분을 하지 아니한 채 이를 거부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하면서 환경권 보호 등의 입장에서 새만금간척사업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4. 노동 관련 주요 판결

9. “출·퇴근 중 사고도 ‘업무상 재해’”

(대법원 2007.9.28. 선고, 2005두12572 전원합의체 판결 [유족급여등부지급처분취소]‘출·퇴근중의재해사건’)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에 정한 ‘업무상 재해’의 범위와 관련한 판결로 다수의견은 “비록 근로자의 출·퇴근이 노무의 제공이라는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근로자에게 유보되어 있어 통상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할 수 없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근로자가 통상적인 방법과 경로에 의하여 출·퇴근하는 중에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특별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은 이상, 근로자가 선택한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통상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출·퇴근 중에 발생한 재해가 업무상의 재해로 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김영란 대법관은 박시환, 김지형, 김능환,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한 반대의견을 통해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출·퇴근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과 경로는 사업주가 정한 근무지와 출·퇴근시각에 의해 정해지므로, 합리적인 방법과 경로에 의한 출·퇴근 행위라면 이는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그러한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무원들에게는 ‘공무상 재해’로 인정되는 것과 달리 봐야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업무상 재해’의 범위를 넓게 보는 주장을 폄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입장에 섰다.

10. “채권추심원, 대학 시간강사 모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대법원 2008.7.10. 선고, 2008도816 판결 [신용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위반],대법원 2007.3.29. 선고, 2005두13018,13025 판결 [산업재해보상보험료등부과처분취소])

이 두 사건 모두 김영란 대법관이 주심으로 관여한 소부 판결로 ‘채권추심원’과 ‘대학 시간강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두 사건 모두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어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서 말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대상적) 성격인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및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등 보수에 관한 사항,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그 정도,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의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다만,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는 근로자의 개념상 사용종속관계를 매우 좁게 해석했으나, 2006년 학원강사 판결 이후 변화된 근로자 개념 판시에 따라 채권추심원, 대학교 시간강사 등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의미가 있는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11. “불법파견된 노동자라도 2년 지나면 직접고용된 정규직으로 봐야”

(대법원 2008.9.18. 선고, 2007두22320 전원합의체 판결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이 판결은 ‘파견대상업무가 아닌 업무에 불법파견을 하거나, 파견업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파견업체에서 파견용역을 받는 불법파견을 하는 등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노동자의 경우에는 2년이 경과하면,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사용사업주에 직접고용 간주)이 적용되는지에 대하여, 불법파견의 경우에도 위 파견법 제6조 제3항이 적용된다’는 취지이다. “이와 같이 직접고용이 된 경우에는 그 근로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규직 근로자로 직접고용되는 것”이라고 대법관 만장일치로 판시했다. 파견,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하여 불법파견시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 책임을 명확히 한 것이고,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리보장에 진일보한 판결이며, 특히 불법파견에 관한 문제제기를 하면 도급계약 해지로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결국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집단으로 해고에 이르는 현실이 반복되어 온 것을 고려하면 늦었지만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12. “요양불승인 취소소송 승소 후 시효가 지나 신청한 휴업급여도 지급해야”

(대법원 2008.9.18. 선고, 2007두2173 전원합의체 판결 [휴업급여부지급처분취소])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에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확정판결을 받은 근로자가, 요양으로 인하여 취업하지 못한 기간의 휴업급여를 청구한 경우, 그 휴업급여청구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다는 근로복지공단의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는 판결로 김영란 대법관도 다수의견에 함께했다.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하여 요양급여 신청을 하였을 때, 근로복지공단이 요양불승인처분을 하면 일단 근로자는 그 처분을 다투게 되고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에 대한 취소판결이 확정되면 비로소 휴업급여 신청 등을 하게 되는데, 사실상 요양불승인 처분이 있음에도 소멸시효를 고려하여 일실이익에 대한 휴업급여 신청 등을 하기는 어렵다. 신청해봐야 요양불승인, 즉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다시 불승인할 것이고 근로자는 다시 이 불승인처분도 다투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를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이같은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긍정적 판결이었다.

13. “근로자가 동호회 활동하다 사고나더라도 업무 과로와 스트레스 있었다면 산재”

(대법원 2009.5.14. 선고, 2009두58 판결 [유족보상일시금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김영란 대법관이 주심으로 참여한 소부 판결로 “근로자가 급성심근경색을 유발할 수 있는 기존 질환을 가진 상태에서 이 사건 재해 수개월 전부터 현저히 증가한 업무량과 실적에 대한 부담, 그리고 실적부진에 대한 상사의 계속되는 질책 등으로 인하여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었고, 이러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을 통상의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키면서 급성심근경색을 유발하여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판단하고, “근로자가 마라톤 동호회의 정기연습에 참여했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갑자기 사망한 사안에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질환을 통상의 자연적인 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켜 급성심근경색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단하고, 마라톤 연습에 참여한 행위의 전반적인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 그 업무수행성을 인정”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원심이 이 사건 연습은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다고 볼 수 없어 업무관련성이 없고 또한 망인의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와 이 사건 재해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 재해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나, 김 대법관은 이를 파기했다. 동호회 활동 등에서의 사용자의 지배관리의 유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에 대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단한 판례다.

김 대법관은 이와 유사한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7두24548 판결]에서도 소부 판결에서도 주심을 맡아 “근로자가 토요일 오후에 회사 근처 체육공원에서 동료 직원들과 족구경기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왼쪽 발목에 부상을 입은 사안에서, 족구경기가 노무관리상 필요에 의하여 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주최하거나 관행적으로 개최된 행사로서 그 전반적인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바 있다.

14. “퇴직금 분할 약정으로 노동자가 받은 돈은 부당이득 아닌 임금”

(대법원 2010.5.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판결 [퇴직금])

노동자의 퇴직금 성격과 관련한 최근 판결로 대법관 다수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월급이나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돈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퇴직금 분할 약정’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이 약정에 의하여 이미 지급한 퇴직금 명목의 돈도 부당이득에 해당해,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영란 대법관은 김능환 대법관과 함께 한 반대의견에서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돈이 퇴직금일 수는 없고 오로지 임금으로서의 성격을 가질 뿐이므로, 근로자가 받은 이 돈은 퇴직금 분할 약정이 포함된 근로계약에 따라 정당하게 받은 임금이지 부당이득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개진했다. 이를 통해 퇴직금 분할 약정으로 노동자가 받은 돈을 사용자에게 돌려줘야 할 부당이득으로 본 다수 입장에 맞섰다. 특히 퇴직금 분할 약정은 통상 노동조합이 없거나, 중소영세 사업장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놓인 근로자들이 많이 겪게 되는 일로 사실상 약정이 아닌 강제인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퇴직금 지급 방식은 사실상 임금억제효과를 낳게 된다.

게다가 다수의견과 같이 노동자가 받은 이 돈이 부당이득이라 반환청구가 가능한 것으로 본다면, 사실상 퇴직금을 매월 분할 약정(사실상 사용자에 의한 강요)하는 방식으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면 사용자들의 의도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된다. 반대 입장에 선 김영란 대법관의 논지는 이같은 노사간 약정의 허구성을 간파하고, 다수의견의 결론이 가져올 근로자들(특히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의 퇴직금 박탈 현실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5. 아쉬운 판결들

1.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채복무 기회 주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 문제 없다”

(대법원 2007.12.27. 선고, 2007도7941 판결 [병역법위반]‘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김영란 대법관인 주심으로 관여한 소부 판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면제나 대체복무의 기회를 부여하지 아니한 채 병역법 제88조 제1항 위반죄로 처벌한다 하여 규약(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반한다고 해석되지는 아니한다.”고 판결을 하는 등 4인의 재판부에서 반대의견조차 없이 유죄판결을 양산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경우, 사회적으로 찬반의견이 있는 사항이나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사안이므로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과정을 계기로 사회적 공론화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적단체”“국가보안법, 위헌 아니다”

(대법원 2008.4.17. 선고 2003도758 전원합의체 판결 [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범민련 남측본부 사건’,대법원 2007.12.13. 선고 2007도7257 판결 [국가보안법위반(간첩)·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국가보안법위반(잠입·탈출)교사·국가보안법위반(찬양·고무등)·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국가보안법위반(회합·통신등)교사·국가보안법위반(자진지원·금품수수)]‘‘일심회’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범민련 남측본부 사건’에서 김영란 대법관을 비롯한 다수의 의견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가 표면적으로 이적성 탈피와 대중성 강화를 위해 강령·규약을 개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더라도, 위 단체는 피고인이 가입할 당시에는 적어도 반국가단체인 북한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고 있었고, 실제 활동 또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른바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경우로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 경우라 함은… 구체적으로는 해당 단체의 목적, 목표, 활동방향 등 집단의사 자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라 하여 그 사실만으로 그 단체를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판단해서는 아니 되고, 그와 같이 추단되는 단체의 집단의사를 실현하는 수단·방법으로 그 단체가 정한 것이 오로지 무장봉기 등 자유민주질서가 용인할 수 없는 방법일 때에 한하여 그 단체를 이적단체로 인정하여야 한다.”고 밝히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는 국가의 존립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용인하지 않는 방법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으로 해악을 끼칠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성이 있는 이적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거나 “국가보안법 회합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과는 김영란 대법관은 논란의 여지가 큰 국가보안법의 이적성 판단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다수 입장에 서고 말았다. 김 대법관이 주심으로 관여란 소부 판결에서조차 국가보안법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유독 기존 대법원 판례의 보수적 해석에 따르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2007년 12월에 판결한 이른바 ‘일심회 사건’에서 “이적성은 인정되나, 국가보안법 제7조 제3항이 요구하는 정도의 조직적 결합체에는 이르지 못하였으므로,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특히 ‘일심회 사건’ 피고인들의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에서 김 대법관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협이 되고 있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없고, 국가보안법의 규정을 그 법률의 목적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한 국가보안법이 정하는 각 범죄의 구성요건의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하여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고,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는 것이므로,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과 적용한계를 위와 같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 이를 제한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합헌으로 판단했다. 우리 시민사회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기준에 비추어 봐도 큰 인식차를 드러내고 말았다.

3.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하는 사안으로 하는 파업은 업무방해”

(대법원 2008.9.11. 선고, 2004도746 판결 [업무방해·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국가공무원법위반(인정된죄명:청원경찰법위반)]‘대한항공 운항승무원 노조 파업 사건’)

김영란 대법관이 주심으로 관여한 소부 판결로 당시 대한항공 승무원 노조 측이 제시한 요구안의 일부인 ‘외국인 조종사의 채용 및 관리에 관한 주장’을 “사용자의 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이어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이라 보고, 쟁의행위의 목적에 있어서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해 업무방해죄를 인정하고 말았다.

단 검사 측 상고이유 중 노조 측의 집회·시위에서 생기는 소음에 대해서는 “회합에 참가한 다수인이나 참가하지 아니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소음이 발생하는 것은 부득이하다”고 보면서 “합리적인 범위에서는 확성기 등 소리를 증폭하는 장치를 사용할 수 있고 확성기 등을 사용한 행위 자체를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아 업무방해죄를 인정할 판단 근거로 삼지는 않았다. 노조 측이 제시한 요구안인 ‘외국인 조종사의 채용 및 관리에 관한 주장’은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저하 방지, 고용안정을 위한 취지이고 이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임에도 단지 경영권에 관련된 것이라는 이유로 쟁의행위의 목적상 정당성을 부정하며 종래 대법원 판례나 입장에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할 수 있는 판결이다.

4. “호전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요양치료 끝낼 수 있다”

(대법원 2009.9.10. 선고, 2009두7332 판결, [재요양연기단축승인(일부불승인)처분취소])

김영란 대법관이 소부 주심으로 판결한 사건으로 “요양 중인 근로자의 상병을 호전시키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단지 고정된 증상의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치료만 필요한 경우, 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16조 제1항에서 정한 치료종결사유에 해당한다”는 내용이다.

재해를 당한 근로자의 입장에서 통증의 완화, 장래 호전에의 기대를 가지고 병원에서 계속적인 치료를 받거나, 그럴 필요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런 경우 대개 호전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종결처분을 하곤 하는데, 치료의 효과나 호전의 개념을 넓게 해석하여 업무상 재해를 당한 근로자 보호에 좀 더 충실할 필요가 있으나, 이 판결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 서울고법의 원심에서는 제1심 판결과 달리 요양연기를 승인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했으나, 김영란 대법관이 주심으로 관여한 대법원 판결애서는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려 아쉬움을 남겼다.

IV. 종합적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요판결들을 통해 대체적으로 여성·아동·청소년·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권리를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환경권, 노동권, 피고인의 방어권, 불치병 환자의 자기결정권 등 국민의 여타 기본권 보호에도 강조점을 두는 판결들을 남겼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을 인정한 판결, 국가보안법에 대한 보수적 인식을 드러낸 판결, 노동자의 비폭력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판결 등 몇 가지 아쉬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시민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는 대법관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환경 관련 판결들에서도 김 대법관은 새만금간척사업 사건에서의 소수의견과 천성산 문제와 관련한 지율스님 사건의 주심 판결 등을 통해 환경과 생태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대변했다. 노동 관련 판결들에서도 퇴직금 분할약정에 대한 소수의견 제시, 불법파견에 대한 구 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적용(직접고용 간주), 대학 시간강사 등의 근로자성 인정, 출퇴근 재해에 대한 소수의견 제시 등을 통해 매우 의미 있는 법률적 쟁점에 대해 노동문제의 근저에 놓인 의미와 현실을 이해하고, 노동법의 본래 취지에 충실한 법해석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인 비정규직 관련 사건에서도 전향적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종래 보수성향이 강했던 대법원 판결에서 변화를 추구하며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의 판결들을 내림으로써 대법원의 기존 판례나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와 합리적인 식견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김 대법관은 ‘대법관 성향의 다양화’를 통한 ‘균형’ 갖춘 대법원을 만드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V. 덧붙이며

많은 대법관들이 퇴임하자마자 변호사 개업을 하고, 대법원 사건을 비롯해 심지어 하급심 사건에까지 소송대리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야말로 국민들에게는 큰 실망을 안겨주어 왔다. 이는 ‘전관예우’를 의심하게 만들면서 국민적 사법 불신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시민사회는 그동안 대법관 또는 대법관 후보들에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고 후학 양성이나 집필 등 보다 공적인 활동 등을 통해 대법관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과 경륜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주기를 요청해 왔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 대법관이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김영란 대법관이 자신의 전임자이기도 했던 조무제 전 대법관이 그러했듯, 퇴임 후 ‘아름다운 대법관’으로 남길 기대한다.

웹사이트: http://peoplepower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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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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