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한옥마을 ‘박영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으로 명칭 변경
- 서울시, 정밀 사료조사 통해 30년에 걸친 학계 오류 규명
-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으로 변경
-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옥인동 윤씨 가옥’으로 변경
서울시는 2년여에 걸친 사료조사 결과, 두 가옥이 실제로 박영효 가옥과 순정효황후 윤씨의 가옥이 아닌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명칭변경 계획에 대해 30일(목)부터 예고한다고 밝혔다.
시는 2008년 시 지정 문화재 명칭 전반에 대한 정비를 진행해 오류를 바로잡은바 있으며, 두 가옥은 더 철저한 정밀조사가 필요하여 다양한 문헌과 지도를 통해 2년여 동안 정밀 사료조사를 시행해 이번에 밝히게 되었다.
조사결과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민영휘 대저택의 일부로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윤덕영의 ‘벽수산장’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박영효 가옥과 윤씨 친가는 조선 후기 상류층 저택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학계의 중론에 따라 1977년 서울시 문화재(민속자료)로 지정되고 1995년~1998년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되었다.
이 중 순정효황후 윤씨 가옥은 1997년 원형 훼손으로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으며 1998년 기록 보존차원에서 한옥마을에 가옥 원형을 찾아 복원하였다.
서울시 문화재위원회는 “두 가옥이 상류층 가옥으로서 갖고 있는 건축사적 가치는 변동이 없으나 가옥의 역사성은 달라지는 것이므로 명칭을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이번에 명칭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변경되는 명칭에 있어서는 두 가옥의 건립자가 대한제국~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친일파이고, 어느 한 인물이 아니라 집안의 여러 사람들이 공동 거주하였으므로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관훈동 민씨 가옥>으로,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옥인동 윤씨 가옥>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들 한옥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고, 각종 건축사와 문화재 관련 서적들에 실려 있는 등 학계에 미치는 영향이 큼을 고려하여 그동안 최대한 심도 있게 사료조사를 시행하고, 관련분야(한국사·건축사 등) 학자들로 구성된 소위원회의 검토 및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번에 발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시 민속자료 제18호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9월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30일 동안 명칭 변경계획을 예고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2010년 11월 최종 고시할 계획이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1997년 이미 시 민속자료에서 지정 해제되었으므로 별도의 예고 절차 없이 남산골 한옥마을 내 안내판 문안을 수정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조사로 실제 박영효의 집은 민영휘의 집 옆집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박영효의 서울 지역에서의 시기별 거주지도 명확히 밝혀졌다.
박영효는 오늘날 경운동 66·88번지, 니동과 압구정 강정(江亭), 안국동 8번지, 경운동 89번지, 숭인동 76번지 등 총 5~6곳에서 거주하였는데, 이들 토지에 자리한 가옥들은 거의 모두 멸실된 것이 확인되었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으로 알려진 한옥은 민영익(閔泳翊:1860년~1914년)에 이어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아 여흥민씨 척족들의 구심점으로 군림했던 친일파이자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최고의 부호로 손꼽히던 민영휘(1852~1935)가 1894년~1895년 청일전쟁 직후 안국동 감고당에서 옮겨간 교동(오늘날 경운동·관훈동 일대) 대저택의 일부임이 확인되었다.
1927년 발행된‘경성부관내지적목록(京城府管內地籍目錄)’에 따르면 민영휘 일가가 1927년 당시 경운동과 관훈동 일대에 차지하고 있던 저택들의 면적은 총 4,137.7평에 달하는데,
그동안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으로 알려진 관훈동 30-1번지상의 가옥은 민영휘의 소실(少室)로 풍문여중·고를 설립한 안유풍과 그의 아들로 동일은행(東一銀行 : 조흥은행의 전신) 이사장을 지낸 민대식(閔大植), 민병수 등 민대식의 아들들, 그리고 민영휘의 장녀 민윤식의 가족이 1970년대까지 거주하던 저택 중 안채 일부와 문간채이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역시 황후의 숙부이자 이완용을 능가하는 친일파로 알려진 윤덕영(尹德榮:1873~1940)의 가옥으로 새롭게 규명되었다.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에 가옥이 현존하고, 남산골 한옥마을에 복원되어 있는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그동안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의 두 번째 황후로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국새를 치마폭에 숨기려다 숙부인 윤덕영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1894~1966년)가 태어나고 자란 집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었다.
순정효황후와 그의 아버지 윤택영(尹澤榮:1876~1935)은 1907년 입궁 전 경복궁과 안동별궁(오늘날 풍문여고 자리) 사이인 송현동에 거주하였고, 입궁 후 그녀의 친정은 1907년 황실과의 가례 시 진 막대한 빚 때문에 오늘날 사간동 97번지와 계동 133번지로 옮겨다녔는데, 오늘날 유적은 남아있지 않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진 가옥은 윤덕영이 1910년 옥인동의 김수항(金壽恒:1629~1689)의 청휘각(淸暉閣)터와 민규호(閔奎鎬: 1836~1878)·민태호(閔台鎬:1834~1884) 형제 등의 별장 터였던 ‘송석원(松石園)’을 매입하여 조성한 ‘벽수산장(碧樹山莊)’의 일부이다.
1913년 발행된‘벽수산장일람(碧樹山莊一覽)’이라는 책에 1910년 매입 기록이 전해지는 윤덕영의 벽수산장은‘경성부관내지적목록’에 따르면 당시 옥인동 전체 토지면적(총 36,361.83평)의 53.54%인 19,467.8평에 달했으며, 폐쇄등기부등본 상 총 19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진 한옥은 벽수산장 내 건물 중 윤덕영의 소실이 거주하던 가옥으로 구과세대장에 따르면 1919년 건립되었다. 가옥 입구 계단 양식 등은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근대가옥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정밀 사료조사에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조선후기~일제강점기 신문과 경성부 시가도, 경성·용산시가도 등 각종 지도, 고종실록, 대한제국관원이력서 등 각종 문헌자료 등이 참고 되었다.
가옥 연혁에 대한 사료조사 결과 및 예고내용은 서울시 홈페이지(http://www.seoul.go.kr)상의 시정소식 - 공고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와 관련, 문의 또는 의견 제시는 서울시 문화재과(02-2171-2584 또는 2171-2594)로 연락하면 된다.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18호 지정
1995년~1998년 종로구 관훈동 30-1에서 남산골 한옥마을로 이전 복원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 1977년 서울시 민속자료 23호 지정 → 1997년 지정 해제
종로구 옥인동 47-133 상의 가옥(현재 원위치 잔존)은 이축 불가능할 정도로 원형이 심하게 훼손되어 1994~1997년 문화재위원 조사와 문화재위원회 심의 통해 문화재 지정 해제
1998년 기록 보존 차원에서 한옥마을에 가옥 원형을 찾아 복원
※ 민속자료란 ?
서울시장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지정하는 지방 문화재의 일종으로 서울의 경우는 서울에 고유하거나 특유한 의·식·주·신앙 등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 또는 유물을 선별, 지정함
서울특별시청 개요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은 600년 간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공공서비스 리디자인에 참여시킴으로써 서울을 사회적경제의 도시, 혁신이 주도하는 공유 도시로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seoul.go.kr
연락처
서울특별시 문화국
문화재과장 안건기
2171-25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