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즈 유통 박종관(34) 팀장의 말이다. 지난 1998년 홈쇼핑 초창기부터 HP의 홈쇼핑 판매를 대행해온 유니즈 유통은 20%가 넘는 반품률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CJ·GS 등 국내 유수의 홈쇼핑을 통해 한 차례 방송에서 팔리는 컴퓨터 대수만 2,000여 대 수준. 연말연시나 졸업·입학 시즌에는 4,000여 대에 달하기도 한다. 이 중 20% 정도가 3일에서 1주일 사이에 반품이 돼 돌아온다. 총판권을 따내면서 반품 제품까지 책임지기로 한 유니즈 입장에서는 고스란히 손실이다.
"가전 제품은 벤더들 사이에서 유난히 가격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마진이 7~10%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이런 반품 물량 때문에 도산하는 업체가 그동안 20~30군데는 족히 넘습니다."
방송이 반복될수록 적자 폭이 커지자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박팀장은 신문 기사에서 읽은 "리퍼브" 관련 기사를 떠올렸다.
리퍼브 제품은 "Refurbished"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출고 시에 하자가 있었던 제품을 손질해서 내놓거나 새로 포장해서 정품보다 싸게 파는 재공급품을 말한다. 미국과 같이 반품 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상거래 방식으로 대형 유통매장에 아예 "리퍼브 코너"가 마련돼 있을 정도다. 이들은 새것과 거의 차이가 없으면서 30∼40%가량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박팀장은 98년 론칭해 유령 사이트가 돼있던 유니즈의 온라인쇼핑몰(www.uniz.co.kr)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홈쇼핑에서 반품된 상품을 리퍼브 제품으로 등록하면서 가격을 신제품의 60~70%대로 책정했다.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다. 한 종류의 제품을 50여 개 정도 등록하면 1주일이 채 안 돼 품절되는 일이 반복됐다.
좀 더 채널을 넓히기 위해 2002년부터는 "옥션(www.auction.co.kr)"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홈쇼핑에서 반품된 제품으로 물량이 달릴 정도였다. 경쟁 업체나 다른 품목을 파는 벤더들도 지금은 유니즈에 판매 대행을 의뢰하고 있다는 것이 박팀장의 설명이다.
리퍼브 상품을 구매한 사람이 다시 반품하는 비율은 신제품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박팀장은 "반품 상품이 가격은 저렴하지만 새 제품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유니즈 유통이 리퍼브 상품을 통해 올리는 매출은 월 7억원 수준. 이전에는 땡처리로 처리해야 했던 제품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니 실제로는 14억원가량의 효과가 있는 셈이다.
리퍼브 상품이 제조업체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이유는 한국의 유통 시장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거의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체가 물품을 소싱하는 것을 조건으로 제조업체들이 반품 및 재고 상품을 떠맡는 것은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져 왔다. 문제는 이 반품이나 재고 상품으로 생기는 손실이 크다는 데에 있다.
포장만 뜯은 후 바로 반품되거나 설치 직후 반품된 상품의 경우 제품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 상품은 정상적인 가격으로 판매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제조업체로 다시 돌아가 재포장을 거칠 수도 없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이들 상품은 용산 등의 전자상가로 땡처리 형태로 팔려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이중적인 가격 구조가 형성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품인 양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리퍼브 상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기면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소비자까지 모두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고객들에게 "신상품"이나 다름 없는 제품을 20~30% 정도의 파격적인 할인을 해주면서 애프터서비스는 신상품과 동일하게 제공한다.
제조업체들도 어차피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밟은 제품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제조업체들도 그 동안 유통업체에 반품 상품을 떠넘기다시피 하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 사실. 이들 업체들은 생산된 물량을 적극적으로 소화할 수 있고 비정상적인 유통을 통해 생기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통업체들에 리퍼브 상품 판매를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형 벤더나 소매업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리퍼브 상품 판매는 최근 제조업체들까지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아이리버"로 유명한 국내 최대의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 레인콤은 지난해 8월부터 옥션에 상설 리퍼브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홈쇼핑 등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레인컴의 아이리버 리퍼브 제품의 경우 신상품에 비해 20~30% 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월 1,000~2,000여 개가 판매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델컴퓨터·애플 등도 리퍼브 상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렇게 제조 및 유통업체의 관심 밖에 있던 리퍼브 비즈니스를 양지로 끌어낸 것은 역시 인터넷의 힘이다. 리퍼브 상품이 온라인 시장에서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별도 매장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자체 인테리어가 필요한 매장을 설치하는 것은 업체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인터넷 커뮤니티나 가격 비교 사이트를 중심으로 같은 제품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는 고객이 늘면서 리퍼브 비즈니스는 탄력을 받고 있다.
리퍼브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제품 정보를 고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점. 소비자는 제품에 약간의 문제가 있더라도 스스로 눈높이를 낮춰 합리적 소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자를 숨기거나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지 않으면 또다시 반품과 교환의 악순환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옥션 커뮤니케이션실 배동철 이사는 "신상품 카테고리보다 리퍼브 상품 카테고리의 성장율이 훨씬 높아지는 추세"라며 "시장 형성 초기이기 때문에 충분한 물량이 있는 업체나 개인이 전문적으로 판매에 나선다면 성공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시장을 전망했다.
웹사이트: http://www.auct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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