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별세
故 박성용 명예회장은 숙환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으나 최근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타계했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장'으로 고인의 장례를 치룰 예정이며 조문은 24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 마련하였다.
고인의 영결식은 오는 27일(금),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금호아트홀에서 치러질 예정이며 국내외에 분향소를 설치, 임직원 및 일반인들도 분향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고인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회장인 고 박인천(朴仁天)회장과 이순정(李順 貞, 96세/1910년생)여사의 맏아들로 193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고인은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재학중 195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Illinois)대를 졸업하고 62년과 65년 예일(YALE)대에서 각각 경제 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위취득후에는 미국 케이스 웨스턴 대학과 UC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였는데 당시 3회이상 논문 게재 시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는 평을 듣는 세계적인 논문 전문지 " International Economic Review "지에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이 게재되고, 1편의 드래프트(draft)가 통과되는 등 왕성한 학구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고인은 1968년, 귀국하여 대통령 경제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특보 등 공직생활을 거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창업주인 부친 박인천 회장의 권유로 1972년 당시 금호실업 부사장 취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였으며 지난 1984년, 고 박인천 회장 타계 직후 그룹 총수에 올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제2창업을 주도했다. 고인은 취임후 계열사간 합병 및 비수익사업 정리 등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그룹의 재도약 기틀을 마련, 취임당시 6천9백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95년도에 4조원 규모로 끌어 올리는 등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그룹을 성장시켰다. 또 지난 '88년에는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여 항공운송사업에 새롭게 진출하는 한편 금호타이어를 세계 10위권 타이어업체로 성장시키는 등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국제적 기업으로 키워냈다.
예술 애호가였던 고인은 지난 96년,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그룹 총수직을 물려준 후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 문화 예술 지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금호미술관을 건립, 재능있는 무명의 젊은 예술가들을 중앙 화단에 진출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고인의 제안으로 90년 창단된 금호현악4중주단 을 국제 수준으로 재정비하여 수교국중 60 개국 70 개 대도시를 순회 연주 하여, 문화 외교에 큰 기여를 했다. 정트리오, 백혜선 등 한국 대표적인 음악가 30인에게 아시아나항공 무료 항공권을 제공, 국내외 해외 활동을 적극 지원했고, 음악 꿈나무 영재 육성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장학금 지급, 항공권 제공, 명품 고악기 무상 대여, 콩쿨 진출 지원으로 이유라, 손열음, 권혁주, 김소옥 같은 차세대 월드 스타급 연주자를 키워냈다. 특히 로린 마젤, 펜데레츠키, 쥬빈 메타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의 친교를 통해 한국의 영 아티스트를 세계 무대에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이러한 다양한 문화 예술지원 활동으로 "한국의 에스테르하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고인은 대기업의 총수를 지내면서 예술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해외출장 시 저녁에는 음악회, 낮시간에는 틈틈이 뮤지움이나 전시장을 찾았다. 국내에 있을 때도 거의 매일 밤 연주회를 가는 것은 물론, 음악인들을 초대하여 식사와 담소를 즐겼고 젊은 음악가들을 각별히 아껴 금호아트홀 '영재 음악회'와 '영아티스트 음악회'는 매주 빠짐없이 참석했다.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97년부터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역임, 예술 활동에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었고 전산화를 주도하여 선진적인 예술 경영의 토대를 닦았다.
그외에도 2002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 2003년부터 문화예술계를 돕는 기업 모임인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을 맡았고, 2002-2004 외교통상부 공연자문위 위원장, 외교통상부 문화 대사 등을 역임하면서 기업 일선에서 은퇴한 후에도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았다. 이밖에도 고인은 '식물과학계의 노벨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지난 2000년, '금호국제과학상'을 제정, 매년 국제식물분자생물학회에 의뢰하여 식물 유전자 분야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세계적인 과학자를 선정해서 시상하는 등 최근까지도 경제, 문화예술, 과학 등의 발전을 위해 늘 고민하고 연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지난 92년에는 한중우호협회 회장에 취임, 2005년 3월 퇴임할 때까지 13년간 이 단체를 맡아 운영해 오면서 양국간의 학술, 문화교류를 촉진시키는 한편 경제협력 차원에서 양국의 경제인을 연결시키는 튼튼한 가교 역할을 하는 등 한·중 양국간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또 한일 협력위원회 문화분과 부위원장으로 수년간 한일간 고급 문화 교류에 관심을 쏟았고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민간 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건강 때문에 사임했다.
이 같은 경제, 문화예술, 과학발전, 민간 외교 등 다방면의 공로로 고인은 1976년에 '금탑산업훈장(수출유공)'을, 1997년에는 일반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문화진흥공로)'을 받았고 2001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2002년에는 고인이 이끌던 금호문화재단이 '2002 메세나 대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의 명품 브랜드인 '몽블랑'에서 세계적인 문화 예술 후원자들에게 수여하는 '2004 몽블랑 예술후원자상 (The Winner of 2004 Montblanc Arts Patronage Award)'을 수상하였다.
경영활동중에는 인적자산의 중요성을 늘 강조, 임직원들의 건강을 직접 챙기고자 지난 '91년 국내 기업 최초로 그룹내 전사업장에서 완전금연을 실시하는 등 누구보다도 먼저 선진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 같은 공로로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금연메달'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가렛 클라크 박 여사(74세/1932년생)와 딸 미영(美英)씨(40세/1966년생), 아들 재영(宰永)씨(36세/1970년생), 며느리 구문정(具文貞/31세, 1975년생)씨, 손자 준명(俊明/5세, 2001년생)이 있다.
< 장례 안내 >
빈 소 : 삼성서울병원(일원동) 장례식장 15호실(☎3410-6915)
발인일시 : 2005년 5월 27일(금), 오전 7시
장 지 :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영
<분향소 안내>
-국 내
○ 광주분향소 : 금호고속 광천동터미널 2층 강당(광주시 서구)
○ 사별분향소 :
금호타이어 광주공장(광주시 광산구 소촌동) 연구소 2층
금호타이어 곡성공장(전남 곡성군 입면 서봉리) 본관 2층
금호고속 기흥정비공장(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중리) 3층 교육실
아시아나항공 교육훈련동(서울 강서구 오쇠동)
금호석유화학 여수공장(전남 여수시 평여동) 본관 2층 대회의실
금호석유화학 울산공장(울산시 남구) 새마을회관 2층
금호페이퍼텍 시화공장(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 해 외
○ 미국 : 아시아나항공 미주지역본부(LA/☎1-213-365-4500)
아시아나항공 뉴욕여객지점(☎1-212-318-9200)
○ 일본 : 아시아나항공 일본지역본부(동경/☎81-3-5572-7652)
○ 중국: 아시아나항공 중국지역본부(북경/☎86-10-6468-4000)
남경타이어 대회의실(☎86-25-531-9999).
금호아시아나그룹 개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자산 순위 기준 재계 10위 기업으로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등 계열사 16개를 보유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www.kumho.co.kr
연락처
그룹홍보팀 6303-15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