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문학포럼, ‘평화를 위한 글쓰기’ 주제로 세계적인 문학 담론의 장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은 “평화를 위한 글쓰기(Writing for Peace)"를 대주제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The 2nd Seoul International Forum for Literature)>을 5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 및 컨퍼런스홀에서 개최한다. 또한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르 클레지오 특별강연회를 비롯하여 60여개의 다양한 작가별 행사가 함께 펼쳐진다.
한편 포럼에 참가한 작가들은 5월 27일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를 방문하여 세계 평화를 위한 “서울평화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번 ‘제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조직위원장 김우창)은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고 세계가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나아감에 있어서 문학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세계 평화의 이상, 인간 공동체에 존재하는 균열과 갈등, 서양과 비서양 세계의 관계, 서양 그리고 기타 세계의 다양한 현실, 서양 근대성의 영향, 변화하는 문학적 소통의 양식, 그리고 문학이 평화의 작업에 대하여 갖는 의미 등을 깊이 있게 논의하게 된다.
제2회 서울 국제문학포럼은 5월 24일 오전 10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평화를 위한 글쓰기”를 대주제로 하여 3일 동안 ‘인간 가치와 정치 변화’ ‘영구평화의 이상’ ‘동아시아 문화의 과거와 미래’ ‘한국적 평화 전통의 이상’ ‘힘의 질서와 인간 가치 ; 독재, 전쟁 그리고 평화’ ‘평화와 차별 ; 성, 인종, 종교’ ‘ 문학과 보편적 인간 가치’ ‘기술 변화와 소통의 세계화’ ‘비서구사회와 근대성’ ‘서구 근대성의 다양성’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문화의 과거와 미래’ ‘빈곤과 세계의 계층화’ ‘환경,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그리고 문학’ 등 13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와 컨퍼런스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포럼은 주제별로 외국문인들과 한국문인들이 각각 발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포럼에 참가하는 외국문인 및 지식인은 노벨문학상 또는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하였거나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 문학의 거장들이다. 주요 외국문인으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동경대 총장을 지낸 일본의 양심 하스미 시게히코(일본어권)를 비롯하여 ▲미국 계관시인을 지낸 로버트 하스, 하이퍼 픽션의 선두주자 로버트 쿠버, 아프리카의 대표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 환경시, 선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개리 스나이더, 혜경궁 홍씨를 소재로 소설을 쓴 영국의 마거릿 드래블(영어권)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 르 클레지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장 보드리야르(불어권)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인 칠레의 루이스 세풀베다(스페인어권) ▲『붉은 수수밭』의 작가 모옌, 중국의 세계적 망명 시인 베이 다오(중국) ▲ 터키가 낳은 최고의 작가 오르한 파묵 ▲한국전쟁시 북측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 ▲김남주 시집 번역에 참여한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 ▲러시아의 대표적 여성작가 베라 갈락티오노바 등 20여명이다.
한국 문인들도 김우창, 백낙청, 유종호, 현기영, 황석영, 최장집, 복거일, 고은, 오정희, 김성곤, 김영하, 조은, 김승희, 황지우, 최윤, 김연수, 김광규, 최원식, 박이문, 공선옥, 장회익 등 20여명이 발제자로 참여하며 조정래, 황동규, 김윤식, 신경숙 씨 등 40여명이 토론자 및 사회자로 함께 참여한다.
특히 이번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대산문화재단과 함께 공동주최자로 참여함으로써 앞으로 국제문학포럼을 정례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써 서울에서 세계적인 문학담론을 생산하는 대규모 문학포럼을 정례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초석을 놓게 되었다. 또한 한국 문학이 세계문학과 대등하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이 커다란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은 이번 포럼에 대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라며 “이번 포럼이 폭력과 야만적인 것들의 반대 좌표로서 세계 평화를 위한 열린 담론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동주최자인 문예진흥원의 현기영 원장은 “이제는 TV나 영화 화면 대신에 문자와 문학이 발언해야 할 때”라며 “전쟁의 슬픔과 공포가 인간의 가슴 속에 절실하게 스며들게 하고 그 슬픔과 공포를 평화운동 차원으로 조직해내는 일을 문학이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제 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작가는 메인 포럼 이외에 강연회, 작품낭독회, 좌담회 등 다양한 작가별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교보문고는 5월 24일부터 매일 오후 3시와 4시에 교보빌딩 10층 대강당과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불어불문학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등과 공동으로 오에 겐자부로, 개리 스나이더, 베이 다오, 르 클레지오, 루이스 세풀베다의 강연회와 작품낭독회를 개최한다.
또한 작가들은 서울대(로버트 하스, 로버트 쿠버, 토마스 브루시히), 한국외국어대(오르한 파묵, 모옌, 베이 다오, 에를링 키텔센, 응구기 와 시옹오, 마거릿 드래블, 베라 갈락티오노바), 연세대(마사오 미요시), 고려대(하스미 시게히코), 한양대(오에 겐자부로), 숙명여대(로버트 하스), 중앙대(볼프 비어만, 토마스 브루시히), 단국대(티보 머레이, 베이 다오), 서강대(로버트 쿠버) 등지에서 대학과 관련 학회의 초청으로 강연회 등을 갖는다. 아울러 주요 일간지와 대담 등도 갖는다.
포럼의 전과정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와 서울국제문학포럼 홈페이지(www.seoulforum.org)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참가자와 청중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시통역으로 진행된다. 포럼에는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참관할 수 있으나 원활한 진행을 위해 E-mail(daesan@daesan.or.kr)로 신청하면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제1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등 해외 저명작가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계를 넘어 글쓰기”라는 주제로 2000년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열린 바 있다.
대산문화재단과 문예진흥원은 2003년 8월부터 김우창(조직위원장, 평론가, 고려대 영문과교수) 김성곤(실무위원장, 평론가, 서울대 영문과교수) 유종호(평론가, 연세대 특임교수) 김화영(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김누리(평론가, 중앙대 독문과 교수) 윤상인(한양대 일문과 교수), 김대영(대산문화재단 상임이사), 강형철(문예진흥원 사무총장) 씨 등으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번 포럼을 준비해 왔다.
주최측은 이번 포럼이 끝난후 발표된 원고들을 묶어 국문판과 외국어판 2종으로 논문집을 발간, 일반에 보급할 예정이다.
※ 해외 참가작가 프로필, 국내 참가작가 프로필, 포럼취지문, 포럼일정표, 작가별 행사 등의 자료는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 및 서울국제문학포럼 홈페이지(www.seoulforum.org)를 참조해 주세요.
Ⅱ. 주제 및 참가자
평화를 위한 글쓰기
Writing for Peace
Ⅰ. 문학적 소통과 세계공동체 Literary Communication and World Community
1. 인간 가치와 정치변화 Human Values and Political Change
Kenzaburo Oe 김우창 / 김병익 조정래 / 김윤식
2. 평화질서의 이상 -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전의 유형 The Visions of Peace for the Future of Humankind
1) 영구평화의 이상 The Idea of Perpetual Peace
Robert Hass 최장집 / 황동규 김원일 / 오생근
2)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이상 East Asian Ideas of World Order
Shigehiko Hasumi 복거일 / 김종길 임지현 / 윤상인
3) 한국적 평화 전통의 이상 Ideals of Peace in the Korean Tradition
Tibor Meray 백낙청 현기영 / 최동호 정두희 / 이남호
3. 힘의 질서와 인간 가치 - 독재, 전쟁 그리고 평화
Power, Human Values and Political Order : Dictatorships, Wars and Peace
Orhan Pamuk 고은 Wolf Biermann 오정희 / 성석제 공지영 / 정정호
4. 평화와 차별 - 성, 인종, 종교 Peace and Difference: Gender, Race, Religion
Ngugi Wa Thiongo 조은 Margaret Drabble 김승희 / 임철우 심윤경 / 서지문
5. 문학과 보편적 인간 가치 Literature and Human Universality
Le Clezio 유종호 Luis Sepulveda 황석영 / 김인환 이인성 / 김화영
6. 기술변화와 소통의세계화 Technological Change and the Globalization of Communication
Jean Baudrillard 김성곤 Robert Coover 김영하 / 정과리 김경욱 / 최혜실
Ⅱ. 다원적 문화와 문학 Literature and Cultural Pluralism
1. 비서구사회와 근대성 Varieties of Modernity in the World
Bei Dao 황지우 김연수 / 권영민 황종연 / 고혜선
2. 서구 근대성의 다양성 Varieties of Western Modernity
Masao Miyoshi 김광규 Erling Kittelsen 최윤 / 도정일 문희경 / 김누리
3.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문화의 과거와 미래 Commonality of East Asian Cultures: Past, Present and Future
Moyan 박이문 최원식 / 정재서 최재철 / 성민엽
Ⅲ. 환경과 문학 Literature and Ecology
1. 빈곤과 세계의 계층화 Poverty and the Stratification of the World
Thomas Brussig 공선옥 / 신경숙 최인석 / 전영애
2. 환경,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그리고 문학 Ecology, Sustainable Growth and Literature
Gary Snyder 장회익 Vera Galaktionova / 오세영 최승호 / 고종석
Ⅲ. 포럼 일정표
( 컨벤션센터 컨퍼런스홀)
시간5. 24(화)5. 25.(수)5. 26.(목)
10:00
~ 12:30개회식
Session 1
인간가치와 정치변화
Kenzaburo Oe
김우창Session 5
힘의 질서와 인간 가치
Orhan Pamuk
고은
Wolf Biermann
오정희
Session 6
영구평화의 이상
Robert Hass
최장집Session 9
서구근대성의 다양성
Masao Miyoshi
김광규
Erling Kittelsen
최윤Session 10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문화의 과거와 미래
모옌
박이문
최원식12:30~14:00 중식14:00
16:30
17:30
Session 2
문학과 보편적 인간 가치
Le Clezio
유종호
Luis Sepulveda
황석영
Session 3
한국적 평화전통의 이상
Tibor Meray
백낙청
현기영
Session 7
비서구사회와 근대성
Bei Dao
황지우
김연수
Session 8
평화와 차별;
성, 인종, 종교
Ngugi
조은
Margaret Drabble
김승희Session 11
기술 변화와
소통의 세계화
Jean Baudrillard
김성곤
Robert Coover
김영하
Session 12
환경,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그리고 문학
Gary Snyder
장회익
Vera GalaktionovaSession 4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이상
Shigehiko Hasumi
복거일Session 13
빈곤과 세계의 계층화
Thomas Brussig
공선옥
Ⅳ. 주요 작가 언론사 공동인터뷰
- 포럼 기간 중 주요 작가들은 세종홀 소연회장에서 오전 11시와 오후 2시 30분에 언론사
공동인터뷰를 갖는다.
5월 23일(월)5월 24일(화)5월 25일(수)5월 26일(목)
11:00
Kenzaburo Oe
14:30
Luis Sepulveda
11:00
Ngugi Wa Thiongo
14:30
Jean Baudrillard
11:00
Moyan
14:30
Wolf Biermann
11:00
Bei Dao
14:30
Orhan Pamuk
Ⅶ. 발제원고 주요 내용
1. 해외 참가작가 발제문 제목
1) 오에 겐자부로 : 우리는 나즈막히 나즈막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2) 하스미 시게히코 : 빨강의 유혹
3) 오르한 파묵 : 교통, 종교 그리고 “우리”
4) 베이 다오 : 근대성과 시골쥐
5) 모옌 : 개성이 없다면 공통성도 없다
6) 마사오 미요시 : 대학, 우주 그리고 “세계화”
7) 개리 스나이더 : 자연에 대하여 벌이는 전쟁과 작가들
8) 베라 갈락티오노바 : 새로운 문학의 주인공; 자국민 이익의 대변자인가 아니면 세계화 이념의 대변자인가?
2. 해외 참가작가 발제문 요지
<우리는 나즈막히 나즈막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오에 겐자부로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이 될 것 같은 『안녕, 나의 책들이여!』를 집필하고 있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소설 속의 소설가인, 나와 비슷하지만 나 자신은 아닌 노인의 어리석은 짓과 공포, 절망을 그리려고 한다. 내가 노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대립하는 요소들과 모순 되는 양극 사이의 긴장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는 것은, 조국인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 때문이다. 여전히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화해가 요원하고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전쟁 포기를 선언한 일본 헌법 9조를 제거하려는 가운데, 나는 작년부터 일본을 민주주의와 평화주의 국가로 갱생하려는 의지인 이 헌법을 수호하고자 ‘9조의 모임’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해 나는 여전히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평화에 대해 쓰는 것’을 통해 그 평화의 의미를 심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출현을 장려하는 것이 내 노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빨강의 유혹> -하스미 시게히코
평화의 반대개념인 갈등과 무질서를 언어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초점은,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똑같은 해석을 미리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문학에서 창조적인 개념들은 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때문에 불일치가 생겨나는데, 그 창조적 불일치를 통해 우리의 길을 개척할 때 평화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예로 ‘Fiction'이라는 단어의 의미론적 무질서와 해석상의 갈등을 놓고, 존 R. 시얼과 같은 학자는 ‘빨간모자’의 예를 들면서 ‘빨간’은 ‘빨강’을 의미하면서도, ‘빨간’을 ‘빨강’과 서로 연관시키는 규칙들이 유효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하여 작가의 의도와 언어의 지시 대상에 대한 엄격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빨간모자’를 언급했을 때, 그는 이것이 의도적으로 무작위 선택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여러 논문에서 ‘빨강’은 의미심장하게 반복된다. 즉, 글로 쓰인 텍스트는 작가의 의도를 뛰어넘는 무한한 상호 텍스트적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평화 역시 정신분열증적, 무정부주의적 개념으로 종합이나 분석으로 그 정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 오히려 분리되고 고립된 학문적 영역에서만 그 개념을 논의하려는 배타적인 연구자들로부터 그 갈등과 무질서가 비롯되는 것이다.
<교통, 종교 그리고 “우리”> -오르한 파묵
1950-80년대 이스탄불에서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행위 저변에는 밀려들어오는 서양세계에 대항하여 과거의 세계를 지속시키려는 ‘우리끼리’의 민족주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서양인을 동경하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상되는 모든 전쟁 가능성이 영구적으로 제거되는 ‘영구적 평화’는 단순히 미국의 군국주의만이 아니라, 이와 같은 서양세계 밖의 과격한 민족주의 즉, ‘우리주의적 분노’로 인해 실현 불가능해진다. 사회와 현재의 규칙들을 어기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우리’에 의거하지 않고 하는 것이다. 교통법규를 어기는 개인적 자유와 정부가 강요하는 종교 계율에 대한 복종 사이의 모순 속에서,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면서 활동하는 로칼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지지가 절실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 -르 클레지오
일반적으로 문화, 특히 문학은 한 사회와 그 문화권 특유의 개별성의 표현이다. 즉, 인류의 기억에 하나의 대표모델처럼 자리 잡은 보편적 정서를 지닌 예술작품들 역시 지역적이고 국한된 요소들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문학이 가진 개별성과 세부적 요소, 일상성 때문에 그것은 우리와 관련을 맺게 되며, 실체적인 보편성을 획득한다. 다만 주요어가 아닌 소수언어로 쓰여진 작품에 있어서 보편성의 영광이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나, 보편성은 결국 모든 예술표현에 있어서 고유한 것으로 우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달려있다.이와 같이 한 시대의 산물인 문학작품은 동시에 다른 세계로의 통로가 되고, 이러한 예술작품 덕분에 우리는 타자가 될 수 있으며, 타자가 되어봐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근대성과 시골쥐> -베이다오
도시쥐에게 초대를 받은 시골쥐는 도시생활의 풍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고 시골로 돌아온다. 나는 5년 전부터 시골쥐가 되어 신선한 공기와 새소리 속에서 살고 있지만, 파리, 베이징 그리고 뉴욕에서 소음과 범죄, 불안과 폭력 속에 사는 도시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진정한 의미의 시골쥐보다는 교외쥐, 즉 규격화된 주택에서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사는 일벌레가 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의식주 형태에서 나오는 근대적 세뇌는 사람들의 저항의식을 앗아가고, 그 욕심을 자극해 더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게 한다. 물론, 찌푸린 얼굴로 서로 당장이라도 비수를 꽂을 준비가 된 도시쥐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다시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된 이미 시골쥐가 된 나는 그 대기오염, 소음, 두려움과 생존기술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개성이 없다면 곧 공통성도 없다> -모옌
동아시아 각국의 문학 작품들은 그 스스로의 개성을 표출하는 데서 시작, 그 풍부한 개성 속에 공통성 또한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다년간 중국 작가들을 구속하던 ‘문학은 정치를 위해 일을 한다’는 사슬이 풀리면서, 진정한 의미의 중국 당대 문학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다량의 서양 작품들이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나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내가 시종일관 고수하고 있는 신념이 있다면, 그것은 문학 창작과 작품의 개성화이다. 어떤 작가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구별되어야 하며, 작가는 어떠한 상황이나 체제 속에서도 스스로의 사상과 인격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고로 동아시아 작가들은 자신의 나라, 민족의 현실, 더 깊이는 자신의 고향에서 출발점을 찾아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작가들의 창작품이 구체적인 개성화를 이룰 때 비로소 동아시아 지역 문학으로서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우주, 세계 그리고 ‘세계화’> - 마사오 미요시
강화된 형태의 자본주의인 세계화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전례 없는 격차와, 물질적 생산 및 소비의 성장에 기인하는 환경재앙, 그리고 대학이 대기업적 체제로, 학문이 지적 재산과 유흥으로 변형되는 고등교육의 성격과 기능의 변화를 낳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심지어 산업 경영자와 금융계 지도자들마저 미국 행정부의 정책에 불안과 불신을 품고 있다는 점과 환경적 비용과 비경제적 요인들이 경제학의 범위 속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절망 속의 희망의 여지로 보인다. 빈부의 격차, 그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 전염병 또는 테러리즘이라는 극단의 요소들이며, 이들은 더더욱 전세계에 부의 평등을 복원시켜야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학문과 지식의 파편화의 문제에 있어서는 삶과 세계의 복잡한 짜임새, 그 총체성인 모습을 수반하는 통합적이고 전체론적인 학문이 그 희망의 모습이 될 것이다.
<자연에 대하여 벌이는 전쟁과 작가들> -개리 스나이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전례 없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시적상상력 혹은 예술은 야생정신의 영역으로서 ‘자연을 대신하여 말하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이라는 경악의 뉴스를 접한 나는 평생을 이 잔혹한 파괴력과 이를 사용코자 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싸우기로 맹세하였다. 불교의 ‘아힘사’의 교리, 즉 ‘해하지 않음’의 메시지는 단순히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지구와 모든 생명에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왔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곧 생명의 세계가 하나의 큰 잔치이며 우리는 초대받은 손님이자 곧 그 음식의 일부임을 깨닫게 했다. 궁극적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인간들이 이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든다. 퍼포먼스, 그리고 노래, 이야기, 춤에 그 바탕을 둔 개화된 문학은 우리가 깊은 세계, 즉 자연에게 주는 선물이자 빚갚기인 것이다.
<새로운 문학의 주인공: 자국민 이익의 대변자인가, 아니면 세계화 이념의 대변자인가?> - 베라 갈락티오노바
세계화 정책이 이끌어가는 현대 사회의 중심 이념은 황금 송아지, 즉 자본의 축적에 있고, 여기서 더 많은 자본을 취하는 자가 곧 현명한 자라는 공식이 탄생한다. 그러나 세계적 악은 어떤 것이든 자기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현대사회의 이러한 움직임은 스스로를 먹어치우고, 자신의 행위를 파괴시키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즉, 우리의 인식과 심리적 에너지의 흔적이 자연에 그대로 남아, 인간의 비도덕성과 본질적, 신적인 인격의 훼손은 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존의 철학, 문명의 발전 방향을 바꾸는 철학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인류를 자연과의 전체적인 관계에서 탐구하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3. 국내 참가작가 발제문 제목
1) 고 은 : 평화, 폭력 그리고 문학
2) 백낙청 :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 찾기; 황석영 소설 『손님』의 경우
3) 최장집 :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
4) 현기영 : 기억 투쟁으로서의 문학
5) 황석영 : 저항하면서 함께 변화하기
6) 오정희 : 내 안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7) 복거일 : 동아시아의 이상적 질서
8) 유종호 :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글 읽기의 현장
9) 김광규 : 서구 근대성과의 만남
10) 최 윤 : 근대성이라는 다양성의 딜레마
11) 공선옥 : 세계화시대의 가난한 작가
12) 김영하 : 쓰나미, 쿤데라, 카프카 그리고 몇 가지 생각들
13) 장회익 : 과학과 문학에 반영된 환경문제
14) 최원식 : 동아시아 공동어의 구축을 위하여
15) 박이문 : 어떤 글쓰기가 평화를 위한 것인가
16) 조 은 : 침묵에 말걸기; 여성의 전쟁경험 이야기 쓰기
17) 김연수 : 시계, 역사, 개인의 운명
18) 김승희 : 성 차별과 휴전선 아래서; 가짜 평화와 가짜 전쟁 속에서 살기
4. 국내 참가작가 발제문 요지
<평화, 폭력 그리고 문학> -고은
오늘날 하나의 고정관념처럼 상투화된 ‘평화’의 의미는 모든 지역을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각 지역과 나라마다의 다양한 정체성이 낳은 삶의 문화이다. 그러나 고대 서사 문학의 정전(正典)들을 기점으로 하여 전쟁의 폭력성과 영웅주의는 끊임없이 신성화되어 왔고, 이는 역설적으로 평화적 탐구의 필요성을 심화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평화는 정적인 것이라는 통념 속에서 전쟁의 청소부 역할에 머물 것이 아니라, 지난 해 미국 전역에서 일어난 시인들의 반전 평화운동과 같이 전쟁과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생명현상으로서 그 실천적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 찾기: 황석영 소설 『손님』의 경우> -백낙청
한반도에서 ‘분단체제의 극복’은 파국적이더라도 일단 통일을 이룩하려는 단순한 ‘분단극복’과는 달리, 장기적이고 평화적인 혁명의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단체제가 지배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주고, 창조적 대응을 일깨우는 창조적 문학의 역할이 강조된다. 북녘의 현실을 장편소설의 규모로 다룬 황석영의 『손님』은 신천학살이 주로 우익 기독교도들에 의한 동족상잔의 비극임을 보여주면서, 한반도의 내부요인들에 의해 분단체제가 구축되어 오늘날까지 유지되었다는 통찰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다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소설의 작가나 작중인물이 제기된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나 해답을 제시할 필요는 없더라도, 그 문제의식의 무게와 치열함을 담보해 줄 작중현실의 실감과 치밀성을 달성했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과업에 부응하는 문학은 분단체제의 재생산과정이 복잡한 만큼, 복합적인 인식을 지니면서도 동족 간 화해와 평화에 대한 염원은 물론, 계급, 성별, 환경 등 다양한 갈등에 대한 정밀한 인식이 그에 걸맞은 기법상의 혁신과 정교한 실행으로 구현된 작품이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 -최장집
1980년대 말이래 급속히 해체되고 있던 냉전구도는 부시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시 재정렬 되었고, 그 중심에는 미일동맹의 강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정치의 우경화 및 일본과 중국 사이의 긴장을 유발하고, 남북관계의 평화지향적 구조를 저해하는 이러한 흐름은 최근, 민족주의 열정의 분출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대북강경정책과 같은 미국의 힘의 논리는 평화의 가치, 도덕성과 충돌하며, 칸트가 역설한 ‘영구평화론’의 뚜렷한 한계점이 된다. 그러나 대북관계에 있어서 미국의 대외정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한국의 역할이며, 종래의 통일론-차이를 가진 두 개의 정치단위를 궁극적으로 하나의 체계로 통합시키려는 정책-이 야기하는 경쟁과 폭력,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그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을 통하여 평화를 실현하는 평화공존론의 남북관계구도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모든 적대관계가 종식되는 항구적 평화를 위한 평화공동체를 동아시아에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간의 ‘공동의 의미지평’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거사 청산과 같은 일본의 도덕적 역할이 핵심적이라 하겠다.
<기억 투쟁으로서의 문학> -현기영
순수문학으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나는, 유신체제 하에서 문학은 자유와 그 억압에 대한 분노를 터트려야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내 유년시절의 상처인 4·3 사건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8년 해상봉쇄령으로 제주도민을 가둬놓고 폭도 혹은 용공분자의 누명을 씌워 양민들을 학살한 전대미문의 사건인 4·3 사건에 대한 글쓰기는 나의 자아와 고향을 재발견하는 작업이었다. 2차례에 걸친 가혹한 고문 속에서도 펜은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이므로 은폐된 진실에 대해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으로 그 참상을 생생하게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21세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참혹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만, 미디어들은 그 참상을 상업적으로 이미지화, 엔터테인먼트화하고 있다. 문학은 그 상업주의 언어에 대항하여 전쟁의 생지옥을 절실한 예술적 언어로 재현, 그 슬픔과 공포를 평화운동의 차원으로 조직해내는 일을 하여야 한다.
<저항하면서 함께 변화하기> -황석영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계질서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서구사회가 펼쳐놓은 보편성의 울타리 안에 참여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이는 기득권과 불평들을 유지하려는 측의 슬로건일 뿐이다. 세계 소비재의 40%를 소비하는 생산과 소비가 극대화 된 미국과 같은 사회를 유지하려면 다른 사회를 희생시키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고, 오늘날의 미국은 국제법이나, 국제적인 정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스스로를 위한 전쟁을 일삼고 있다. 이런 우울한 세계 속에서 보편적 인간가치는 가장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겪은 자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고자 하는 ‘역지사지’의 태도에서 나온다. 그리고 문학은 자신의 모국어로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인류라는 보편성에 도달하는 ‘다원적 보편주의’를 추구하여 미국판 ‘세계화’와 같은 위선적 이데올로기가 아닌, 낙천적이고 평화적인 세계 공동체 형성의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안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 -오정희
유년시절의 전쟁 체험은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갖게 하였고, 이는 나의 문학적 감수성이자 작가로서의 내면적 출발점이 되었다. 군부독재 시절, 문학이 어떤 이념이나 계몽이라는 목적의식에 봉사하는 수단이 아니라 문학자체의 미학과 인간의 삶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이라는 생각은 당대의 폭압과 부정의함에 대해 증언하고 행동해야한다는 강박증 속에서 ‘내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 즉 어린 시절 전쟁에 대한 기억을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형태로 표출되었다. 전쟁문학 혹은 분단문학이 이미 중심권에서 밀려났으나, 전쟁의 후유증과 상처는 우리의 일상과 무의식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바로 이 끝났다고, 해결되었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 그 껍질뿐인 평화를 위기로 인식하고 시작되는 것이 문학의 몫이 아닐까.
<동아시아의 이상적 질서> -복거일
경제적, 정치적, 지역적으로 중요한 동아시아 지역의 이상적 국제 질서 수립과 초국가적 조직의 결성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사람과 국가들이 이 지역 역사의 해석에서 합의에 이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 중국이 아니었나’, ‘왜 일본이었나’ 라는 두 물음은 이 지역 현대사의 주요한 맥을 비춰줄 핵심적 질문이다. 유럽 문명이 중국을 제치고 세계를 제패한 것은 유교지배의 바탕보다, 중국의 지리적 수문학적, 경제적 요인들을 비롯 특히 중국의 이른 통일에 따른 경쟁 상대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분열된 지리적,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고 상업을 함양함으로써 유럽 문명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성공적으로 현대화를 이룩하였다. 이러한 현대사의 견해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발현을 위해 공산주의 체계의 철패와 일본 침략으로 독이 밴 역사의 청산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문학과 보편적 인간가치-글 읽기의 현장> -유종호
인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문학이 가진 보편적 인간가치가 사람의 취향이나 품격만이 아니라 도덕적 감정을 세련되게 한다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단순히 선과 악의 갈등이 아니라, 상호배제적인 두 부분적 선 사이의 갈등을 그린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와 같은 작품은 그리스 비극이 당시 사회의 정의와 가변적인 법과의 갈등을 보여주는 일종의 법정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해방 이후 소련으로 망명한 시인 조명희에 대한 평가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의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충직이 생계수단이 없는 부인과 딸을 버린 ‘친족 윤리’에 대한 반칙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즉, 여러 문제들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안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 속에 보편적인 인간 가치가 잠재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인간과 세계의 미메시스인 문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그 판단의 어려움을 상기시킨다.
<서구 근대성과의 만남> -김광규
통속적 리얼리즘 소설을 읽으면서 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책벌레였던 나에게 카프카의 「변신」은 충격적인 전환점이자 서구 모더니즘 세계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다. 이 충격은 내가 30대에 접어들어 그레고리 잠자의 변신과 죽음을 내 삶 속에서 예견하게 된 때 비로소 해독되었다. 시의 경우, 대학 시절 만난 근대적 독일문학, 즉 고트프리트 벤의 「아름다운 청춘」과 같은 작품은 김소월의 전통 서정시를 위시한 동시대 한국시와의 간극을 실감하게 했다. 이들 서구 근대 문학 속에서 나는 ‘중얼거림의 문학’ 즉, 사회적 소통이나 경제적 이익과는 동떨어진 형태의 언술방식의 단초를 발견하였고, 이는 복잡다단하게 분화된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만, 이 중얼거림이 극단에 빠져 작가와 독자사이의 소통의 장애가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점이다.
<근대성이라는 다양성의 딜레마> -최윤
서구와는 달리 기독교 전통도, 인권 중심의 혁명이나 체제 전복도 없이 급격히 진행된 한국의 근대화 경험은 내 나라의 역사와 언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반사경의 역할을 하였다. 여기서 문학이 단순히 시대적 당위의 반대편이 아니라 그것을 문학적으로 뛰어넘고 포괄하는데 나의 문학적 고민이 위치한다. 근대 문학이 곧 서구적인 문학이라는 은연의 공식이 적용되는 비서구 사회에서 보편의 이름으로 세계화, 획일화 되어 가고 있는 것들의 일차적 저지망이 언어이고 문학이다. 근대성의 다양성, 차별성, 특수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획일화의 경향이 상당 부분 진전되었다는 반증이고 보면, 차이에 기반한 보편성이 문학 속에서 이루어질 때 그 문학은 평화의 글쓰기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시대의 가난한 작가> -공선옥
가난에 치여 대학교를 중퇴하고 고속버스 안내원을 하다가, 계층이동의 판타지가 난무하던 시절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두 아이를 데리고 공장일을 시작했다. 가난보다도, 날마다 다른 것을 만들고 싶다는 ‘창조적인 삶’에 대한 욕구가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글 쓰는 노동자’이고, 빈부의 계층화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되어 가는 시대에 내 삶과 내 주위의 삶, 즉 가난을 주제로 한 글을 쓰고자 한다. 어려운 세상에 환상을 주는 아름답고 화려한 글을 써야 돈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비루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가장 거세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작가가 이 가공의 세계화 시대에 할 수 있는 의미있는 행동이라 믿는다.
<쓰나미, 쿤데라, 카프카 그리고 몇 가지 생각들> -김영하
오늘날 인터넷 망을 타고 작고 은밀하게 시작된 언어들이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확산되어 큰 파장을 낳는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에너지를 가진 쓰나미식 소통과는 달리 쿤데라의 「농담」에서 보여지는 루드빅의 엽서는 그 소통의 기원이 그 목표와 은밀히 조응하고 있다. 오로지 상상의 차원, 허구의 차원에서만 가능할 뿐 현실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 스펀지형 소통, 카프카의 「심판」에서 보여지는 요제프와 국가기구의 허망한 소통과는 또 다른 양태인 것이다. 이 세 가지 폭력적인 소통의 양식이 혼재된 세계에서 기술 발전이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징후는 전무후무하다. 나는 문학이 이러한 파괴적 소통방식에 맞설 수 있는 소통 경로를 이미 건설해 놓았으며, 소통의 단절에 처한 개인들을 제시함으로써 이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학과 문학에 반영된 환경문제> -장회익
환경의 파손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사실의 차원에서 정확히 감지하는 것이 과학의 몫이라면, 이를 다시 대중에게 알리고 문제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은 문학의 작업일 것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다니엘 퀸의 「이스마엘」같이 문명과 그에 접근하는 인간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에 앞서 우리가 가진 생명개념의 정정이 요구되는데, 우리는 외부의 환경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때에 한해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낱생명’을, 외부의 여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 안에 생명을 담고 있는 진정한 실체인 ‘온생명’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낱생명’이 결국 ‘온생명’에 이르러서야 완결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더 큰 의미의 ‘내 몸’으로 자연과 하나 되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 훼손과 인구 증가, 동식물 멸종 등 온생명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오늘날,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위안이 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훼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심성 속에는 이를 복원해야 한다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연스러운 성향을 일깨우는 것이 문학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동아시아 공동어의 구축을 위하여> -최원식
테러 이후, 미국이 북한도 ‘악의 축’으로 지목함으로써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고조되어, 휴전 상태일 뿐 아직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한국 사회와 그 주변국인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의 팽팽한 구도는 날로 긴장을 더해가고 있다. 남북의 화해적 공생과 세계 강국들이 겯고트는 동아시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서 나는 ‘한국발 동아시아론’을 제시한다. 이는 한반도, 중국, 일본을 하나의 사유 단위를 설정함으로써 민족주의와 국제주의를 횡단하는 ‘비판적 지역주의’를 실현하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구에 의한 분리지배 속에 상호 무지한 한중일의 공동작업이 선차적이며, 동아시아의 공동문화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공동어의 창출을 통해 단순히 교전이 중지된 소극적 평화가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안녕이 보장되는 적극적 평화를 이룩해나가야 할 것이다.
<어떤 글쓰기가 평화를 위한 것인가> -박이문
갈등과 폭력, 위기의 시대에 시인은 평화를 위해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만약 철학과 문학의 기능이 세계를 바꾸는데 있으며, 문학이 ‘참여문학’이어야 한다면, 문학적 참여는 어떤 형태로 가능한가. 과학적 언어가 시적 언어의 희생의 산물이라면, 시적 언어는 과학적 언어만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시적 언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의 폭력과 왜곡성을 폭로하고 그 표상대상을 그 자체, 언어로 개념화 할 수 없는 원초적 상태로 포착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라는 특정한 글쓰기의 영역은 다른 글쓰기가 담당할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보다 더 원초적,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때 진정한 의미가 있으며, 참다운 참여문학은 마르크스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 마르크스적인 문학으로서 이념적, 과학적 언어의 폭력에 대항하여 그러한 언어들을 해체하는 글쓰기에서 비롯된다.
<침묵에 말걸기: 여성의 전쟁경험 이야기 쓰기> -조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망각과 침묵은 하나의 생존전략이자 사회의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장이었고, 그 속에서 여성들은 국가와 남성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포위되었다. 즉, 이제까지 전쟁은 남성들에 의해 기획, 수행, 기록되었고, 전쟁을 겪은 여성들은 말하지 못한 ‘말의 무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체험을 언어화 할 ‘말’의 부재와 청자의 부재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전쟁 문학 역시 주로 남성작가들에 의해 쓰여지면서 가족이야기는 민족이야기로 탈바꿈되고, 신성화된 강건한 모성이 고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하위민중인 여성의 전쟁 이야기 쓰기는 자기 스스로의 고통을 치유하고 해결하는 씻김굿의 의미인 동시에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이면서 타자화된 주체인 여성의 언어로 폭력과 저항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전쟁의 고통, 약자의 아픔, 평화에 대한 감수성 확대를 위한 글쓰기, 즉 평화를 위한 글쓰기의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시계, 역사, 개인의 운명> -김연수
나에게 근대성하면 어린시절 동네 백화점, 그리고 백화점 2층 수입품 코너에서 보았던 끊임없이 반복운동을 하던 장식품이 생각난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매혹된 시인 이상 역시 그의 시에서 시계에 주목하면서 근대성의 핵심이 반복운동에 있음을 꿰뚫고 있다. 시계는 동양이 서양을 인식하게 되는 계기이자, 과학적 질서의 세계, 영원히 반복하는 운동의 세계의 상징물과 같다. 이러한 서양의 과학기술과 기계는 직선적인 역사관 즉, 세계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고를 불러왔으나, 사회 차원의 근대화와는 달리 개인 차원에서의 근대화는 끊임없이 지체되었다. 문학이 이해하는 근대란 곧 개인이다. 개인적으로 창작돼, 개인적으로 읽히는 영역인 문학은 이러한 역사 속에서 개인을 구원하고, 그의 아직 오지 않은 소망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성 차별과 휴전선 아래서: 가짜 평화와 가짜 전쟁 속에서 살기> -김승희
한국여성들은 ‘가화만사성’의 담론, 즉 여성의 침묵과 헌신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전제되어야 한다는 성 차별적 담론 속에서 태어났다. 이와 같이 자신을 타자로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주의 시는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온 것들이 당연하지 않으며 심지어 부당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의혹의 시학이라 하겠다. 그 의심의 시선에서 볼 때 결혼은 여성이 자기를 버리고 타자화 되어가는 가짜 평화일 뿐이다. 휴전선과 지뢰밭이 여전히 국토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 역시 때로는 파괴나 폭발보다 더 사악한 또 하나의 가짜 평화이다. 이와 같이 젠더와 휴전선의 아슬아슬한 고압선 아래 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평화는 바로 옥수수알이 팝콘으로 뛰어오르면서 꽃피어나는 순간의 평화일 뿐인 것이다.
웹사이트: http://www.daesan.org
연락처
대산문화재단(전화:725-5418) 담당 곽효환 문화사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