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은 오는 25일 ‘광개토대왕 비문 역사왜곡 규명 포럼’을 개최한다. 김 의원은 지난 해 ‘아리수’가 식민사관 용어이며, 일본의 삼한정벌론과 임나일본부설에 짜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역사성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본부장 김흥권)는 ‘아리수’ 용어를 식민사관으로 몰아가며 역사 왜곡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서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 해 이미 ‘아리수’가 고구려 시대 ‘한강’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라는 점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 ‘고구려연구회’ ‘고구려연구재단’ 등 국내의 권위 있는 역사 연구기관들의 자문을 받아 현재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설임을 입증한 바 있다. 또 지난 3월까지 서울시의회와 국회에 수차례에 걸쳐 증빙 자료 제출 및 입장 표명을 한 바 있다.
또한 역사는 고증과 기록에 따라 정립되는 것이므로, ‘아리수’ 용어가 한강을 뜻하는 말임을 학계 등에서 정설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아리수’ 용어 사용에 대한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표명했다.아울러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 등 일련의 역사왜곡은 반드시 규명되고 시정되어야 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에 전국민이 동참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리수’의 역사성에 관한 규명은 역사학계의 학자들의 연구와 철저한 고증에 의해서 다루어야 할 사안이며, 편중된 성향만 가진 같은 학회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참석자를 구성하여 포럼을 개최한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 날 포럼의 주축이 되고 있는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와 ‘리민족사연구회’는 광개토대왕 시대 백제, 신라와 왜(倭)가 중국에 위치하고 있었고, 백제의 웅진이 산동성, 사비성은 평원 황산 백마대산에 있었으며, 왜는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등 정통사관과는 큰 차이가 있는 학회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의 수돗물 ‘아리수’는 WHO(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121개 항목의 수질검사를 거친 깨끗하고 안전한 서울의 수돗물 브랜드다. ‘아리수’는 지난 해 미국의 권위 있는 수질검사 기관인 Weck Lab과 STL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먹는물 적합’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첨부 1> ‘아리수’의 역사성 및 어원에 대한 자문 결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지난 해 ‘아리수’ 용어의 역사성에 관해 국내 권위 있는 사학단체 및 어원학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역사학적 관점>
○「국사편찬위원회」(2004. 9. 8)
-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아리수(阿利水)’는 “광개토대왕이 ‘아리수’를 건너 백제를 공격하자 백제왕이 남녀노예 1천명과 가는 삼베옷 1천필을 바치고 영원히 신하가 되어 고구려를 섬기겠다” 는 내용임. 여기에서 아리수는 순우리말이며, 한강의 옛 이름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학계의 중론임. 「일본서기」에 보이는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는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백제 도성하의 아리수’ 또는 ‘경주의 알천’으로 보기도 하며, 막연히 ‘강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보기도 하는 등 분명치 않으며, 「일본서기」는 신뢰성에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비판 또한 적지 않게 받고 있음. 따라서 식민지적 관점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며, 아리수(阿利水)와 임나일본부설과는 관련이 없음.
○ 고구려 연구재단」(2004. 8. 13)
- ‘아리수’는 고구려시대 한강을 칭하는 용어로 봄. 광개토대왕비문의 정복기사 중 영락6년 병신년(丙申年) 백제공격기사에 ‘아리수’가 기록되어 있음.
○ 한국국학진흥원 청명문화재단 발간「한국금석문집대성」
- 영락6년 병신년(丙申年) 백제공격기사에 대하여 한·중·일 학자 14명 중 일본학자 2명과 중국학자 1명은 “도아피수(渡阿被水)”라고 판독하였으나, 우리나라 학자 3명을 포함한 11명은 “도아리수(渡阿利水)”라고 판독하였음.
○ 고구려연구회 발간 “광개토태왕과 고구려 남진정책”
- 박성봉 경북대교수, 서영수 단국대교수, 서길수 서경대교수 등의 논문에서 광개토태왕비에 기록되어 있는 “아리수”를 한강으로 기술하고 있음.
<어원학적 관점>
○ 한글학회(2004. 9. 17)
-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 국어 대사전>(1999)에, ‘아리수’는「한강의 옛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고「속임수의 잘못」이라고 밝혀 놓았음. 이는 ‘아리수’가 「한강의 옛이름」이란 것을 명시한 것이며, 이를 ‘속임수’로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임. 이전에 발간된 일부 국어사전에서 ‘아리수’를「‘속임수’의 방언」으로 기재하고 있으나 어느 지역의 방언인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옛날 일부 지방에서 쓰이다가 사라진 말로 추정됨.
<첨부 2> 김성구 의원의 주장에 대한 반론
□ 1905년 이전에는 ‘아리수’로 판독된 자료가 없고 ‘아피수’가 11회나 판독되고 있다?
○고구려연구회 답변내용
- 석문대비표(임기중 편저 [광개토왕비원석초기탁복집성]를 보면 명백해짐. 일본군 스파이 ‘사카와 카케노부’가 중국에서 가지고 간 탁본(사실 그것은 탁본이 아니라 쌍구가묵본이라는 가공품이었음)에 ‘아피수(阿被水)’라고 잘못 가공한 것을 그대로 읽었기 때문에 일본학자들이 1880년부터 1919년까지는 모두 ‘아피수(阿被水)’라고 읽었음. 그러나 1919년 일본 학자들이 현장에 가서 확인한 뒤부터는 모두 ‘아리수(阿利水)’라고 읽고 있음. 그 뒤 한국, 중국, 일본의 모든 학자들이 모두 아리수라고 읽었고 전혀 이견이 없음. 즉 일본스파이 사카와 카케노부가 아리수를 아피수로 변조해서 만든 쌍구가묵본을 내세워서 ‘아피수(阿被水)’로 읽은것이지 1919년 이후 현장확인 후에는 모두 아리수로 읽었다는 내용임.
□ 국립국어연구원에서 1994년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리수’는 속임수의 잘못이라고 수정한 바 있다?
○ 표준국어대사전
- 아리-수 명 : 속임수의 잘못
- 아리수(阿利水) : 명(지) 한강의 옛이름이라고 규정되어 있음
○ 국어대사전(이희승편저)에 p 2387 보면
- 아리 - 수 : (방) 속임수
- 아리 - 수 (阿利水) : (역) 고구려쪽에서 부르던 ‘한강(漢江)’의 이름. 광개토대왕비에 있음.
※ 즉 한자를 포함한 아리수(阿利水)에 대해서는 지명으로 한강의 옛이름이라고 규정되어 있고 일반 아리수에 대해서는 속임수의 잘못이라고 하였으나, 어떤 지방에서 쓰이던 말인지 전혀 명시가 되어있지 않고 있음.
□ 1930년대에 한강 · 압록강 · 요하 · 황하 · 낙동강 등이 ‘아리수’였다고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와 일본서기에 발표되었다 따라서 ‘아리수’는 한강의 옛이름이라 할 수 없는 강의 일반 이름이다?
○ 김의원이 말하는 예에서도 보듯이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한강의 옛이름이 위에서 말하는 강들의 이름과 전혀 상관없는 ‘아피수’로 불리울 의미가 없음, 즉 큰강이 ‘아리수’로 불렸다는데는 1930년도에 이미 확증된 사실임. 김운회교수의 ‘대쥬신을 찾아서’에 보면 여러강의 이름으로 아리수가 불린이유에서 당시 유목민이었던 고구려 민족의 이동경로에서 설명할 수 있음. 즉 하북→요동→만주→북만주→압록강 중류(고구려)· 어룬춘 아리하(몽골)→한반도 중부 ‘아리수’유역 등지로 이동한 사실을 알려줌. 신구세력의 갈등이 생기게 되자 신세력, 또는 개혁세력들이 ‘아리수’를 떠나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동한 지역에서도 그 지역에 흐르는 강을 ‘아리수’로 부르고 있음.
□ ‘아리수’라는 말이 비문 변조외에 한강명으로서는 1994년 이후에 나타나고 있다?
○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에 보면 고주몽은 원래 부여사람으로 동부여를 출발하여 보화산을 거쳐 엄리대수(俺利大水)를 건너 제사, 묵골 등을 만나 졸본(현재의 환인)에 이르렀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는 내용에 대해, 신채호 선생은 엄리대수(俺利大水)를 큰강을 의미하는 ‘아리가람’을 한자음을 빌려서 표시한 말이다 라고 하였음. -신채호, 조선사연구초 『丹齋申采浩全集(下)』 ※ 즉 가람은 강을 의미하므로 아리수라는 말임.
<첨부 3>프레시안 기획연재“대쥬신을 찾아서” 연재자 김운회 교수의 견해
○ 김운회 교수 약력
現 동양대 경영관광학부 지리학 교수
現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대 쥬신을 찾아서’ 연재 中
저서 : “삼국지 바로 읽기”등
○ 프레시안 ‘대쥬신을 찾아서’ 7회 “한강 대신 아리수로” 中 발췌,요약 (2005. 5. 11)
- ‘아리’는 ‘(깨끗하고) 큰’이라는 뜻이므로 ‘아리수’는 큰 강을 의미한다. 한강은 한사군(漢四郡)시대나 삼국시대 초기에 대수(帶水)라고 불렸다고 한다. 큰 강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아리수는 한강의 옛 이름이다. 광개토대왕비에서는 한강의 옛이름을 ‘아리수’라고 기록하고 있다. 왕이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정병을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삼국사기(권 25)에서는 한강을 ‘욱리하(郁利河)’라고 하는데 ‘욱리’는 ‘유리[yuli]'로 발음되어 아리수와 유사한 발음이 난다. 광개토대왕비 뿐만 아니라 고구려 건국신화에도 ‘아리수’라는 말이 등장한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원래 부여사람으로 동부여를 출발하여 보화산(寶花山)을 거쳐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너 졸본(현재의 환인)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연구초에는 ‘엄리(奄利)’를 큰 강을 의미하는 ‘아리가람’을 한자음을 빌려서 표시한 말이라고 나와 있다. 한강은 백제가 동진(東晋)과 교류하고 중국 문화를 수입하면서 중국 명칭인 한수(寒水)로 바뀌었다. 한강이 본래의 순우리말 명칭인 ‘아리수’를 잃고 ‘한강’이라고 불린 것은 뿌리깊은 중화주의 사상 때문이다. 따라서 한강 본래의 아름다운 이름인 ‘아리수’를 되찾아야 한다.
<첨부 4> 포럼 참석자의 저서 및 주요내용
○ 저 서
- 고구려 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연구 (오재성 ; 1991년)
- 민족사 연구 제2집 (오재성, 여운건 ; 1994년)
○ 주요내용
- 고조선 ~ 삼국시대
· 중국 북쪽 및 동쪽의 대부분이 우리민족인 동이족의 영토였다.
- 광개토대왕시대
· 백제 · 신라 및 倭(왜)는 중국에 있었다.
· 백제의 웅진은 산동성 비성(肥城)이고 사비성은 평원 황산 백마대산이 있는 곳에 있었다.
· 중국에는 서신라(西新羅)가 있었고 한반도는 동신라(東新羅)의 영토였다.
· 삼국시대 왜의 위치는 현재 일본이 아닌 양자강 이남에 있었다.
· 임나가라는 경상도가 아닌 양자강 유역에 있었다.
- 아리수(阿利水)는 광개토대왕비에 있는 것을 인정함.
· 아리수(阿利水)는 아수(阿水)로 바뀔 수 있는데 아는 아(衙)로 써서 위(衛)로 다시 위(威)로 바꾸어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수(阿水)는 위수(威水)로 바뀔 수가 있다.(327p)
· 대왕은 진노하여 아리수(阿利水)를 건너 정예병을 보내 수도를 강박하였다.(330p)
<첨부 5> 리민족사연구회에서 주장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및 왜국의 위치 (중국 東明과 石門사이 청하 서쪽)
※ 壙開吐境平安好太王婢 연구
- 리민족사 연구회 발간(1991.4.28) 430쪽
○ 광개토대왕시대의 삼국 과 왜(일본)의 위치
※ 민족사연구(제2집)
-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발간(1994.7.20) 74쪽.
서울특별시청 개요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은 600년 간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공공서비스 리디자인에 참여시킴으로써 서울을 사회적경제의 도시, 혁신이 주도하는 공유 도시로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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