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김형욱 실종사건 조사결과 (중간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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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2005-05-26 15:57
서울--(뉴스와이어)--中間發表를 하는 이유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는 國情院과거사건 우선 조사대상으로 선정된「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 國情院자체 존안 및 외부 기관 자료 분석, 사건 관계자들과의 집중적인 面談調査를 통해 사건 가담자 및 경위 등 事件實體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였음

□ 그러나, 本발표로 김형욱 실종사건과 관련한 모든 調査가 종료된 것은 아니며 완전한 眞實糾明을 위해서는 조사 내용을 좀더 보강할 필요가 있음

□ 그럼에도 中間發表를 하게 된 것은 세간에 구구한 억측과 근거없는 낭설이 난무하여 國民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國情院의 진실규명 노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어 일단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임

□ 금번 발표는 어디까지나 中間發表인 만큼 사건 종결 발표시 표명되는 관계자 및 國情院의 책임, 제도적 보완에 대한 권고, 유가족 등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謝罪, 사후 처리방향 등에 대한 의견은 포함시키지 않았음

목 차

Ⅰ. 事件槪要…………………………………………………………… 1
Ⅱ. 調査內容…………………………………………………………… 2
1. 資料조사 및 분석 ………………………………………………… 2
2. 관련인물 面談調査………………………………………………… 3
Ⅲ. 調査結果…………………………………………………………… 6
1. 殺害動機…………………………………………………………… 6
2. 殺害指示…………………………………………………………… 9
3. 殺害準備…………………………………………………………… 1 1
가. 殺害가담자 물색 ……………………………………………… 1 1
나. 殺害計劃수립 ………………………………………………… 12
4. 殺害過程…………………………………………………………… 13
가. 殺害機會포착 ………………………………………………… 13
나. 殺害결행 및 死體처리 ……………………………………… 16
5. 事後措置및 報告………………………………………………… 18
Ⅳ. 向後計劃…………………………………………………………… 20


○ 金炯旭前中央情報部長은 63.7월 이래 中情部長으로 在職하던 중
69.10월 박정희 前대통령이 3選개헌의 1등 功臣인 자신을 전격 해임하고 73.3월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도 제외하자, 73.4월 美國으로 망명

○ 김형욱은 77.6월『뉴욕타임즈』기자회견 및 美하원 프레이저 聽聞會 에서 박정희 前대통령을 강력 비난한데 이어, 박정희 政府의 치부를 告發하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

○ 박정희 政府는
- 77.6월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대통령 特使로 미국에 파견하여 김형욱을 설득·회유하는 한편, 국무총리 주재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한데 이어 김형욱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 77.12월“外國政府에 대하여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者”와
“外國에서 귀국하지 아니하는 者로서 罪狀이 현저히 重한 者”를 처벌할 수 있는「反國家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욱이 회고록 출간을 계속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회유와 협박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김형욱은 79.10.1 單身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 10.7 저녁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이후 失踪

○ 그간 각종 언론보도 등을 통해 國際범죄조직 또는 정치적 보복에 의한 프랑스 현지 殺害, 국내 압송·살해 등 각종 疑惑들이 유포되어 왔고, 그 배후에는 당시 박정희 政府와 그 예하에 있는 中情이 이를 주도하거나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어 왔음

Ⅰ. 事件槪要

1. 資料조사 및 분석

가. 公開資料: 59권 8,700여쪽

○ 단행본 등 책자 17권 7,700여쪽, 月·週刊誌42권 610여쪽, 신문
및 방송 자료 220여쪽, 기타 자료 170여쪽 등 공개자료에 나타난 김형욱 실종사건 관련 각종 疑惑및 주장 내용 등을 검토

나. 國情院존안 자료 : 748건 10,905쪽

○ 國情院이 존안중인 각종 보고서 76건 836쪽과 본부-해외거점간
受發信電文및 참고자료 672건 10,069쪽을 면밀 분석

○ 김형욱 실종사건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工作計劃書등의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나, 김형욱의 美의회 증언 대책에 대한
朴대통령의 특별 지시내용과 中情駐佛거점 요원들의 사건 전후 출입국기록 및 활동보고서 등 일부 有用한 자료 확인

다. 國情院外여타 기관 존안 자료 : 87권 9,521쪽

○ 軍보관「김재규 사건 공판기록」, 10·26사건 당시「軍검찰 수사기록」,「합동수사본부 수사기록」, 「中情직원 조사기록」, 국가기록원 보관 「대통령 儀典日誌」등 여타 기관 존안자료 내용을 면밀 검토

Ⅱ. 調査內容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는 이번 김형욱 실종사건 眞實糾明을 위해 현재까지 아래와 같은 資料조사·분석 및 관련 인물에 대한 面談調査를 실시하였음

2. 관련인물 面談調査: 총 33명

가. 사건당시 中情駐佛거점 요원 및 연수생 : 8명

1) 프랑스 公使(中情책임자)

○ 3차례 면담조사

○ 김형욱 실종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사실은 否認하지 않으면서도,
사건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완강하게 거부

2) 신현진(가명, 당시 駐佛中情연수생)

○ 7차례 면담조사

○ 김형욱 살해 과정에 직접 참여하였음을 시인하면서, 同살해 진행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

○ 다만, 死體遺棄장소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술 회피

3) 이만수(가명, 당시 駐佛中情연수생)

○ 6차례 면담조사

○ 김형욱 살해사건에 直接가담하였으며 하급자로서 부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시인하고 있으나, 具體的인 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회피

4) 김철진(가명) 및 이일만(가명) : 당시 中情駐佛거점 요원

○ 김철진은 1차례, 이일만은 3차례 면담조사

○ 양인 모두 사건 당시 파리 현지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연수생등 일부 김형욱 殺害事件가담자들은 이일만이 同사건의 企劃임무를 담당하였다고 진술

5) 여타 연수생 3명

○ 살해 가담자인 신현진·이만수 외에 여타 연수생 3명에 대해서도
각각 면담조사

○ 그중 연수생 1명은 김형욱 실종사건에 이상열 公使, 거점 요원 이일만, 연수생 신현진·이만수가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하였으며, 다른 연수생 2명은 사건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답변

나. 中情本部지휘계통 간부 및 직원 : 5명

○ 中情본부 차원의 조직적 가담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79.10월 당시
윤일균 해외담당 차장, 金○○ 해외담당 국장, 李○○ 해외담당 부국장, 曺○○ 유럽담당 과장, 黃○○ 유럽담당과 主務官등을 각각 면담 조사

○ 상기명 모두 사건 당시 中情차원에서는 조직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이상열 公使는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

○ 상기명들은 김형욱 실종사건이 言論에 보도된 시점인 79.10.16경 駐佛 거점에 사건 眞相파악을 지시한 점 등으로 보아 사건 개입 가능성 희박

다. 지원업무 담당 및 여타 해외거점 근무 中情職員: 4명

○ 사건 당시 海外通信등 지원업무 담당자 및 영국 등 여타 해외거점
근무 직원 4명에 대해 면담조사한 결과, 사건 개입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음

라. 合搜部관계자 및 특파원 등 事件주변인물 : 16명

○ 79년 10·26사건 직후 김재규 前中情部長을 조사했던 합동수사
본부장과 수사국장은 모두 10·26사건 당시 김형욱 사건을 調査하거나 報告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언급하였음

○ 신○○(조선), 주○○(중앙), 박○○(동아) 등 사건 당시 파리주재 특파원 등 言論人8명을 면담한 결과, 그간 제기된 疑惑이상의 구체적 정황이나 진술을 발견할 수 없었음

○ 김경재 前민주당 의원(2회)과 송진섭 안산 시장(1회)에게 청와대
경호실 개입설의 진위 여부 등을 문의하였으나, 사건 眞實糾明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없었음

※ 김 前의원은 김형욱 회고록 저자이고, 송 시장은 79.12월초 서대문 형무소 수감중
박선호 前中情의전과장으로부터 김형욱 실종관련 사항 득문 주장

○ 김형욱을 파리로 誘引하는 과정에 관련된 것으로 의혹이 제기된 연예인 최○○, 정○○ 등 女性3명을 면담한 결과, 개입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음

○ 10.26사건 당시 김재규 部長으로부터 김형욱 사건의 眞相을 직접 得聞 하였다고 주장하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의 김재규 部長감시 헌병 박○○을 2차례 면담조사하였으나, 사건 실체를 알고 있지 못한 것으로 평가

1. 殺害動機

○ 73.4월 김형욱의 美國亡命이후 박정희 前대통령은 정일권·김종필·김동조·오치성 등 政府고위급 인사들을 美國으로 보내 김형욱의
歸國을 설득하였으나, 김형욱은 계속 不應

○ 김형욱은 77.6.2 『뉴욕타임즈』와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6.22 美하원 프레이저 聽聞會에 출석하여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政府의 내부 비리를 잇달아 폭로

○ 이에 朴대통령은 프레이저 청문회 직전인 77.6.16 김재규 中情部長에게 “김형욱의 美하원 청문회 출석 저지를 위해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特使로 파견하여 김형욱이 자제토록 설득·회유하라”고 지시

○ 한편, 박정희 政府는 77.6월말 최규하 국무총리 주재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한데 이어, 77.12월“反國家행위자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

Ⅲ. 調査結果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 김형욱은 김재규 당시 中情部長의 지시에 의해 中情 駐佛거점 이상열 公使와 中情직원 연수생, 그리고 이들이 고용한 제3국인들에 의해 파리 현지에서 殺害된 것으로 밝혀짐

○ 윤일균 前中情해외담당 次長의 진술에 의하면
- 김형욱이 김경재(筆名: 박사월)를 통해 박정희 政府의 非理를 폭로하는 회고록 집필을 추진하자
- 朴대통령은 78.12월 김형욱과 同鄕으로 친분관계에 있던 자신
(윤일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급히 訪美하여 김형욱과 회고록 관련
협상을 추진토록 지시하였으며
- 이에 따라 자신이 訪美, 김형욱에게 美貨50만불을 주고 회고록 원고를 받아 내었으나
- 79.4월경 日本의 한 群小출판사가 同회고록 문고판을 出刊함으로써
朴대통령 등 정부 당국자들의 김형욱에 대한 분노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짐

○ 한편, 김형욱은 美하원 프레이저 聽聞會에 출석, 中情部長재직시 지득한 中情의 對美공작활동 등 각종 국가기밀을 폭로하였으며
- 박정희 政府와 中情의 입장에서는 김형욱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政府내부의 치부와 국가기밀이 누설되어 국익이 훼손되고, 정권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며
- 특히 김형욱 자신이 上記국가기밀 사업들을 기획·집행·감독했던
장본인이었다는 점에서 분노와 배신감이 더욱 컸던 것으로 보임

○ 이밖에 김형욱의 개인적 비리와 부도덕한 행적은 김형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심화시켰을 것임
- 김형욱은 美國망명 당시 財産이 15만불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프레이저 위원회 조사 결과 1,500만~2,000만불의 財産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 美國생활시 호화 카펫이 장식된 고급 주택에 살면서 자식들에게 벤츠 자동차를 사주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고
- 도박에 탐닉, 카지노에서 한번에 수만불 이상의 돈을 날리는가 하면,78.1.18 파리에서 뉴욕 入國시 7만 5천불 상당의 현금을 密搬入하려다 적발되어 美國관세법 위반으로 保護監視1년을 선고(78.3.15)받은 적이 있으며
- 심지어 자신의 一生을 정리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온 회고록 출간조차 박정희 政府와의 돈거래에 활용하는 등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음

○ 이에 따라
- 당시 박정희 政府내에서는 中情部長을 지낸 사람이 막대한 外貨를
해외로 빼돌려 도박 등으로 탕진하고 국가기밀을 무차별 폭로하는데
대해 대단한 분노와 증오감이 존재했을 것이며
- 이러한 정황이 당시 中情직원들로 하여금 김형욱에 대한 응징 필요성에 쉽게 공감하게 하였던 것이고, 상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따랐을 것임

2. 殺害指示

○ 김형욱 실종 사건이 김재규 당시 中情部長의 지시에 의해 이상열 公使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은 아래 이유로 확실시 됨
- 79.9월말 이상열 公使가 연수생 신현진에게 김형욱 살해 임무를
부여하면서 김재규 部長의 지시임을 분명히 밝힌 점(신현진 진술)
- 신현진이 사건후 歸國하여 79.10.13경 김재규 部長에게 김형욱 처리 결과를 보고하자, 김재규 部長이 크게 칭찬, 격려하고 포상한 점
(신현진 진술)
- 김형욱 실종사건 발생 직전인 79.10.1경 이상열 公使가 비밀리에
귀국하여 김재규 部長을 2차례 만난 점(10·26사건 당시 김일곤
(가명, 死亡) 中情차장보가 合搜部조사시 진술)
- 김형욱 사건 발생 직후인 79.10.18 이상열 公使가 은밀히 귀국하여
김재규 部長에게 보고하고, 10.19 파리로 귀환한 점(國情院존안 문서
및 曺○○ 당시 中情유럽담당 課長진술)

※ 김재규 部長은 79.9월말 이전 이상열 公使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상열 公使가 79.10.1경 귀국시 김재규 部長에게 김형욱 殺害계획을 보고하고 소련제 소음 권총과 독침(後述)을 수령했을 것으로 판단됨

○ 김재규 部長의 지시를 받은 이상열 公使는 현지 中情연수생 2명 등에게 김형욱 살해 관련 임무를 부여하고, 同연수생들이 임무를 수행

○ 김재규 部長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殺害指示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 不在와 당사자들의 死亡으로 인해 事實關係를 현재까지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였음

○ 다만, 77.6.16 朴대통령이 김형욱의 美하원 프레이저 廳聞會출석
(77.6.22)을 앞두고 민병권 당시 무임소장관을 급히 美國으로 보내
김형욱의 廳聞會출석을 저지하라는 指示를 직접 내린 바 있고
- 윤일균 前中情해외담당 次長도“78.12월 朴대통령이 자신에게 直接
전화를 걸어 급히 訪美하여 김형욱의 회고록 출간을 저지토록 하라는
指示를 내렸다”고 진술한 바 있음

박정희 前대통령이 김형욱의 朴정권 비난 활동에 대해 분개하고,
김형욱의 美下院청문회 출석 및 회고록 출간을 저지하도록 지시한
사실은 분명하나

○ 朴대통령이 직접 김재규 中情部長에게 김형욱 殺害를 지시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가 확인이 필요

3. 殺害準備

가. 殺害가담자 물색

○ 김재규 部長의 직접 지시를 받은 이상열 公使는 79.9월경 김형욱
납치 및 살해 임무를 硏修生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 신현진 등 당시 파리 연수중이던 中情연수생 5~6명을 자택으로
초대하여 대화 도중“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어 문제다”라는
등으로 질책, 젊은 연수생들의 正義感을 부추기면서 반응을 타진
- 硏修生들에게‘파리주재 北韓통상대표부의 현황과 실태 등에
대한 관찰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토록 하여, 同내용을 검토하면서
개개인의 적극성·과단성 등 資質을 검증한 후 최종적으로 신현진,
이만수 등 2명을 適任者로 선정

○ 79.9월경 이상열 公使는 신현진과 이만수를 파리 시내 未詳카페로 불러
- “김형욱이 곧 파리에 온다. 中情部長을 지낸 사람이 거액의 外貨를
빼돌려 카지노 등에서 탕진하고 있으며, 국가기밀을 마구 폭로
하고 있다. 이런 사람을 그냥 둬서는 안된다”라고 하면서
- 상부의 指示로 김형욱을 처치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 암시하고,
신현진과 이만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指示

※ 당시 中情職員들은 김형욱을 국가를 배신한 逆賊으로 인식

○ 79.9월 하순 이상열 公使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푸께’카페로
신현진을 별도 호출

- “자네에게 부여할 任務가 있다. 일단 任務를 전달받고 나면 자네
에게는 選擇의 여지가 없다. 이 일은 자네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라고 하면서
- “김재규 部長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데 자네가 적극적으로
해 주었으면 좋겠다”면서 임무를 부여

○ 신현진은 임무 내용을 直感하고“어려움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김형욱이죠”라고 反問하자, 이상열 公使가
고개를 끄덕여 확인

○ 신현진은 이상열 公使에게“보내겠습니다(처치하겠다는 의미로 사용). 그대신 모든 것은 나의 主導로 하겠습니다”라며 김형욱 殺害를 자신이 책임지고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표명

※ 신현진은 당시 中情연수생들이 어렵게 생활하던 상황에서 中情部長을 지낸 사람이 거액의 外貨를 빼돌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수십만불을 날리고, 개인 영달을 위해 국가기밀을 무차별 폭로한다는 등의 얘기를 듣고 극도의 증오심을 갖게 되어 적극 실행할 것을 결심했다고 진술

나. 殺害計劃수립

○ 신현진은 김형욱을 殺害하기 위해
-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사건을 請負키로 하고,
同人들을 접촉하면서 美貨10만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殺害를
의뢰, 승낙을 받고
- 2~3천평 규모의 파리 근교‘샤또’(農園이 딸린 옛날 城)를 빌려
김형욱을 납치·살해한 후‘샤또’내 적당한 곳에 땅을 깊이 파고
매장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등 구체적인 方法을 제시하며,
‘샤또’임대 계약금 명목으로 3천 프랑을 제공(실제 김형욱 살해
당시까지‘샤또’를 임차한 바는 없었음)

○ 또한, 신현진은 평소 氣質이 맞아 친근하게 지내던 후배 硏修生
이만수가 임무 수행시 보조역할을 맡기로 한 후 상기 제3국인 친구
2명을 이만수와 함께 수차 접촉, 상호 친분관계를 형성하는 한편
- 파리 시내 소재‘바뇰레’벼룩시장에서 김형욱 殺害에 사용할
칼과 노끈 등을 구입하고
- 79.9월말경 이상열 公使를 다시 접촉, 임무수행에 필요하다며
美貨10만불과 권총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는 등 살해 준비를 진행

4. 殺害過程

가. 殺害機會포착

○ 79.10.7 오후 늦게 신현진은 이상열 公使로부터 급히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이상열 公使집에 도착하자, 이상열 公使가
- “김형욱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電話가 왔는데 돈이 없다고
거절하려다가 오히려 좋은 機會라는 생각이 들어 돈이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줄 수 있다고 하여 만나기로 하였다”며
- “2시간뒤 샹젤리제 거리로 김형욱이 나오기로 했는데 지금이 좋은
機會다. 오늘 처치해야 하니 이만수와 일꾼들을 불러라”라고 指示

※ 김형욱 妻신영순은 김형욱이 79.10.1 파리 방문시 이상열 公使를 믿고 혼자 갔다고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이상열 公使는 김형욱이 殺害되기 전에 김형욱과 함께 파리 시내 카페 및 카지노 등지를 동행한 사실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김형욱과 이상열 公使는 상당 수준의 신뢰가 형성된 관계로 평가

○ 신현진은 인근 공중전화를 이용, 제3국인 친구 2명과 이만수에게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리도 劇場’앞으로 급히 나오도록 연락한 후
- 이상열 公使를 조수석에 태운 채 자신이 이상열 公使관용차(푸조 604)를 직접 운전하여‘리도 劇場’앞에서 제3국인 친구 2명과 이만수를 접촉, 同人들에게 김형욱 살해 계획을 설명하였으며
- 이만수에게는 美貨10만불이 든 가방을 갖고 개선문 근처의‘콩코드
라파예트’호텔 바에서 대기하도록 지시

○ 신현진은 이만수를 먼저 보낸후

- 조수석에 이상열 公使, 뒷좌석에 제3국인 친구 2명을 태우고‘리도
劇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김형욱과의 약속 장소로 운전해 가던 중
- 차내에서 이상열 公使로부터 미리 받아 지니고 있던 소음 권총 1정과 독침 가운데 권총만을 뒷좌석에 타고 있던 제3국인 친구에게 제공

○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김형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 이상열 公使가 차에서 내려 김형욱에게 인사를 하면서“운전하는
사람은 제가 아끼는 中情연수생이고, 뒷좌석의 두사람은 제가 소개
시켜 드리겠다고 한 錢主들입니다”라고 설명한 후
- “이 분들과 어디 가까운 카페로 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시죠. 저는 저녁 약속이 있어 그냥 가보겠습니다”라면서 김형욱을 승용차 조수석에 앉게 하고, 자신은 현장을 離脫

○ 김형욱은 상술한 바와 같이 카지노 도박 자금을 빌릴 목적으로 연수생 신현진이 운전하는 이상열 公使관용차 조수석에 앉아, 뒷좌석의 제3국인 2명과 돈 빌리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카페로 가는 줄 알고 함께 출발

※ 신현진은 김형욱이 카지노에서 며칠간 밤을 새웠는지 초췌한 얼굴로 술에 어느 정도 취해 있었던 상태였으며, ‘알콜 중독자’같은 느낌이 들어“어찌 이런 자가 中情部長을 지냈나”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

○ 김형욱의 파리 유인과 관련, 79.10.1 김형욱이 婦人등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 파리로 떠나간 이유에 대해서는 未詳연예인의 유혹설, 회고록 출간 포기 대가 수령설 등이 있으며

○ 김재규 中情部長과 이용운 前해군 참모총장(김재규 部長과 김형욱
사이에서 회고록 출간 중지협상 중재)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나,
이들이 모두 死亡했기 때문에 이상열 公使등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조사가 필요

나. 殺害결행 및 死體처리

○ 신현진이 이상열 公使차량에 김형욱을 태운 시각은 어느 정도 날이 저물어 전조등을 켰을 때이며
- 신현진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제3국인 친구들이 指示하는 대로 개선문 앞 로터리를 우측으로 돌아 市외곽 순환도로로 향하던중
- 김형욱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제3국인 친구가 갑자기 김형욱의 머리
뒷부분을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 실신케 함

○ 이어 승용차는 파리 시내를 離脫, 교외로 이동하였으며, 길가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작은 마을을 지나 인적이 드물고 작은 숲이 내리막 方向으로 이어진 장소에 도착하여
- 제3국인 친구 2명이 차에서 내려 조수석에 실신해 있는 김형욱을
양쪽에서 팔을 끼고 끌어내려 도로 우측 숲속으로 끌고 내려간 후
약 30분쯤 지나 돌아왔으며
- 제3국인 친구 2명은 신현진이 U턴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던 승용차에 탑승하여 김형욱이 입고 있던 바바리 코트에 여권·지갑·시계 등의 소지품을 싸서, 벨트로 묶어 건네주면서
- 도로에서 약 50m 떨어진 지점에서 김형욱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죽였으며, 시체는 땅을 파지 않은 채 두껍게 쌓여있는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고 報告

○ 당시 신현진은 제3국인들이 김형욱을 殺害한 후 권총을 분실한 사실을 확인하였으나, 신속한 현장 離脫을 위해 권총 회수를 포기하였으며, 死體도 계속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낙엽들에 의해 두껍게 덮여질 것이라고 생각
- 殺害당시 총성은 들리지 않았으나(소음권총), 제3국인들은 권총 실탄 7발을 모두 쐈다고 언급하였으며, 신현진은 이들에게 佛語로“잘 했어”라고 격려하고 이만수가 기다리고 있던 장소로 이동
- 이만수로부터 美貨10만불이 든 가방을 받아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전달하면서, “내일 중으로 프랑스를 떠나라”고 지시

○ 상기 김형욱 殺害計劃수립 및 살해과정 부분은 全的으로 신현진의
진술에 의존한 것이기 때문에 여타 가담자인 이상열, 이일만, 이만수의 陳述을 통해 신현진 진술의 진실성을 검증하고, 신현진이 진술하지 않았거나 미흡한 부분을 補完할 필요

※ 신현진은 최초 면담시 김형욱 살해후 이만수가 이태리 밀라노로 가서 제3국인 2명을 만나 美貨10만불을 전달했다고 진술하였으나, 이만수가 밀라노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실을 2차 면담시 지적하자 진술을 번복한 바 있음

○ 특히, 신현진이 死體遺棄장소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술을 회피하고 있어 추가 조사가 필요

5. 事後措置및 報告

○ 신현진은 제3국인 친구들을 보낸 후 곧바로 이상열 公使집으로 가서 이 公使에게 임무 수행 결과를 報告하였으며
- 이상열 公使는“수고했다”며, 여권과 지갑은 자신(이상열)이 넘겨받고 다른 소지품들은“철저히 인멸한 후 즉시 파리를 떠나 歸國하라”고 지시

○ 신현진은 이상열 公使집을 나와 자신의 宿所로 돌아오는 길에 김형욱의 시계는 세느江에 던져 버렸으며, 宿所로 돌아와서 바바리 코트와 벨트는 가위로 잘게 썰어 자신이 以前에 살던 하숙집 근처 쓰레기통에 버림

※ 同쓰레기통은 매일 청소차가 수거해 가며, 내용물은 形體도 알아볼 수 없이 분쇄 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

○ 한편, 신현진은 이만수에게 즉시 파리를 떠나 귀국하라고 지시하고 자신은 事件직후 프랑스를 떠나면 오히려 주변 친구 등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것 같아 事件發生3일 후에 귀국하였으며
- 出國前이상열 公使는“그림(살해 경과)에 대해서는‘신’군한테
들으십시오”라는 내용의 밀봉되지 않은 書信을 김재규 部長에게
전달하라고 지시

○ 신현진은 귀국후 79.10.13경 김재규 部長에게 김형욱 처리결과를
보고했으며, 김재규 部長은 同보고를 받자
- “수고했어. 잘했어. 우리가 그런 놈을 그냥 놔두면 우리 組織은 뭐하는 곳이야”라고 격려하였으며

- 신현진이 殺害에 사용한 권총을 분실하였다고 보고하자, 김재규 部長은 “괜찮아. 소련製권총이니 발견되어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면서, 현금 300만원과 20만원이 든 봉투를 각각 2개씩 주었으며, 그중 1개씩은 나중에 이만수에게 전달

○ 이어 김재규 部長은 신현진에게
- “근무하고 싶은 데가 어디냐”라고 물어“저는 이미 해외담당국 구주과로 발령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없습니다”라고 하자
- “그러면 政策硏究室에서 근무하면 어떻겠나. 내 직속기관이야”라고 하며, 즉석에서 비서실장을 불러“‘신’군을 政策硏究室로 발령내라”고 지시한 후
- “집은 어디야”라고 물어“여동생 집에서 다닙니다”라고 하자, “앞으로 장가도 가야하고 집이 하나 있어야 되겠군. 新婚살림을 하려면 한 4~50坪정도면 안되겠나”라고 하면서
- “집을 알아보고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이리로 전화해. 내 秘書가
받으면‘신’군이라고 얘기하고, ‘部長님과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내가 알고 있는‘신’군은 자네밖에 없어”라고 언급

○ 한편, 연수생 이만수도 사건 직후 歸國하여 김일곤 次長補에게 殺害 결과를 보고하고, 김 次長補로부터 액수 미상의 상당히 많은 돈을 받았 으며, 신현진으로부터 김재규 部長이 준 돈도 전해 받았다고 진술

Ⅳ. 向後計劃

○ 금번 중간 조사결과 발표시 미흡한 부분은 계속적인 調査를 통해 구체화 시켜 나가겠으며
- 이를 위해 사건 가담자들로 확인된 이상열, 신현진, 이만수 등을 계속 설득하여 死體遺棄장소를 파악할 계획이며
- 특히 김형욱 前中情部長의 유골을 수습하여 遺家族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임

○ 同사건의 완전한 眞實糾明을 위해서는 殺害지시 수령, 가담자 물색 및 모의, 권총·독침 등 사전 준비, 사후 처리, 사건전후 일시 귀국 김재규 部長에게 보고 등 사건 내용을 소상하게 알고 있을 이상열 公使의 진솔한 고백을 기대함.

국가정보원 개요
국가안전 보장에 관련되는 정보 보안 및 범죄 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직속하의 국가 정보기관이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본부가 있으며, 해외 분야를 맡는 1차장, 국내 분야를 맡는 2차장, 북한을 맡는 3차장과 기획조정실장이 있다. 주요 업무는 안보 관련 수사, 대북 정보 수집, 방첩, 산업 보안, 대테러, 사이버안전, 국제범죄, 해외정보 수집 등이다. 육군 대장 출신인 남재준 원장이 2013년부터 국가정보원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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