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 세종과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보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 로 학문적 능력이 탁월해 당대의 학계를 주도했던 호학(好學)군주다.
이들은 조선의 성군으로 역대 어느 제왕들보다도 백성을 사랑하는 백성을 위한 현실정치를 펼쳤으나 지나치게 학문에 몰두해 끝내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서울시는 조선 제22대 정조의 개인문집 ‘홍재전서’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세종이 직접 편찬을 지시하고 친히 교정까지 맡았던 ‘자치통감사정전훈의’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신청하기로 했다고 1일(수) 밝혔다.
‘홍재전서’와 ‘자치통감사정전훈의’는 문화재위원 조사와 문화재위원회 심의(2011.5.2)를 거쳐 각각 지정예고, 지정신청 됐다.
서울시는 1990년대 운현궁으로부터 관리 이관해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두 문화재가 서울시의 이번 문화재 지정 추진을 통해 보다 철저한 관리와 보존이 이뤄짐으로써 시간이 흐른 뒤에도 전 시민들에게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남게 됐다고 전했다.
‘홍재전서’의 ‘홍재(弘齋)’는 정조의 호로, 이 책은 1787년 규장각에서 정조가 동궁 시절부터 국왕 재위기간 동안 지었던 여러 시문(詩文)·윤음(綸音,국왕이 백성에게 내리는 훈유(訓諭)의 문서)·교지 및 편저 등을 모아 60권 60책으로 편집한 문집이다.
정조는 규장각에 자신의 문집 편찬을 지시했고, 정조의 문집은 10년을 단위로 각기 1질로 묶여서 편찬됐는데, 규장각에서 어제문집(御製文集)을 처음 편집해 바친 것은 정조 11년(1787) 8월이다.
이 때 편집된 어제는 모두 60권으로 편집하고, 2벌을 정서해 정조에게 진헌(進獻)했는데, 이에 대하여 ‘정조실록(正祖實錄)’에는 “규장각에서 어제 춘저록(春邸錄) 4권과, 시(詩) 1권, 서·기·발·명(序·記·跋·銘) 합 1권, 비·비명·행록·행장·잡저(碑·碑銘·行錄·行狀·雜著) 합 1권, 제문(祭文) 2권,.....(중략) 심리록(審理錄) 10권 도합 60권을 편집하여 바쳤다.”(正祖實錄, 卷24 正祖11年8月甲子(29日)條 : 奎章閣編進御製春邸錄4권, 詩1卷, 序記跋銘合1卷, 碑碑銘行錄行狀雜著合1卷, 祭文2卷, 策問2卷, 講義26卷, 綸音3卷, 傳敎3卷, 備忘記1卷, 批答3卷, 判付1卷, 手書封書諭書合1卷, 敦諭問議合1卷, 審理錄10卷 凡60卷 御熙政堂 閣臣等 俱儀以進)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 60권과 정확히 일치하는 기록이다.
홍재전서는 정조 재위 당시부터 수차례의 편찬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184권 100책으로 편차가 확정되었고, 1814년에는 활자로도 간행이 되었다.
정조의 학문과 사상은 ‘홍재전서’에 잘 나타나 있다.
정조를 상징하는 두 이미지는 독서와 달이다. 세손시절부터 정조는 이미 달과 관련된 비유를 즐겨 쓰곤 했다. 춘저록의 첫머리가 ‘해’와 ‘달’이라는 제목의 시로 시작되는 것이 매우 상징적이다.
정조는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를 간행하면서 스스로 호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짓고,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이 글을 썼다. 글의 의미는 “공중에 뜬 밝은 달이 지상의 모든 시내를 비추듯, 태극이라는 정점에 선 자신의 정치가 모든 백성들에게 고루 퍼져 나간다”라는 뜻으로, 국왕이라는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학계와 정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백성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지닌 뛰어난 학문적 능력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시에서는 이 문집이 1787년 규장각에서 어람용(御覽用)으로 편집한 1차 편집본(필사본) 2벌 중 1벌로, 규장각과 장서각에 소장된 홍재전서 2,3차 편집본(인쇄본)과 함께 어제(御製)의 편찬경과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홍재전서에 대한 지정계획을 2011년 6월 2일부터 30일 동안 예고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최종심의를 거쳐 2011년 8월까지는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최종 지정 고시할 예정이다.
‘자치통감 사정전 훈의’는 ‘자치통감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 이라는 의미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역사책을 읽히고 싶어 했던 세종의 역사 대중화 사업의 결과물이다.
자치통감은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는 의미로 중국 송나라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무려 19년 동안 편찬한 역사책이다.
이 책은 기원전 403년부터 960년에 이르는 1362년간의 중국 역사를 총 294권으로 편집한 책으로 “천지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인 동시에, 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었다. 송나라 사신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선시대 내내 제왕들의 역사 교재로, 사대부들의 과거시험 과목으로,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자치통감의 방대한 내용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종은 자치통감이 갖는 역사서로서의 가치, 또한 실전 경험을 전해주는 실용서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자치통감을 보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1434년 자치통감을 알기 쉽게 풀어쓰도록 집현전 학자들에게 지시하고, 이 책의 편찬이 경복궁의 사정전(思政展)에서 행해졌다 하여 ‘자치통감사정전훈의’라는 책의 제목까지 손수 지어 붙였다.
세종은 매일 밤 대신들이 작성한 초고를 친히 교정하면서 “근일에 이 글을 봄으로 인하여 독서하는 것이 유익한 것을 알았다. 총명이 날마다 더하고 수면이 아주 감하여졌다” 라고 하였다.
2년여에 걸친 편찬사업 중 세종은 매일 밤 대신들이 작성한 원고를 친히 교정하였는데 중추원사 윤회 등이 “밤에 가는 글씨를 보면 눈병이 나실까 두렵습니다” 라고 만류할 정도로 교정작업에 열성을 다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치통감 사정전 훈의’는 전체 259권 중 권 131~135, 246~250 에 해당하는 일부분이지만, 세종이 직접 집현전 학사를 동원하여 독서에 편리하도록 주석을 달고 보완하는 등 편찬을 주도한 책으로, 전본이 매우 희귀하다는 점과 세종조의 활자연구와 서지학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신청할 예정이다.
서울특별시청 개요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은 600년 간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공공서비스 리디자인에 참여시킴으로써 서울을 사회적경제의 도시, 혁신이 주도하는 공유 도시로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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