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버블 붕괴 이후 최근까지 조정국면
국내 벤처산업은 1986년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의 제정으로부터 시작하여 1997년부터 2001년 사이에 IT산업의 급성장과 맞물려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 초반 절정을 이루었던 벤처 붐은 IT버블이 붕괴되면서 최근까지 조정기를 거치고 있다. 코스닥 종합지수는 2000년 3월 10일에 최고치인 2,834.40 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최근에는 400대 중후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국내 벤처기업의 수는 IT버블 붕괴 및 시장신뢰 상실 등의 영향으로 200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코스닥 시장에 신규로 상장되는 벤처기업수도 줄어들고 있다. 과거‘벤처’라는 이유만으로 주식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던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벤처라는 단어가 과거의 버블붕괴와 벤처비리를 연상시키면서 해당 회사 수익의 지속성 여부나 경영진의 관리능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벤처기업들 중에는 이러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벤처확인을 갱신하지 않는 기업들도 있을 정도이다. 지난 수년간 벤처버블이 지속적으로 제거되고 벤처업계의 구조조정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만큼, 이제는 벤처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벤처산업의 육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벤처산업 구조조정 효과 가시화
국내 벤처산업은 버블붕괴 이후 조정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벤처기업의 전체적인 수는 감소하였지만, 실적 및 고용의 개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2004년도 벤처기업 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벤처기업 중 매출규모 50억 원 이상인 벤처기업의 비율이 증가하는 등 벤처기업의 매출규모가 커지고 있고, 벤처기업 당 정규직 평균 종업원 수도 버블기의 고용수준을 회복하여 정부의 고용확대 정책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벤처기업은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 비해 매출액증가율이 월등히 높고, 영업이익률이나 수출증가율 측면에서도 양호한 실적을 나타내는 등 경영성과가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벤처가 기업 양극화 타개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선도 벤처기업군 경영성과 개선
한편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선도 벤처기업군의 주가나 경영성과 지표를 살펴보면 최근의 벤처는 버블기의 벤처에 비해 한층 우량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기업은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들면 자금조달의 원활화와 공신력확보를 위해 증시 상장을 도모하게 된다. 상장된 벤처기업은 소위 창업초기(start-up company)의 개념은 아니지만, 기술 혁신적 중소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벤처기업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의 변화를 통하여 성숙기에 접어든 벤처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데,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벤처기업 중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상위 30개 기업을 선도 벤처기업군으로 정의하고 버블기와 최근의 특징을 비교해 보았다. 참고로 코스닥 종합지수는2000년3월에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나 기업공개(IPO)시장은 주가지수에 후행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2000년 말을 버블기의 기준으로, 2004년 말을 최근의 기준으로 각각 정하였다. 먼저 시가총액 측면에서 버블기의 선도 벤처기업군은 시가총액이 3.2조원이었으나 최근의 선도 벤처기업군은 6.4조원으로 조정기를 거치면서 시가총액이 거의 두배 가까이 늘어났고, 선도 벤처기업군이 코스닥시장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버블기의 10.9%에서 최근 20.4%로 증가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에 유가증권시장(구 거래소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30위권 내에 속하는 선도기업군(금융업 제외)의 시가총액 비중이 64.8%에서 59.3%로 오히려 하락한 것과 비교해 볼 때, 코스닥 시장 선도 벤처기업군의 시장 내 영향력이 버블기 때보다 훨씬 커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조정기 동안 선도 벤처기업군의 구성업종 변화를 파악해 보았다. 우선 과거 버블기에는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새롭게 시장이 열린 통신장비 업종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조정기를 거친 최근에는 2개의 통신장비 업체만이 선도기업군에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paradigm)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많은 통신장비 업체들이 이후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선도기업군에서 밀려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업종 역시 버블기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든 모습을 나타내어 버블기 이후 사업성이 지속되지 못하고 단명 하는 벤처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최근에는 기계장비, 반도체, IT부품과 같은 제조 기업들이 선도 벤처기업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업의 실체가 뚜렷하고 수익성이 지속될 수 있는 제조업의 실질적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서 환영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세 번째로 재무적 특성을 살펴보았는데, 매출액 규모 면에서도 버블시기에는 선도 벤처기업군의 매출액이 합계 1.7조원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합계 3.4조원으로 두배 가까이 성장하였다. 규모뿐만 아니라 수익성 측면에서도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영업이익률은 평균 5.8%에서 14.8%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고, 당기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자기자본이익률(ROE)도 평균 12.4%에서 26.2%로 급증하였다. 또한 부채비율은 평균 62.0%에서 50.3%로 하락하여 재무안정성 측면에서도 개선효과를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위와 같이 조정기를 거치면서 기업의 내실이 커진 것에 비해 주가는 어느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지난 버블기에 비해 최근 주가는 해당 기업의 가치를 고려했을 때 과대평가된 부분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얼마나 높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측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는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다. PER은 이익에 대비한 주가수준을, PBR은 순자산가치에 대비한 주가수준을 각각 나타낸다. 분석결과 버블기의PER은18.9로 최근의 9.1보다 두 배 이상 높았고, PBR도 3.3으로 최근의 2.9보다 높았다. 즉, 버블기에는 최근과 비교하여 기업의 수익력이나 순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매우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30개 선도기업군의 버블기 평균PER(7.2)과 PBR(1.0)의 비교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버블기에는 주당순이익이 마이너스인 기업도 4개나 선도기업군에 속해 있어, 2개가 선도기업군에 속해 있는 최근보다 주가의 고평가 현상이 심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참고로 버블기의 선도기업군에 속한 기업 중에서 최근의 선도기업군에도 여전히 속하는 기업은 총 6개로, 20%의 기업만이 시가총액 측면에서 선도기업의 지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기업들 중 자진상장 폐지 및 유가증권시장으로의 이전 등으로 코스닥 시장을 떠났거나 벤처확인을 신청하지 않은 5개의 기업을 포함하면 약 1/3 정도가 지금까지 시장에서의 우위를 유지하고, 전체의 2/3가량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량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두 축, 벤처캐피탈과 증시상장 전체적인 벤처와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선도 벤처기업군을 통해 파악한 결과, 국내 벤처산업은 버블붕괴 이후 조정기를 거치면서 경영성과의 내실 측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어 벤처기업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벤처기업이 창업초기 형태를 지나 성숙기로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벤처지원 방안은 역시 자금조달의 원활화이다.
벤처는 산업의 특성상 연구개발 투자비율이 높으면서 사업실패에 대한 위험도 높아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벤처를 위한 자금지원은 벤처캐피탈 등 모험자본의 역할비중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들이 투자한 벤처기업의 증시상장을 통한 투자자금 회수를 용이하게 하여 재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의 현황을 보면 벤처산업의 활성화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벤처캐피탈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벤처버블의 조정기 동안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탈도 구조조정을 지속해 왔다. 등록된 벤처캐피탈은 2000년 이후 계속 감소하였고, 이들의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투자 금액도 줄어들었다. 벤처캐피탈은 조정기를 거치면서 투자행태가 더욱 보수적으로 바뀌었고 투자규모도 이전에 비해 대폭 축소되었다. 창업초기 벤처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어느 정도의 업력을 통해 사업성과 수익성을 검증받은 벤처에 한해 자금을 공급하는 안정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코스닥 시장에 신규로 상장되는 벤처기업의 수가 급감하면서 초기 투자자들이 투자자금의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규 상장 건수가 줄어든 이유는 버블기 이후 벤처기업에 대한 불신이 확대됨에 따라 코스닥 상장심사가 까다로워진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물론 이를 통해 과거 버블기와 같은 불량벤처의 증시 입성을 막아 증시에서의 사고를 줄이고 투자자 보호를 강화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코스닥시장은 벤처를 위한 시장이라기보다는 유가증권시장보다 단지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상장하는 시장으로 인식되어 유가증권시장과의 차별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벤처 활성화를 위하여
정부는 올해 벤처활성화를 위하여 기술력 있는 벤처의 코스닥시장 상장요건 완화 등 다양한 정책을 실행 중에 있다. 벤처산업의 특성상 시장원리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무임승차하는 벤처가 나와서는 안 될 것이며, 벤처정책 본연의 목적이 달성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벤처캐피탈의 역할 회복이 중요하며 벤처기업의 증시유입을 확대하여 코스닥 시장을 차별화시킬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탈은 전문성을 강화하여 재무적 투자자에 머물러 있는 현재의 제한적 역할에서 탈피해야 한다. 일반 투자자들이 보지 못하는 산업과 기술의 트렌드를 읽고 투자대상을 발굴하여 투자기업에 대해 재무적 지원뿐만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의 지원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코스닥 시장의 운영도 과거의 벤처비리 재현을 우려하여 보수적 시장운영 일변도로만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벤처의 특성을 감안하여 시장유입을 활성화하고 시장 감시기능의 강화를 통해 옥석을 가려내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지속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벤처에게는 유가증권시장과는 차별화된‘그들만의 리그’가 필요한 것이다.
LG경제연구원 배지헌 경제연구그룹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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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 선임연구원 3777-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