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미술로 말하는 신체와 패션 - 신체의 꿈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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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2005-06-09 12:04
서울--(뉴스와이어)--· 패션은 과연 예술인가?

오늘날 문화·예술 각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이며, 또한 각 개별 장르를 규정하는 개념 또한 다양한 문화·사상적 층위를 바탕으로 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20세기 초 예술의 영역에 편입하려했던 사진이 그러했듯이 1990년대 중반이후 미술과 패션의 접목을 매개로 한 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는데, 그러나 이들 전시 대부분이 조형예술과 패션의 시각적·조형적 유사성에 집중되어 있는 다소 표피적인 접근에 머물렀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의 ‘신체’를 둘러싼 사고의 지형도(地形圖)로서의 이 전시가 지니는 의미는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당면문제로서 ‘신체’라는 화두를 통해 미술과 패션이라는 개별 장르로부터 공유가능성이 있는 심층적인 토론의 진상을 찾으려는 점일 것이다.

· 패션과 현대미술 그리고 신체

<신체의 꿈_Visions of the Body 2005>展은 패션과 현대미술의 공유 가능한 토론의 장으로서 ‘신체’를 둘러싼 여러 담론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패션과 현대미술을 통해서 90년대 이후 우리가 직면했던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신체의식의 변화나 붕괴, 그리고 그 미래의 전망에 대한 일종의 문화사적 접근으로, 1999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에서 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전시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전시는 20세기의 패션을 ‘신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실험적인 작업과 미술가의 작품을 대치시킴으로써 미래의 패션과 신체와의 관계를 전망했던 점에서 호평을 받은바 있다. 이제 세기가 바뀌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는 90년대와는 다른,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신체에 대한 새로운 담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연장선에 존재하는 발전적 단계의 예시이다.

· 왜 신체인가?

다이어트나 성형의 유행이나 정신적 치유(iyashi)를 위한 상품들의 유행 또는 동네마다 뒤덮고 있는 각종 댄스교습소에서 퍼져 나가는 춤의 유행처럼 신체에 관련된 현상이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상황에서 현대의 사회 환경 속에서 '신체'나 '신체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자신의 신체와 패션을 통하여 이상적인 미를 추구해 왔다. 시대의 미의식을 표현하는 패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여성은 코르셋 등의 속옷으로 스스로의 신체를 조형해 왔다. 그리고 코르셋 등으로 구속당했던 신체가 20세기 초반에 해방되기 시작하였고 두의 코르셋과의 결별은 여성의 패션에 커다란 혁신과 표현의 가능성을 가져오게 되는데, 60년대에는 자유의 범위가 극대화된다. 시대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패션은 시대와 개인과 신체의 표상이었다. 이러한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양상을 패션과 예술로 제시한 것이 본 전시다. 패션을 물리적 의상이 아닌 사회적 표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한편, 미술가들은 개인이 외부 세계와 관계를 갖는 기본단위로서 신체를 중시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해 왔다. 그들은 신체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신체의 관계에 관심을 두었고, 패션을 화려한 피복인 동시에 사회의 틀 속에 여성들을 구속하는 기호로 인식하여 그 양의성(兩義性)에 주목했다.

세계를 둘러싼 컴퓨터 네트워크의 성립, 장기이식과 유전자공학의 발전 등, 우리의 신체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패션과 신체의 관계, 여성이 추구하여 온 이상적인 미에 대하여 또 다른 의상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전시는 20세기의 패션에서 부상한 신체감각의 변천과 신체와 패션의 미래를 시사하는 미술작품을 전시한다.

· ‘Visions of the Body 1999’ 와 ‘Visions of the Body 2005’
이번 「신체의 꿈」전은, 1999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과 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의 공동 주취로 교토와 도쿄에서 열린「신체의 꿈: 패션 또는 보이지 않는 코르셋」전을 토대로, 서울시립미술관의 협조를 얻어, 이후의 패션 및 미술 동향을 반영하여 매우 새로운 내용으로 기획, 구성되었다.

1999년의 「신체의 꿈」전의 목적은, 거의 1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친밀한 관계성과 조형상의 공명관계에 대해 상호 빈번히 언급되고 논의되면서도, 심도 있는 진정한 대화(dialogue)가 성립되지 않았던 「패션」과 「미술」이라는 유사하면서도 결정적으로 상이한 두 문맥사이에, 상호 이동 가능한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즉 패션과 미술이 공유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양자가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할 수 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제3의 기준을 모색하는 것이 1999년 전시회의 목적 중 하나였다면, 이번 「신체의 꿈」전에서는 출품된 의상도, 참여한 미술가들도 과거의 전시와는 사뭇 다르다.
특히, 새롭게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신진 미술가들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과거 6년간의 상황 변화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1999년의 전시회 컨셉트에 2005년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고 확신한다.

1999년의 「신체의 꿈」전에서 시도한 것은, 애매모호한 패션의 개념에 대한 분석이나 재정의 하는 일 대신 패션의 중층성(애매모호성)을 긍정하고, 패션의 진화라는 상투적인, 즉 시간축에 따른 진화론적 역사관을 해체하여, 패션을 그것이 유통했던 본래 문맥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패션을 「의미의 공중 부양」상태로 설정했다. 그 결과 당연히 의미가 정의되지 못하고 갈 곳을 잃은 의복들로 혼돈 상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2005년, 이 혼돈을 다시 모아 재구성하는 좌표로서, 택해진 것이「신체」라는 키워드인데, 이는 의복을 성립시키는 주체가 무엇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체와 의복의 관계는 그림으로 말하자면 지지체와 표면(또는 물감)의 관계로 생각할 수 있다. 「패션=피복이 유행이라는 요인으로 특화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패션은「신체」라는 안정된 공간 위에서 비로소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99년에 개최된 「신체의 꿈」전에서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신체 이미지와 신체에 대한 비젼(목적을 향해 투기(project)된 이미지), 그리고 물리적인 「신체」라는 공간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또한 신체의 표면인 패션 기호(記號:그 유통 및 소비)의 측면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고 기호의 유통과 소비를 생각하는 일은, 그동안 패션이 짊어져 왔던 사회적인 틀이나 제도 문제에 대한 고찰로도 이어진다. 이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고자 1999년과 2005년의 「신체의 꿈」전에 출품된 의상들은 의도적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국한시켰는데, 이는 패션이라는 현상도, 인간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 왔던 성차에 의한 역할분담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션사를 해체하는 작업을 거친 후, 패션 동향과 관련하여 사회적인 확대된 문제를 보다 명료하게 검증하기 위해, 1990년대 활약한 미술가들에게 참여를 구했다. 90년대 말에 패션 동향이 도달한 비평적인 성과와 동세대 미술가들이 전개해 왔던 과제 사이의 공통항을 모색하고, 인간 자신의 문제로서 공유할 수 있고 논의할 만한 긴급한 과제에 대해, 양자간의 대화를 시도한 것으로, 「신체의 꿈」전은, 패션과 미술 작품과의 조형적인 공명성을 모색하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전시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한국 작가 선정
따라서 in seoul 展을 위해 기획단계에서 2000년대에 맞게 전시방향이 수정되고, 더불어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새롭게 편입되거나 보강되었다. 작가의 선정은 제도로서의 피복, 혹은 신체를 비평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작가 (페미니즘적 시각의 경우 글로벌한 문제와 호응관계를 가지고 있는 작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체의 위기를 자각하면서 ‘신체개조’ 또는 ‘신체변이(變異)’를 생 각하고 있는 작가, 현대적인 문제로서 패션을 외부세계나 타자와의 소통 통로로서 생각하고 있는 작가 등의 측면에서 고려되었고, 한국측 작가로 이불, 이형구, 최규가 선정되었다.

오늘날 의상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몸 또한 더 이상 우리 주체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한낱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꿈을 가탁하는 대상으로서 전락되어간다. 보통 사람의 일상에까지 침투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산업이 인간의 욕망을 기생삼아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거대한 산업이 되 버린 지금, 우리의 신체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환기시키는 허상의 직접적인 제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90년대와는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이 허상의 조건이 이제 성역할이나 연령, 인종을 초월해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 잡았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착용하는 물건인 의복 이상으로 우리의 신체는 물건화(物件化)되었고 이형구의 ‘자기만족장치’는 이러한 세태에 대한 진단이다.

“그로테스크한 육체는 진화하고 있는 행위 속의 육체이다. 그것은 절대 완료되지 않고, 절대 완성되지 아니하며 지속적으로 조립되어지고, 창조되어지며 다른 육체를 조립하고 창조한다.” M.M. Bakhtin:The grotesque image of the body and its source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의 패션 오브제 ‘Lumps Collection’에서 표현된 변형된 혹들은 물리적 효용이라기보다는 패션의 패권적 탐미주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인공보철로 표상되었다. 레이 카와구보가 획득한 것이 의류를 통한 육체의 변형이라면, 이형구의 작업은 실질적인 원조 자체로서의 육체 표현의 자유로운 변형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육체표현이라는 담론에 유전적 설정이라는 패권적인 구성체로부터 벗어난 매개라는 것이 재도입될 수 있을런지, 그 가능성에 대한 모색점을 찾고자한다.

미국 유학시절 아시안으로서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인종적 차이에 대한 자각과 그 극복을 위한 일종의 ‘자기만족장치’로 고안된 이형구의 헬멧은 얼굴 구조의 사이즈와 모습을 변형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화장이나 성형수술이 그러하듯 얼굴을 미학적으로 도와주는 대신, 각 이목구비가 위치한 곳에 오목, 볼록 렌즈 등을 배열하여 제작된 헬멧은 사용자의 외관을 비틀고 잡아 늘려 그로테스크하게 왜곡시킴으로써, 얼굴의 지형학을 분리된 기호들로 추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각 기호들의, 즉 이목구비의 고유한 인종적 편견들과 함께 그 한계를 뛰어넘는 반향을 일으킨다. 관상학의 미학적 원리에서 벗어남으로써 그의 헬멧은 육체적 탐미주의와 패권적인 표준화에 저항한다.

"육체는 옷이 되고 그 옷은 육체가 된다” Rei Kawakubo

패션디자인 영역에서 통용되는 기술과 형식을 사용하여 제작되는 최규의 ‘옷조각’은 패턴 디자인기법으로 디자인되어, 미싱과 여타 봉재 기구들을 사용하여 제작되거나, 혹은 판화기법을 사용하여 텍스타일을 제작하고 의복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술작품에서 보이는 미술적인 아우라를 모두 제거시키거나 때로는 패션의 아우라를 차용한 이러한 그의 작업을 단순히 소재주의적인 형태로서 패션을 매개로 하는 측면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육체의 껍질로서의 옷과 그 형태에 대한 관심으로 봐야한다. 따라서 옷 바깥으로 유방이 크게 달린 그의 옷은 옷과 몸의 중간형태, 때론 신체의 일부로 읽힌다.

그는 처음부터 빈 껍질이 아닌 일정기간의 주어진 용도와 시간을 보낸, 내용물이 사라진 빈 그릇들만이 남아있는, 껍질들만 덩그러니 뒹굴고 있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가 자신의 ‘옷조각’을 몸뚱아리가 빠져나가버린 ‘사연 많은 껍질들(Narrative containers)’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불은 ‘제도’로서의 신체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접근하여, 일종의 테크놀로지의 혼용으로 이루어진 신체의 변이인 ‘사이보그(1985년 사이보그 선언을 쓴 도나 해러웨이는 이를 ‘사이버네틱 유기체’, ‘기계와 유기체의 혼성물’이라 정의하고 있다)에서 21세기 신체의 정치학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90년대 후반 현대사회의 권력인 테크놀로지의 결정체 ‘사이보그’와 이에 대비되는 이미지인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유기체 ‘몬스터’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신체와 테크놀로지, 혹은 여성과 하이테크의 관계를 탐색해왔던 이불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넘어서 그간 지리멸렬한 페미니즘 논쟁을 넘어선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시각적 충격을 던져준바 있다.

인류가 의수족이나 안경과 같은 기계의 도움으로 신체 일부를 대체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된 20세기 말에는 우리 모두가 “이론화되고 조립된 키메라들, 한마디로 사이보그들이다”라고 선언했던 해러웨이의 이론은 포스트젠더 세계의 창조물로서, 인간과 기계의 구별을 넘나들고 이성구별을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사이보그’의 개념으로 이불의 작업에서 충실히 재림되고 있다.

· 전시 구성

이번 전시는 <프롤로그:만들어진 신체>, <본편:신체와 패션의 새로운 위상>,<에필로그:이미지로서의 패션>, 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I. <프롤로그:만들어진 신체>
외피인 피복에 예속된 신체, 그로 인해 형태가 만들어지는 신체와 그에 이용된 코르셋, 크리놀린, 버슬 등이 도입부에 전시된다. 당시의 여성들의 역할은,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의상의 기능은 신체와 관련된 것이 전혀 아닌, 사회와 관련된, 즉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프롤로그>에서 미술가 야나 스테르박(Jana Sterbak)이 크리놀린으로 제작한 작품 《리모트 콘트롤1》(1989)을 전시한 이유는, 해당 작품이 패션사에 내포된 성차에 의한 역할분담을 언급하면서, 그 틀은 현대에 와서도 변화하지 않았다는 의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II. <본편:신체와 패션의 새로운 위상>
1906년 폴 포와레(Paul Poiret)가「코르셋 포기」를 선언한 이후 전개되었던 20세기 패션의 다채로운 양상이 소개된다. 코르셋으로 교정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신체, 즉 「과장되지 않은 내 신체」를 구가하여 패션사에 있어 신체 재발견의 시대로 정의되는 20세기의 패션 디자인은 전에 없는 조형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 시대는 새로운 소재의 도입, 재단 및 봉제 기술의 진보, 타 분야로부터의 영감 등을 통해 패션사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형 실험에 도전했던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패션 디자인의 융성은 결과적으로 신체보다 피복(패션)이 우월하다는 상황을 낳게된다. 마치 조형 미술품과 같이 아름다운 패션을 착용하기 위해, 아름다운 패션에 대응 가능한 이상적인 신체의 획득이라는 또 다른 억압이 등장하게 된 셈이다. 19세기적 구체제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진 코르셋의 포기는, 그 취지에 찬동하는 한 여성들의 참여를 강요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긍정하는 「나」는, 패션이라는 (새로운) 억압 제도에 종속되어, 그에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신체의 비젼을 추구하는 이중 구속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갖는 강렬한 소망, 신체 자체의 변이(mutation)에 관한 갈망은, 이 시대에 싹튼 것일지도 모른다. 20세기 패션의 투기(project)는 누가 지지한 것인가? 그것은 여성인가, 아니면 남성인가, 아니면 양자의 암묵에 의한 공범 관계인가?

패션의 과격해진 신체표현은, 피부 자체도 표피로서 패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공들인(혹은 의도적으로 자연스럽게 한)화장, 문신, 피어스, 스킨 케어도 패션의 소재로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은「피부」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 즉 인종적인 편견과 성차, 타인과의 경계 등, 「차이를 의식하는 것은 피부와 관련 있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의 패션이 첨예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일부 진지한 디자이너들이 신체 및 피부의 차이, 성차 등의 사회적 또는 미학적 문제를 검증하고 의문을 던져야 했던 이유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디자이너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도로서의 패션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낳게 되는데, 패션 시스템 자체를 상대화하고, 비평적인 시선을 쏟는 일련의 활동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포스트 모던의 가장 양질적(良質的)인 실천과 중복되는 면이 있다. 소수의 디자이너들의 이러한 의식 형성에 1990년대 현대 미술 동향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는 패션과 미술이 처음으로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장을 발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III. <에필로그:이미지로서의 패션>
물리적인 사물로서의 의복은 소개되지 않고, 옥외에서 자연조건과 곰팡이 침식에 의해 붕괴되어 가는 신체와 패션을 표현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설치작업 기록(1999년, 교토)과, 크로마키 블루 기법을 구사하여 피복의 색이나 패턴이 소재 고유의 것이 아닌 자의적인 것임을 알게 해 준 빅터&롤프의 충격적인 패션 쇼 영상(파리컬렉션 2002년 가을-겨울)으로 매듭지어진다.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패션이 물질성을 넘어선 담론의 영역이라는 점을, 빅터&롤프는 의복으로부터 물질성을 박탈하여 다양한 이미지의 관련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패션이 인간의 이미지 생성 및 재현의 위상에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및 표상의 위상이야말로, 패션과 미술이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전시장 디자인

일본 건축가 인나미(Innami)가 맡은 이번 전시의 전시장 디자인의 기본 컨셉은 패션쇼에 대한 "역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패션쇼가 중앙의 긴 무대에 모델들이 패션을 선보이는 반면 이번 전시는 관객이 중앙을 걸어 다니며 주변의 의상과 영상을 감상하는 형식을 가지게 된다. 즉 관객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 전시장 내부를 캣워킹 하는 셈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몸이 항상 밀접하게 반응하는 공간과 관련이 깊어 전시장 내부는 건축화 된 방과 길로 형성 되며 벽면은 흑색과 백색이 주 색을 이루어 볼륨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 연구기관인 교토 복식문화연구재단(KCI)의 수준 높은 양질의 컬렉션과 이를 뒷받침한 인적·지적 자원, 그리고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상이 단순히 복식사라는 틀을 넘어 신체에 부가된 조형성과 예술성, 이 양자의 관계가 다양한 영역과 관계하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문 기관의 존재와 그 인프라의 저력이 이 양질의 전시를 가능케 진정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90여점에 달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과 일본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적의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문화영역간의 다양한 접점을 찾아내고 더 나아가 한일 양국의 소통의 한 지점으로써 앞으로 지속될 양국간의 교류의 질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전 시 명: 신체의 꿈_Visions of the Body 2005展
□ 전시일정: 2005년 6월 15일-7월 31일 (프레 오프닝 6월14일 저녁6:30)
□ 전시장소: 서울시립미술관 1층 전시실
□ 기자간담회: 2005년 6월9일 오후2시30분(서울시립미술관 3층 카페)
진 행_ 전시장 관람 및 인터뷰
참석자_ 하종현 관장, 박천남 전시과장, 박파랑 큐레이터
후카이 아키코(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 수석 큐레이터) 코모토 신지 (교토국립근대미술관 시니어 큐레이터) 최 욱 (건축가)
□ 전시작품: 패션 오브제와 현대미술품 120여점
· 의 상: 약 92점(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 소장)
장 폴 고티에, 비비안 웨스트우드, 크리스찬 라크루아, 톰포드(구찌), 헬무트 랭, 존 갈리아노 (크리스찬 디올), 알렉산더 맥퀸(지방시), 마르탱 마르지엘라, 야마모토 요지, 이세이 미야케, 콤므 데 가르송, 돌체&가바나, 파코 라반, 마우리치오 갈란테, 다카하시 준, 가와쿠보 레이, 와타나베 준야, 빅터&롤프, 다키자와 나오키, 츠키오카 아야 등

· 미술품: 작가13인의 25여점
울프캉 틸만스, 신디 셔먼. 야나 스테르박, 야나기 미와, 큐피큐피, 이네스 반 램스위르드, 고마츠바라 미도리, 오다니 모토히코, 다카미네 타다스, 이불, 최규, 이형구 머스 커닝햄 댄스 컴퍼니(가와쿠보 레이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에 의한 댄스 스테이지 기록)

□ 전시장소
공동기획: 서울시립미술관,교토복식문화연구재단,일본국제교류기금,한국국제교류기금
후 원: JAL, 신영 와코루, 와코루.


웹사이트: http://www.seoulmoa.org

연락처

박파랑_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Tel: 2124-8937 016-278-25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