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최근 삼보, 현주 컴퓨터 등 국내 PC 중견 기업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나 부도 처리되었다. 특히 삼보의 경우 무리한 사업 확장, 해외 수출 물량 감소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세계 PC 산업계에 불고 있는 시장 재편 바람의 영향을 받았다.

2001년 HP가 Compaq를, 2004년 레노보가 IBM의 PC 부문을 인수한 사실은 그 좋은 예이다. 따라서 이러한 파장이 국내 PC 산업전반에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때 수출 효자산업이었던 PC 산업의 경우 2004년 4분기 이후 무역 수지가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등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세계 PC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90년 이후 IT 붐을 타고 2001년 IT 버블 붕괴 전까지 출하량 기준으로 연평균 18.7%에 달하는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그러나 2001년 이후 2004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9% 수준에 머물러 하향 추세가 뚜렷했다. 대부분의 시장조사 기관들은 2005년 이후에도 출하량 기준으로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PC 시장 정체는 더욱 심각하다. 2004년 국내 PC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0.4% 감소한 332만대 수준이었다. 2008년까지 출하량 기준으로 연평균 4.8%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PC 사업 환경은 더욱 악화

금액 측면에서도 고성장 시대는 이미 끝난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 기관인 Gartner에 따르면 금액기준으로 연평균 성장률은 2008년까지 4%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PC 시장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다. 국내 PC 기업들의 사업 여건도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PC 시장의 정체 이외에도 국내 PC 기업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한동안 PC 단가 하락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성숙기 시장의 제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제품 성능 및 기술 차별화가 쉽지 않아 제품 범용화가 진전되면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져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는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본격적인 가격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Dell은 2001년 본격적인 가격 전쟁을 일으켰고 HP, IBM 등 메이저 기업들이 여기에 동조하면서 PC 평균 단가가 급속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시장조사 기관인 IDC에 따르면 2001년 이후 데스크톱 PC는 연간 10%, 노트북 PC는 10.9% 수준으로 평균 단가가 하락하고 있다. 이제는 50만 원대 이하 데스크톱 PC, 100만 원이하 노트북 PC를 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처럼 PC 산업이 단순 조립 산업으로 변모하면서 생산 위주 기업은 더 이상 수익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PC 산업의 부가 가치가 부품, OS, 서비스 등으로 넘어가는 전형적인 스마일커브(Smile Curve)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 PC 기업들의 경우 그러한 사업 부문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따라서 국내 PC 기업들의 수익성 저하는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글로벌 메이저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상위 5대 기업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996년 31%에서 1999년 40%를 넘어선 이후, 2004년 47.2%까지 상승하였다. 이 같은 글로벌 메이저기업들의 시장 집중화 현상은 규모의 경제 효과에 기인한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은 대규모 부품 조달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글로벌 마케팅과 애프터서비스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 중 특히 Dell의 성장은 가히 놀랄 만하다. Dell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00년에 10%를 넘어서기 시작하여 2004년에는 18%를 달성하면서 명실 공히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Dell의 파상공격에 국내 기업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대만 기업

셋째, 최근 들어 중국·대만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PC 산업에서도 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레노보는 IBM의 PC 사업을 인수하면서 2004년 기준으로 볼 때 단숨에 세계 3위 기업으로 도약하였다. 대만기업인 Acer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글로벌 생산 기지로서 관련 기술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과 대규모의 내수 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관련 부품 산업 지원이 견실하다. 현재 생산 면에서 보면 전 세계 PC 생산의 90% 가까이가 중국·대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내수 시장 면에서 보면 중국 시장은 2004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15% 성장한 1,500만대 수준이다. 이는 세계 PC 시장의 8.3%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또한 마더보드, 그래픽/사운드 카드 등 주요 부품 경쟁력이 결코 세계 수준에 뒤지지 않는다. 향후 중국·대만기업들은 이와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PC 등 새로운 성장 엔진 활성화가 지연되고 있다. PDA, 스마트폰, 웹패드, Tablet PC(스타일러스나 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PC) 등 다양한 정보 기기가 90년대 후반부터 포스트 PC 산업을 이끌 제품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고객에게 주는 가치가 불명확하여 대부분의 제품이 캐즘(혁신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초기 시장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주류 시장 사이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단절 현상)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Tablet PC 정도가 노트북 폼 팩터로 진화하면서 선전하고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PC 사업보다는 휴대폰 사업 모델에 가까워 PC 기업들이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표적인 차세대 PC 플랫폼인 Wearable 컴퓨터(사람이 옷을 입듯이 몸에 착용할 수 있는 컴퓨터) 시장은 2010년 이후에나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국내 PC 기업들은 PC 시장 침체와 맞물려 글로벌 메이저 기업과 중국·대만 기업들 사이에서 넛크래커(Nut-Cracker)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또한 PC 시장이 브랜드 PC와 초저가 조립PC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브랜드파워가 약한 국내 PC 기업들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내 시장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Dell, HP와 같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으며 중국산 PC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90년 대 후반 3~4%에 불과했던 외국산 PC 시장점유율은 2004년 15.8%로 크게 상승하였다. 따라서 국내 PC 기업들이 이런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국내 PC 산업 전체가 고사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도 고전 중

이처럼 사업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PC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앞에서 언급한 사업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사업전략을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Dell, HP 등 미국 기업, Fujitsu, Toshiba, NEC 등 일본 기업과 레노보, Acer 등 중국·대만 기업들이 세계 PC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도 대부분 PC 사업의 수익 하락 문제를 안고 있다. 실제로 세계 1위 기업인 Dell를 제외한 나머지 2~5위 PC 기업들의 2004년 PC 사업부문평균 영업이익률은 1.6%에 불과하다. 그나마 2002년 -1.2%로 떨어진 이후 꾸준한 구조 개혁을 통해 가까스로 2000년 수준으로 개선된 수치이다. 반면 1위 기업인 Dell은 매년 10%에 가까운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고 있다. Dell이 대부분의 수익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조사 기관인 Gartner는 세계 10대 PC 기업 중 최대 3개 기업이 2007년까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글로벌 메이저 기업 중 일본 PC 기업들은 국내 PC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Dell, HP 등 미국기업과 중국·대만 기업의 공세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2001년 IT 버블 붕괴 이후 PC 시장 침체와 함께 외국 기업들의 내수 시장 잠식으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졌다. Dell, IBM의 일본 내수 시장점유율은 2001년 13.4%에서 2004년 17.5%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외국산PC의 공세에 일본PC 기업인 NEC, Toshiba의 PC 사업 부문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3년 -3.9%으로 크게 하락하였다. 그러나 꾸준한 구조 개혁을 실행한 덕분에 2004년평균 영업이익률이 0.9%로 흑자로 전환되었다.

끊임없는 내부 혁신과 수익처 다변화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은 PC 사업의 수익 하락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인 구조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원가 절감을 위해 끊임없는 내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비즈니스 시스템 개선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중간 유통 과정을 과감히 없애고 새로운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Dell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들로부터 맞춤형 PC 주문을 받고 3~4일 안에 고객들에게 제품을 인도한다. HP의 경우 전체 매출액 대비 판매관리비 비중이 2000년 15%에서 2004년 13.8%으로 줄였다. 2005년에는 13% 이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PC 기업들도 수십 개에 이르던 제품 플랫폼을 핵심 플랫폼 위주로 단순화하고 부품 공용화전략을 강화하였다. Toshiba는 2002년 24개에 이르던 제품 플랫폼을 2003년에 10여 개 수준으로 줄였다. 그리고 동일한 마더보드를 활용하여 다양한 제품 라인업(Line-up)을 구성하고 있다. 또한 관련 다각화를 통해 수익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PC 사업은 더 이상 고수익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PC를 지렛대 삼아 관련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즉, PC 산업과 관련성이 높은 디지털 기기 및 IT 서비스 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Dell은 네트워킹과 스토리지 등 서비스 분야 및 프린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HP는 서비스 부문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 프린터, 포토 프린터까지 세를 확장하고 있다. 2004년HP의 PC 사업부문 영업이익률이 0.9%에 불과한 데 비해 서비스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9.2%에 달한다. 마지막으로 R&D, 생산, 마케팅 등을 별도 운영하고 있다. Dell, HP 등 미국 기업들은 오래 전에 R&D 및 생산을 한국, 대만 기업들에게 맡겼다. Dell의 경우 2004년 R&D 투자 비중은 겨우 1% 수준에 불과하다. Acer는PC 전문 디자인·생산을 담당하는 Wistron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하였다. Acer 자체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마케팅을 수행하는 서비스 조직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Toshiba의 경우 R&D는 프리미엄 노트북 PC 중심으로 일본 기지에서, 단순 조립 생산은 중국 기지를 중심으로 통합하여 운영 중이다.

국내 PC 산업의 활로를 찾아라

국내 PC 기업들은 단순한 조립·생산 위주의 사업방식으로는 더 이상 수익성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현 시점에서 국내 기업들이 혁신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퇴출되는 현상이 계속 될 것이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전략을 단순 모방하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PC 사업 환경과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의 전략을 토대로 국내 기업들이 추진해야 할 사업전략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기업들은 기술 선도를 통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특히 프리미엄 노트북 PC 시장에서 시장 우위를 점해야 한다. 데스크톱 PC와는 달리 노트북 PC시장은 2008년까지 출하대수 기준으로 17%, 금액기준으로 약 10% 성장하는 매력적인 시장이다. 국내 기업들의 세계 노트북 PC 시장점유율은 2004년 3%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메이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개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현재 PC는 점차 AV기능과 네트워크 기능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AV와 네트워크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 향후 노트북 PC 시장에서의 선전을 기대할 만하다. 그런데 프리미엄 노트북 PC에 집중하는 것은 일본 기업들의 사업 전략과 유사하다. 앞으로 프리미엄 노트북 PC 시장을 두고 일본기업들과 치열한 각축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PC 기업들은 이 주도권 싸움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둘째, PC에 새롭게 적용되는 부품에 대한 내재화를 강화해야 한다. 핵심 부품에 대한 역량은 수익성 확보와 제품 차별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2004년 Morgan Stanley에 의하면 노트북 PC 생산 부문 이익률은 5% 내외이나 핵심 부품의 이익률은 2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 PC기업들은 지금까지 메모리, 광 스토리지 등 일부 부품을 제외한 나머지 핵심 부품들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왔다. 현재 PC에는 DTV 수신칩, 통신 모듈, DMB 모듈 등 새로운 기능부품이 많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기능부품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부품 수출도 가능할 것이다. 셋째, 휴대폰 및 디지털 가전 기기와 연계한 특화된 콘텐츠/서비스를 발굴해야 할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휴대폰 및 에어컨, DTV, MP3플레이어 등 디지털 가전 기기 분야에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PC를 홈 네트워크 및 모바일 네트워크의 중심(Hub) 제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Apple의 온라인뮤직 서비스인 iTunes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Apple은 iTunes 서비스와 iPod라는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여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곧PC 사업의 호조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PC 등 미래 사업에 대한 준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도 차세대 PC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차세대 PC산업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Wearable 컴퓨터 시장규모는 2010년 15.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차세대 PC에 대한 투자를 통해 다가올 차세대 PC 시장을 선점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의 기술 수준에 빨리 근접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이러한 차세대 PC 기술 개발에는 정부의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국내 PC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내 PC 기업들의 내부 혁신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다.

LG경제연구원 박동욱 산업기술그룹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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