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물위를 이리저리 지나 해변으로 진격한다. 불꽃과 배는 굉음을 뿜어 내고, 우리 머리 위에는 수많은 미사일이 퍼붓는다. 오 주여, 부디 우리에게 정의로운 힘을 주시옵소서.... “
판문점을 찾아가던 날, 버스 안은 무거운 침묵과 긴장이 흘렀다. 미해병 출신 트로이 왓슨은 젊은 시절의 기억 때문에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북한군 포로가 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던 호세와 빌리는 휴전 후, 포로교환 때 건너왔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반세기만에 다시 찾으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긴장했다. 아직도 전쟁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2주간의 여정으로 한국에 온 일행들은 몰라보게 달라진 한국을 보며 놀라워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경복궁에서, 남산에서,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시민과 어린 학생들의 손을 마주잡으며 감격스러워했다.
격전지와 한국군부대 그리고 관광지를 둘러본 빠듯했던 2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트로이 왓슨은 다음과 같은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한국은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내가 알고 있던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의 삶에는 행복함이 묻어 난다. 한국은 새로운 국가였다....”
호세와 빌리, 두 사람에게 판문점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빌리는 함께 온 아들에게 그날의 아픈 기억을 처음 얘기해주었다. 두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포로였다. 미 해병대였다는 자존심 때문에 아들에게 조차 포로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었다.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펀치볼...... 1951년 8월 말, 강원도 양구군에 소재한 펀치볼 지역은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미해병 1사단과 한국 해병 1연대는 펀치볼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한미해병은 포병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견고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한 북한군을 타격했다.
목숨을 건 전투는 3주 동안 계속됐다. 수많은 병사들이 총탄에 스러져갔다. 결국 전투는 북한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며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전투에서 미 해병 호세 일병은 포로가 되었다. 한국전이 끝나자 포로에서 석방된 호세와 빌리는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자유의 품에 안겼다. 두 사람은 그 다리를 50여년 만에 다시 찾았다. 북한군 초소에선 다리로 다가서는 두 사람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도 악몽으로 나타나는 포로시절의 참담했던 기억들, 함께 온 일행들은 버스에 머무른채 두 사람이 반세기 전에 겪었던 고통을 짐작하며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버스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전쟁의 고통은 가족들에게 더 진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아리랑TV 6.25 특집 다큐멘터리 <유언>
6월 25일(토) 밤 9:30(재방송 - 26일 새벽 6:30, 밤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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