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물원, 국내 유일 그래비얼룩말 암컷 ‘젤러’ 사망…32살의 장수동물

2011-12-07 11:48
서울--(뉴스와이어)--지난 11월 28일(월) 서울동물원이 보유하고 있던 국내에 유일의 암컷 그레비 얼룩말(1980년생) ‘젤러’가 서른두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한 달 전 부터 움직임도 둔하고 얼마 전에는 아예 드러눕다 시피하며 동물병원 의료진들을 긴장시키더니 이날 급기야 눈을 감아, 서울동물원은 애도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레비 얼룩말은 CITES(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Ⅰ급 동물로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이라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인 희귀종이라 매우 아쉽지만, 얼룩말의 평균수명이 25세 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장수한 편이기에 서울동물원 사육사들은 호상(好喪)이라는데 위안을 삼고 있다.

팜므 파탈(Femme Fatale)은 프랑스어로 남자를 유혹해 죽음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적인 여인’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흔히 ‘요부’라고도 하는데, 이번에 죽은 그레비 얼룩말 ‘젤러’가 그랬다.

생전에 ‘젤러’는 서울동물원 제3아프리카관에서 고혹적인 자태를 보이고 콧대가 높아 저 좋다는 수컷들을 줄 세운 녀석이었다. 해맑고 예쁜 눈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반듯한 얼룩무늬와 부드러운 갈기까지 관람객들이 볼 때도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 그 자체여서 매혹적인 여성스파이로 유명한 마타하리(새벽의 눈동자)의 본명인 ‘젤러’라는 이름도 붙여 줬다.

하지만 매력적인 자태를 뽐내는 그 이면에는 ‘그녀의 신랑이 되면 죽는다.’는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그것도 뒷발차기의 강력한 한방에 의한 쇼크사가 그 원인이었다.

‘젤러’는 지난 1984년 서울대공원 개원을 한 해 앞둔 1983년 3살 남짓의 어린 나이로 수컷 세 마리와 함께 독일에서 들여와 서울동물원에 둥지를 틀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무런 탈없이 평범한 숙녀로 자라온 ‘젤러’는 건강한 새끼를 기대하며 서울동물원에서 보유 중인 수컷 세 마리 중 신랑 물색에 나섰다. 사육사들은 당시 무리 중 가장 건장한 수컷을 골라 합사시켰다. ‘젤러’의 유혹 탓인지 수컷은 매우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눈에 차지 않았던지 암컷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유혹의 자태를 뽐내면서 수컷의 구애를 거부했다.

급기야 ‘젤러’의 뒷발차기는 수컷의 배를 강타했고 수컷은 며칠동안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사랑치곤 잔인한 결과였다.

암컷이라 해도 얼룩말의 뒷발질 위력은 상상이상이다. 제대로 한방 맞으면 뼈가 으스러질 정도이며, 사자 · 하이에나 · 표범같은 천적도 제대로 맞으면 죽음에 이른다.

1년 뒤, 1994년 10월, 이번에는 ‘젤러’보다 네다섯 살 연하의 건장한 청년을 선정해 합방을 시켰다. 무난히 합사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냉랭했다. ‘젤러’의 매혹적인 유혹에 흥분한 어린 수컷은 급히 달려드는 순간 비극은 반복됐다.

이후 ‘젤러’에겐 ‘남편 잡아먹는 말’이라는 뜻의 ‘팜므파탈’이 아닌 ‘팜므파말’이라는 비아냥 어린 별명도 붙게 됐다.

3년 뒤인 1997년, ‘젤러’는 세 번째 남편을 맞게 됐다. 서울동물원에서는 국내 멸종되어가는 그레비얼룩말의 대를 잇는 것이 시급했기에 ‘젤러’의 세 번째 결혼은 불가피 했다. 사육사들은 정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수컷 얼룩말을 합사시켰다. 하지만 세 번째 남편 역시 사랑을 전하기도 전에 뒷발차기 한 방에 비명횡사했다.

결국 까칠한 ‘젤러’는 ‘짝짓기 불가판정’을 받고 32년째 독수공방 신세로 지내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수컷마다 뒷발로 차서 죽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외롭지 말라고 블레스복이라는 영양을 함께 살게 했다. 이는 서울동물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회성풍부화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친하게 지낼 것이라는 바램과는 달리 서로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같이 있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젤러’는 짝짓기 때를 제외하고 평소성격은 온순하기 이를 데 없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서울동물원 함계선 사육사는 “여러 수컷 중 한 마리를 선택하는 야성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면서 “발에 차여 죽은 수컷 얼룩말들을 보며 어찌보면 예쁜 암컷의 치명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원효 서울대공원장은 “우리 동물원의 팜므파탈로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에 큰 인기를 누렸던 그레비 얼룩말 ‘젤러’가 눈을 감아 매우 슬프다”라며 “하지만, 저 세상으로 가서 편안히 안식하리라 생각하며, 그레비얼룩말 ‘젤러’의 명복을 빈다.”며, 관람객들과 동물원 사육사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레비 얼룩말의 넋을 위로했다.

이렇게 서울동물원을 비롯해 국내 동물원에서는 두 번 다시 그레비 얼룩말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서울동물원에는 현재 그랜트얼룩말 8수(♂4, ♀4)를 보유하고 있다.

웹사이트: http://grandpark.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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