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의미와 과제’

서울--(뉴스와이어)--우리나라의 연간 무역액이 세계 9번째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높아진 반면,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 구조가 고착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혁신을 통한 차별화와 차세대 산업에서의 새로운 동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12월 5일 우리나라의 연간 무역액이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잠정 집계된 수출액이 5,155달러, 수입액이 4,860억 달러였다. 미국과 중국, 독일, 일본 등에 이어 9번째로 달성한 성과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가운데 유일무이하다. 지난 1967년 연간 무역액이 10억 달러 수준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였지만,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1천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23년 만에 다시 1조 달러를 기록하는 성과를 내었다. 1960년 이래 매년 수출은 21.1%, 수입은 15.3%씩 늘어난 셈이다. 우리보다 앞선 8개 나라의 전세계 무역액 대비 비중이 50%를 상회하는 가운데 1조 클럽에 가입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무역대국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특히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선전하며 달성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수출은 중화학, IT 제품으로 진화했으나 수입에서의 에너지 의존은 여전

그 동안의 무역 구조 변화를 살펴보면, 먼저 수출의 경우 큰 변화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상위 10대 수출품목 가운데 의류(1위), 신발(3위) 등 경공업 소비재가 수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영상기기와 음향기기, 컴퓨터 등 내구재 완제품의 경우 단순 조립해 수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제품의 완성도, 품질 등에서 선진국과 큰 격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꾸준히 진행돼온 중화학공업, IT산업 등에 대한 연구와 투자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경공업 제품들은 상위 수출품목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 자리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내구재의 핵심 부품, 각종 석유화학 제품, 휴대폰 등 IT 기기, 자동차 및 부품, 고부가 선박류 등이 차지하였다. 단순 조립 완제품의 비중이 줄어든 반면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핵심 부품, 자본재의 비중이 확대됐다. 이 품목들은 기술 수준, 시장 점유율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이미 달성하였거나 근접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상위 10개 품목의 비중이 과거 50%대에서 최근 60%를 넘어서며 집중도가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전세계적으로 교역이 늘고 있는 분야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글로벌 트렌드에 잘 대응해 왔다는 평가도 있다.

국별로는 선진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감소하고 신흥국에 대한 수출은 확대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의 對신흥국 수출이 크게 늘기시작한 것은 해외직접투자의 확대 시기와 맞물려 있다. 중국 등 신흥국에 주로 소재한 우리나라의 해외 생산라인에 제공할 각종 부품과 자본재 등의 수출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신흥국 현지의 소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제품의 수출 또한 함께 늘고 있다. 그에 따라 2000년만 해도 5대 5였던 신흥국과 선진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 비중이 작년에는 7대 3으로 크게 벌어졌다. 향후 재정위기 등으로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당분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선전할 것으로 보여 對신흥국 수출 비중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수입 구조의 경우 목재, 가죽, 농산물 등의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 변화도 있었으나 원유는 수입품목 가운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유제품, 천연가스, 석탄 등 여타 에너지 관련 제품들의 수입 비중도 꾸준히 높다. 게다가 2000년대 들어서는 자원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들의 비중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이다. 그 외에 非메모리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국내 생산기반이 약한 고부가 부품 및 자본재와 선박, 자동차 생산에 많이 쓰여 공급이 부족한 철강판의 수입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별로는 중동 등 자원 부국, 고부가 부품 및 소재 생산국인 일본,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한 중국 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수출,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에서의 역할 확대

건국 이후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역사는 사실 수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표어가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경제개발 시대의 산업정책은 결국 수출진흥책에 다름이 아니었다. 경제의 운용이 관 주도에서 민으로 넘어간 이후에도 기업들은 좁은 내수보다는 무한대에 가까운 외수를 기반으로 외연을 더욱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부분은 지속적으로 커지는 중이다. 1970년대 경제성장률 10.2% 가운데 수출의 기여도는 1.4%p에 불과했지만, 이후 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는 반면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계속 높아졌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성장률 4.1% 가운데 수출의 기여도가 3.3%p로 전체 성장의 80%를 수출이 차지하게 되었다.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수출은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외환위기와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당시 대내외 환경 급변과 변동성이 심한 내구재, 부품 중심의 구조로 인해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1년 내 예외없이 대폭 플러스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 경제가 위기로부터 벗어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는 그 동안 축적된 내부 역량과 가용 자원을 바탕으로 오히려 우리 기업들이 과감히 선제적 투자와 제품 출시, 마케팅 등을 강화함으로써 해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落水 효과(trickle-down effect)는 감소

하지만 경제 성장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수 부문의 취약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수 가운데 최종소비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1970년대 7.2%p에서 2000년대 2.5%p까지, 총고정자본형성의 기여도는 같은 기간 4.2%p에서 0.8%p까지 급락했다. 이처럼 수출과 내수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수출의 국내 고용 창출력 약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에 따르면 수출의 취업유발계수(수출수요가 10억원 발생했을 때 모든 산업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취업자수)는 1980년 185.4명에 이르렀지만 1990년에는 64.6명, 2000년에는 15.0명, 그리고 2009년에는 8.2명까지 급감했다. 수출로부터 유발되는 국내 고용 규모가 이처럼 변화하면서 소득 창출 기반이 약화됨으로써 소비 부진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수출의 고용 창출력 약화 현상은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 설비의 자본집약화 및 자동화 확대 때문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해외직접투자와도 관련을 맺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과 산업 고도화에 따라 경쟁력을 강화하고 현지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 위해 기업들은 국내에 고부가 생산시설만을 남기고 단순 조립 생산기지 등을 해외로 이전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불가피하게 국내 고용이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 양적인 측면에서의 국내 투자도 부진해지면서 총고정자본형성의 성장 기여도 또한 하락하게 된 것이다. 고용과 투자 부진이 서로 맞물리는 가운데 서비스업의 발전이 더딘 것도 내수 부문의 부진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

일본 시장에 대한 우리 수출품들의 침투력이 잘 높아지지 않고 있는 반면 각종 핵심 부품, 소재 및 자본재의 상당 부분을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개선이 느리다는 점도 우리 무역의 구조적 특징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일본 제외 지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보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더 컸다. 최근 들어 일부 핵심 제조장비 등의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대일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상당히 진척되고는 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도 일본을 제외한 곳에서 발생한 무역수지 흑자의 절반 가량을 일본에 대한 적자로 잃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분업 구조 하에서 우리나라가 핵심 소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수직 계열화할 필요는 물론 없을 것이지만, 지나친 대일 의존도 때문에 우리의 산업이 일본의 영향력 하에 크게 놓일 수도 있는 감금 효과(lock-in effect)를 낮추는 방안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철강, 화학, 전자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수출산업 구조를 자원이 희소해지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맞게 변환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원단위(전체 경제활동에 소요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비율)는 미국이나 영국뿐 아니라 산업 구조가 우리나라와 유사한 독일, 일본보다도 훨씬 높은 상황이다. 즉 동일한 수준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나라 수입 가운데 원유 등 에너지원들의 비중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각 수출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자원 제약을 극복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트렌드에 맞는 차세대 산업 구조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수출 주력 품목의 혁신과 차세대 성장 산업으로의 이동 긴요

그 동안 이뤄온 성과를 앞으로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를 실천해야 한다. 우선 현재 우리의 주력 수출품들은 세계 시장에서 선전 중이지만 대부분 경쟁이 매우 치열한 레드오션에 위치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일부 품목에서 선진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반면 신흥국들의 추격 속도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마트 가전, 고부가 정보전자 소재, 고부가 선박,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같은 품목이라도 혁신을 통해 다른 경쟁국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산업의 장점을 산업 간 결합에도 활용하여 융복합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효율 및 에너지 절약형 제품, 스마트 제품 등의 확산 트렌드에 맞춰 에너지 의존적 제조업 구조를 바꿔야 할 것이다. 동시에 바이오, 생명공학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중장기적 투자를 통해 산업 발전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제조업과의 시너지가 높은 사업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국내 고용 문제도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 부문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책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수출 대상 지역별로 보면 우선 선진국들의 경우 재정위기의 여파로 당분간 중장기적 성장 정체가 예상된다. 내구재 중심인 우리 수출이 더 크게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의 소비 구조 또한 변화하고 있다. 일반 내구재 매출은 크게 떨어지고 있으나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친환경 자동차 등 차세대 품목들의 매출 신장세는 폭증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시장 정체 가운데서도 성장 품목들에 대한 타겟팅과 준비가 요구된다. 신흥국들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매스티지 마켓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 좋은 성과를 이뤄왔고 수출 비중도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 일부 신흥국 로컬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선진국 대비 경쟁 열위에 놓여있기도 하다. 성장하는 시장인 신흥국에 대한 침투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아직까지 신흥국의 경기가 상품의 최종 수요처인 선진국 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對선진국 수출 비중이 낮다는 이유로 우리 수출이 글로벌 재정위기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고 안도하기 보다 유사시를 위해 대비책을 세우는 자세 또한 요구된다.[LG경제연구원 윤상하 책임연구원 www.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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