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사 저명 학술지 ‘Late Imperial China’ 게재

- 저명 역사학자 윌리엄 로우 교수 해설

서울--(뉴스와이어)--건국대 사학과 한승현 교수(사진, 중국사)가 중국 청(淸)나라 시대 사대부들의 과거시험 시험장 시위에 대한 처벌 변화에 관해 연구한 논문이 국제 청(淸)대 역사학계 및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역사학 분야 세계적 저명 학술지(A&HCI급 저널)인 ‘Late Imperial China’ 최근호(Vol. 32, No. 2)에 게재됐다.

특히 ‘Late Imperial China’ 저널은 이번 호를 중국 19세기 전반기에 대한 특집호로 편집했으며, 세계적 역사학자인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윌리엄 로우(William T. Rowe) 교수가 서론을 써 한 교수의 이번 논문과 그동안의 연구성과에 대해 그 내용과 의미를 상세히 설명해 학계로부터 주목받았다.

인문학분야 국제논문 인용색인(A&HCI: Arts & Humanities Citation Index)급 저널인 ‘Late Imperial China’ 에 게재된 한 교수의 논문은 ‘The Punishment of Examination Riots in the Early to Mid-Qing Period' (청대 초중기 사대부들의 시험장 시위에 대한 정부의 처벌 변화)로, 이 논문은 청대 초, 중기, 즉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기 청조 정부가 지식인들이 시험장에서 벌이는 시위 활동에 대해 어떻게 처벌을 하였으며 그 처벌 규정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분석했다.

18세기의 중국 황제들은 사대부들이 국가가 공인하지 않은 정치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강하게 억제하였으며 그 결과 사대부들이 시험장에 모여 시험을 거부하며 집단적 의사표출을 하는 행위 역시 과거와는 달리 매우 엄한 처벌을 받게 됐다. 즉 주모자를 참수형에 처하고 동조자도 교수형에 처했다. 또한 시위활동이 미수에 그치거나 범법사항이 법률적 규정에 정확히 부합하지 않더라도 일벌백계라는 차원에서 가중처벌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로 인해 지식인들의 시위는 18세기에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중국 명청시대 사회문화사 전공인 한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황제들은 지식인들의 시위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 측면에 주목하게 되고 지방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진 결과 지식인들의 시위가 이러한 문제를 고발하고 억제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성이 있다고 제한적이나마 긍정적인 측면을 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19세기의 황제들은 무조건 관리들을 옹호하지 않고 보다 공정한 시각으로 사대부 시위를 평가하게 됐다. 시위 발생 자체를 문제삼기보다는 시위의 원인이 무엇인지, 혹 지방관의 부패가 초래한 것이 아닌지를 주목하게 된 것이다. 동시에 19세기의 황제들은 18세기에 빈번했던 가중처벌을 법률 규정에 근거하기보다는 법외의 요소가 고려된 결과라 비판하고 법률 자체에 근거한 판결을 강조하게 되며 시위 참가자에 대해서도 한층 경감된 처벌을 내리게 된다.

또한 18세기에는 지방의 관리들이 불법적으로 하층 사대부들을 매질하더라도 황제는 이를 가볍게 취급했으나 19세기의 황제들은 이를 엄히 금지하여 하층 사대부들을 보호하려 했다. 그 결과 19세기에는 사대부들의 시험장 시위 소동이 훨씬 증가하게 되었고 이는 그들의 정치의식이 한층 고양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세기 초기 역사는 중국 청대의 역사연구에 있어 가장 연구가 미진한 분야이며 이로 인해 ‘Late Imperial China’ 저널의 이번 호에서는 이 시기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다. 또 현존하는 청대사 연구자 중 가장 저명한 학자 가운데 한 명인 윌리엄 로우(William T. Rowe) 교수가 서론을 자세히 써 관련 연구 성과들을 인용하면서 이 시기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한 교수는 2005년 미국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시기의 중요한 변화를 연구한 바 있으며 19세기 전반기에 대한 선구적 업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중국사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개설서라 할 수 있는 ‘캠브리지 중국사’(Cambridge History of China)(Vol. 9, no. 2)의 편집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윌러드 피터슨(Willard Peterson) 교수 요청에 따라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기에 이르는 중요 변화에 대한 부분을 집필한 바 있다.

로우 교수는 한 교수의 이같은 연구 논문을 모두 읽은 바 있고 이를 바탕으로 ‘Late Imperial China’ 저널에 실린 논문과 더불어 이 Cambridge History of China의 연구논문까지 요약해 소개했다. 이 논문의 핵심은 중국은 18세기에 비해 19세기 전반기에 지방 사대부들이 지방 공공사업에서 담당하는 재정적, 행정적 역할이 증가했다는 점, 또한 지방 사대부들의 이익과 깊이 관련되는 지방 사원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약화되었다는 점,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민들의 시각이 크게 반영된 지방 출판물들이 성행하게 되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중국 19세기초는 이전 세기와 달리 중앙 정부의 지방사회 장악력이 약화되고 지방의 사대부들이 보다 한층 강화된 주도권을 가지고 사회활동과 문화활동에 참가하게 된 시기였으며 이러한 국면이 청조의 멸망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건국대학교 개요
독립운동의 맥동 속에서 태어난 당당한 민족사학 건국대학교는 1931년 상허 유석창 선생께서 의료제민(醫療濟民)의 기치 아래 민중병원을 창립한 이래, 성(誠) 신(信) 의(義) 교시를 바탕으로 ‘교육을 통한 나라 세우기’의 한 길을 걸어왔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서울캠퍼스와 충북 충주시 충원대로 GLOCAL(글로컬) 캠퍼스에 22개 단과대학과 대학원, 4개 전문대학원(건축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경영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10개 특수대학원을 운영하며 교육과 연구,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건국대는 ‘미래를 위한 도약, 세계를 향한 비상’이란 캐치프레이즈 하에 새로운 비전인 ‘르네상스 건국 2031’을 수립, 2031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신지식 경제사회를 선도하는 글로벌 창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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