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해체 트렌드와 비즈니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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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03-20 12:00
서울--(뉴스와이어)--글로벌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기존의 질서나 법칙이 해체되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해체 현상이 급진적이고 전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해체 현상과 다른 점이다. 해체란 못 쓰게 부서지는 파괴가 아니다. 작은 단위로 촘촘하게 분해된 권력, 자원, 가치 등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토대로 사용될 강한 여지를 내포한다.

글로벌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방위적 해체 움직임을 주도하는 요소는 바로 디지털, IT 기술이다. 특히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로 대별되는 동시다발적 IT 혁신은 과거 수십 년의 변화를 불과 몇 개월 내에도 가져오고 있다.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해체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제조사들이 제공하던 각종 기능들이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개별 앱 형태로 해체되어 제공된다. 일하는 방식은 물론 조직 구조에서도 해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 워크, 재택 근무 등의 형태로 업무 공간이 분화되고, 전통적인 위계조직이 소규모 팀이나 개인 등 보다 작은 단위로 해체되고 있기도 하다.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Networked Community)’라는 새로운 기업 형태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으로 수년 내 사업 환경 전반에 해체 트렌드가 깊숙이 파고들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수 많은 해체 과정 속에서 비즈니스 생태계로 유입되고 있는 똑똑한 역량과 자원의 조각들을 고객들의 급변하는 니즈에 맞게 신속하게 재조합하는 일이 미래 기업들의 고민이 될 것이다.

Ⅰ. 해체와 사회

역사는 과거의 규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규칙들을 만들어내면서 발전해왔다. 새로운 것이 등장하기 위해 기존의 것이 해체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해체(解體)’ 현상을 다시 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해체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해체 현상이 국지적,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해체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체 현상을 논의하기에 앞서, 해체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해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기존 체제나 조직 등의 ‘붕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근간에는 ‘단순한 부정이나 파괴가 아니라 토대를 흔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숨겨져 있는 의미와 성질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못 쓰게 부서지는 ‘파괴’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해체로 인해 과거의 질서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기존의 유산들이 파괴되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더 작은 단위로 촘촘하게 분해된 권력, 자원, 가치 등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토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1. 정치 권력과 해체

2010년 12월 튀니지, 26세의 청과물 노점상인 모하메드 부아지지는 단속 공무원의 횡포에 대한 항의 표시로 분신한다. 이듬해 1월 그는 결국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이를 시작으로 튀니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대대적으로 확산된다. 군부는 중립을 지켰고, 24년간 정권을 유지해오던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게 된다. 이 소식은 즉시 중동-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언론 통제도 무력 진압도 한번 시작된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예멘 등에서 파업, 행진 등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에서도 30여년 지속된 무바라크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2. 언론과 해체

대학교 2학년 학생인 박군(22세)의 하루는 스마트폰으로 포털 메인의 뉴스란을 클릭하면서 시작된다. 주류 언론사를 비롯해, 인터넷 미디어, 파워블로그 등 다양한 내용들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기사를 대충 훑어만 보아도 한 시간은 훌쩍 간다. 오늘도 IT 트렌드에 대한 몇 가지 기사를 웹페이지 클리핑 애플리케이션 ‘에버노트(Evernote)’로 스크랩해 보관한다. 이렇게 해두면 필요한 기사를 언제든 쉽게 찾아 볼 수 있어서 편리하다. IT에 관심이 많은 박군은 RSS 리더(Reader)를 통해 최신 휴대폰 관련 뉴스를 받아보고 있는데, 역시 첨단 분야에서는 주류 언론보다 전문 블로그의 기사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은 IT 전문 블로그 ‘기즈모도(Gizmodo)’에 올라온 3D 휴대폰의 기사가 눈에 띈다.

#3. 교육과 해체

애플이 대학의 강의를 동영상이나 음성 콘텐츠로 제공하는 ‘아이튠즈 유(iTunes U)’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최근 아이튠즈 유 서비스가 독립된 애플리케이션 방식으로 전환되면서 교육 시장의 변화가 한층 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PC에 접속해 아이튠즈 서비스에 들어가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기기를 통해 대학 강의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튠즈 유 서비스에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 콘텐츠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전공이나 영역, 대학별로 다양한 분류를 제공하며, 심지어 모든 강의는 무료로 제공된다.

‘해체’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또 다른 힘

최근 수년간 글로벌 세상을 뒤흔든 굵직한 사건이나 이슈들에서 ‘해체’라는 키워드를 통해 많은 현상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급진적인 해체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10년과 2011년에 걸쳐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Arab Spring)’ 혹은 ‘자스민(Jasmine) 혁명’은 전통적인 권위주의 체제의 극적인 해체를 잘 보여주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아랍 사회의 전통적 권력이 해체되는 데에는 불과 몇 달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정치적, 사회적 자유에 대해 억눌려있던 오랜 요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이것에 왜 지금 나타났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언론에서의 해체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 이어 ‘제4부’라고까지 불리며 막강한 힘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인터넷과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그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과거 지면을 통한 방식에서는 선택한 특정 언론사의 모든 기사를 소비했다면, 이제는 관심 분야에 대한 여러 언론의 기사들을 자동적으로 분류해 받아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기존 언론 기사보다 전문 블로그 기사에 더 큰 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SNS의 확산은 언론이 주도하고 있던 정보의 생산과 유통 권한을 더욱 빠르게 분산시키고 있다.

교육 영역에는 이미 수험생이나 자격증을 위한 온라인 동영상 강의가 일반화되었다. 여기에 세 번째 사례에서와 같이 대학 교육 분야에도 유사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대학 교육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폐쇄적인 영역이었다. 학비, 시간, 기존 교육수준 등 다양한 이유로 진입장벽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전문 고등 교육이 일반에 무료로 개방되면서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수준 향상과 인적자원의 질이 높아지는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 사회, 문화에 있어 혁명이나 급진적인 변화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이러한 일들이 일회적 혹은 산발적으로 나타났다면, 앞으로 나타날 해체는 연속적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IT가 해체 트렌드의 핵심 기반

글로벌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방위적 해체의 움직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다. 특히 디지털, IT 부문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사회, 경제적 질서의 해체는 되돌리기 힘든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과거에도 기술은 기존의 질서, 비즈니스를 뒤바꾸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1980년대 초반 나타난 퍼스널컴퓨터(PC) 혁명은 기술에 의한 정보 권력 해체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 더 작고 저렴한 프로세서와 회로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기술이 등장하면서 ‘메인프레임’으로 집중되어 있던 컴퓨터, 정보 권력은 PC를 사용하는 개개인에게 분산되기 시작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들이 이러한 전통적 컴퓨터 권력의 해체와 함께 성장했다. 정보의 생산, 유통 권한의 본격적인 해체는 그 후로도 십 수년간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모바일, 소셜 네트워크, 스마트’로 대별되는 동시다발적 디지털, IT 혁신은 과거 수십 년의 변화를 불과 수년, 짧게는 몇 개월 내에 가져오고 있다. 더욱이 과거 PC 혁명의 영향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되었던데 비해, 최근의 새로운 IT 기술, 응용 서비스들(예를 들어 SNS, 앱스토어 등)은 해당 산업 내의 질서는 물론, 글로벌 정치, 경제, 사회 전체를 순식간에 뒤흔든다. IT가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면서 유례없는 속도와 방식으로 기존 질서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저렴하게 보급되면서 혼자서도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똑똑한 시민’들이 해체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도 해체 현상을 가속

모바일 기기와 소셜 네트워크가 만든 ‘초연결(Hyper-Connection)’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 기기와 서비스로 무장한 대중들은 이제 스스로를 피동적인 수용자에서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인식하고 있다. 집중된 힘과 권한을 해체하기 위해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개개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이는 전통적인 권위, 국가권력, 기업 모두에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족구성의 변화나 경제적인 성장으로 개인의 공간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아졌다는 점도 사회적 해체를 가속시키는 한 요인이 된다. ‘취존(취향 존중)’이라는 젊은이들의 유행어와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개인주의적 성향은 강화되고 있다.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추상적인 대중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 자리를 마니아적인 성향을 공유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들, 그리고 뚜렷한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대체하고 있다.

글로벌화는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페이스북에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전세계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얘기를 만들어 간다.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아마존(Amazon.com)이나 이베이(Ebay.com) 등 해외 쇼핑몰을 아무렇지 않게 활용한다. 레포트를 쓰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사는 전문가의 블로그를 손쉽게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이 모여 지역이나 국가 영역에 제한되어 있는 전통적인 비즈니스를 해체하는 기반이 된다. 사람들의 인식이나 삶의 작은 변화들이 글로벌 세상의 해체를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Ⅱ. 해체와 비즈니스

사회 전반에서 해체가 진행되는 가운데, 비즈니스에서의 해체는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게 될까? 그전에 최근 젊은 층들에 인기 있는 전자음악2의 제작 방식을 한번 살펴보자.

# 평범한 청년 얀센의 꿈

네덜란드 HAVO(일반중등학교, 5년제) 졸업반 학생 얀센(17세) 군은 프로그래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라는 전자음악 장르에 푹 빠져있다. 쿵쿵 울리는 베이스가 강렬하면서도, 입체적이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최근 새로 PC를 마련한 얀센은 작곡용 시퀀싱 프로그램을 함께 구매했다. 곡을 직접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과거와 같이, 기타, 드럼, 건반과 같은 악기를 살 필요가 없다. 이러한 악기들이 전자 가상악기 형태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더 편리한 작곡이 가능해졌는데, ‘샘플’이라는 형태로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음원들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19.99 달러를 주고 ‘Progressive House Melodics 2’라는 샘플 음원을 구입했다. 최근 몇 마디의 재미난 악상이 떠올랐는데, 새로 산 샘플들을 사용하면 좋은 곡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목표는 유명 전자음악 판매 사이트 ‘비트포트(Beatport)’에 자신이 만든 곡을 등록하고 전자음악 프로듀서로 데뷔하는 것이다.

얀센 군의 일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곡을 구성하는 소리 단위로 샘플 음원이 판매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이다. 샘플 음원이란 기존 아티스트들이 곡을 만들면서 사용하던 여러 음원이나 소리를 하나하나의 작은 단위별로 해체하여 판매하거나, 혹은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다양한 악기, 효과음, 보컬 등을 말한다. 이러한 샘플 음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하면 완성된 곡을 혼자서도 만들 수 있다. 전문 음악가들뿐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곡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음반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이미 음악 소비 방식은 정규앨범 구매에서 MP3 곡 단위의 구매로 바뀌고 있다. 음악 생산 측면에서도 샘플 음원을 활용해 곡을 만드는 해체 트렌드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음반 산업 전반에 해체 현상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많은 변화들이 전문 음악인들에게는 직접적인 위협으로, 혹은 기존 제작방식을 탈피해야 하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혹은 더 나이든 음악인들의 경우 이러한 변화들을 애써 무시, 외면하거나, 혹은 전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미 시작된 비즈니스의 해체

기업들도 음반 산업, 전문 음악가들과 유사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은 기업의 제품, 서비스가 해체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휴대폰에 내장되어 제조사들이 제공하던 각종 기능들은 스마트폰 앱스토어에 개별 앱(App) 형태로 해체되어 제공된다. 더욱이 이러한 앱을 만들 수 있는 권한 역시 기존 제조사들에서 외부의 전문 개발자, 아마추어 소비자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필요에 따라 앱을 구매하고, 이를 조합해 자신에게 최적화된 스마트폰을 만든다. 이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개별 소리 단위로 해체된 샘플 음원을 조합해 완성된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IT 비즈니스 밖에서도 제품, 서비스의 해체 현상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저가항공사들의 경우 해체를 혁신의 컨셉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기존 항공사들이 불필요한 서비스들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반면, 저가항공사들은 패키지화된 서비스들을 개별 서비스로 나누어 판매했다. 비행시 필요한 보험, 음료수, 수화물 등을 묶어서 팔지 않고 고객의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둔 것이다. 서비스의 해체를 통해 저가항공사들은 항공권 자체만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에게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비즈니스의 해체는 고객들의 선택권이 강화되는 영역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최근에는 아파트와 같이 전통적으로 정형화된 제품에도 해체 컨셉이 적용되고 있다. 가변형 벽을 적용해 구매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방의 개수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다.

해체와 조직

제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기업 조직 측면에서도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거론되는 ‘스마트 워크(Smart Work)’는 일하는 방식, 나아가 조직구조에도 해체 트렌드가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마트 워크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얽매이던 근무 형태에서 벗어나, 스마트폰, 태블릿 등 개인용 IT 기기를 활용해 직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근무 형태를 결정하는 업무 방식을 뜻한다. 이처럼 장소적 제약이 사라지게 되면 기존의 전통적 조직 구조 역시 흔들릴 것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Networked Community)’라는 새로운 기업 형태를 예상하는 경우도 늘고있다. 느슨하게 연결된 커뮤니티 조직은 급변하는 사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형화된 업무 영역, 기업 내부자뿐 아니라 외부 전문인력들까지 포함하는 개방적인 멤버를 특징으로 한다. 이처럼 어쩌면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조직의 해체를 통해 기업들은 외부 환경에 대한 신속한 대응,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 창출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얼리어답터나 파워블로거의 아이디어, 사회적 네트워크를 제품 기획과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조직구조가 연결된 커뮤니티 형태로 해체되는 과도기의 모습일 수도 있다.

소셜 엔터프라이즈와 조직의 해체

‘소셜 엔터프라이즈(Social Enterprise)’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방식의 등장은 기업 조직의 해체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셜 엔터프라이즈는 간단히 말해, 비즈니스에 소셜 미디어, 소셜 네트워크의 기술과 컨셉을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궁극적으로는 기업 내부 직원간 네트워크와 외부(고객, 파트너)의 소셜 네트워크가 통합되어 협업과 집단적 의사결정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비즈니스 방식을 지향한다.

B2B 클라우드컴퓨팅 서비스 기업인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ce.com)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소셜 엔터프라이즈를 중동 아프리카의 ‘아랍의 봄’ 혁명에 비유해, ‘비즈니스의 아랍의 봄’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소셜 도구들에 기반해 전통적인 기업 조직구조의 해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기존의 사업방식과 문화를 혁신하는 일이 중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소셜 엔터프라이즈는 기업 내부의 소셜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조직 내 협업을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업무간 부서간 장벽이 약화되는 내부 조직의 해체가 조금씩 진행중인 것이다. 하지만 점차 외부와의 의사소통이나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고객과 파트너 기업들의 소셜 네트워크와도 통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지게 될 것이다. 촘촘하게 짜여 있던 전통적 조직구조가 상당부분 해체되고, 느슨한 형태의 새로운 조직구조, 기업 형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체와 미래의 기업

이미 경영의 구루들은 비즈니스의 해체 현상에 대해 몇몇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프라할라드 교수는 저서 ‘새로운 혁신의 시대’에서 미래의 비즈니스는 ‘N=1, R=G’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N=1, R=G란 개별 소비자 한 사람이 스스로 고유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N=1)을 갖추는 것, 자원을 내부적으로 소유할 필요 없이 다양한 원천을 통해 글로벌 자원에 접근(R=G)하는 것을 뜻한다. 즉 시장이 개별 소비자 단위로까지 극단적으로 해체되며, 기업의 역량과 자원도 글로벌 비즈니스 전반에 흩어져 존재하는 그야말로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 모두가 해체된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이 도래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모든 산업에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IT와 밀접한 비즈니스에서부터 기존의 구조와 게임 룰을 해체하는 힘이 차츰 강해지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의 해체는 물론, 이에 활용되는 자원, 역량, 기술, 비즈니스 모델의 해체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허황된 상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는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기업 조직들이 아니라, 부서나 기능, 구성원 단위로 잘게 나누어진 초미니 기업들이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할 지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들이 새로운 세대들(Y 세대 및 그 이후의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기성 세대들에게는 그저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거나, 심지어는 눈을 뜨고도 관찰할 수 없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Ⅲ. 해체와 통합, 그리고 재조합

디지털, IT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해체 트렌드가 비즈니스의 룰을 바꾸고 있지만, 사실 주류 산업, 전통적 기업들에게 해체는 먼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내부 통합과 중앙집중적 방식, 조직구조를 통해 성과를 올리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는 전통적 비즈니스 방식의 해체를 그저 남의 일로 치부하며 손놓고 외면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프라할라드 교수는 N=1, R=G의 비즈니스 방식이 IT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들이 주류 소비자로 부상하는 2015년~2020년 사이에 보편화될 것으로 보았다. 이 같은 예측이 다소 급진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소비자들의 등장이 어떤 식으로든 비즈니스의 해체를 가져올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기업들의 숙제는 해체와 통합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 나아가 해체된 자원과 요소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조합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해체와 통합의 균형

기업들은 자원이나 역량을 작은 단위로 해체함으로써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환경 변화에 맞게 나누어진 자원들을 신속히 재배치, 재조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통상적으로 해체는 규모의 이익이나 신속함, 효율성 등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들에게는 유연성뿐 아니라, 생산과 혁신의 신속성, 효율성 역시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경영 관리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존 관점에서 유연성과 효율성은 별개의 개념이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유연성을 통해 비즈니스의 규모를 확대하고, 효율성을 통해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과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체와 통합 간의 균형, 긴장관계를 잘 다루는 일이 요구된다.

경영진들은 해체와 통합이라는 상반된 힘과 원칙이 성과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유연성과 효율성 간 최적의 균형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어떤 부분에서 역량과 자원의 해체가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집중과 통합이 효과가 있는지를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은 앱스토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자신이 제공하던 서비스 및 사업상의 고유 권한을 상당부분 해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앙집중적이고 폐쇄적인 조직과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혁신과 사업 프로세스의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해체된 자원의 재조합 방식이 미래 경쟁력을 결정

해체 트렌드가 비즈니스의 전면으로 떠오를 경우, 해체되어 있는 기존의 자원과 역량들을 어떻게 조합하는지가 기업들의 성패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저서 ‘마지막 통찰’에서 앞으로의 비즈니스 환경을 조립식 완구인 ‘레고(Lego)’에 비유했다. 그는 “레고 조각들은 끊임없이 조립되고, 해체되고, 다시 조립된다. 레고 월드의 개념을 이해하는 기업이 현재 기업 세계에서 진행 중인 ‘조용한 혁명’에서 살아남는다.”고 강조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자원과 역량의 레고 조각들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 제대로 조합하는 것이 사업과 제품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수년 전 팹리스(Fabless) 모델로 TV 업계를 강타했던 ‘비지오(Vizio) 쇼크’를 기억한다면 비즈니스의 해체가 가져올 충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비지오는 비교적 일찍 해체 트렌드를 이용한 사례이다. TV 제조를 위해 필요한 기획, 디자인, 제조, 유통 등의 자원들을 글로벌 시장에서 신속하게 재조합 해냄으로써 업계를 긴장시킨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제품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었던 일본계 TV 업체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물론 지금은 비지오가 집중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는 국내 TV 업체들에 밀려난 상황이지만, 이와 유사한 업체들의 위협은 언제든, 어떤 산업에서든 반복될 수 있다. 상당히 쓸만한, 수 많은 ‘레고’ 조각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로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기업들의 대응도 빨라져

일부 대기업들은 자원과 역량을 재조합하는 비즈니스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에 또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솔루션(Solution) 비즈니스 모델이 그것이다. GE의 항공엔진 사업의 경우, 단순히 엔진이라는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엔진 관리 서비스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작은 기업들의 적응력은 더 뛰어나다. 태생적으로 모든 것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역량이나 자원을 외부에서 충당하는데 훨씬 적극적이다. 예를 들어, IT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혁신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방식을 얻기 위해 이노센티브(InnoCentive)와 같은 기업을 활용하기도 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기업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역량이나 자원을 마치 기계부속이나 레고 블록을 가져오듯 외부로부터 신속하게 확보해 조립하는 방식에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다시 음반 시장으로 돌아가 보자. 글로벌 히트곡이 나오면 조금의 시차를 두고 세계 각지의 음반 시장에는 유사한 느낌의 곡들이 음원 차트를 점령한다. 기존 히트곡의 샘플 음원 혹은 유사한 음원에 지역별 음악 시장의 정서에 맞는 멜로디와 리듬을 결합해 새로운 히트곡을 빠르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해외 댄스음악 차트를 뒤흔들었던 ‘셔플 댄스’ 곡들이 이미 우리 음반 시장에서도 큰 유행을 하고 있다. 기업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체되어 존재하는 자원들을 재조합 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아지고 있다.[LG경제연구원 정재영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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