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애타게 찾던 불로장생의 영약을 손에 넣지 못하고순행 중 객사했지만 진시황은 그래도 50년(BC259~210년)을 살았다. 2170년 뒤인 1960년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이 51세였음을 감안하면 과연 장수를 누린셈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42년 뒤인 2002년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73세로 22년 증가한다. ‘왜 일찍 태어났을까’진시황이 가슴을 칠 일이다.

게다가 노인들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현재 70대노인은 20년 전 60대나 50년 전 50대의‘노인’보다 더건강하고 젊어 보인다. 고령의 정의를‘65세 이상’처럼나이 기준으로 하지 말고‘육체적 정신적으로 실질적 무능력을 겪는 시기’로 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아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인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갈수록 젊어지고 있다’는 주장까지 있다. 고령화는 축복이요, 인류의 숙원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고령근로의 의의와 필요성

그러나 지금 고령화는 명백히 재앙이다. 요즘 노인들에겐 진시황에게 거저 주어졌던‘노후생계 보장’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노후보장 없는 장생과 불로는 축복이아니라 버거운 짐이다. 유럽인들은 그나마 낫다. 노후를 받쳐주는 세 개의기둥에 의지할 수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기둥인 공적연금과 두 번째 기둥 기업연금이 은퇴 전 소득의 70%에 해당하는 연금을 준다. 세 번째기둥인 개인자산을 헐어쓰면 한창 때 버금가는 여유로운생활을할수있다. 우리는 어떤가? 첫 번째 기둥(국민연금)은 본격적인하중이 실리기도 전에 휘청거리고 있고 두 번째 기둥(퇴직연금)은 이제 막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태다. 자연히 안정적이지 못한 세 번째 기둥(연금저축, 투자자산 등)에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전체적인 노후대비 수준도 턱없이 낮아 노후를 지탱해줄 네 번째 기둥이 절실한상황이다.

가장 유력한 것이 고령근로다.‘노후의 마지막 버팀목, 고령근로’는 1990년대 유럽인들의 모토다. 유럽에서 고령근로는 고령자 자신의 노후보장 자구책이자 1970~1980년대 위기에 몰린 유럽식복지국가의 구조조정이다. 나아가 근로인력 자체가 급속히 고령화하고 있는 유럽경제를 회생시키는 정공법이다. 유럽과 똑같은 문제를 유럽보다 심각하게 앓고 있는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령근로는 품위 있는 노후생활과 국민연금 재정 건전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아울러‘개발 피로증’이 우려되는 시기에 글로벌경기불황, 원자재 가격 급등, 원화 강세 등 불리한 대외경제여건과 급속한 인구 고령화가 엎친 데 덮친 한국 경제의 성장 활력을 돋우는 한 가지 방안이다.

고령근로의 현실

우리 현실은 이런 당위와 거리가 멀다. 근로자정년은 55~57세이지만 50대 근로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오정’, ‘오륙도’의 조기퇴직 관행 때문이다. 2001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30~34세근로자100명중 14명은30대중반에근로자 지위를 잃거나 버린다. 55~59세가 되면 71명이 탈락한다. 55세 이상 취업자 가운데50~70%는 농어업직이나 단순노무직이다. 벌이는 시원찮고 퇴직 이후 생계를 지원하는 사회보장제도도없으니50대초반이전에직장을떠나고도67, 68세까지일손을놓을수없다. 기업도 할 말이 많다. 고령자를 고용해얼마나 득을 볼지 확신할 수 없다. 어떤 일을 맡기고 처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돈은 많이든다. 고령자 한 사람에 들어가는 비용이면 젊은 근로자를 2명 더 쓸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임금구조가 타당성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이렇게 믿고 고령근로자를 젊은 인력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정년 채운 고령근로자들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직위나 연봉 결정이 번거롭고 다른 고령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입맛만 다실 뿐이다.고령근로자 몫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과 고령자의 근로의욕 정도를 논외로 할 때 고령근로 문제는 임금수준의 문제로 환원해볼 수 있다.즉 고령자가 요구하는 임금과 기업이 제시하는 임금 수준에 차이가 있는 것이 고령근로 확충에 장애가 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 차이가 좁혀진다면 고령근로 활성화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그 임금 차이를 메워주면서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제3자가 과연 있을까?

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구조

국민연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급여의 종류 중 조기노령연금이라는 것이 있다. 조기퇴직으로 인해 생계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외적으로 일찍 지급되는 연금이다. 국민연금에 10년 이상 가입하고 소득 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않을 경우 가입자 희망에 따라 55세부터 준다. 60세 이상, 20년 이상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상적인 노령연금, 즉 완전노령연금에 비해 지급요건은 엄격하지 않은 대신 연금액은 적다. 우리는 유럽의‘부분연금제’아이디어를 우리 현실에 적용해 고령근로자에게도 연금을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목적은 기업과 근로자 간 근로계약이 쉽게 성사되도록 도와주고 고령근로자의 근로소득을 보충해주며 고령자의 근로 인센티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고령근로자의 고용 형태를 시간제 근로(파트타임 근로)로 해서 근로시간을 점진적으로 줄여 나가도록 한다. 즉 지금의‘완전취업→완전퇴직’모형을‘완전취업→부분퇴직→완전퇴직’모형으로 개선하는 것을뜻한다. 이렇게 하면 기업은 고령자의 특성에 맞게 인력을 운용해 고령근로자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고령자는 급작스런 소득 단절 없이 시간여유를 갖고 노후 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6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한 연금 급여액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현행규정상 60세 이상 근로자는 완전노령연금을 일부 깎은 재직자노령연금을 받는다. 고령자 소득 지원과 근로 인센티브 강화를 위해 이 감액 규정을 없애고 완전노령연금 전액을 주자는 것이다.

이상의 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은 내용상‘부분연금제를 지렛대로 한 점진적 퇴직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델은 근로소득이 단계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에서 임금피크제와 닮았다. 하지만 취지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임금피크제에서 근로소득 감소는 정년을 보장해주는 대신 근로자 연령이증가함에 따라 생산성이 감소되는 것을 임금결정에 반영한 결과다. 반면 고령근로 증진모델에서 근로소득의 단계적 감소는 파트타임 근로에 기반해 정년 이후 근로 기간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런 현상이다.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핵심은 부분연금으로 제시 임금과 요구 임금 간의차이를 좁히고 고령자의 파트타임 고용을 유도하는 것이다.

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내용

첫째, 국민연금 급여 조정을 정책수단으로하는 만큼 적용 대상자를 국민연금을 탈 수있는 연령인 55세 이상으로 한정한다. 55세이상의 고령근로 못지않게 큰 문제는 55세미만의 조기퇴직 문제다. 하지만 이는 공적연금의 생계 지원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실업대책 차원에서 별도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문제다. 둘째, 55~59세 근로자는 국민연금에 가입시키지않고 퇴직금 지불 대상에서도 제외한다. 제도 설계를 간명히 하고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셋째, 부분퇴직 시기의 근로 형태는 파트타임 근로를 기본으로 한다. 고령근로의 경우 파트타임 근로가전시간 근로(풀타임 근로)에 비해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근로시간을 어느 정도 단축할 것인지와 근로시간 단축을 몇 단계에 걸쳐 할 것인지 등은 고령자의 특성을 감안하고 기업의 인력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근로자와 기업이 알아서 정한다.

넷째, 적정한 보상을 위해 최저임금 기준을 둔다.‘근로소득+부분연금’형태를 띠는 적용 대상자의 정년후 소득이 정년 전의 60~80%가 되는 선에서 기준을 정한다. 구체적으로 정년 이후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경우는 정년 직전 임금수준의 50%선으로 한다. 정년직전 근로자의 임금이 신규근로자의 2배 정도가 되는것을 감안할 때 이는 기업이 정년 근로자의 고용 연장을통해 신규 근로자 1명 분의 고용 여력을 비축할 수 있음을 뜻한다. 정년 또는 퇴직 이후 다른 직장에 재취업하는 경우는 정년 직전 임금의 30%를 최저임금 기준으로잡는다. 이는 2003년 현재 사무전문직에서 단순노무직으로 옮길 경우 임금이 종전의 60% 수준으로 감소하는것을 감안한 수치다. 한편 60세 이상에대해서는 최저임금 제한을 두지 않는다. 최저임금 기준은 기업이 근로자의 묵인 아래 고용부담을 국민연금에전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섯째, 부분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고소득 고령근로자가 과도한 소득을 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득 상한규정을 둔다. 월 평균소득 예상치(근로소득+부분연금 지급예상액)가 국민연금 가입자 중 최고소득자 수준인 360만원 이상인 경우 부분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월 평균소득 예상치가 360만원 미만이고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치(2005년 현재 149만7,998원) 이상이면 소득대체율이70%가 되도록 부분연금을 지급한다. 월 평균소득 예상치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치 미만일 때는 소득대체율이아무리 높아도 그대로 인정한다. 여섯째, 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적용 여부는 사용자와 근로자 간 개별적이고 선별적인 교섭에 맡긴다. 고령근로자의 활용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장단위로 일괄 적용하는 것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의 선호나 특성에 맞는 근로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의욕을 앞세우다가 성과가 좋지 못할 경우 고령자들의 실망이 커 근로의욕이 반감될 수도 있다.

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효과 분석

고령근로 증진 모델은 △숙련 노동력이 필요한 일부 제조업 부문 △고객 중 고령자의 비중이 높은 서비스 업종△제품이나 제조기술 전환과정에서 사양 부문과 신규 부문이 중첩돼 있는 기업 등 고령근로의 필요성과 기대효과가 뚜렷한 부문에서 좋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55세 이상 60세 미만 근로자에게 부분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면 근로 인센티브가증가한다. 부분연금제 적용으로 소득이증가하는 연간 근로소득 500만원 이상 4,320만원(월 평균 360만원) 미만 고령근로자의 연간 총소득은 국민연금 가입기간 중 평균소득 수준에 따라 30~100% 증가한다. 부분연금 도입 후 55세 이상 60세 미만 근로자들의소득대체율은 평균 70% 안팎으로 상승한다. 예를 들어20년 가입자들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비근로 시 22.8% △부분연금제 도입 전 근로 시57.1% △부분연금제 도입 후 근로 시 69.2% 등이다. 6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재직자노령연금을 완전노령연금으로 대체할 경우 연간 근로소득 500만원 이상 연간총소득 4,320만원 이하 근로자의 소득은 일제히 증가한다. 기업은 고용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고령근로자의 고용 규모와 근로시간,임금 수준 등을 근로자와의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임금률을 노동생산성보다 낮게 책정하거나 종전의 임금률을 유지하는 대신‘연령경영’(Age Management)을도입해 생산성을 높이는 등의 방법이 가능하다.

국민연금의 재정수지 개선 효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55~59세 가입자들이 부분연금제 도입 이전에는 한 사람도 근로를 하지 않고 부분연금 도입 이후에는 전원이 근로자가 된다는 단순한 가정을 하면 부분연금 도입으로국민연금 재정지출 수준은 종전의 63.4%로 줄어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연금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부분연금이 도입되더라도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요컨대 국민연금 재정 개선 여부는적용 연령층의 근로 의욕, 부분연금제의 근로 인센티브제고 정도 등에 달려 있다. 부분연금제 도입으로 인해 연금 재정수지가 악화한다면 부분연금 지급 수준을 낮추거나 지급 요건을 강화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 재직자노령연금을 완전노령연금으로 대체하는 것은 국민연금 재정수지에 분명히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국민연금 재정에 미치는 부작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면 시행 여부나 내용 설계, 시기 선정 등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재직자노령연금 대상자가 상대적으로 부유층이라는 점도 회의론의 한 가지 근거다. 하지만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노후보장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중하위층 고령자들의 근로 복귀가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단 실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는것이 바람직하다.

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 적용 시 고려사항

국민연금 개선 논의가 한창이다. 보험료율과 지급수준조정은 물론 기초보장제 도입 같은 근본적인 구조개혁방안도 토론 대상으로 올라 있다. 국민연금 제도가 개편되면 고령근로 증진 모델의 적용 가능성과 효과가 달라질 것이다.하지만 국민연금 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근로자 입장에서 고령근로는 연금생활과 대체적인(경쟁적인) 관계에 있다. 가능하다면 애써 일하기보다 연금을 타면서편히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한편고령근로 증가는 연금재정을 튼튼하게 해준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자구책 차원에서라도 고령근로 증진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고령근로증진 모델은 이와 관련한 한 가지 문제제기이자 해법이다.‘청년실업도 해결하기 힘든 마당에 웬 고령근로 타령이냐’는 지적도 있을 것이다.고령자와 젊은 인력이경쟁관계에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젊은 인력과 고령자가 경쟁하지 않도록 직무를 설계하고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지금 당장에도 충분히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점을 감안하면 이제 이런 시각을 버릴 때가 됐다.

현재 공급초과인 고용시장 상황이 앞으로 5년여 뒤인 2010년 초면 수요초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그때 가서도 경제 활력을 유지하려면 젊은인력과 고령인력이 공존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이 갖춰져있어야 한다. 이 같은 관행 변화는 하루 아침에는 안 된다. 지금부터 마인드를 바꾸고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모델을 창조해야 한다.한국형 고령근로 증진 모델은 근로자-기업-국민연금(국가) 간의 긴밀한 양해와 협조 없이는 정착할 수없다. 제도와 관행을 바꿔야 하는 부담이 있고 이해 갈등과 모럴 해저드의 소지도 있다.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할 때 정부(국민연금)의 철학과 정책 의지, 기업의 전향적인 자세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겠다.고령화가 돌이키기 힘든 대세라면 현재의 고령사회(Aged Society)는 머지않아‘은퇴자 사회(Retiree’s Society)’로 나아갈 전망이다. 그 때 경제발전의 주역은 젊은이가 아닌 고령자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고령자들이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을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국가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기가 닥친다는 얘기다. 고령화를 쓴 약으로 활용해 제2의 경제도약을 도모하는 안목과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령근로자가 젊은 근로자와 공존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는작업장 및 직무 설계를 서두르지 않고는 고령화의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정책분석그룹 부연구위원,양희승 정책분석그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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