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모니터 보고서

1. 머리말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조약(한일협정)을 체결한지 40주년 되는 해이다. 식민지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60년, 일제의 총칼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동안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우호적 기반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한편에서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으로 심각한 갈등과 반목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한일문제’라는 이름으로 제기되는 과제들은 양국 간 과거사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점에서 기인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일본정부의 망언과 도발이 계속되는 그 뿌리가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졸속으로 체결된 한일협정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한일 간의 비극적 역사 청산을 도외시한 굴욕, 졸속 협정이었다. 협상의 본래 목적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 유산을 청산하고 양국 간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한다는데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수교압력 속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안보 논리를 내세워 협정을 강행하였다. 8억달러의 돈과 맞바꾼 협정은 한일강제병합이 원천무효임을 명시하지 못했고, 강제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보상금 문제부터 일본군위안부, 사할린동포, 문화재 반환, 재일교포의 법적지위, 독도문제까지 논란의 불씨만을 남겨놓았다.

한일협정 40주년을 맞은 오늘, 1965년 협정이 맺어질 당시 언론은 한일관계를 제대로 정립하기위해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또 올해 초 협정관련 문서가 일부 공개됐을 당시 언론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1965년 한일관계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결과가 오늘에 이어지듯 과거 언론의 모습을 반추함으로써 현재 언론의 과제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2. 한일협정 체결 당시의 보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정권은 자유의 목소리를 무력으로 짓밟으며 사회를 강압 통치하였다. 이는 언론에도 예외가 아니다. 군사정부는 회유, 협박, 체포, 구금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언론인을 통제하고 언론사를 장악해나갔다. 1962년 6월 28일 '언론에 관한 기본방침' 발표, 1963년 12월 '신문·통신 등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정, 1964년 7월 30일 ‘언론윤리법안’ 국회 제출 등 언론을 옥죄는 제도가 정착되어가면서 권력에 맞서던 언론들도 점차 할 말을 잃고 정권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며 계엄령이 선포되기도 하는 등 엄혹한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정식 조인되었다. 같은 해 8월 11일 국회 한일특위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비준동의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고 이에 반발해 야당인 민중당 의원들이 총사퇴한 가운데 8월 14일 공화당은 단독으로 한일협정안을 통과시켰다.

굴욕적인 협정 내용과 정부여당의 일방적인 처리는 국민들을 더욱 자극했다. 거리는 연일 정부를 성토하는 학생, 지식인, 종교인들의 시위 인파로 넘쳐났고 박정희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이들을 가혹하게 진압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한일협정의 불합리성을 알리고 비판하기보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① 1965년 6월 22일 한일협정 정식 조인을 전후한 보도

· 조선과 경향 - 피상적 비판과 공허한 대안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사설과 기사의 논조에서 조금 차이를 보였다. 외부기고나 기사의 경우 제목에서부터 한일협정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드러났으며, 사진도 시위대의 입장에 서있는 장면들을 -이를테면 군중의 시위 모습이나 최루탄 세례를 받는 모습,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 경찰에 포위당한 모습들- 주로 실었다. 그러나 신문의 입장을 드러내는 사설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65년 6월 22일자에 <흥정 80일 그 내막>(1면) <독도는 우리 땅이다 - 일본의 정치적 흥정 획책을 고함>(3면 독자논단), <일본과 정부에 할말이 있다 - ①애매한 문구로 국민을 현혹 말라, 배상 아닌 유상·무상이 웬 말이냐 ②반성없는 그들에게 너무나 양보, 경제침략 우려, 주체의식 각성을 ③깨어진 평화선 왜 있다고 우기나, 이젠 독도도 제 영토라고 우길판>(5면 기고문)을 실었다. 23일에도 <일 어선의 남획…어떻게 막을 것인가? - 한일협정조인과 어촌의 표정>(6면), <열띤 거리…절규와 저지의 물결 - 어떤 어린이가 물었다 ‘엄마…왜 데모를 막지’>(7면)와 같은 기사에서는 한일협정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날 사설에서는 “아무리 통탄한들 외교교섭의 시초에 되돌아갈 형편은 물론 못될 것이며, 또한 협정의 내용에 대한 장단의 시비를 벌일 단계도 이미 지났(6/22 사설 <학교 문을 닫고서 조인하는 한일간의 불행>)”다며 돌이킬 수 없는 일로 기정사실화 했다. 또 국회 비준을 남겨놓은 상황에서는 “후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을 확고한 신념에서” 일을 귀결지을 수 있도록 “국회가 당파를 떠난 가운데 충분한 토의를 거쳐 국회의원 각자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서 가부를 결정하여야 한다(6/24 사설 <국회의원들은 양심과 양식으로 한일수교조약심의에 임하라>)”며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는 협정 조인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학교 문을 닫고서 조인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묻기만 할뿐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무거운 운명이 걸려있다”며 의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으나 그들이 어떤 내용과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은 채 현실을 개탄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경향도 다르지 않다. 6월 23일 사설<국가의 장래는 이제 의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 역시 한일협정 정식조인에 대해서 “축하해야할지 또는 슬퍼해야할지 형언키 어려운 심정임을 숨길 수가 없다”면서도 “모든 문제가 민주주의적 틀에 의해 해결”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가결되기까지 충분하고, 그리고 기탄 없는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고만 주장해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경향은 6월 21일 <한일회담 정식조인을 앞두고>라는 사설에서도 “우리는 무엇보다도 한일국교로 인하여 국민 간에 단합이 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 한다”며 ‘민족단결 강화’를 현 단계의 해법으로 내놓아 생뚱맞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 동아 - 협정 체결에 가장 강한 비판

동아일보는 조선·경향과 달리 한일협정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외부기고나 기획기사는 물론 사설에서도 한일협정 내용과 조인 과정상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다.

동아는 6월 21일 사설 <폭로된 「바이·재패니즈」정책의 지도>을 통해 “주체성이 너무나 결핍된 협정초안”이라며 대일청구권 문제와 경제협력 문제를 내용별로 조목조목 지적하고 “우리는 이런 협정초안의 골자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하였다. 협정을 체결한 이후인 6월 24일 사설 <정조인 뒤의 반성>에서는 조인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을사년 당시의 추태를 되풀이”한 것이고 “우리의 대일자세는 완전히 낙제였다”고 종합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동아는 특히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모든 애국적인 운동을 공산오열의 배후조종에 의한 것처럼 취급”하는 색깔론적 행태를 지적하기도 해 돋보였다.

동아는 6월 22일 기획 형식으로 실린 1면의 기고문 <조인직전 - 한일회담 이대로 갈 것인가 ④>에서는 “너무나도 무(無)사려하고 민족적인 자존과 양심이 결여돼 있고 졸렬·경솔하고 독선적이며 옹졸하기 이를 데 없는 현 정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졸속적이고 비굴한 타결을 통해서”, “배상이란 말, 청구권이란 말은 감히 그림자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수치를 천추에 남길 소위 무상원조라는 거지동냥의 더러운 돈, 그것도 겨우 3억불이라는 형편없는 액수”를 “싸구려 흥정처럼 마구 헐값으로 팔아넘겨” 치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글은 “한일조약 일체를 완전한 백지상태로 중단 폐기”하는 것만이 “박 정권과 그 여당세력이 절세의 애국충성을 보일 유일한 길”이라고 하여 협정폐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6월 23일 <경찰의 과잉저지>와 24일 <정조인 뒤의 반성>이라는 사설을 통해 학생과 야당의 시위를 정당한 의사표출로 인정하고 이를 강경 진압하는 정부나 경찰의 대응을 강도 높게 비판함으로써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주었다. 특히 6월 25일 사설 <한국학생을 억제하라는『워싱톤·데일리·뉴스』의 주장>에서는 ‘한국학생들이 일본의 전제적 통치를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당의 조종에 의하여 데모를 한다’고 논평한「워싱톤·데일리·뉴스」지의 사설을 언급하며 “공산통치를 받아본 일이 없는 미국학생들의 반공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되받아치고 “고래로 자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온 “한국 학생을 경찰이 억제하기를 희망 한다”는 주장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시종일관한 탄압책이 비민주적이라고 개탄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협정에 대한 동아일보의 적극적인 보도태도는 다른 두 신문과의 비교에서 잘 드러난다. 예컨대 동아일보가 23일, 사설까지 실어 경찰의 강경진압을 대대적으로 비판한 반면 조선일보는 같은 내용을 2단 기사로 처리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한일 협정 조인과 관련된 각 신문의 설문내용도 차이를 보인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의 내용진단>이라는 제목을 달고 설문에서도 ‘잘된 점’을 물어보는 등 가장 비판정도가 약했다. 반면 동아는 ‘파생할 문제점’을 다시금 물어 협정내용에 문제가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한일협정 체결과 관련된 3사의 설문기사 보도 비교>
경향 6/21 3면 <한일정식조인에 붙이는 우리의 비판 우리의 자세>
①한일협정의 정식조인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그 이유는?
②조인이 된다면 그 후에 우리가 대비해야할 문제점은

동아6/24 4면 <조인 그 뒤 - 우리의 대일자세는…국 운을 좌우할 시점>
①한일간의 제협정이 14년 교섭 끝에 22일 정조인 됐다. 정조인을 계기로 귀하의 소감은 어떠하며 타결된 조약 현안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②이 협정의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게 될 국회에 대해서 특히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여에 부탁하고 싶은 말은? 야에 부탁하고 싶은 말은?
③한일국교정상화로 말미암아 앞으로 파생할 문제점은 어떤 것이며 그 대비책은 무엇인가?

조선 6/253면 <전문가들의 내용진단>
①정식 조인된 협정에서 그중 잘된 점은 어떤 것인가?
②제일 잘못된 점은?
③앞으로 계속 문제될 점은?

6월 22일 <굴욕…줄기찬 반대 속에 14년의 파란곡절에 매듭>, <무엇이 올 것인가, 잃어버린 방향타 - 조인된 한일협정의 문제점을 따져본다>라는 제하로 3면과 4면을 털어서 실은 동아일보의 해설기사도 두 신문보다 심도 있게 ‘한일 간 기본관계 조약과 청구권, 어업관계, 문화재 반환,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문제’ 등을 분석하고 있다.

② 1965년 8월 11일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국회통과를 전후한 보도

· 조선과 경향 - 여·야에 대한 양비론이 주류. 정치권 비판으로 일관

한일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공방이 치열하던 8월에도 각 신문의 태도는 6월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8월 11일, 단독으로 협정 비준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켰고 이에 야당인 민중당은 의원직 사퇴를 결의하며 비준안 저지의 강력한 뜻을 밝혔으나 14일 본회의에서 공화당 단독 표결로 비준안은 통과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야당진영은 의원직을 사퇴하자는 그룹과 원내에서 싸우자는 그룹으로 나뉘며 입장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조선과 경향의 경우 한일협정 자체의 문제는 소홀히 다룬 반면 비준을 둘러싼 정치의 난맥상에 집중하면서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는 양비론을 취하고 있다. 조선의 8월 10일 3면 <최후의 비준 결정 - 여의 강행전략과 야의 저지전략을 분석한다>, 8월 13일 2면 <격랑속의 공백 - 상처투성이 정국을 내다본다>, 경향의 8월 10일과 11일의 1면 기획 <절박한 공방전 - 한일비준 여야의 지상 대결>, 8월16일 1면 <기상도 - 비준 후에 올 정국> 기사 등이 그 예이다.

아울러 조선은 8월 4일 <민중당은 자중지란을 빨리 수습하라>는 사설을 통해 야당의 분열을 부각시키며 “한일문제가 아무리 중차대하기로서니 이 나라의 헌정을 파국으로” 몰아넣을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협정의 비준여부보다도 헌정의 질서와 의회민주주의 명맥”이 더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8월 6일 <의회민주주의의 명맥을 위협하지 말라>) ‘국민투표’를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민주주의를 정상화시키자고 제안하였다. (8/13 1면 <국민투표로 매듭을 짓자 - 파국의 헌정을 구출하기 위하여>). 또 <국회의장의 중재자적 재단이 이제야말로 절박하다(8/10)>, <아집과 자기합리화를 버릴 수는 없는가 (8/12)>등의 사설을 통해 현 시국의 혼란은 ‘아집과 자기 합리화’를 고집하는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지금 긴급히 요청되는 것은 공동이념의 재확립”이요, 이를 위해 냉정히 “이성을 잃지 말고 너그럽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신중한 처사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의 다수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폭압적 힘을 이용해 비준 강행을 밀어붙인 정부의 독선에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직접적, 적극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로지 관에 의해 자행되는 불법들 즉, 정부의 ‘비준 찬성 서명 운동’ 강제 사건이나 대학의 ‘억지 방학’, 데모 학생들을 겨냥한 ‘병무청의 근무소집 영장 발부’ 등에 대해 서 ‘정부 여당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며 자제를 당부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협정 비준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무리한 태도에 대해서도 ‘강행은 안 된다’ ‘일본보다 서둘러 처리할 것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경향신문 역시 <수단의 시비 속에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8/6 사설)>거나 <후한 없는 충분한 토의를 - 여측에 시한완화를 우선 환영하며(8/11 사설)> 등을 통해 ‘자중지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야당의 내분을 부각시키고 국회 안의 여야대치를 비판하며 양비론으로 접근했다. 심지어 현 시국의 문제는 의정단상에서 ‘좀 더 충분히 토의’할 수 있도록 여당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 야당 행동은 부적절하지만 여당이 너그러운 자세로 대화를 해야한다고 짐짓 타이르며 정부 여당의 일방적 행태를 희석시켰다.

또한 경향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제쳐둔 채, 다만 “의회기능이 마비”되고 “한일협정비준문제가 원외로 번져 사태가 악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집중적으로 표현해 본질을 흐리는 태도를 보였다. 예컨대 국회한일특위에서 있었던 여당의 날치기 통과에 대해서도 “한일문제를 원외로 끌고 나오려는 강경파들에게 좋은 구실을 마련(8월 12일 2면 <파국을 모면하는 길은 아직 남아있다 - 특위에서의 날치기 통과를 개탄하며>)”했다고 주장, 비준반대를 위해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는 야당의 강경파가 문제인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여당의 독주 행위에 ‘물타기’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 동아 - 정부·여당의 날치기 통과에 대한 문제 제기

동아는 의회정치의 실종을 우려하면서도, 그 직접적 원인이 된 여당의 날치기 통과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동아는 8월 12일 1면 <여, 비준안 날치기 통과> 제하의 기사에서 ‘비준안 특위 통과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이 야당에서 나오고 있다며 <날치기 표결의 순간>을 담은 사진을 함께 실었고, 8월 12일 2면에서는 <“날치기가 헌정 질서냐”>라는 제목을 달고 박순천 민중당 대표의 인터뷰를 기사화 했다. 한편 야당 측이 제기한 표결과정상의 문제점도 계속 언급하여, 8월 14 2면 <정가산책 - 찬성거수는 불과『5명』, 날치기 통과 법정으로?>에서는 ‘사사오입개헌의 합법성 여부가 두고두고 말썽이 됐었지만 한일특위에서의「8.11 날치기 통과」도 그 표결의 타당성여부를 둘러싸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며 그 내용을 소개하였다.

사태의 해결에 있어서도 동아일보는 정부여당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동아일보 역시 야당의 총사퇴가 불러올 사태를 우려했지만, 공화당에 대한 비판에 보다 무게를 실었고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공화당의 태도변화가 필요함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사태의 원인을 똑바로 짚지 못하고, 난국 타계에만 급급해 ‘야당의 사퇴만은 안 된다’, ‘민중당은 최후까지 의석을 지키라’고 주장했던 조선, 경향과는 뚜렷하게 차별되는 점이다.

동아는 11일 밤의 날치기 통과는 “의회정치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 이자 “의회민주주의의 자살행위”와 다름없음을 강하게 비판하며 (8/12사설 <제 6대 국회의 일대오점>) “사태를 이 이상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공화당이 한일협정비준동의안을 14일까지 일당국회에서 강행통과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명확히 요구했다.(8/13 사설 <현 난국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사태를 더 악화시켜선 안 된다>)

8월 5일 3면에 실린 설문기사 <비준저지 방안 - 각계인사에 묻는다> 에서도 ‘①현시점에서 한일협정비준을 저지할 가장 효과적인 원내 원외투쟁의 방법은 뭣이라고 생각합니까? ②특히 민중당의원들의 의원직사퇴를 위한 탈당 여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져 ‘비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고, 작은 제목도 「총사퇴론 압도적, 아예 심의참여 말라는 주장도, 말만 말고 행동을」이라고 달아 야당의 반대 행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3. 한일협정 문서공개 당시의 보도

2005년 1월 17일, 베일에 쌓여있는 한일 협정의 내용이 40년 만에 밝혀졌다. 일제강점 피해자들이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낸 문서 공개 요구 소송이 수용되면서 한일협정과 관련된 총57권의 문서 가운데 청구권과 관련된 5권이 공개된 것이다.

공개된 문서를 통해 정통성이 결여된 박정희 정권이 일본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양국 간 개인청구권은 소멸됐다고 확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군 위안부, 원폭피해자, 징용 사할린 동포 문제 등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일강제병합이 원천무효임을 명시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본의 식민통치를 합법화할 빌미를 남긴 사실도 드러났다. 한일간의 국교 정상회담이 구걸, 굴욕, 졸속외교였음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협정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일본으로부터 받은 피해보상금을 경제개발에 사용했다는 내용을 부각시켜 당시 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과거청산의 의지가 없었던 굴욕외교의 실상이나 한일조약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기사는 드물었다.

① 조선과 동아 - 군사정부에 면죄부 주기

한일협정에 대한 평가는 양국 정권이 야합해서 팔아넘긴 과거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제 강점하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봉쇄한 채 그 보상금을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전용한 정부의 책임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조선과 동아는 경제적 효과를 부각시키며 현실론, 결과론을 앞세워 박정희 정권의 책임을 외면하는가 하면 문서공개의 배경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물타기를 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협정당시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조선일보는 협정의 역사적 평가에 소홀한 태도를 보이는가하면 청구권 전용에 대해서 불가피한 일인 것처럼 주장해 박정희 정권의 책임을 흐렸다. 조선은 1월 18일 사설 <일제징용 피해보상 법만으로 따질 일 아니다>에서 “당시로선 청구권 자금을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경제발전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더라도”라고 하여 개인청구권자금의 전용을 불가피한 것인 양 주장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졸속·굴욕·밀실’ 등으로 평가되는 협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보도량이 타 신문에 비해 매우 적었다. 반면 현재의 피해자 보상 문제에 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당시 정부의 책임부분을 ‘물타기’하려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 원인과 책임에 대한 규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아의 경우 1월 22일 <기자의 눈/문서공개에서 찾아야 할 역사의 교훈>에서 한일협정 후 정부에서 발간한 백서내용을 인용보도하며 배상금의 사용목적이 “첫 번째는 ‘자금의 혜택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 지역에도 편중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라고 보도하여 ‘배상금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또한 동아는 ‘청구권 자금의 전용이 불가피했고 잘 사용됐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박정희 정권에 정치적 재단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현 시점에서 문서를 공개한 배경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며 의미를 폄하했다. 1월 18일자 2면 <盧정부, 日 우려 불구 ‘과거청산’ 선택>의 기사에서 “한국의 현 정권은 식민지 시대와 군사정권 시대를 대상으로 ‘역사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야당과 보수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인용,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또 21일자 2면 <韓日관련 기록 잇단 공개… 배경 의구심>, 25일자 18면 <朴正熙 친필 正祖 어필 / 광화문 현판 갑자기 교체 왜?> 등의 기사를 통해 “17일과 20일 각각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 5건과 문세광 사건 관련 문서들은 모두 박 전 대통령의 딸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정치적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등을 둘러싸고 그 배경에 의구심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광화문 현판 교체 추진도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며 정치적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조선일보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역사적 과제에 할 말을 다 하지 못한 언론의 모습을 보였다면, 동아일보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965년 언론 탄압이 극심했던 와중에도 정권을 향해 한일회담의 졸속, 굴욕적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던 동아일보는 2005년에는 당시 정부의 선택이 현실적이었던 것처럼 주장, 카멜레온적 변신을 보여주었다.

② 경향 - 한일협정의 역사적 의미 평가

반면, 1965년 조선일보와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경향신문은 2005년에는 긍정적 의미의 변화를 보였다. 경향신문은 문서 공개와 관련해 당시 졸속으로 진행되었던 한일 협상의 내용을 비판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 후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1월 18일 사설 <한일협정 문서공개, 과거청산의 시작>에서 “한국정부가 잘못하고, 일본정부가 무성의”했던 한일회담을 비판하며 “한일협정 문서를 전부 다 공개하고 그 내용 모두에 관해 양국정부가 책임질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청산을 이루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서의 전면 공개까지 요구했다. 1월 18일에는 4개 면에 걸쳐 <박정권 ‘개인청구권’팔아 ‘경협자금’구걸>, <일 “경협조건 증액” 제안에 한국 명분 포기>, <‘돈-과거사’ 맞바꾼 정치적 흥정>, <“한일 야합 결과 … 국민 속였다”> 등의 기사를 실었고 1월 19일 <개인보상 방치 日의 원초적 책임>이라는 기사에서도 협정 체결 당시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요구했어야 할 부분이 많이 누락되었던 점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런 기사들을 통해 역사의식도 없고 정통성도 없는 군사정권의 과오로 인하여 개인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해내었다.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총 4회에 걸쳐 <한일협정 다시보기 - ①한일 민관 공동기금 검토를(1/19) ②미 정치적 개입 책임 물어야(1/20) ③북엔 ‘경협’ 아닌 ‘배상’해야(1/22) ④개발독재에 묻힌 개인보상(1/24)>을 게재, 한일협정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를 시대적 틀 안에서 조명, 구체적 대안까지 제시했다.

5. 맺는 말

일제 강점이라는 엄연한 역사가 존재하는 데 이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채 한일관계가 정상화되리라고 믿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바람직한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서 ‘과거사’는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실의 과제이다. 근래 일본의 우경화가 점차 심각해지면서 언론은 과거사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한다. 그러나 한일 간의 과거사가 바로 정립되지 못한 것은 언론이 제 직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이한 오늘, 한일협정을 둘러싼 신문들의 보도 형태를 비교, 분석, 평가하여 보는 것은 그런 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 믿는다. 한일간의 어두운 과거를 털어내고 양국의 희망적인 관계를 모색하기 위해서, 언론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 해법모색이 필요할 때다.

2005년 7월 1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신문모니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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