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20-50 진입의 의미와 30-50을 향한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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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06-25 12:00
서울--(뉴스와이어)--우리나라가 전세계 일곱번째, 후발 개도국 중 처음으로 20-50 시대에 진입한 것은 한국경제의 역동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지표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혁신과 창의에 기반한 산업구조 고도화와 사회적 자본의 확충을 함께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2012년 6월 23일.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1인당 GDP 2만(20K, K=Thousand을 나타냄) 달러와 인구 5천만(50M, M=Million) 명을 함께 충족시키는 ‘20-50’ 시대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일본(1987년), 미국(1988년), 프랑스·이탈리아(1990년), 독일(1991년), 영국(1996년)에 이어 16년 만에 ‘20-50’ 기준을 충족시키는 일곱 번째 국가가 되었다. 워낙 오랜만에 등장한 20-50 국가여서 다른 여섯 나라가 진입할 당시의 2만 달러와 똑같은 의미일 수는 없겠지만, 구매력평가기준(PPP, Purchasing Power Parity)을 통해 실질가치를 보정하더라도 우리나라는 2010년에 이미 이탈리아(2만9,480달러)보다 높고, 일본(3만3,885달러)이나 프랑스(3만3,910달러)와도 비슷한 수준인 2만9,997달러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당분간은 ‘20-50’ 시대에 새로 진입하는 나라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인당 GDP가 2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 중 20-50 기준에 가장 근접한 스페인의 경우, 1990년대 말까지 4천만 명을 밑돌던 인구가 중남미와 동유럽으로부터의 이주자 급증으로 4천6백만 명까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그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면서 2030년까지도 5천만 명 달성이 어려울 전망이며, 호주(2,380만 명), 캐나다(3,513만 명) 등도 인구증가율이 낮아 인구 5천만 명 도달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 외에 중국(6,191달러), 인도(1,568달러), 브라질(1만1,900달러), 러시아(1만4,774달러), 멕시코(1만531달러) 등은 인구 규모는 크지만 이 인구들의 소득을 모두 끌어올려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하기는 상당기간 어려운 상황이다.

2만 달러와 5천만 명은 강국 진입의 교두보

1인당GDP, 즉 소득 수준뿐 아니라 인구 규모 기준이 중요한 것은 1인당 소득이 높더라도 규모가 작으면 잘살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로 인정받기 어렵고 국외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 발생 시 소외되거나 배제되기 쉽고, 또 자체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전세계에서 1인당GDP 2만달러(20K)가 넘는 국가가 53개국에 이르고 인구 5천만 명(50M) 이상을 달성한 국가도 26개국(Global Insight 2012년 전망치 기준)이나 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킨 나라가 지금까지 단 6개국에 불과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비교적 주요국으로 꼽히는 OECD와 G20 회원국 총 42개 국가를 위 두 기준을 이용해 분류하면 각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A그룹(GDP>2만 달러, 인구>5천만 명), B그룹(GDP<2만 달러, 인구>5천만 명), C그룹(GDP<2만 달러, 인구<5천만 명), D그룹(GDP<2만 달러, 인구>5천만 명)으로 묶을 수 있다.

각 그룹의 면면을 살펴보면, C그룹(총 7개국)은 외교 무대에서 고유의 목소리를 내지만 소득수준이 낮고 시장규모가 작아 경제적 매력은 크지 않은 국가들이다. 이와 달리 B그룹(총 21개국) 국가들은 높은 소득 수준에도 불구하고 전체 규모가 크지 않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중국, 인도 등이 포함된 D그룹(총 8개국)의 경우, 낮은 경제발전 단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인구와 높은 성장성 등으로 인해 글로벌 영향력 면에서는 단연 돋보인다. 그러나 사회적 신뢰도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아직은 개선할 점이 많다. 즉, B~D 그룹 모두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들이지만 세계경제를 이끌어가거나 대표할만한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면, A그룹(총 6개국) 국가들은 시장으로서의 매력이 클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주요 고비마다 중요한 기여를 함으로써 누구나 선진국으로 인정할만한 입지를 구축해왔다.

20-50 국가 고유의 특징

A그룹에 속하는 국가들의 경제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개방과 경쟁’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고 적극적이다. 개방을 통해 국내에 부족한 생산요소(자본, 노동, 기술, 지식 등)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고, 경쟁을 통해 이를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그러나 기초 체력이 약한 상황에서 심한 운동을 하거나 수술을 받으면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개방 역시 그 충격을 감당할만한 능력을 갖추진 못한 상태에서 이뤄지면 산업 기반 붕괴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개방의 충격을 경쟁의 동인으로 삼아 경쟁력 제고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20-50 국가들처럼 그 만큼의 시간을 벌어줄 일정 규모 이상의 내수 시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다양성’에 대한 유연한 태도를 보여준다. 외국 문물을 환영하는 문화적 다양성, 이주 노동자나 결혼 이민자를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인종적 다양성, 새로운 지식이나 생산 방식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기술적 다양성 등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경제 규모가 작을 때는 동질적인 사회의 성장 속도가 더 빠른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경제발전 단계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다음부터는 성장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다양성 확충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양화에 따른 충격, 즉 이질적 현상이나 예상 못한 변수 발생의 충격을 견뎌내거나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만한 다양한 사회적 유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셋째, ‘복원력’ 측면에서도 남다르다. 배가 크면 파도 속에서 덜 흔들리는 것처럼, 한 국가도 규모가 클수록 위기 발생 시 해당 위기를 견뎌낼 완충(buffer) 영역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 산업이 무너져도 다른 산업이 버텨주거나, 과거의 주력 산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화·발전을 준비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넷째, ‘혁신’에 성공한 국가들이다. 모든 혁신은 그 속성 상 거듭된 실패를 통해 이뤄지는데, 규모가 크면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할 그 실패의 한계비용(marginal cost)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소규모 경제에서는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아울러, 규모가 크면 해당 경제권 내에서 생산자와 연구자, 임금 취업자와 창업자 등 다양한 형태로 자발적, 비자발적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혁신을 이뤄낼 물적·인적 자원의 예비 여력 확보가 가능하다. 그러나 규모가 미치지 못하면 거의 모든 생산여력을 현장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20-50 시대에 진입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 동안의 발전 과정을 통해 다른 6개국이 보여준 위와 같은 특징을 얼마나 내재화 하는데 성공했는지 여부이다.

후발 개도국 중 첫 번째 사례

한국의 20-50 진입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후발 개도국 중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킨 첫 번째 국가라는 점이다. 일본부터 영국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6개 국은 20세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산업화를 이루었던 나라들로서 다양한 사업영역이나 지역에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점하는 등 ‘선발 주자’의 이점을 충분히 누리며 20-50 시대에 진입한 반면, 한국은 치열해진 경쟁 환경, 높은 진입 장벽 등 ‘후발 주자’로서의 수많은 불리함을 극복하고 비슷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랑스러워 할만하다. 산술적으로 지금까지의 성장추세를 쭉 유지한다면 앞으로 5년 내에 1인당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해 ‘30-50 클럽’ 진입도 가능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성과를 미리 자축하며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불안 요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 중국경기 침체 등 해외시장 여건이 악화일로인데다 국내 경기 여건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전망들이 늘어나는 모양새다. 1987년 세계 최초로 1인당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고 그 여세를 몰아 5년 만에 ‘30-50 시대’의 문을 처음 열었던 일본이 그 후 20년간 장기불황의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자칫하면 오늘의 축배가 머지 않아 쓰디쓴 독배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한국경제 성공은 집중력의 결과

우리 경제가 짧은 기간 내에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동인은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과 실행력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자원 배분 개입과 산업화를 통해 우리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던 공업화 국가들을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역량을 축적한 민간부문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대열에 발맞춰 뛰어듦으로써 우리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 모두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단시간 내에 자원의 동원과 활용이 가능했으며, 시장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이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두 번째로는 높은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배출된 우수한 인적자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당시의 산업 수요, 즉 제조업과 중화학공업에 걸맞게 표준화된 양질의 공교육 프로그램은 어느 일터에서나 곧바로 활용과 대체가 가능할 정도로 동질적인(homogeneous) 인력 공급 구조 구축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국경제는 이와 같은 풍부한 노동력 공급에 힘입어 임금 상승에 대한 부담 없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했다.

세 번째 동인은 수출주도형 전략의 채택이다.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은 국내시장이 협소한 상황에서 수출산업 육성을 통해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성장전략이다. 현 시점에서는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인도, 브라질 등 규모가 큰 나라들뿐 아니라 우리와 별 차이 없는 아르헨티나, 필리핀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후발 개도국들이 내수 보호를 위한 수입대체 산업화 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결정이었다.

위의 세 가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집중력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즉, 경제발전 초기의 생산요소 부족과 기술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전체의, 혹은 기업 전체의 역량을 집중시켜 우리보다 먼저 공업화에 성공한 나라들의 경험과 선례를 모방, 공유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빠르게 선진경제를 추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성장성과 시장성이 검증된 기술만을 선택하게 됨으로써 개발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였고, 미국이나 독일, 일본 기업들의 방식을 본뜨면서도 인력이나 자본 등 생산요소를 더 많이 투입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으로써 비용 측면의 경쟁우위를 확보했다. 더 나아가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단순한 모방을 넘어 개량을 통해 더욱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등 ‘압축성장’의 전형을 잘 보여주었다.

20-50 진입이 남긴 과제

그러나 남겨진 과제도 적지 않다. 노동시장의 불균형 문제가 그 중 하나다.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산 방식과 교육 과정의 표준화가 심화되었고 이는 곧 사회에 공급되는 인적자원의 동질성(homogeneity)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했다. 그 결과, 사람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는 창의와 혁신, 다양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어가는데 노동시장의 공급이 이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면서 미스매치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우리 경제를 성장시켜온 집중력 기반의 따라잡기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 역시 큰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 경제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 시대에 진입할 만큼 양적으로 발전했고, 우리의 상당수 주력 산업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첨예한 경쟁선상에 놓여 있다. 과거와 같은 게임의 룰, 즉 좋은 선례를 포착해서 빠르고 완성도 높게, 그리고 저렴하게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비용 최소화를 위한 일사불란한 의사 결정과 대규모 생산요소 투입 위주의 성장 방식보다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고부가가치 생태계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해, 해외 일류기업들과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과 산업이 과거의 방식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혁신과 경쟁의 방식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한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려워질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 즉 신뢰, 다양성, 개방성과 같은 무형(intangible) 자산의 축적이 불충분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노동이나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와 경제의 불확실성 제고로 노동과 물적 자본의 투입 규모 자체가 줄어들면서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의 부족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함으로써 비용상승을 초래한다. 사회적 자본이 취약해 노사갈등이 잦다거나, 복잡한 대출규제와 높은 보증비용, 부패와 분배 왜곡 등으로 경제구조의 고비용화를 초래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외부의 평가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이 각국의 경쟁력을 비교 분석한 ‘세계경쟁력보고서 2011~2012’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발전 단계는 대체로 양호하고 특히 거시경제 환경, 시장 규모 등에서는 다른 혁신주도경제(Innovation driven economies)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지만, 제도, 금융시장 발전, 노동시장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는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비효율적 관료주의, 정책 불안정성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국제경쟁력 종합평가기구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평가도 주의 깊게 볼만하다. IM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응집력이나 사회정의, 사회적 차별 등의 지수가 우리나라의 종합적인 국가경쟁력 순위를 밑도는 중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의 2005년 결과에서도 대 정부 신뢰도가 28.8%으로 OECD평균 34.6%에 못 미쳤으며 특히 입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신뢰도는 10.1%에 불과해 OECD 평균인 38.3%를 크게 밑돌았다. 시민들 간의 상호신뢰 역시 낮은 것으로 나타나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10명 가운데 3명만이 그렇다고 대답해(30.1%) 신뢰수준이 높은 북유럽의 스웨덴(68.0%)은 물론이고 중국(52.3%)이나 베트남(52.1%) 등 개도국들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전반적으로 낮은 신뢰수준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점은 신뢰 수준 저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또한 세대별로 보면 경제발전을 통해 20-50 시대 진입을 이뤄낸 주역, 즉 1950, 1960년대에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의 신뢰가 빠른 하락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특히 남자들, 그리고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혁신과 창의에 기반한 산업구조 고도화 필수

20-50을 넘어 30-50, 혹은 그 너머까지 새로운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동안 간과했던 부분들을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 20-50 시대에 진입했던 국가들이 모두 1인당GDP 3만 달러 수준에 도달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역시 저절로 30-50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성장 전략을 재점검해 미래 지향적 생태계를 구축하고, 앞으로의 경제 환경과 트렌드, 산업의 진화 방향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각 경제주체들의 적절한 대응 체계와 전략적 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특히 한국경제의 비교우위 부문인 제조업 경쟁력을 더욱 잘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혁신과 창의가 중요하다. 선진국이나 선진기업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질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나 가치창출의 방법을 고안하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선진국다움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구조, 특히 제조업 중심의 성장 전략에 대한 입장 정리도 중요한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단시간에 따라잡기 위한 방편으로 제조업 중심의 성장 전략을 선택했고, 그 결과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 부가가치 대비 제조업 비중은 30.3%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전기 및 전자기기 제조업이 7.4%로 가장 높고, 금속제품 제조업 5.2%, 운송장비 제조업 4.9%, 그리고 석유, 석탄 및 화학제품 제조업 4.7% 순이다.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IT, 자동차, 철강, 석유 및 석유화학, 조선업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하던 1970년 당시 제조업 비중은 18.5%에 불과했지만 수출 제조업이 경제를 견인해온 40년 사이에 점유율이 10%p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제조업 편중 현상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다른 20-50 국가들 중 그나마 우리나라와 산업 구조가 유사한 일본과 독일의 제조업 비중도 20% 정도에 불과하며, 더군다나 1970년 이후 성장 과정에서 독일은 오히려 제조업 비중이 감소했고 일본은 정체 상태라는 점에 비춰보면 한국의 높은 제조업 비중과 지속적인 확대 추세는 매우 독특한 현상인 탓이다.

이와 같은 제조업 중심의 전략이 지금까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경기 완충 역할이 한층 더 부각되는 추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점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다. 다만, 제조업 내에도 다양한 가치사슬이 존재하는 만큼 고부가가치화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중국, 베트남 등 주변국들과의 경쟁 구도, 향후 한국경제의 인력 및 기술 수급 전망 등을 포괄하는 폭넓고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체 산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관점에서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서비스업이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역량은 선진국에 근접해 있지만, 서비스업의 발전 정도는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 등 빠르게 발전하는 부문도 존재하지만, 외환위기나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할 때마다 영세 자영업 부문으로 대거 인력이 이동하면서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지연되고 있다. 30-50으로의 순조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서비스업 발전을 통해 산업의 균형 발전과 청년들이 선호할만한 일자리 창출, 소비자 관점에서의 새로운 후생 창출 등이 이뤄져야 한다. 제조업을 지원하는 사업서비스, 국민들의 복지 수준과 삶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보건 및 사회서비스 등이 좋은 예다.

사회적 변화 없이는 30-50 진입 기대 어려워

산업구조나 정책 기조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도 함께 필요하다.

먼저 다양성과 창의성을 환영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대규모 수출 제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시대엔 일사불란한 것이 유리했다. 하지만 혁신과 통섭이 강조되는 차세대 산업에서는 다양한 재능,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문제해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적자원의 축적 과정에 대한 검토가 시급하다. 교육 제도 측면에서 미래의 새로운 산업 수요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노동력 공급을 떠맡을 교육 서비스 수요자들 역시 스스로의 선택 기준이나 선호 체계가 아직도 과거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의 방식으로 큰 성공을 경험한 세대가 아직 낯설기만 한 다양성 사회를 받아들이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으로의 개방’에도 초점 맞춰야

변화를 위한 출발점은 개방의 대상과 방향을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기존의 개방이 주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바깥을 향한 개방’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앞으로는 ‘안으로의 개방’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밖에서 들어오는 문화나 지식, 고급인력 등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그 장점을 적극 소화하기 위해서다. 같은 맥락에서 상품시장뿐 아니라 낮은 경쟁력을 이유로 보호하기에만 급급했던 서비스 시장과 인적·문화적 개방에 대해서도 그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3D 직종의 인력 수입을 늘리자는 뜻이 아니다. 해외 고급 인력들을 적극 유치하면 높은 진입 장벽 뒤에서 초과 이윤을 누려온 전문직 집단의 경쟁과 효율화를 촉발시키고, 한발 더 나아가 다양한 사회문화적 유전자들이 모여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원동력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리더십 확보도 필요하다. 국제 사회에서 든든한 우군(友軍)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30-50’ 단계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장점유율 확대뿐 아니라 기술 표준이나 제도 경쟁에서도 앞서 가야 하는데 국제 사회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보다 앞선 ‘20-50’ 국가들도 홀로서기를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늘려왔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다른 선진국들이 갖지 못한 비교우위가 있다. 6·25 전쟁 이후 불과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으로 변모한 빠른 경제성장과 이 과정에서 축적한 정책 노하우는 중소 규모 국가들이 부러워하며 배우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즉,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교류하고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상품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제도와 정책 경험, 미래에 대한 희망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렇게 폭넓은 분야에서 국가 간 협력과 공조가 이뤄진다면 서로 간의 신뢰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국민 다수의 품격이 모여 만들어지는 결과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고 개방 의지를 내세우더라도 정책 노력이 국민들 삶 속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공염불(空念佛)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20-50’ 시대를 넘어 ‘30-50’국가로 순조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자발적이고 다각적인 변화 의지가 무엇보다 선결돼야 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 윤상하 책임연구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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