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뚜렷해진 동아시아 전자강국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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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08-21 12:00
서울--(뉴스와이어)--전자산업은 일본을 비롯해 한국, 대만 그리고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에 이르기까지 동북아 제조강국들의 오늘을 있게 만든 토양이 된 산업이다. 그러나 전자산업의 고부가가치 영역이 조립, 부품, 원천기술, 마케팅 등 다양한 부문으로 옮겨 다님에 따라 동북아 각국의 전자 경쟁력도 세월에 따른 부침을 보여왔다. 일본은 1970년대 미국 전자업계를 초토화 시키다시피 했다. 일본 전자산업의 강세는 후발주자인 한국에 의해 허물어지기 시작해 이젠 몇 개 분야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쇠잔해졌다. 한국도 최종주자인 중국에 밀려 몇 개 분야를 제외하면, 시장 지위가 해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과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원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임 경쟁력이 월등했던 중국으로 설비를 이전해왔다. 그 결과 중국에서 생산된, 중국산 전자제품의 수출시장 지위는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최적화의 결과였지만, 이러한 설비 이전 사례가 늘어나면서 일본과 한국 내에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제품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동북아 전자산업을 둘러싼 사업환경은 적잖은 변화를 겪어왔다. 동북아 전자강국의 상품시장이었던 미국 등 선진국 경제가 위기를 맞자 그 대안으로 중국 인도 아프리카 등 이머징 마켓이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그 중 하나이다. 2011년 발효된 중국과 대만간 사실상의 자유무역협정인 ECFA도 중요한 변수로 등장했다. 중국 전자기업들은 한층 고양된 브랜드 이미지와 해외마케팅 경험 등을 살려, 글로벌시장에의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나타난 동북아 4개 전자강국의 경쟁력 추이,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이후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4개국 전자 교역분야에서 나타난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 변화와 특징적인 현상을 살펴본다.

중국산 전자제품 급상승, 일본 대만 위축. 한국 상대적 선전

동북아 전자산업의 국제분업이 중국을 중심으로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세계 전자산업1 수출시장에서 중국(홍콩 포함)은 이미 2001년에 일본, 한국, 대만보다 월등히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계속 점유율이 높아져 지난해엔 34.2%까지 치솟았다.

이제는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수출시장 점유율을 다 합쳐도 중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자왕국’ 일본의 점유율은 198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하락해, 2009년 한국에게도 추월 당했다. 대만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2000년대 초반에 하락세를 보이다 2009년부터 상승국면으로 전환됐지만, 이는 같은 해 전 친중(親中) 성향인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대표의 대만총통 취임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전자제품을 세분화해 분석해보아도,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지위는 여전히 절대적이다. 중국은 전 품목에서 점유율이 높아졌으며, 특히 백색가전, 소형가전, 컴퓨터 및 주변기기 분야에서 중국산의 부상은 압도적이다. 세 품목 모두 주요 부품의 국별 경쟁력 차이가 미세한 데다 마지막 조립라인에서의 노임 경쟁력이 제품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품목들이다. 점유율 변화에서 나타나듯, 전자응용기기나 전자전기부품 분야에서는 한국과 대만의 약진이 관찰된다.

중국산 전자제품, 선진국 High-Tech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강세

중국산 전자제품은 Low-Tech 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High-Tech 부문에서도 강세를 보이고있다. 미국 통계국이 High-Tech으로 분류한 고급기술제품(Advanced Technology Product)2에서 한 중 일 대만 4개국의 세계 전자산업 수출시장 점유율을 비교해 본 결과, 중국산 고급기술 전자제품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3.3%를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 중국의 점유율이 2.3%도 안되던 것과 비교해 보면 중국의 약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한국, 일본, 대만은 1%이하의 미미한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중국산 고급기술 전자제품의 약진은 세계 최대 전자시장인 미국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미국 고급기술 전자제품 수입시장에서의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2002년 일본을 추월했으며, 그 후에도 매년 늘어나 작년에 44.4%를 기록해 한국산 고급전자제품의 시장점유율 10배, 대만산의 8배에 가까워졌다. 반면 일본은 꾸준히 하락해 6%라는 미미한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과거 일본의 고급기술제품 영역을 중국이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 품목군에서도 중국산 고급기술제품의 부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제품 분야 중 가장 돋보이는 전자제품 분야는 전자응용기기와 의료용전자기기이다. 미국 수입시장에서 위 두 분야의 지난 5개년 연평균 성장률(수입액 기준)은 각각 43.8%와 19.9%로 10개 품목 중 가장 높았다. 전자응용기기는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도 높아 53%를 기록하며 5년 만에 30%p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 그 중 전기신경 자극기, 전자번역기, 미용기기 등과 같은 기타 전자응용기기는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50%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와 같은 중국산 고급기술 제품의 점유율 약진은 선진국 시장뿐만 아니라 차세대 시장 신흥시장에서도 두드러졌다. 분석의 편의상 BRICS(BRICs+S)3의 전자 수입시장을 보면 중국산은 5년 전 대비 4.8%p 증가해 25.6%를, 한국은 0.2%p 상승해 13.5%를 기록했다. 반면 대만은 0.1%p, 일본은 2.3%p 하락해 12.9%, 9.1%를 기록했다.

일본산 전자제품, 광학측정기분야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위축

전자강국 일본을 상징하는 제품 중 하나가 1979년 일본 소니사의 히트작 ‘워크맨(Walkman)’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산 전자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으나, 1986년 정점을 찍었다.4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엔화의 급등세를 이기지 못한 일본 전자기업들의 설비 해외이전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이후 일본산 제품의 수출경쟁력은 품목별로 차례대로 위축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산 전자제품은 부품이나 의료, 광학측정기 등 특수분야에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였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품목별로 글로벌 시장 수출점유율을 살펴본 결과, 광학측정기 분야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산 점유율에 밀린 것으로 나타난다. 2004년에는 반도체, 2005년에는 전자전기 부품, 2009년에는 의료용 전자기기에서 일본산 제품의 점유율 우위는 사라졌다.

의료용 전자제품의 경우 일본 전자기업들이 고령사회인 대규모 자국 시장에 힘 입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육성해온 대표적 전략품목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 의료기기 시장인 미국에서 일본산 의료전자기기의 시장 점유율은 8% 수준으로 2009년 중국에 역전(9%)됐다. 중국의 상승세는 지속돼, 작년 미국시장에서 11%를 기록해 7.4% 점유율에 그친 일본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가고 있다. 다국적 기업이 중국을 생산기지화하고 중국 기업들은 중국 내 의료용 전자제품 시장이 커짐에 따라 성장한 결과이다. 전자왕국 일본의 위상은 이제 광학측정기 분야라는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한 일 대만에 대한 적자 지속

중국은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전자제품부문에서 무역적자를 보여왔다. 다만 중국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시일이 지나면서 강화됨에 따라 그 적자규모는 국별로 차이가 나타난다. 이를테면, 한국과 대만에 대한 적자 규모는 여전히 크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점차 의존성이 줄어드는 추이가 관찰된다. 교역규모 대비로는 대만과의 적자 비율이 높지만 절대 규모로는 한국과의 교역에서 가장 큰 적자를 보였다.

한국은 대중 교역에서 424억 달러의 흑자를 올렸다. 대만이 대중 교역에서 191억 흑자를, 일본이 192억 흑자를 올린 것과 비교해봐도 막대한 규모이다. 이 같은 동아시아 4국간 전자산업 교역흐름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4국간 전자제품교역 추이가 가공단계별로는 어떤 양상을 나타내는지 살펴보자. 교역상품은 가공단계에 따라 1차 산품, 반제품, 부품·부분품, 자본재, 소비재 등 5가지6로 나누어 지난해 중국의 전자 수입시장 구조를 보면, 부품·부분품 비중은 61.6%로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자본재 32.3%, 소비재 3.5%, 반제품 2.7% 순이다.

중국 전자제품 수입시장에서 가장 높은 비중(61.6%)을 차지하는 부품·부분품 수입 시장의 48%는 한 일 대만산 제품이다. 한국, 일본, 대만으로부터 수입한 부품·부분품을 가공 후 자본재 혹은 소비재로 수출하는데, 자본재와 소비재는 중국 전자제품의 총 수출에서 69%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 중국이 3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은 15%뿐이다. 이와 같이 중국은 해외에서 수입한 중간재를 ‘조립 가공’ 하여 최종재를 생산하여 수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 일본 대만에서 부품 수입 후 대부분 이들 이외의 시장에 주로 수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교역 관계를 통해 중국은 세계시장에 중국산 전자제품을 쏟아내며 한국, 일본, 대만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자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속에서 수십 년 동안 철옹성 같았던 한국 전자산업의 대일 역조 개선도 나타나고 있다. 2011년 전자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대일 교역을 통해 34억 1천만 달러의 적자만을 기록했다. 2004년에 기록했던 61억 7천만 달러 적자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특히 2008년을 기점으로 적자 폭이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는데, 이는 2007년 한국이 통신기기 분야에서 일본에 대해 흑자를 올리기 시작하고 반도체 분야에서도 적자가 줄어든 덕택이다.

한국산 전자제품, 중국 수입시장에서 일본보다는 대만과의 경합도 높아져

2011년, 3국의 중국 전자제품 수입시장 내 점유율은 46%에 달하며 여전히 중국 전자제품 시장 내에서 확고한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중국 전자제품 수입시장에서 3국 간 변화 양상은 한국의 상승세, 일본의 하락세 그리고 대만의 소폭 하락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최근 5년 사이에 더욱 두드러졌다. 작년 한 해에 한국산 전자제품의 중국 전자제품 수입시장에서의 점유율은 5년 전에 비해 1.04%p 오른 16.1%을 기록한 반면, 대만과 일본은 2.0%p, 12.3%p 하락하며 각각 14.2%, 15.8%를 기록했다.

중국시장에서 한국과 치열하게 경합하는 국가도 일본에서 대만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7가 특별히 떨어지지는 않았으나 한국·대만간 경합도가 최근 몇 년간 크게 높아진 결과이다. 제품의 가공단계별 수입시장을 보아도 전반적으로 대만과의 경합도가 높게 나온다.

그 중 가공단계별로 경합도가 가장 두드러진 품목은 소비재이다. 지난해 소비재 시장에서 일본과의 경합도는 0.26인데 반해 대만과는 0.77로 훨씬 높은 경합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전자제품 최종 소비재 수입시장이 아직 크지 않은 수준이지만 중국이 내수 위주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면서 중국 내수 시장은 시장기회의 측면에서 주목받는 곳이다. 따라서 이 시장에서 주 경쟁대상으로 대만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하다.

중국의 최종 소비재 수입에서 한국산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5년 사이 7.5%p 상승해 지난해에 12.5%를 기록했다. 반면 일본은 4.5%p 하락, 대만은 3.6%p 상승해 각각 18.4%, 12.3%에 다다랐다. 비록 작년까지 일본의 점유율이 가장 높았지만, 일본의 하락과 달리 한국과 대만은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확보해 나가며 일본의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대만 전자산업의 중국 특수(ECFA 효과), 제한적

대만은 2008년 마잉주 총통 당선 이후 친중 정책노선을 분명히 해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맺었다. 2010년 9월 12일 발효된 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는 대만과 중국간 상품 무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는 등이 골자인데, 중국이 대만산 539개 품목(전자 제품은 총 22개8)에 대해 곧바로 관세를 낮추는 조기수확프로그램(EHP)도 포함됐다(EHP는 2011년 1월 발효).

ECFA 체결 직후 한국과 대만의 대(對)중 주력 수출품목이 엇비슷하다는 점에서 ‘차이완’ 효과를 걱정하는 한국 내 여론이 팽배했다. 발효 후 1년 여 지났지만, 아직까지 대만이 전자분야에서 획기적으로 대중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만의 대중 수출액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지 않았고 EHP품목의 수출액 역시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HP품목 중 전자제품에 대한 3국의 수출을 품목별로 보아도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대만의 대중 수출은 통신기기와 A/V기기 두 분야에서 증가했으나 한국은 소형가전을 제외한 모든 품목9에서 수출이 증가했다. 이와 같이 대만의 대중 수출액이 크게 늘지 않은 이유는 대만산 전자 수입품목에 적용돼온 관세율 수준이 낮았던 데다 이미 많은 대만 전자기업들이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EHP 적용을 받지 않는 기타 전자품목에서도 대만의 중국 특수는 입증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011년 대만의 대중 수출액은 증가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증가폭도 만만치 않았다. 단적인 예가 LCD 수출액이다.

중국은 2009년부터 매년 6월경 LCD 대만 구매단을 파견해왔으나 실제 LCD 구매액은 2009년 34억 달러에서 2010년 53억 달러로 한국산 수출액 증가분에도 미치지 못했다. 심지어 2011년에는 대만산 LCD의 대중수출액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양안간 화해협력 무드가 당장 대만의 전자 수출에 대해 두드러지는 효과를 내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과 대만산 제품의 경합도가 커지고 있고 앞으로 그 영향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양안간 분업을 활성화하는 만큼 수출입 데이터에는 집계되지 않는 시너지 효과가 점차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 정부는 그 동안 집적회로설계와 같은 핵심 전자산업의 기술 유출을 우려해 대만 기업의 중국 진출을 제한해 왔으나 ECFA를 계기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대만 기업들의 대중 투자 규모 한도도 상향 조정했다. 대만 정부가 기술 유출 리스크를 감수하고도 ECFA를 체결한 목적은 바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따른 파급 효과이다.

양안간 관계 개선 이후 대만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2010년), 말레이시아 (2010년), 태국 (2010년), 인도 (2011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 논의도 시작됐다. 지난 7월 대만 경제부가 주최한 ‘FTA 영향’ 좌담회에서 마잉주 총통은 “주변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을 통해서야 한국, 일본과 경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양안의 협력모드는 전자산업은 물론 제조업과 금융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전철을 피해가려면

수출실적 만으로 동북아 4개 전자강국의 경쟁력을 분석할 수는 없다. 생산과 연구개발, 마케팅 등 전 비즈니스 과정이 국제적으로 분업화돼 있는 상황에서 최종적으로 조립라인을 통과한 제품이 역외로 수출되는 과정만을 집계한 국별 수출입 데이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가령 한국 대기업들이 공정기술이나 규모 면에서 경쟁우위에 있다는 디스플레이의 산업체인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대형 패널은 한국에서 생산돼 중국에서 후 공정을 거친 뒤 중국 내 각국 가전업체에 납품된다. 중국에서 생산돼 수출되는 TV의 경우 한국 대만 중국 브랜드의 TV업체 제품이 섞여있지만 통틀어 ‘중국산’으로 집계되는 것이다. 중국산 TV의 수출이 급증한다고 해서, 중국이 TV산업의 맹주로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를 들어 한국 TV기업이 최종 조립을 한국에서 종결 짓기보다 일부 모델을 중국 현지에서 조립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조립’처럼 노동투입이 불가피한 가치사슬은 중국으로 옮겨 수행해야 최종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가치사슬 이전이 오랜 시간에 걸쳐 확대되고 고착되면 어느덧 한국 TV산업의 입지는 점차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전자강국 일본이 이러한 경쟁력 약화를 보여왔고 한국도 중국의 부상이란 세계사적 환경변화 탓에 그 전철을 피해가지 못할 처지이다. 일본 전자산업 교역데이터 추이를 보면, 일본 전자기업들은 노임경쟁력 약화에 대응해 부품산업 경쟁력으로 승부해왔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이 3세계 수출을 크게 늘리는 와중에 대일 적자가 심화된 것도 이 같은 배경 탓이다. 그러나 최근 교역 데이터를 살펴보면, 한국의 대일 적자가 크게 줄고 있고, 특히 A/V분야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일본산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제품들은 상대적으로 선전을 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중국의 원가요소와 막강한 규모 경쟁력을 감안할 때 한국 전자산업도 ‘일본의 전철’을 따라갈 위험은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 대만기업들과의 경합은 더 치열해져 한국 전자기업들은 더욱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이제까지 가공무역기지이자 생산기지였던 중국의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 변화는 바로 중국의 최대 장점이었던 저임 경쟁력 상실이다. 중국 내에서는 동부 연해지역의 임금 상승률이 너무 높아져 이미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중서부로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서부 지역의 임금 또한 가파르게 상승해 중국이 과거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수년 전부터 중국 정부가 가공 수출 대상 품목을 제한하는 등 가공무역을 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앞서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은 부품·부분품이 대부분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부품·부분품 등에 대한 중국의 수입수요는 점차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의 전자제품 최종 소비재 수입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의 대 중국 수출에서의 전략적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 기업들은 저임경쟁력을 위해 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외 나라로의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관련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내 산업환경을 저비용 구조로 바꾸면서 국가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는 노력도 배가해야 할 것이다. 최근 선진국들은 한 국가의 경제에 있어서 제조업 역할에 대해 다시 주목하기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생산기지 이전은 국가 경제 발전의 안정성과 일자리 창출 등의 국가 경제 발전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자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인력과 산업 인프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국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 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보다 국내 산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일본기업의 전철을 피해가는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LG경제연구원 남효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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