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불안한 시대, 불안한 고객을 위한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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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08-26 12:37
서울--(뉴스와이어)--왜 불안에 주목해야 하는가?

철학자이자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저서에서 “우리는 불안을 먹고 불안을 낳으며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불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삶의 조건이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불안이 이렇게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껴안고 가야 하는 삶의 조건이라 해도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영국소재 마케팅회사 JWT가 국가별 불안의 정도와 내용을 측정해 발표하는 불안지수(Anxiety Index)에 따르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불안의 정도가 세계 각국에서 전반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국가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강한 불안(‘매우 불안하다’는 응답자 비중)의 정도가 가장 높은 러시아와 불안의 정도가 가장 낮은 중국의 격차는 응답자 수 기준 6배가 넘는다. 불안을 느끼는 요소도 경제 불안이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힌 가운데 세부 항목에서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국가 경제나 생활비에 대한 불안이 높은 반면 브라질은 의료비와 범죄에 대한 불안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다.

조사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들을 통해 체감되는 수준을 따지면 우리나라의 불안도 낮지 않을 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뽑은 2011년 최고 유행어 1위는 ‘멘붕’이었다. 멘탈(Mental)붕괴의 줄임말로 정신이 무너질만큼 충격을 받은 상태를 의미한다. 다소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쓰일법한 이 말은 최근 유명 정치인이 공식석상에서 사용할 만큼 일상적인 표현이 되었다. 어쩌다 한국인들에게 정신이 위태로울 만큼의 스트레스가 일상적이 되어 버렸을까? 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기분장애, 불안장애를 겪은 사람은 5년 전 대비 26%나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즈지는 지난해 한 기사1 에서 “한국인은 전 국민이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의 상태로 보인다”고 언급하며 급격한 경제 성장에 따른 물질주의와 경쟁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전문기관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올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인들이 다양한 종류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과거 조사와 비교해보면 가계 살림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중은 2001년 54.9%에서 2011년 48.2%로 낮아졌고, 다음해 국내 경제가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 역시 2001년 45.1%에서 2011년 29.1%로 줄어들었다. 성장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높아진 한편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위기가 높아지기도 했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62.3%는 위치정보 관련 애플리케이션으로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불안은 높아지고 또 새로운 불안이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한 사회가 겪고 있는 불안은 그 시대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결핍을 반영한다. 따라서 사회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회의 니즈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멘붕의 유행을 단순히 새로운 신조어 탄생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없는 이유다.

불안과 소비의 관계

흔히 불안이 소비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불안 자체가 소비감소나 위축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불안이 기업에 대한 신뢰, 소비 주체의 구매력에 대한 자신감 저하와 연결될 때 소비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오히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소비가 늘어나기도 한다. 차량 안전에 대한 불안으로 블랙박스를 장착하는가 하면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최근의 불안 이슈에 대처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도 한다. 모바일 보안 솔루션 업체인 어댑티브모바일(AdaptiveMobile)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는 사생활을 지켜주는 앱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불안요소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불안한 심리의 치유를 위해 소비가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1년 일본 대지진 직후 주요 피해지역 인근에서는 명품소비가 전보다 증가했다.

기업의 관점에서 불안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일례로 친환경 제품의 효과적 마케팅 방법을 고민할 때도 관련된 불안 요소가 단서가 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환경 오염과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더 큰 불안요소로 느끼고 있다. 아직까지는 친환경 마케팅에서 환경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부추기는 것 보다 경제성을 강조하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언젠가 환경이 보다 위협적인 이슈로 부각되게 되면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다. 방사능 유출 이후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이 급증한 일본에서 전력 절약을 위한 쿨비즈 운동을 전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일본 NRC(Nippon Research Center)가 2007년 쿨비즈에 대한 인식을 물었을 때 호감도가 상당히 낮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불안의 변화에 따라 동일한 메시지에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북미시장 마케팅 전략도 불안의 성격 변화에 따라 시의 적절하게 적응한 사례다. 10년 전 현대차의 품질 자체에 대한 북미 소비자들의 회의와 불신이 높았을 때는 10년 무상 보증제도라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다가 금융위기의 여파로 미국 내 경제불안과 실업에 대한 불안이 높아졌을 때는 구입 후 1년 안에 구매자가 실직할 경우 차량 반환을 허용해주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현대차는 당시 대부분의 북미 자동차 업체들이 25~50%의 매출 감소를 경험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2.6%의 성장을 기록했다.

안심을 주는 기업의 역할

이처럼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의 본질과 그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기업에게 중요한 기회인 동시에 과제이다.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많은 불안 요인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해결되어 왔다. 첨단 의학 기술은 사람들을 질병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했다. 최근 통신, IT 기술과 결합한 자동차 기술은 기존의 디자인, 성능, 브랜드 중심의 개발 트렌드에서 운전자 피로 감지 시스템이나 차선이탈 방지와 같은 안전성 강화로 진화하고 있다.

한편 오랫동안 행복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사업모델을 연구하고 TED 등에서도 강연해 온 사업가 칩 콜리(Chip Conley)는 인간이 부딪치는 다양한 어려움들이 상당부분 개인의 가치관 문제라고 설명한다. ‘감정 방정식(Emotional Equation)’이라는 그만의 설명 방식에 따르면 불안이라는 감정은 ‘불확실성× 무력감’으로 만들어 진다. 점차 복잡해지고 정보나 타인을 믿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며 이런 상황을 해결할 자신감이나 통제력을 상실한 개인의 무력감이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불안은 새로운 치료 신약 개발과 같은 완벽한 원인제거가 아니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또는 조력자의 역할에 따라 극복될 수 있다. 실제로 기업들은 원인제거 노력뿐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노력을 통해서도 불안을 다루고 있다. 불안과 관련된 수많은 전략들 가운데 사람들을 진정으로 안심시키는 전략은 무엇인지, 흔히 사용되는 마케팅 전략들의 비교를 통해 살펴본다.

① 불안 심리 자극 vs. 불안 심리 해소

사람들의 불안이 높아질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불안심리를 부추겨 소비를 조장하는 공포 마케팅이다. “당신 아이만 늦었어요”와 같이 교육열 높은 학부모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학습지 광고나 노후대비의 어려움을 과장하는 금융사 광고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자사 상품을 사용하면 이런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로 소비자 설득에 효과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공포 마케팅의 문제는 이러한 자극이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해 주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 제품만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경쟁사간의 공방은 고객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당 제품으로 불안 요소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을 때 고객은 더 큰 불안에 빠진다. 결국 불안이 또 다른 불안을 낳고 불신에 빠진 소비자는 대응 노력 자체를 그만둘 수 있다.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도 방사능 공포를 자극한 마케팅이 기승을 부렸다. 그런데 JWT가 일본인들의 불안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방사능 불안보다 사람들을 더 오래 괴롭힌 것은 정보에 대한 불안이었다. 방사능 누출 사건과 관련해 정부와 언론이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 않고 시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신뢰할만한 정보에 대한 갈증과 불안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혼란에 빠진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장 신뢰하던 정보원인 국영방송 NHK에도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게다가 트위터나 믹시(Mixi) 등 대안 정보원이라 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도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해 정보에 대한 불안은 더욱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방사능 오염을 막아준다는 과장된 선전이나 방사능 불안을 자극하는 광고는 장기적으로 불신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막연히 불안을 자극하기 보다는 불안을 해소해 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힐링(Healing)은 불안을 심리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에 공감과 위로로 접근한 사례다. 여행사들도 힐링을 테마로 명상, 요가, 식이요법, 산림욕 등을 엮은 체험 프로그램들을 출시하고 있다. 힐링보다 적극적으로 고객의 자신감을 고취시켜 불안을 해소해주려는 사례도 있다. 규격화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미용, 패션 광고의 홍수 속에서 해당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많은 여성들은 열등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성형 부작용, 다이어트 부작용도 이러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미용 브랜드 도브는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으로 여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대신 일반인들을 등장시킨 광고 캠페인으로 실현 가능한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도브의 캠페인은 비누류 제품 판매가 매년 약 2%씩 감소하는 상황에서 30%의 매출 증가를 기록할 만큼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 씨리얼 브랜드 스페셜 K도 국내에서는 휴가철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상반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여성들이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자신감을 가지게 독려한다. 목표를 단지 체중, 즉 ‘숫자’에 국한시키기보다 ‘살을 빼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공유하게 해 의욕을 고취시킨다. 이러한 전략들은 불안 요인을 완전히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라도 심리적 차원에서 오는 불안증폭요인들을 완화시켜주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② 정보 공개 vs. 솔루션 제공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원하게 마련이다. 생산자에게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는가 하면 고객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자 한다. 일례로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증가한 불안인 식품 안전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언제부터인가 원산지는 물론이고 생산자의 이름을 제품 포장에 공개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과거에는 구경하기도 어려웠던 유기농 제품들이 마트의 별도 코너를 구성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기업이나 기업이 보내는 정보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생산자 공개나 유기농 이라는 강조만으로 불안을 불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심지어 고객들이 제품 구매 시 가장 신뢰한다는 상품후기 조차도 최근 연예인 운영 쇼핑몰 사건에서 불거진 것처럼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정보공개’가 더 이상 고객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님을 말해준다.

불신의 시대, 고객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단순 정보공개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유기농식품 판매 전문매장 홀푸드는 먹거리 불안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푸드 큐레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천연식품뿐 아니라 소스류, 향신료, 가공 식품 및 생활용품까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유기농 제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을 뿐만 아니라 자체 개발 및 생산하는 양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하기도 한다. 유기농 상품에 대한 홀푸드의 전문성이 구축되는 데는 다양한 상품구색뿐 아니라 철저한 품질, 물류 관리도 큰 역할을 했다. 농부와 가공업자가 ‘내가 재배하고 만든 식품이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을 갖도록 유도했고 회사 이익의 일정 금액은 반드시 친환경 농업연구에 재투자하도록 규정했다. 또 농무부(USDN) 인증과 별도로 회사 스스로 식품의 품질 기준을 마련해 일정 수준 이하의 제품은 아예 매장에 나오지 못하도록 퇴출시켰다. 고객이 식품 안전 불안을 떨쳐버리고 믿고 찾아갈 수 있게 한 홀푸드는 지난 20년 간 매출이 100배 이상 성장했고 금융위기로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가 위축된 2008년 이후에도 매년 10% 이상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핸들마이컴플레인(handlemycomplaint)은 다양한 거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객 불만을 해결해줌으로써 정보 부족이나 통제력 부족에 따른 불안을 해소해주고 있다. 이 회사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거래, 계약상의 불만이 있어도 자신의 불평이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다툼에 대한 두려움, 혹은 불만을 제기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이의 제기를 포기하고 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런 고객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거래나 계약을 만들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불안한 고객들은 쉽게 거래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핸들마이컴플레인은 고객의 거래 불안을 해결해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우선 다양한 고객 불만 사항을 처리해주고 이를 통해 고객이 복원할 수 있었던 가치의 20%를 수수료로 받는다. 불만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수수료는 없다. 고객들은 웹사이트에 현재 가지고 있는 불만이 무엇인지 간단히 접수하는 것만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헤어 스트레이트너의 10년 보증 약속을 소비자 과실을 이유로 이행하지 않으려는 제조사와의 분쟁에서부터 85,000달러에 이르는 모기지 이자율 관련 분쟁까지 다루는 불만의 종류도 다양하다. 공통점은 일일이 챙기기에 너무나도 복잡한 규정들에서 고객들이 불만을 느끼고 핸들마이컴플레인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전문성을 가진다. 일상적 거래의 소소한 불만사항들까지 다뤄주기 때문에 법률사무소보다 접근성이 높다. 또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고객 대상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고객 후기 분석을 통해 해당 기업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불만과 그 원인을 파악해 기업측에 고객 만족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렇게 해서 사용 후기 혹은 사용시 불편사항을 토로하는 창구였던 고객 게시판은 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적절한 고객 대응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의 구축은 해당 기업과 거래하는 고객들의 불안을 낮춰준다.

③ 지출 최소화 vs. 손실 최소화

JWT의 각국 불안 비교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국가 경제나 물가와 같은 경제적 상황과 관련된 불안이었다. 특히 많은 선진국들이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요즘, 불황기 불안과 관련된 다양한 전략이 쏟아지고 있다. 불황기에 가장 많이 눈에 띄면서도 조심해야 하는 전략이 가격 전략이다. 불황기에는 무조건 싼 제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 소비자들은 여전히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다. 금융 위기 이후 경제 불안 심리가 높아진 미국에서는 소비의 각 분야에서 더 싼 제품, 브랜드를 찾는 트레이딩 다운(Trading down)이 확산됐다. 반면 미국 못지않게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멕시코는 트레이딩 다운이 훨씬 낮았고 특히 교육 분야의 지출은 줄지 않았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신뢰할만한 브랜드가 많지 않아 저가 상품을 구매했다 실패할 위험에 사람들이 더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불황이어도 생활비에 대한 불안보다 상품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더 높아 불황기의 전형적인 소비 패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더구나 소비자는 종종 가격으로 그 상품의 가치를 판단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생각하고 비싸면 가치도 높을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생각한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고가의 와인은 저가로, 저가의 와인은 고가로 가격을 바꾸어 알려주고 테스트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피험자 전원이 사전에 비싸다고 정보를 받은 와인이 더 맛있는 와인이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불황기라고 무조건 가격을 내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소비자의 지출 최소화보다 소비자가 구매를 주저하는 근본적인 불안을 이해하고 예상되는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고객이 미래에 불안을 느낄 때는 고가의 제품이나 장기간 상환이 필요한 상품에 대한 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에 대응해 앞서 언급한 현대자동차의 사례와 유사하게 실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는 전략을 활용한 기업들이 있다. 스페인 최대 통신사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고객이 실직하면 한 달에 최대 20유로까지 통신비의 50%를 환급해주는 캠페인을 펼쳤다. 이스라엘 보험사 AIG는 고객이 실직하면 고객의 주택담보대출금을 1년간 상환해 주는 보험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제품을 구입한 뒤 가격이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더 싸게 파는 곳이 있지 않을까 불안한 고객들의 심리를 파악해 독특한 가격 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있다. 온라인 여행사 오르비츠(Orbitz)는 고객이 자사나 혹은 타사 사이트에서 동일 상품에 대해 더 저렴한 구입가를 발견한 경우 차액만큼 변상해주는 제도를 운영했다. 의류 브랜드 갭(Gap)은 고객이 제품을 구입한 뒤 45일 이내에 가격이 떨어지면 스프라이즈 카드(Sprize Card)라는 고객 카드에 차액을 포인트로 적립해주기도 했다. 이와 유사하게 국내에서도 현대아이파크몰이 세일기간 직전에 정가로 물건을 산 고객에게 전화나 문자 서비스를 통해 정보를 주어 세일가를 적용 받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러한 전략들은 고객의 구매가 잘못된 선택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으로 보장해주거나 혹은 최소한 고객의 불안을 공감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 시대를 비관적으로 묘사할 때 불확실, 불안, 불신의 3불 시대라는 말을 쓴다. 에델만이 매년 조사하는 국가 신뢰도 지표의 2012년 결과는 조사 시작시점 이래 최하점을 기록했다. 경기불황이나 자연재해라는 원인이 있기도 했지만 일본이나 미국도 위기 상황에서 들통난 리더들의 무능력과 배임행위로 심각한 신뢰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개인의 역할이 부분으로 축소된 오늘날의 분업화된 구조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상황을 개선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의 무력감과 이로 인한 각종 불안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소비 차원으로 문제를 국한시켜도 마찬가지다. 불확실, 불안, 불신이 팽배한 소비 환경에서는 기업이 전개하는 어떤 캠페인이나 정보도 상술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쇼핑을 저렴한 가격과 편리한 가격비교 때문에 이용하지만 정작 가장 최저 가격을 제시하는 사이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은 10%밖에 안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객은 익숙하고 신뢰가 가는 사이트에 더 많은 프리미엄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이 더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주어진 정보조차 믿을 수 없기 때문이며 문제를 제기해도 기업이 달라질 것이라는 신뢰가 없을 때 고객들은 무력하다고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에 대한 불안을 느끼지만 정작 금융권에서 제공하는 금융상품을 통해 노후준비를 하는 고객들의 비중은 높지 않다. 당장의 여유자금 문제도 있지만 신뢰의 문제도 크다. 많은 사람들이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도 여전히 전문 기관을 통한 투자보다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불안한 고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신경안정제는 신뢰다.[LG경제연구원 정지혜 책임연구원]

*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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