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자원문제에 관한한 세계는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위기(Oil Shock)와 91년 걸프전 이후 10여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려왔다.
2차 석유위기와 걸프전 당시의 국제유가는 비록 3∼6개월만에 4배 가까이 폭등했으나 전쟁이 종료되면서 원 위치로 돌아왔다. 작년에는 과거와 달리 국제 원유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었고, 유가 인상요인으로 작용했던 이라크전이나 러시아 유코스(Yukos) 사태도 오랜 기간 동안 영향을 미칠 정도로의 악재는 아닌 것으로 인식됐다.
세계 원유생산의 13%를 차지하면서 OPEC의 좌장격인 사우디의 알 나이미(Al Naimi) 석유장관도 지난해 2월 방한 기자회견에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24불에서 27불 사이를 유지할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작년 3월 국제유가는 배럴당 30불을 넘어서기 시작했지만 세계 각국은 이를 쓰나미처럼 일시적인 현상으로 이해했다.
우리도 93년 동력자원부를 없애면서 자원 문제에 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지내왔다. 더욱이 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자본 회임기간이 10년 이상 장기이면서 위험부담이 큰 해외자원 개발부문을 축소하거나 아예 싹을 잘라 버렸다.
그러나 유가는 작년 5월 배럴당 40불을 넘어섰다. 하반기부터는 OPEC의 증산 결정에도 불구하고 50불을 넘나들다가 최근 들어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는 60불대를 넘어섰다. 끝 모를 고유가 행진이 세계 경제를 강타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자원외교’의 전장…자원확보에 국가역량 총동원
세계 4위 석유 수입국이자 세계 10위 에너지 소비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작년 한해 하루 220만 배럴, 연간 8억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수입에만 2003년 383억불에 비해 113억불이나 늘어난 496억불을 썼다.
또 에너지 비용이 제조업 원가의 평균 2.2%를 차지하고 있어 고유가는 기업의 원가상승을 초래해 유가가 배럴당 10불만 상승하면 무역수지도 80∼100억불 적자요인이 생기게 된다. 승용차를 보유한 가계는 휘발유가 소비지출의 9.2%에 달해 고유가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압박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지분참여 아래 석유를 개발하는 자주개발률은 작년 말 기준으로 3.8%에 불과한 실정이다. 프랑스 87.7%, 이태리 44.9%, 일본 10.3%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으로 치열해져 가는 에너지 전쟁에 취약함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석유 사용을 줄이고 태양열·풍력·바이오 등 새로운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것은 고유가 시대뿐 아니라 기후변화 협약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인 것은 세계 10위 경제국, 12위 무역국에 걸맞는 안정적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방안의 마련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작년 9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자원외교에 앞장서 상당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리 쉽고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카자흐스탄 순방 중 카스피해 석유광구에 대한 한국의 개발 참여에 관한 의정서(Protocol) 서명도 양국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집요하게 요청해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양측은 지난해 3월부터 협의해 왔으나 다음 순방국 러시아로 출발하기 몇 시간 전 쉬콜닉 에너지광물부 장관은 국영석유회사 사장이 의정서에 반대하니 서명을 미루자고 해 우리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정상 간 협의가 있었음을 끈질기게 지적하며 오늘 서명되지 않으면 양국의 신뢰에 문제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 끝에 출발 불과 2시간 전 서명할 수 있었다.
특히, 카스피해의 잠불 광구는 노 대통령의 집요한 요청에 따라 카자흐스탄 국내법상 1개국 1광구 원칙을 깨고 2개 광구를 1개 광구로 병합하여 서명함으로써 잘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개발한 원유량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러시아에서도 양국 정상 임석 하에 양국 국영석유회사 사장이 캄차카 지역의 유전개발 계획에 서명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국영석유회사(Rosneft) 사장에게 “한국과의 공동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져 한·러 자원협력은 탄력을 받고 있다.
작년 10월 초 인도 방문 때에는 포항이나 광양과 같은 일관 공정이 아니라 슬라브까지만 생산하는 제철소의 건설을 정상회의 주요 의제로 올린 결과, 올해 6월 굉장히 유리한 조건으로 인도내 6억톤의 철광석 개발권을 포스코에 주는 양해각서(MOU)가 서명됐다. 이로써 연간 약 4400만톤의 철광석 모두를, 특히 그중 65%를 호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철광석 수입선을 다변화할 수 있었다. 호주는 2010년부터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사인을 보내며 올해에는 가격을 100% 올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브라질 순방 때에도 자원외교 덕분에 SK(주)는 BMC-30 및 32광구의 탐사계약에 서명했고 포스코는 브라질의 최대 자원개발회사인 CVRD사로부터 향후 10년간 총 1억톤의 철광석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의 수차례 회담에서는 한국의 원전기술의 우수성을 설명하여 지난 4월 우리기업이 최초로 중국 원전 건설에 원자로 및 증기발생기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줄잇는 ‘세일즈 외교’…정상 간 의사결정 방식이 가장 효율적
자원을 둘러싼 외교전쟁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중국과 일본은 러시아 유전개발과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을 둘러싸고 엄청난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앞장서 중남미, 러시아, 아프리카 등에 이르기까지 총력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 3위 국영석유회사인 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미국 8위 석유회사인 유노칼(Unocal: Union Oil Company of California)을 185억불 (쉐브론은 165억불 지불 제의), 그것도 협상을 진행 중이던 미국 2위 쉐브론 텍사코에 5억불의 위약금 지불을 포함해 전액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인수하겠다고 발표, 미국의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경제전쟁 시대에 정상외교의 중요성은 매우 자명하다. 첫째, 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의 자원보유국들은 자원개발과 기간산업(플랜트) 건설을 국가 전략과제로 간주해 정상이 직접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들 국가들은 대개 행정절차가 복잡해 최고위층의 의사결정(Top-Down)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기업들이 자원개발이나 발전설비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1∼2년이 소요되나 고위 관리, 특히 정상의 관심 속에 진행되면 그만큼 협상이 빨라지게 된다.
셋째, 최근 들어 정상회의 성격이 안보중심에서 경제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기업인들도 정상회의와 연계할 경우 상대방 카운터파트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지난해 중국과 미국을 방문하며 400명이 넘는 기업인이 수행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도 중국 방문 때 300명이 넘는 기업인을 대동했고, 후진타오 주석의 브라질 방문 때에는 200여명의 기업인이 동행했다.
바야흐로 정상들의 세일즈 외교가 줄을 잇고 있다. 무역의존도 70%, 에너지 해외의존도 97%인 우리나라가 나가야할 길도 자명하다. 경제외교, 자원외교에 대통령이 앞장서고 국민은 힘을 모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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