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TV와 방송시장에 한 걸음 더 다가선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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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09-11 12:00
서울--(뉴스와이어)--지금까지 애플의 제품 전략은 콘텐츠 산업과 밀접히 관련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의 TV 사업 진출은 TV 제조 사업자뿐 아니라 방송 시장에까지 미치는 파급력이 클 전망이다. 방송 시장은 애플이 지금까지 접해 왔던 콘텐츠 시장들과는 규모와 견고함에서 차이가 난다. 이 문제를 애플은 유료방송사업자와의 제휴라는 현실적이면서도 영리한 방법으로 풀어내려는 듯하다. 애플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ICT 산업의 경쟁 환경은 또 한번 달라질 것이다.

애플(Apple)의 TV 시장 진출에 대한 소문과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애플은 이미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것과 같은 날 ‘애플TV’라는 이름의 셋톱박스(Set Top Box) 형태 제품을 출시했다. 그리고 일부 기능과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면서 2010년 9월과 2012년 3월에 각각 2세대, 3세대 애플TV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역시 셋톱박스 형태였다. 애플의 TV 사업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과연 애플이 기존의 셋톱박스 형태가 아닌 완제품 형태의 TV를 출시할 것이냐는 것. 또 하나는 애플이 TV 사업과 밀접한 방송 콘텐츠 시장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이 같은 관심은 TV 사업과 관련해서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언급했다는 “I finally cracked it”이라는 미묘한 뉘앙스의 말과 맞물리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상상력을 무한히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소문이 등장했다. 애플이 TV 사업을 위해서 미국의 유료방송사업자들과 제휴를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애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자와 어떤 내용을 논의했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애플의 전략적 의도와 향후 움직임을 예측해 보는 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로 혁신의 아이콘 애플이기 때문이다.

애플의 TV 시장 진출은 방송 시장 변화의 신호탄

● 완제품 TV 출시 여부는 애플의 전략적 판단의 이슈

애플의 TV 사업에 대한 첫 번째 질문. 애플은 과연 완제품 형태의 TV를 출시할 것인가? 여기에는 또 다시 두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애플이 과연 완제품 TV를 만들 수 있을 것이냐는 애플의 제조 역량에 관한 조건, 그리고 애플에게 완제품 TV가 정말 필요한 것이냐는 전략적 의도에 대한 조건이 그것이다.

애플의 제조 역량에 대한 첫 번째 조건은 쉽게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TV라는 제품의 생산 공정이 모바일 기기와 다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웃소싱을 통한 TV 생산이 보편화되면서 이제는 중국의 텐센트(Tencent)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도 자체 TV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플이 지금까지 하드웨어 기업으로서 보여줬던 제품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의 강점은 기존 사업자들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것이었다. 애플이 일본 디스플레이 업체로부터 대형 패널 수급을 논의중이라는 소문, 그리고 자체 유통 채널인 애플 스토어(Apple Store)를 활용할 경우 유통 비용 절감을 통해 기존 TV 제조 업체들보다 수익성에서 앞설 수 있다는 예측들은 일단 차치해도 좋다. 이미 아이폰을 통해서 노키아, 모토로라와 같은 전통 휴대폰 강자들을 넘어선 애플에게 단지 생산이 어렵기 때문에 TV를 출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설은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애플의 전략적 의도를 생각해봐야 한다. 애플에게 TV라는 제품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생태계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와 TV 디스플레이 간의 연동이 가능한 인프라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에어 플레이(Airplay)를 활용한 미러링(Mirroring) 기술은 사용자가 모바일 기기로 감상하던 콘텐츠를 손쉽게 TV로 전송하여 대화면으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아이폰을 TV 리모콘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출시되어 있고, 아직은 개념적이지만 시리(Siri)의 음성 인식 기능을 통해서 TV를 제어하는 모습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용 환경이 하드웨어 성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완제품 TV와 함께라면 더욱 완성도 높게 구현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폐쇄적인 OS 정책을 유지하면서 애플이 꾸준히 추구해왔던 방향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화학적인 결합을 통한 사용자 경험의 혁신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애플이 지금 당장 완제품 TV를 출시할 것이냐는 논의는 소모적일 뿐이다. 완제품 TV를 만들어낼 수 있고, 만들어야 할 유인이 있는 한 애플에게 완제품 TV는 사업의 성숙도에 따라 언제든 취할 수 있는 옵션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애플의 콘텐츠 DNA와 방송 시장

애플이 지금까지 ICT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드웨어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 이를 통해 콘텐츠 사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물러난 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해 픽사(Pixar)를 설립한 것은 의미가 크다. 스티브 잡스는 10년 간 6천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서 픽사를 할리우드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콘텐츠 산업, 그 중에서도 특히 복잡도가 높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사업 방식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연구하는 재닛 와스코(Janet Wasko) 교수는 할리우드를 ▲이윤 추구 ▲권력 관계 ▲정보 결핍의 시장으로 해석했다. 흥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이익의 기회를 극대화해야 하는 시장, 소수의 제작자와 스타에 의해 게임의 룰이 지배되는 시장, 객관적인 데이터가 아닌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판단에 근거해 비즈니스가 유지되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시장 구조는 1 더하기 1이 반드시 2가 되어야만 하는 제조 산업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다. 스티브 잡스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과 몸소 부딪히면서 체득한 콘텐츠 DNA가 애플이 콘텐츠 산업을 경쟁자들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애플은 콘텐츠 사업자들을 자신의 생태계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애플이 아이튠즈(iTunes)를 출시한 2001년은 냅스터(Napster)로 촉발된 P2P 음원 공유 사이트들로 인해 음반사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던 시기다. 아이튠즈는 디지털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길이 되었고, 음반사들은 아이팟(iPod)이라는 제품의 생태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아이폰을 통해서 세상에 등장한 앱스토어(App Store)는 이전까지 마땅한 유통 창구가 없었던 군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혁신적인 채널이 되었다. 두 경우 모두 콘텐츠 사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면서 자신의 생태계를 완성해가는 애플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제 애플이 TV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접근해야 하는 대상은 방송 콘텐츠 시장이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애플이 지금까지 접했던 콘텐츠 사업자들과 처한 환경이 다르다. 비록 전통적인 TV 광고 시장이 위축되고는 있지만 지금의 ICT 환경은 메이저 방송사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온라인, 모바일에서의 콘텐츠 유통 창구가 늘어나고 스마트 디바이스 사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욕구가 강해지면서 프리미엄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말 그대로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과거 애플이 어떻게 음악 시장과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 주도권을 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학습되어 있는 상태다. 애플이 지금까지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모바일 디바이스에 비해 TV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방송사들을 애플에게 유리하도록 움직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송 시장은 애플이 TV 사업을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애플의 묘수?

● 세 가지 접근법, 세 가지 시나리오

비밀주의를 추구하는 애플의 미래 전략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방송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 애플이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세 가지 정도로 예측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방송사들로부터 애플이 직접 실시간 방송 채널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TV 사용자들의 사용 경험 측면에서 가장 혁신적인 모델 구사가 가능하다. 애플이 확보한 방송 채널 중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채널들을 선택하고, 애플은 그 채널들의 묶음에 애플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더해서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코스 요리 중 원하는 음식만 골라서 먹는 알 라 카르트(A La Carte) 메뉴가 방송 서비스에 접목되는 것이다. 이 경우 기존 IPTV, 케이블TV에서와 같은 채널 번들링(Bundling) 모델은 와해된다. 아이튠즈를 통해서 패키지 형태의 음반 시장이 변화된 것과 같은 식이다. 인기 있는 채널을 소유한 방송사들은 채널별 가격을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유료방송사업자라는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전체적인 서비스 비용의 절감을 기대할 수도 있다. 방송사와 사용자들에게 진화된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제공하면서 애플의 협상력은 급격히 상승할 수 있다.

두 번째 옵션은 애플이 방송사가 아닌 유료방송사업자들과 제휴하는 방법이다. 콘텐츠 서비스 모델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유료방송사업자에 대한 정의는 모호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유료방송사업자는 일정 대역이 보장되는 전송 네트워크를 통 해서 가입자들에게 번들링된 채널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사업자들을 의미한다. IPTV사업자, 케이블 사업자, 위성방송 사업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애플이 이런 유료방송사업자들과 제휴할 경우 방송 시장 내에서의 급격한 혁신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소비자와의 접점을 여전히 유료방송사업자들이 통제하는 한 지금과 같은 번들링 형태의 서비스 모델도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을 통해서 애플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시간적, 금전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료방송사업자들의 가입자들을 애플의 잠재적인 TV 구매 고객층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마지막 옵션은 지금 애플이 취하고 있는 전략과 동일하게 방송사들로부터 실시간 방송 채널이 아닌 VOD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방법이다. 실시간 방송 채널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 TV 사용 경험 측면에서의 혁신은 제한적일 것이다. 철저하게 린 백(Lean Back)형 제품인 TV에서 사용자들이 큰 가치를 두는 것이 바로 실시간 방송 채널이기 때문이다. TV에서는 단지 외부 입력 버튼을 통해서 실시간 방송 화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조차 사용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이 이미 경쟁력 있는 수준으로 확보하고 있는 방송, 영화 VOD의 양을 더욱 늘리고, 애플 고유의 강점인 사용 편의성 측면에서 TV라는 제품을 진화시켜 나갈 경우 사용자층은 두터워질 수 있다. 그리고 방송 시장 내 애플의 협상력도 서서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 이상을 품고 현실을 바라보다

그러면 TV 사업과 관련한 애플의 최근 움직임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애플과 미국 유료방송사업자 간의 제휴. 그것은 물론 소문에 그쳐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애플이 현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상당히 효과적인 옵션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애플은 대부분의 제품 전략에서 사용자 경험의 혁신과 콘텐츠를 소유한 사업자들과의 직접적인 생태계 구축을 지향해 왔다. 전략적 일관성의 측면에서 볼 때 TV에서도 애플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옵션은 아마도 방송사들로부터 채널을 직접 수급하는 알 라 카르트 방식일 것이다. 이는 비단 애플뿐 아니라 콘텐츠 플랫폼을 꿈꾸는 모든 사업자들에게 이상적인 목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이 방송 시장에서만큼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 가지 이유는 콘텐츠를 소유한 방송사들과 유료방송사업자들의 오랜 제휴 관계에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방송사들의 콘텐츠 소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사,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중요한 수익원이다. 최근 미국 라자드 캐피털(Lazard Capital)의 조사 결과를 보면 디즈니(Disney) 그룹의 경우 시청자들의 실질적인 채널 선호도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에 비해 65% 이상 많은 금액의 전송 수수료(Affiliate Fee)를 유료방송사업자들로부터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인기 채널과 비인기 채널을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송 시장의 오랜 관행, 그리고 콘텐츠에 대한 객관적인 금액 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산업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 미국의 경우 방송사들이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판매하는 콘텐츠 금액은 해마다 평균 8% 수준 인상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처럼 확실한 수익원인 유료방송사업자와의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애플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와 직접적인 거래를 시작할 이유가 아직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유료방송서비스를 통해서 사용자들이 만족스런 가치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OTT 사업자인 넷플릭스(Netflix)가 미국 최대 케이블 사업자인 자컴캐스트(Comcast)의 가입자수를 추월하고, 국내에서도 푹(pooq), 티빙(TVing)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가입자들이 유료방송서비스를 해지하는 코드 커팅의 확산에 대한 전망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콘텐츠 소비자들은 유료방송서비스에 가입되어 있고, 유료방송서비스는 소비자들에게 콘텐츠 소비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비용을 절감시켜주고 있다. 리서치 회사 바클레이스(Barclays)의 분석 결과는 OTT 사용에 적극적인 소비자들이 유료방송서비스를 해지하고, 기본적인 네트워크와 온라인 서비스만을 활용해 방송을 시청할 경우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유료방송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을 때에 비해 10% 수준에 불과한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OTT 서비스로 방송을 시청하는 데 필요한 개별 사이트의 아이디 관리, 콘텐츠 검색에 필요한 시간 등의 숨겨진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유료방송사업자는 시장 내에서 방송사 진영이나 소비자 진영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깨지기를 원하는 시장 참여자는 아직 많지 않다. 최근 애플의 움직임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존 사업자들의 거부감 없이 시장에 스며드는 방법을 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애플로 인한 또 한번의 변화?

● 유료방송시장 내부의 변화 동인

애플이 유료방송사업자의 보유 자산 즉, 실시간 방송 채널과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어떤 제품을 선보일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료방송시장 내부에서도 변화에 대한 동인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혁신적인 그 무언가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다. 이미 주요 국가에서의 유료방송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으며, 앞으로도 급격한 가입자수 증가와 ARPU 상승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방송에 비해서 선전하고 있는 IPTV 사업 모델도 방송 서비스의 본질적인 우월성보다는 모바일 서비스와의 번들링이라는 실용적 가치가 사용자들에게 소구되는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반면 유료방송사업자들이 방송사들에게 지불하는 콘텐츠 소싱 비용은 해마다 인상되고 있다. 2024년경에는 지금 유료방송사업자들의 사업 모델이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 결과도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유료방송사업자는 외부와의 제휴를 통해서 기존 사업 모델의 진화를 시도해볼 유인이 존재한다. 특히 제품 경쟁력과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강점을 보유한 애플과의 결합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옵션이 된다.

● 생태계 참여자들, 본질적 가치로의 회귀

애플의 TV 사업 추진과 관련한 본질적인 질문은 애플이 과연 방송 콘텐츠 시장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는 애플로 인해 ICT 산업 환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라는 물음과 직결된다. 물론 여기에서의 전제는 애플이 유료방송사업자들과 혁신적인 제휴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을 경우에 한할 것이다. 향후 전망을 ICT 시장 참여자들인 ▲유료방송사업자 ▲방송사 ▲TV 제조 사업자 관점에서 예측해 보자.

유료방송사업자, ‘네트워크 가치의 재발견’

먼저 유료방송시장을 생각해 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방송사로부터 콘텐츠를 수급해서 사용자들에게 번들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모델은 유료방송사업자들의 본질적인 사업 역량인 동시에 위기 요인이다. 대표적인 OTT 사업자인 넷플릭스가 2011년 말 위기를 겪었던 사례는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지 않은 사업자가 제 3자의 콘텐츠를 활용하는 사업 모델이 지닌 본질적인 리스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장기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본연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사업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 스마트TV의 하드웨어 성능은 고사양의 게임과 같은 애플리케이션 구동이나 웹 서비스의 활용 면에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유료방송사업자 입장에서 디바이스와의 결합은 기존 셋톱박스가 지닌 하드웨어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고, 웹 기반의 사업 기회를 풍부하게 해주는 기회 요인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네트워크 기술이 진화하고, 망중립성과 같은 규제가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유료방송사업자들이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수익 창출을 모색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방송사, ‘시청자와의 진화된 양방향성’

유료방송사업자들이 디바이스와의 결합을 통해서 방송 서비스가 아닌 본연의 네트워크 가치에 집중하게 될 경우 방송사와 시청자들 간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이는 방송사 관점에서 위기일 수도, 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로부터 콘텐츠 재전송료를 받는 안정적인 수익 모델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위기 요인이다. 하지만 디바이스와 네트워크가 결합된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서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게 되는 것은 방송사 입장에서 충분히 기회 요인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디바이스 센싱 등을 통해서 지금까지는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시청자와의 양방향성을 기반으로 한 방송 제작이나 마케팅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방송사들의 플랫폼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약해진 것은 결국 소비자와의 접점이 유료방송사업자들로 이동한 이유가 크다. 향후 방송사 간의 경쟁 구도는 진화된 플랫폼과 IT 환경을 누가 더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TV 제조 사업자, ‘TV로서의 스마트 TV’

글로벌 TV 제조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스마트TV는 2013년까지 전체 TV 시장의 33.7%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들이 가치를 느끼는 진정한 ‘스마트’ TV로서의 모습은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식적인 데이터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스마트TV에서 제공되는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사용률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애플이 유료방송사업자와 결합하는 시나리오는 TV를 통해서 모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것 외에 디바이스 본연의 가치에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까지 디바이스 본연의 가치로는 N스크린 기반의 연결성, 사용자 동작 인식과 음성 인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TV의 하드웨어로서의 가치가 애플에 의해서 제시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글로벌 TV 제조업체들의 스마트TV 전략 방향은 콘텐츠 중심에서 디바이스 경쟁력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될 것이다.

진화의 촉매제

TV 사업과 관련한 애플의 최근 움직임을 소재로 지금까지 이야기를 전개했다. 애플의 움직임은 단지 소문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재를 통해서 이야기가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애플이 방송 시장을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궁금증이 ICT 산업 전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199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주장한 “Content is King”이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콘텐츠가 IT 기술과 만나서 더욱 진화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플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서 음악 시장과 애플리케이션 시장의 주도권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해당 산업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애플은 지금 TV라는 제품을 앞에 두고 방송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콘텐츠 산업 중에서도 시장 규모나 복잡성이 높은 방송시장은 애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가 단지 시장 주도권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ICT 산업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향후 애플의 움직임에 따라서 방송사들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 또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시장이 어떻게 진화되어 나가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그 진화의 중심에는 방송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소비자 가치의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애플은 진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신재욱 책임연구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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