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뉴스와이어)--지난 7월16일 오후 일본에서 치료 중이던 이구씨가 심장마비 증상으로(추정)으로 사망했다.

이구씨는 조선국 고종태황제(대한제국선포: 1897년 10월12일 즉위)의 왕자 영친왕(추존:1907년 의민 황태자에 책봉)의 아들이다.

이구씨는 1931년 12월29일 영친왕과 영친왕비(李方子)와의 둘째 아들로 첫째 아들 진(晋)이 생후 8개월 만에 비명횡사하여 사실상 마지막 황세손이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이구씨는 학습원과 일본의 교육을 받고 1950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보스톤의 메사츄세츠 공대(MIT) 건축과를 나와 미국에서 건축사 일을 하기도 했으며 1958년 10월 25일 뉴욕의 한 교회에서 독일계 미국인의 딸 줄리아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다. 이구씨는 한 때 한국에 거주하며 사업을 하기도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다 귀국하였으나 지병으로 일본에서 요양 중 별세하였다.

장례는 황세손 장례위원회(공동위원장 : 이환의 유홍준)에서 주관하게 되며, 9일장으로 치르게 된다. 장례위원회는 일본에서 운구 되는대로 본인이 기거하던 창덕궁 낙선재에 빈청을 마련할 계획이며 장지는 남양주시 홍릉 뒤편 영친왕 묘역(영원 구역)에 모실 계획이다.


이구 (李玖) 왕세자 별세 동향

2005년 7월 16일 : 오후 사망
2005년 7월 18일 : 오후 9시-11시까지 전주 이씨 대동 종약원 이사장 주관 (긴급 회의)
2005년 7월 19일 : 오전. 종묘 동구릉 홍유릉 고유제 (전례이사팀)
2005년 7월 19일 : 오전 9시 30분 일본 현지 검찰서 입회 부검실시 (사인 확인)
2005년 7월 19일 : 오전 10시 비행기로 이환희 이사장이 일본으로 가 운구해 올 절차 협의. 오후 귀국 예정.
2005년 7월 19일 : 오전 10시 종약원 용규 부이사장, 청장님 면담 보도자료 합의배포


[수정내용] 네번째 단락 년도 수정 1959년->19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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