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부채 조정·잠재성장 저하·고령화 일본형 소비침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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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11-18 10:59
서울--(뉴스와이어)--일본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침체기 중 심각한 소비위축을 경험한 바 있다. 자산가격의 하락으로 가계예산제약이 커졌고 장기성장률 저하로 미래에 대비한 저축유인이 높아졌다는 점이 주된 요인이다. 이와 함께 위기 이전 빠르게 높아졌던 가계부채의 조정, 고령화 과정에서 고령층 인구의 불안심리 확대, 내구재 보급 포화로 수요주도 부문이 부재했다는 점도 소비부진을 심화시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버블붕괴시기 일본에서 나타난 대부분의 현상들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부동산가격의 장기하락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우리경제의 잠재성장세는 한 단계 낮아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부동산 가격이 일본처럼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성장률 하락 정도도 일본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가계부채나 고령인구의 소비심리 위축, 수요주도 부문의 부재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장기적으로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본 분석결과 2000년대 중반에 비해 최근 소비를 둔화시킨 요인들 중 가계부채 조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부채억제 대책도 지속되면서 가계의 부채조정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후대비가 부족한 고령인구의 소비심리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평균 수명의 증가, 공적연금제도의 취약성, 노인부양률 상승 등으로 고령인구의 소비심리 위축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소비를 주도해왔던 통신과 교육비 지출이 둔화되는 가운데 인프라 부족과 규제 등으로 의료나 여가문화 부문은 새로 소비를 이끌 여력이 아직 충분치 않다. 소비여력이 큰 고소득층이 더 소비를 줄이고 있는 점도 소비위축의 요인이 되고 있다. 고소득층의 소비는 다른 소득계층에 대한 파급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경기에 대한 민감성이 커기 때문에 경기하강을 더욱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할 때 소비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처럼 심하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요인들이 소비를 제약하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고령층의 고용창출을 통한 소비여력 확대, 규제완화와 인프라 확충을 통한 내수산업 육성,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의 소비유도 정책 등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소비부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민간소비는 카드사태 이전의 과잉소비기간을 제외하고는 성장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부진이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3.8%(’09.4분기~’12.2분기, 연율)를 기록했으나 민간소비 증가율은 2.2%에 머물렀다.

경제성장에 비해 소비가 더 크게 위축되는 원인으로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교역조건 악화로 인해 실질국민소득(GNI) 증가율이 성장률보다 낮다는 점이다. IT부품간 경쟁심화로 수출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2000년대 후반부터 유가와 곡물가격 등 원자재 수입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총생산의 상당부분이 국민들의 소득증가에 기여하지 못하고 해외로 유출되었다. 2009년말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실질국민소득 증가율은 2.7%를 기록해 평균성장률을 하회하였다.

소득이 늘지 못해 소비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질국민소득의 둔화 이상으로 소비의 부진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가처분 소득에 비해 소비가 줄어들면서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부터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올 3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3.6%로 역대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소비부진의 장기화는 장기침체를 겪은 일본을 연상케 한다. 최근 우리경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일본의 버블붕괴 시기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 글에서는 1990년대 이후 장기침체기 일본의 소비부진의 원인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있는지 점검해본다.

1. 일본 장기침체기 소비둔화의 원인

일본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침체 과정에서 심한 소비위축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일본의 평균 민간소비 증가율은 1980년대 3.7%에서 1990년대 1.5%로 급격히 떨어진 바 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0.9%로 부진이 더욱 심화되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소득이 악화된 것이 주요인이지만 일본에서도 소비는 소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위축된 바 있다. 버블붕괴 이전인 1980년대 후반(1985~1990년) 일본의 평균소비성향은 76.4%였으나 1990년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으며 1998년 71.3%까지 떨어진 바 있다. 2000년대 소비성향이 다소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1980년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소비가 살아나지 못해 생산이 위축되고 이에 따라 고용과 소득이 부진해지는 악순환이 1990년대 지속되었고 이는 일본경기의 회복을 더욱 어렵게 한 요인이 되었다.

자산가격 하락, 장기성장률 저하로 저축유인 증가

버블붕괴 이후 일본 가계의 소비성향 저하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 요인들이 지적되고 있다. 대표적인 가설은 자산가격 급락으로 역의 자산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버블붕괴 이후 급격한 자산가치의 하락을 경험했다. 일본 도쿄의 주택지 가격지수를 보면 버블 붕괴후 연간 9%씩 하락하여 1992년에는 1989년 정점대비 76%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1999년에는 57%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본의 주가지수도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Nikkei 225 지수는 1989년말 38,915에서 1999년 말에는 18,934로 낮아졌다.

가계는 평생 벌 수 있는 소득을 기반으로 소비행위를 하게 되는데 자산가격의 하락은 평생소득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인 소득이 줄지 않더라도 가계소비가 줄어든다. 일본 버블붕괴시기 자산가격 변화에 따른 소비 탄력성은 분석에 따라 0.01~0.05 내외로 추계되고 있다. 자산가격이 10% 떨어지면 소비가 0.1~0.5% 가량 둔화된다는 것이다. 탄력치 자체는 크지 않으나 당시 일본의 자산가격 하락폭이 워낙 커서 이에 따른 소비의 부정적 효과가 컸을 것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저축을 늘리려는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성장률이 떨어질 때 가계는 이러한 성장률 하락이 일시적인지, 아니면 항구적인지 판단하게 된다. 일시적인 성장률 하락에 대해서는 소비를 크게 줄이지 않아 평균소비성향이 높아지게 되지만 이를 항구적인 것으로 판단하게 되면 미래소득 저하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게 된다. 일본은 평균 성장률이 80년대 4%대에서 1990년대 1%대로 급격히 하락한 바 있다. 낮은 성장률이 지속되면서 가계는 성장률 하락이 단기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현상임을 점차 인식하게 되고 저축을 늘림으로써 이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는 자산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래불안감에 따른 소비위축 효과는 자산효과에 포함되어 추정된다.

부채상환압력 확대로 소비여력 축소

가계의 채무조정 역시 소비성향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 받고 있다. 버블 형성기에는 높아진 자산의 담보가치, 은행들의 느슨한 감독하에 이루어진 신용공급 등으로 기업부채와 함께 일본의 가계부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1986년 이후 4년 동안 연평균 12.2%씩 가계의 부채가 증가하면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68.9%에서 84.1%까지 높아진 바 있다. 90년대 들어 담보가치 하락으로 부채상환 요구가 커지고 금융기관들의 파산으로 신용경색이 심해지면서 가계부채는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가계의 소비여력을 줄이는 역할을 하였다. 버블붕괴 이전에 보유한 부채가 큰 가계일수록 자산효과와는 별도로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되고 있다(小川一夫, 万軍民, 과잉채무와 소비행동, 2005).

빠르게 진행된 고령화 추세도 소비성향 저하에 일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키가와 야스시(川 靖, 버블경제붕괴후의 가계행동, 2004)는 90년대 소비, 저축 등 가계행동을 분석하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이 소비를 감소시켰을 것으로 보았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연금제도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 증가 등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으로 이어지고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소비자들이 느끼는 미래 리스크의 크기가 더욱 증가하였고, 저축 우선적인 행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비포화설도 일본 가계의 소비성향 저하를 설명하는 주된 가설이다. 1980년대 일본 가계의 생활수준이 고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버블 경제시기에 가계의 내구재, 서비스 수요가 최고조에 이르렀고, 이후 소비를 이끌어 갈 만한 재화, 서비스의 부재로 인해 소비성향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IT 신제품, 고급자동차 등의 보급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긴 하였지만, 기본적인 내구재 품목인 TV, 냉장고 등 가전 보급률은 1980년대 중반에 이미 98%에 달하는 등 기본 내구재 소비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전반적인 신규수요가 크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2. 국내소비 장기부진 가능성 점검

일본 장기침체시기에 나타난 자산가치의 약세, 잠재성장세 저하, 높은 가계부채 부담, 급속한 고령화, 수요주도 부문의 부재 등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일본에 비해 심각성이 높지 않은 요인들도 있지만 일부는 장기적으로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주택가격 급락 가능성은 크지 않아

우선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주택가격의 장기 하향 우려가 자주 제기되고 있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인식되는 가운데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따라 주택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PIR, 국민은행 평균값 기준)은 2011년 8.3배로 2009년 이후 하락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높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기적인 인구감소도 주택수요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중장기 국내 주택시장 전망, 2011. 5.)은 국내 주택수요가 2030년까지 매년 평균 7천~8천호 가량 점진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주요 선진국들의 주택가격 하락과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기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는 점 등을 통해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게 되는 2010년대 중반부터 주택가격의 하락을 예측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주택가격 하락 측면에서는 일본처럼 급격한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중반처럼 주택가격이 장기간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하향추세를 보일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의 인구 대비 좁은 국토면적 등을 감안할 때 외국과 주택가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단독세대의 증가, 친환경 주택 등 새로운 주거문화가 수요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

특히 일본과 같이 주택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장기적인 부동산경기 부진을 겪은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가격이 급등했지만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 및 주택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우리 주택 가격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소비자 물가와 비슷한 수준의 상승에 머물러 가격 거품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가격의 선형 추세선을 이용해 분석해 보면 주택가격의 정점을 기록했던 2009년 서울지역의 주택가격은 추세선 대비 20~30%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일본의 경우 소비자물가가 연평균 3.1%씩 상승하는 동안(1976년~1989년), 도쿄의 주택지 가격은 연평균 12.7%씩 상승하였다. 일본지가는 소비자물가 기준으로는 219%, 선형추세선 기준으로는 73%나 높게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LTV, DTI 규제가 강한 편이어서 주택가격 하락과 금융기관 부실의 악순환이 발생할 우려가 일본에 비해 적다. 또한 최근 담보부 신탁제도 도입 등 보강책을 고려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일본처럼 주택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저하에 따른 불안심리 높은 상황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중장기 성장률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적인 디레버리지, 즉 부채축소 과정은 최소한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선진국의 수요견인력이 떨어지면서 세계경제는 3% 내외의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는 2000년대 평균 4%의 성장을 기록하였으나 향후 수년간은 3%대 초반의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일본처럼 성장률 하락이 급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버블붕괴 이전 4% 성장에서 이후 1%대로 급락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성장률 저하 추세는 2000년대 들어 이미 급격하게 나타난 바 있다. IMF 외환위기 이전 7%대의 평균 성장률이 2000년대 4%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더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경제주체들의 위기감이나 불안심리를 지속시킬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낮은 성장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가계는 우리경제의 잠재적인 성장 저하를 점진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고 이는 소비성향을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부채조정에 따른 소비둔화 효과 발생

우리나라의 높은 가계부채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2000년대 들어 가계부채는 빠르게 늘어나면서 부동산가격의 상승과 소비증가에 기여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소비, 주택가격 상승률은 매우 유사한 움직임을 보인다. 부채를 통해 주택을 구입하고 이에 따라 늘어난 유동성이 일부 소비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2012년 2분기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121조원(자금순환표 기준, 가계 및 비영리단체)으로 GDP의 89%에 달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며 버블붕괴기 일본보다 높아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부채증가세가 둔화되는 부채조정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소비에 미치는 영향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월별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8월 8.8%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올 8월에는 4% 수준에 머물렀다. 당분간 가계의 부채조정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경기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부진으로 상환위험이 커진 금융기관도 대출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높은 가계부채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가계대출 억제 정책을 쓰는 점도 부채증가세의 둔화요인이다. 가계의 부채조정은 장기적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지만 소비에는 마이너스 효과를 주게 된다.

가계의 부채와 자산이 민간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좀더 엄밀히 보기 위하여 행태방정식을 추정하여 요인별로 분해하여 보았다. 추정결과 민간소비에 대한 소득의 탄성치가 0.75로 가장 높은 설명력을 가지는 것으로 계산되었으며, 대출 증가에 따른 유동성 제약 완화 요인도 소비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유의적인 설명력을 보였다. 소득 대비 부채비율로 나타낸 부채부담이나 금리는 민간소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가격의 변동은 민간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그 방향성은 맞으나, 설명력은 다소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최근 자산가격의 변화폭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주택가격이 부채변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자산가격의 민간소비에 대한 설명력을 부채변수가 가져가고 있는 결과로 보인다. 소비행태식을 바탕으로 최근의 소비둔화 요인을 분해하여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득 증가세 둔화가 민간소비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에 더하여 부채증가율의 둔화, 부채부담의 증가 등 부채경로로 민간소비 증가세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소비성향이 낮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령층 소비성향 저하 지속될 것

우리나라의 빠른 고령화 추세도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고령층은 소득에 비해 소비수준이 높기 때문에 고령인구의 비중이 커지면 소비성향은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고령층의 소비가 더 크게 위축되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

가계수지 통계를 통해 2000년 대비 올 3분기까지 도시가구의 소비증가율(전년동기간비) 추이를 보면 가계 평균 증가율은 4.5%를 기록한 데 비해 50대 이상 가구는 4.1%, 60대 이상 가구는 3.0%로 평균을 하회했다. 이에 반해 40대 이하 가구는 평균보다 높은 소비증가세를 기록했다.

고령층 가구의 소비가 더 크게 위축되는 것은 고령층의 소득 증가가 젊은 층에 비해 낮은 데다가 소비성향도 빠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2000년 82%에서 지난해에는 72.3%로 크게 떨어졌으며 60대 이상 가구의 경우 소비성향이 85%에서 71.3%로 더 극적으로 하락했다. 고령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고 있는데 고령층의 소비가 부진해지면서 전체 소비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는 자녀교육비 부담 등으로 은퇴계층의 노후대책 마련이 충분하지 못한 가운데 노후를 자녀에 의존하는 경향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제도의 보장 규모는 크지 않은 가운데 연금재정의 취약성으로 인해 은퇴후 연금수령액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고령층은 은퇴자금을 더 쪼개서 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향들은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기에 따른 변동은 있겠지만 당분간 고령층의 소비성향 저하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비, 견인할 부문 마땅치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뚜렷이 소비를 주도할만한 품목이 없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우리 소비의 증가를 이끌어온 부문은 통신과 교육부문이었다. 통신관련 소비는 1990년 2.2%에서 2003년 7.3%까지 크게 높아졌으나 이후 뚜렷한 하락추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5.9%까지 비중이 낮아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 초고속 인터넷과 휴대폰의 빠른 보급확대가 일단락되고 통신기기와 서비스부문의 생산성 상승으로 단가가 떨어지면서 통신부문의 소비지출은 둔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의 경우 2009년 전체 소비지출의 13.8%를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늘었으나 2010년 이후 증가세가 뚜렷하게 꺾이고 있다. 최근 교육비 지출이 둔화되는 점은 학원 영업 규제, 교육방송 기능 강화, 특목고 입시 개편 등 정부의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대학입학 비율이 80%에 이르는 등 교육투자가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대학등록금 인상 등으로 교육투자비용이 높아지면서 교육에 대한 지출이 미래에 그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불투명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의 입장에서도 성장세가 한단계 둔화되면서 인적자본 투자에 대한 수익창출 여력이 낮아진 상황이다.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우리나라의 교육비지출 비중은 장기적으로 둔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 소비를 이끌어온 주된 부문의 성장성이 둔화될 가능성이 큰 반면 새로 소비를 주도해야 하는 부문의 성장세는 아직까지 빠르지 못하다. 고령화와 함께 보건 의료, 그리고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가 및 문화 부문이 미래 소비확대 여지가 큰 부문이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은 의료인력이나 장비 등 인프라 구축이 필요해 단기적으로 크게 늘기 어렵다. 의료부문의 공공성이 강조되면서 규제가 심한 점도 보건서비스 산업 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가문화 부문에서도 인프라 부족이 지적된다. 세계적으로 긴 근로시간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문화생활을 할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여행을 위한 숙박식설의 부족, 공연예술과 관련된 공간의 부족, 부족한 토지로 인한 교통사정의 열악과 사회체육시설의 부족 등 여가생활을 높이기 위한 제약이 많다. 이러한 제약들이 빠르게 해소되지 못할 경우 여가 및 문화 부문이 미래 수요를 이끌어 갈 주도력은 크게 높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고소득층, 선택적 소비 크게 줄여

소득 수준별로 보면 최근 들어 고소득층의 소비위축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소득중 상위 10%의 고소득 계층은 전체 소득의 22%를 차지하고 있어 평균보다 두 배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상위 10분위의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기준 57.9%로 가처분소득의 약 절반 가량만을 소비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평균 소비성향 76.7%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고소득층 가구의 소비성향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득계층별 소비성향과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를 보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소비성향이 성장률과 유사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 7분위 이하, 즉 하위 70% 가구의 경우 소비성향이 성장률과 반대로 움직이는 반면 8분위 이상, 즉 상위 30% 가구에서는 정의 관계를 보였다. 저소득층의 경우 경기둔화로 소득이 위축되지만 필수적인 소비의 비중이 높아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소비성향이 높아지게 된다. 반면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선택적 소비의 비중이 높아 경기둔화시 소득이 줄어든 이상으로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최근 유럽재정위기 확산 등 세계적인 불확실성의 증대, 우리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저하 우려 등으로 고소득층이 선택적 소비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 보면 상위 10% 소득계층이 상대적으로 소비를 가장 많이 줄인 품목은 가전과 가사용품 등 내구재와 의료용품 등 보건의료, 외식과 숙박, 오락 문화 등이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어려운 시기에는 저소득층이 선택적 소비가 크게 줄어들게 마련인데 최근에는 오히려 고소득층이 선택적 소비를 더 줄이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 소비는 다른 계층 소비로의 파급 효과 커

성장률이 낮아질 때 소비성향이 높아지는 가구가 70% 이상이지만 고소득층이 전체 소득과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소비성향은 성장률과 정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즉 고소득층의 소비가 경기의 진폭을 더욱 크게 하는 요인이 됨을 알 수 있다.

특히 고소득층의 소비성향의 하락추세는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지난해부터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외환위기나 리먼쇼크 시기보다 더욱 급격한 하락을 보였는데 그만큼 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버블붕괴 이후 장기침체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의 상위 20% 소득계층의 소비성향은 1980년대 후반 72.4%에서 1990년대에는 69%로 떨어졌고 2000년대에는 평균 67.6%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00년대 기준으로 볼 때 상위20%의 고소득계층의 소비성향 하락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미국도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고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하락한 바 있다.

고소득층의 소비는 하위소득 계층의 소비를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소득계층별 소비지출이 다른 계층 소비로 파급되는 확산효과(Spill-over effect) 유무를 검정해 보면 고소득층일수록 소비가 다른 계층 소비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분위 소득계층의 소비는 대부분의 하위소득계층 소비로 파급되어지는 효과가 있음을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상위소득계층들의 소비 역시 대체로 하위 소득계층의 소비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우선 상위소득 계층일수록 전체 소비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상위소득 계층은 일차산업과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필수재보다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 등 선택적 소비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고소득층 소비의 파급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3. 시사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장기불황기 소비위축을 가져왔던 요인들이 우리나라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민간소비 부진은 단기적인 경기 순환상의 움직임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 추세적인 요인들도 분명히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잠재적인 성장세 저하, 가계부채의 조정, 고령층의 노후에 대한 불안, 소비주도 부문의 부재 등은 앞으로도 지속되면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이 급격한 소비위축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성장을 하회하는 소비증가세가 지속되면서 내수부진이 길어질 우려가 있다.

가계부채 조정, 고령인구의 증가 등은 불가피한 요인들이지만 정책적 노력으로 완화시킬 수 있는 요인도 있다.고령층의 노후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연금제도를 강화하고 정년연장 등을 통해 노후준비 기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령층의 실물자산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해 주택연금을 확대하고 자산가치의 완만한 조정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여가 등 문화서비스 부문이나 보건의료서비스 분야는 고부가가치 분야임에도 아직 본격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과도한 규제로 인해 다양한 서비스 공급이 제약 받고 있다면 과감히 완화함으로써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기관 개설 등에 대한 진입규제가 커 의료공급 구조가 다양화되지 못하면서 고령화로 인해 헬스케어 부문에 대한 높아진 수요가 실제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가 및 문화 부문에서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지가, 교통혼잡 등의 불리한 여건을 감안해 문화 및 숙박시설이나 인프라 구축에 더욱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소비여력이 있는 상위소득계층의 소비 촉진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고소득층이 소비할 수 있는 고급소비재나 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해외로부터의 수입이나 해외소비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해외소비를 국내소비로 돌릴 수 있도록 고급레저 및 관광시설을 늘리고 고부가가치 소비재 생산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 사치성 소비, 소득 양극화 등으로 인해 부유층 소비에 대한 우리 사회에 부정적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혹여 규제 등으로 인해 지나치게 억제되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강중구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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