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재정절벽과 부채의 산 사이의 미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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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11-20 12:00
서울--(뉴스와이어)--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자 재정절벽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졌다. 그러나 민주·공화 양당은 경제적 충격 완화를 위해 재정감축 규모를 일부 축소하는 재정비탈(fiscal slope) 정도의 재정건전화에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 단, 임시예산안이 만료되는 내년 3월까지는 정부부채 한도 소진 등으로 높은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지난 11월 6일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언론들은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우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재정절벽(fiscal cliff)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선 이전에도 재정절벽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후보인 롬니가 당선되는 편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공화당이 다시 하원을 장악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파티(Tea Party)로 불리는 공화당 내의 강경세력들도 협상의 난관으로 지목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당선될 경우, 공화당의 입김이 강한 의회가 행정부와의 타협에 불응하면서 재정 문제의 해결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미국의 국채 금리 및 주가지수는 크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커지면서 주식시장에서는 자금이 이탈하는 한편, 안전자산인 채권 수요는 증가한 결과이다. 실물 경제 측면에서도 재정절벽에 대한 우려는 무척 높다. 11월 13일 월스트리트저널이 주최한 CEO협의회에서 참가자의 73%는 가장 큰 근심거리로 재정절벽을 꼽았다. 유럽위기라고 답한 비율이 12%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재정절벽이라는 이슈가 미국 경제 전반을 얼마나 짓누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재정절벽에 대한 불안을 더욱 키우는 요인은 불확실성이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뿐이다(Nothing is certain but Uncertainty)’ 라는 문구가 곳곳에서 언급될 정도이다.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 실제로 감축되는 재정적자 규모나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데 그 견해들 간의 격차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재정절벽의 충격을 다소 완화한 ‘재정비탈(fiscal slope)’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미국의 재정건전화를 둘러싼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확대가 재정절벽의 원인

재정절벽(fiscal cliff)이란 대규모 재정긴축으로 경제성장률이 급락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급격한 경기 하강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시행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부시 감세(Bush Tax Cuts) 연장, 장기 실업수당 등의 시한 연장, 사회보장세율 인하 등이 있었다. 이러한 재정확대 조치들은 일단 미국 경제를 침체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이내 곧 과도한 재정적자 및 그로 인한 정부부채 누증의 문제를 발생시켰다. 재정건전성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다.

지난 2011년 8월, 정부부채 한도의 확대 여부에 대한 민주·공화 양당의 토론이 진통을 겪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부채 한도의 확대는 2000년대 이후 십 수 차례 있어왔던 일이었지만, 재정건전화 문제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정치권이 부채한도 확대의 합의 조건으로 향후 재정건전화의 속도와 방법에 대한 결론을 내고자 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결론은 일단 향후 10년간 9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감축을 시행하되, 2011년 말까지 양당이 10년간 1조 2천억 달러 이상의 재정감축안에 추가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합의에 실패할 경우 예산관리법(Budget Control Act, BCA)에 따라 2013년부터 국방비, 고령자 의료혜택(Medicare) 등 전 분야에 걸쳐 1.2조 달러 규모의 재정지출 자동삭감 절차(sequestration)가 가동되도록 하였다.

이후 양당은 추가 감축안을 놓고 설전을 벌였으나, 부시 감세를 연장할 것을 주장한 공화당과 증세 없이는 비용삭감에 동의할 수 없음을 주장한 민주당의 간극은 메워지지 못했다. 결국 2011년 11월, 부시 감세 연장 합의가 실패로 돌아감과 함께 양당은 추가 재정감축안 마련에도 실패하였고, 2013년 1월부터 부시 감세가 만료되는 동시에 재정지출 자동삭감 절차에 돌입하게 되었다.

세입 확대와 함께 전방위적이고 일률적인 재정지출 축소로 인해 경제에 일정부분 타격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양당의 합의를 통해 감축 계획을 세웠다면 연도별 증분이나 항목별 승수 등을 고려하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소 줄일 수 있었겠지만, 자동삭감 절차가 시작되면 미리 정해놓은 몇 가지 예외사항을 제외한 지출 항목 전반에 걸쳐 재정지출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부자 감세 논쟁은 양당 정책기조의 오랜 차이에서 비롯

이와 같은 타협 결렬의 배경에는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전통적인 재정정책 기조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예전부터 증세를 통한 재정재원 마련 및 사회보장 관련 지출 확대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1990년대의 클린턴 행정부를 들 수 있다. 메디케어, 메이케이드(Medicaid) 등 사회보장 관련 지출은 확대해 나가는 한편, 증세 및 PAYGO(Pay As You Go, 재정지출 계획 시 재원대책 마련을 의무적으로 하는 방식) 원칙을 통해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민주당의 증세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예로 1993년 균형예산법(the 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 of 1993)을 들 수 있다. 발표 당시 지출삭감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지출삭감과 대등한 규모의 증세를 시행했던 것이다. 그 당시 증세 규모를 확대시킨 항목이 고소득층에 대한 한계소득세율 인상(개인 36%→39.6%, 법인 34%→35%)이었으며, 이로 인해 GDP 대비 재정수입 비율 역시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한편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공화당의 재정정책은 국방비 등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지출을 통제하는 한편, 감세를 통해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이루려는 것이 주된 방향이다. 세율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인상할 경우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는 래퍼곡선(Laffer Curve)에 근거하여, 공화당은 감세 정책이 경제주체에게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세입을 증대시키고 재정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재정절벽 논의의 주요 사안 중 하나인 부시 감세는 지난 2000년대 초반 공화당 출신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IT버블 붕괴 등에 따른 경기둔화에 대응하고자 추진했던 정책이다. 이 조치 중에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하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앞서 클린턴 대통령이 균형예산법을 통해 인상했던 고소득계층에 대한 소득세 한계세율을 부시 대통령이 다시 기존 수준으로 인하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현재 민주당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인상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재정절벽을 놓고 벌어지는 민주·공화 양당의 논쟁 역시 같은 맥락이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위에서 언급했던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 연장 여부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세금 형평성(tax fairness)을 강조하면서 부유층에게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 공정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부시 감세를 연장하되 연 소득 25만 달러 이상의 부유층은 감세 연장에서 제외할 것이며, 이를 통해 약 1조 6천억 달러의 세수를 증가시켜, 이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공화당 측은 감세 조치를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인상은 곧 일자리 창출 계층에 대한 세금 인상이므로 일자리가 감소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대신 세율 인상이 아닌 소득공제 및 각종 세제 혜택 감소 등 세제개혁을 통해 세수를 8천억 달러 가량 늘리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세입 뿐만 아니라 재정지출에 대해서도 양당의 의견이 대립하는 상황이다. 자동 재정지출 삭감의 경우 매년 국방비와 비국방비가 각각 549억 달러씩 삭감되도록 되어 있는데, 공화당은 국방비의 삭감 규모 및 비중이 커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국방비의 삭감비중은 축소하는 한편 다른 항목들의 삭감규모를 늘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재정삭감을 저지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힘과 동시에, 사회보장 프로그램 예산에서 합의된 수준을 초과하는 감축을 거부하고 있다.

재정절벽 현실화 시 2013년 재정감축 규모
약 5천억 달러, 성장률 -1% 이하 전망

정치권의 대립이 결국 타협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에는 재정절벽의 현실화가 불가피하다. 대규모의 재정감축이 경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실제의 재정감축 규모와 그것이 성장률을 얼마나 낮출 것인지에 대한 분석 결과는 기관마다 다양하다. 전망치의 차이는 대체로 전반적 경기 상황에 대한 기본 전망의 차이, 재정절벽에 따른 경기 악화가 주는 피드백 효과(경기 악화에 따른 세입 감소 및 실업급여 증가 등)를 고려했는지의 여부, 회계연도(매해 10월~이듬해 9월, FY) 기준인지 혹은 일반적인 역년(Calendar Year, CY) 기준인지의 여부 등에 기인한다.

하지만 여러 견해를 종합해보면,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 FY2013년(2012년 10월~2013년 9월)의 재정적자 규모는 FY2012년에 비해 약 5천억 달러 이상 감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감세 폐지 및 자동재정 삭감 등의 조치가 2013년 1월 초부터 시행됨을 감안하면, 역년 기준으로 계산한 CY 2013년의 재정감축 규모는 회계연도 기준에 비해 1천억 달러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세입과 세출 측면에서 나누어보면, 부시 감세 및 고용세(payroll tax) 인상 등의 세입 증가가 약 4천억 달러 전후, 전체의 8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며, 나머지 1천억 달러 가량이 지출 축소에 따른 감축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재정절벽의 영향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재정절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및 세입의 승수(multiplier)를 추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느 기간을 분석했는지, 얼마나 세부적인 항목별로 분석했는지 등에 따라 추정되는 승수 값이 다를 수 있다. 재정절벽에 따른 감축규모가 GDP 대비 몇 %이기 때문에 미국의 성장률이 재정적자 감축비율만큼 감소할 것이라고 하는 경우는 재정지출 및 조세의 승수를 1로 간주한 것이다.

재정 및 조세의 승수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대체로 재정승수가 조세승수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재정지출은 그 자체로서 직접 생산을 증가시키고 그것이 다시 소득 증가로 이어져 수요를 늘리는 한편, 감세는 조세감면을 받은 주체들의 가처분소득을 증가시켜 그 중 일부가 소비에 쓰이게 되어 이론적으로도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감세보다 더 크다. 미 의회조사국의 분석결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되었다. 정부 지출의 승수 효과는 1.5를 상회하는 반면 조세의 경우는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항목이 많았다.

재정절벽의 규모와 승수에 대한 분석이 다르기 때문에, 재정절벽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에 대한 예상들의 편차도 꽤나 크다. 극단적인 재정절벽 발생 시 미국 성장률에 대한 전망을 보면, 미 의회예산국의 경우 2013년 연간 -0.5%, JP Morgan -0.9%, Citi -1% 등 대체로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크레딧스위스(Credit Suisse)는 저소득층의 세율까지 인상하는 등 최악의 재정절벽 발생 시 내년 미국 경제의 성장률이 -3.8%로 급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반면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기관도 있다. 재정절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미 올해에 영향을 끼쳐 상대적으로 내년의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FY2012년의 재정적자 감소폭이 이전 해에 비해 2천억 달러 이상 큰 폭으로 줄었는데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예컨대 무디스는 재정절벽 발생 시 내년 1분기에는 성장률이 다소 하락하더라도 연간으로는 0.2%의 플러스(+)성장을 할 것이며, 신용등급의 하락도 신중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재정절벽의 충격은 성장률 이외의 지표로도 추정해볼 수 있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ational Economic Council)는 재정절벽 발생 시 미국 중산층 가구가 추가 부담해야 하는 세금의 규모를 약 2,200달러로 추정하였다. 세금정책센터(Tax Policy Center)는 가구당 3,500달러에 해당하는 세금이 증가할 것이며 이는 가계의 세후 소득을 6.2% 가량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고용 측면에서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미 의회예산국은 재정절벽이 현실화될 경우 실업률은 2012년 10월 7.9% 수준에서 2013년 4분기에는 9.1%까지 급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의 연구팀은 재정절벽 시 FY2013년 중 고용이 214만명 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재정절벽보다는 재정비탈 가능성 높아

전망치들의 편차가 꽤 크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사항은 재정절벽의 충격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권도 마찬가지이다. 민주·공화 양당 모두 재정절벽 사태를 방지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재정절벽이 경제에 주는 충격을 피하기 위해 일부 조치를 되돌리거나 혹은 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최근 JP Morgan의 보고서에서는 내년 2월까지 재정절벽을 피하는 데에 합의할 가능성을 70%라고 보았다. 지난 8월 월스트리트저널의 서베이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70%가 충격을 완화시킬 임시적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절벽이 아닌 이른바 재정비탈(fiscal slope)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부분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항목들이 합의될 가능성이 높을까. 재정감축을 유예시키는 조항으로는 우선 부시 감세 중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 연장은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루어진 사항으로 보인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대체최저한세(Alternative Minimum Tax, AMT) 대상 소득 조정도 매년 수정되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합의가 수월할 수 있다. 한편 재정감축 방안으로는 비상실업수당 축소 및 사회보장세(급여세, payroll tax)의 감면 종료가 합의될 가능성이 높은 항목으로 꼽히고 있다.

반면 고소득층에 대한 한계세율 인상은 첨예한 대립이 이어질 부분이다. 공화당 롬니 후보의 전 경제자문이었던 글렌 허버드는 최근 고소득 계층에 대한 한계세율 인상이 아닌 전반적 세율 인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역시 세수 확대 관련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증세 문제에 대한 공화당 인사들의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결과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감세 연장 및 세율 추가 인하를 주장하던 공화당이 전체적 세율 인상을 언급해서라도 고소득층에 대한 차별적 증세는 막겠다는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2011년 당시 합의되었던 재정지출 자동삭감도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방비의 삭감폭이 커서 공화당의 반대가 거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자동삭감 조치를 저지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자동 재정삭감 조치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재정건전화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도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특히 남은 11, 12월이 총선 후 차기 당선자와 낙선자가 결정된 상태에서 열리는 레임덕 회기임을 감안하면 이 논의는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재정비탈로 타협 시 내년 성장률 1%p 남짓 하락할 전망

세부 항목에 대한 대립이 이어지더라도, 양당은 결국 어느 수준 이상의 재정건전화를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내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 재정절벽의 충격이 두렵다고 해서 그 대안으로 지나치게 완만한 사면을 내놓는 것은 근시안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재정절벽을 피한다면 단기적인 경기 충격도 발생하지 않겠지만, 그로 인해 재정건전성 회복이 지연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성장세가 약화될 우려가 커지게 된다. 미 의회예산국의 분석에 따르면, 감세 만료 및 재정지출 자동삭감 등의 조치를 모두 유예할 경우, 향후 10년간 정부부채(연방정부 보유분 제외)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22년에 GDP 대비 90% 수준에 다다를 것이라고 전망된다.

재정적자가 지속될 경우 우선 직접적으로 정부저축이 감소할 뿐더러, 국채 등을 통한 재원 마련의 과정에서 구축효과가 발생하여 결국 투자를 감소시키고 이는 국내총생산 및 소득의 하락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재정이 지속가능한 수준을 넘어설 경우 정부부채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져 부채에 대한 이자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이는 결국 문제를 미뤄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미래에 더욱 급격한 정책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 게다가 과도한 부채로 재정여력이 부족할 경우, 경기의 급격한 악화나 금융위기 발생 등 예상치 못한 국가의 비상사태 시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한되는 문제도 있다. 위기 시 정부의 대응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할 경우, 그에 따라 경제주체의 심리가 위축되어 실물 측면에서 소비나 투자가 감소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재정감축 규모를 지나치게 줄이거나 혹은 단순히 문제를 이연시킬 경우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금리가 상승하여 부채의 이자부담을 더 높이는 악순환이 발생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재정비탈로 표현되는 부분적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내년 성장률은 재정비탈이 없는 경우에 비해 약 1~1.5%p 정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2년 하반기 이후 발표된 내년 미국 성장률에 대한 전망의 컨센서스는 평균 약 2% 수준인데, 이는 재정비탈의 영향을 일부만 반영한 수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하반기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미국 성장률 전망치가 낮아지고 있으며, 이는 재정비탈의 우려가 커진 것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오바마 행정부 협상력 확대로 타협 가능성 증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된 현재의 상황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만큼 나쁜 상황은 아닐 수 있다. 물론 하원을 공화당이 지배하는 구도 하에서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논의가 더 조속히 진행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상원을 차지하고 있는 구도 하에서 결국 최종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여러 난항을 겪어야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대선 이전과 비교해본다면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력이 다소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상·하원에서의 양당 구조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오바마는 예상보다 더 큰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민주당은 상하 양원에서 모두 더 많은 의석 수를 확보했다. 이로써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 측은 자신들의 공약이 보다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실제로 11월 초에 진행된 월스트리트저널의 조사에 따르면, 만약 재정절벽을 피하고자 하는 합의가 결렬될 경우 오바마의 책임이 크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29%에 그친 반면, 공화당의 책임이 크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53%에 달했다.

한편 공화당은 의석 수가 감소했을 뿐 아니라, 공화당 내 보수파인 티파티(Tea Party) 진영의 후보들이 대거 낙선하였다. 공화당 진영에 상대적으로 중도파에 가까운 인물들이 남아 행정부와 하원 간의 타협의 여지가 다소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난 해 8월 미국 부채한도 확대 협상을 둘러싼 양당간의 치킨게임의 결과,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했던 기억에 대한 부담도 있다. 재정절벽 문제가 실물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에서, 이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크다. 특히 선거에서 패한 공화당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수정안을 통해 타협의 제스처를 취할 경우 공화당이 끝까지 뿌리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판단되는 이유이다.

내년 3월 이전 합의 전망…부채한도 소진 등 불확실성은 지속

문제는 시간이다. 감세 종료 및 자동 지출삭감이 2013년 초에 시작되는데 연말까지 남은 기한은 한 달 남짓이다. 추수감사절 및 성탄절 등의 연휴도 있어 실제로 논의를 할 수 있는 기한은 더욱 제한적이며, 그마저도 레임덕 회기여서 합의가 적극적으로 추진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의회에게 주어진 시간은 조금 더 여유있는 편이다. 내년 초까지 합의하지 못해 세금이 늘어나고 지출이 삭감된다고 하더라도 재무부가 원천징수세율을 유지하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유예시킬 수 있고, 이후 합의에 성공할 경우 합의된 결과로 소급 적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 재정절벽에 대한 합의의 데드라인은 임시예산안이 종료되는 내년 3월말인 셈이다. 그러나 그 전에 정부부채가 법정한도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어 시한은 다소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연말까지 한 차례의 임시 합의를 통해 일부 감세 조치 등을 연장시키고, 이후 내년 1분기 내에 최종 타협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한편 최종 타협이 이루어질 때까지 경제 내의 불확실성은 쉽게 걷히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별로 재정적자 규모가 발표될 때마다 정부부채 한도 소진 등이 이슈가 되면서 내년 초까지는 불안심리가 지속될 전망이다. 재정정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버냉키 미연준 의장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점 역시 경기심리를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 요소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수준의 타협이 조속히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합의가 불발되어 재정절벽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도 실물경제에 큰 하강압력을 주겠지만, 재정감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역시 부채문제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등 금융시장에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분간 미국 재정절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도 높은 수준을 보일 전망이다. 향후 경제를 판가름 지을 정치적 합의가 주목되는 상황이다.[LG경제연구원 최문박 선임연구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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