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비서관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지리산 뭉특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김용택 ‘섬진강1’ 중에서)
일본에서는 산과 바다를 연인이라고 한다. 이들을 이어주는 중매쟁이가 바로 ‘강’이다. 섬진강은 백두대간의 한줄기인 호남정맥을 따라 전북 진안군 백운면의 팔공산에서 시작한다. 이곳에서 발원한 물은 임실군의 옥정호에 잠시 갇혔다가 순창, 남원, 곡성 등을 굽이치고, 지리산 뭉특한 허리를 감아 돌아, 여러 지천과 만나 전남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은 산에 대한 애정으로, 그리고 바다에 대한 연민으로 바다의 품에 안기며 총 500여리의 긴 여정을 끝낸다.
지난 7월 중순 섬진강을 찾았다. 우리나라 5대 강 중 가장 깨끗한 강으로 알려진 섬진강이 무분별한 개발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를 평소 들어오던 터라 현장에서 그 생생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또한 온갖 훼손으로 위기에 직면한 섬진강 실태를 살펴보고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섬진강 도보순례를 하고 있던 환경지킴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섬진강 시인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김용택 시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가슴 설레게 했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사무소에서 조금 떨어진 회문산 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식당에서 이들을 만났다. 회문산이 빚어낸 구림천의 맑은 물소리가 도보순례단의 지친 피로를 씻어주는 듯 했다. 도보순례단 일행이 섬진강에 몸을 담그고 느끼면서 이들은 이미 섬진강과 닮아 있었다. 물론 김용택 시인도 그 안에 있었다.
풀벌레소리와 구림천의 물소리가 어우러진 저녁, 시골 아저씨 같은 김 시인에게서 섬진강이 처한 위기의 실상을 들을 수 있었다. 시인에게 섬진강은 어떤 강일까? 그에게 있어 섬진강은 삶 그 자체다. 첫 시집의 이름도 ‘섬진강(1985년)’이었다. 섬진강가인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태어나 50대 중반이 되도록 줄곧 섬진강과 함께 살아온 그는 30여년 동안 섬진강이 보이는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현재 전북지역 환경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시집 10권 내는 일보다 10리 江 지키는 게 더 어려워
그가 전한 섬진강의 훼손정도는 심각했다. 섬진강댐, 주암댐 등 크고 작은 댐이 건설되면서 수량도 크게 줄어 상류와 하류 간의 갈등이 상존하고 있으며, 강 상류에 축사와 식당가가 늘면서 축산폐수와 생활하수로 오염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연친화적인 하천 제방공사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반생태적인 하천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연제방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빠르게 콘크리트 제방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도로확장공사 등을 이유로 배후 습지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한마디로 하천의 고유 기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개발과 정비가 행해지고 있었다.
시인의 고향마을인 장산마을 앞부터 천담계곡을 따라가는 10여리의 길은 우리나라에서 전봇대와 아스팔트가 없는 유일한 길로 섬진강과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길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이곳 또한 훼손 위기에 놓여 있다. 지자체에서는 관광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넓히고, 꽃길 조성공사를 한창 벌이고 있다. 시인은 “시집 10권을 내는 것보다 섬진강 10리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며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국토가 망가지는 것을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민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날 만난 섬진강지킴이들과 지역주민들은 섬진강의 명물인 ‘다슬기’의 무분별한 채취를 규제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다슬기가 사람의 간 기능 보호 등 식용과 약용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수요가 증가했다. 다슬기 값이 크게 오르자 전문 남획꾼들이 극성을 부리게 되었다. 특수그물에 납덩이를 매단 모터보트로 섬진강 다슬기를 불법채취하거나 심지어 동력선에 흡입기까지 동원해 강바닥을 훑어 어린 새끼까지 싹쓸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은 이대로 가다보면 몇 년 안에 다슬기 씨가 마를 것이라며 “장비를 이용한 다슬기 채취를 규제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호소하였다. 다슬기의 싹쓸이 채취는 수중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다슬기는 하천 생태계에서 청소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은 “다슬기가 사라지면 이를 먹고 사는 반딧불이 또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곧 하천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깊은 밤까지 이어진 이날 간담회에서 얻어진 결론은 섬진강을 살리기 위해서는 주민과 지자체, 중앙정부가 모두 함께 하나의 뜻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섬진강을 살리기 위한 희망 섞인 조짐이 섬진강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섬진강 수계권에 있는 곡성군, 광양시 등 11개 지자체장들이 참여하고 있는 ‘섬진강행정협의회’에서는 섬진강의 모래채취를 하지 말 것 등 섬진강 생태계 보전을 위해 함께 실천할 사항을 결의하였다. 섬진강 골재는 품질이 우수하고 양도 많아 광양과 하동 등 수계주변의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채취해 바닥이 드러나고 생태계가 파괴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모래채취를 포기하는 일은 지방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또한 전북·전남·경남 3개도 10개 주민·환경단체들은 섬진강의 무분별한 개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섬진강지키기 네트워크’를 발족시켰다. 아직 지방자치단체와 시민환경단체 간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아름다운 만남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무분별한 다슬기 채취 등 섬진강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너무도 많이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치수정책서 생명 살아 숨쉬는 생태하천 정책으로
하천을 살리기 위한 노력이 전국에서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 ‘하천 살리기’ 운동이 본격화한 것은 대략 1990년 대 중반부터다. 지역 풀뿌리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하천 살리기 운동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하게 됨으로써 하천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들이 차츰 결실을 얻고 있다. 이미 서울의 양재천을 비롯하여 경기도의 수원천, 안양천, 경안천, 오산천과 전주의 전주천, 울산의 태화강 등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앙 정부도 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달 발표한 건설교통부의 ‘도시하천 환경개선 계획’은 친환경 국토건설이란 목표 아래, 도시하천을 자연상태로 최대한 보존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전국 50개 하천에 도시의 특성과 연계된 테마형 생태하천을 조성키로 했는가 하면, 내년부터는 하천을 콘크리트로 덮어 복개도로를 만드는 것 등을 엄격히 제한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홍수를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제방을 쌓고 강줄기를 직선화했던, 치수중심의 하천정책에서 과감히 방향을 돌려 이제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하천, 자연과 친숙한 생태하천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많은 하천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 곁에 한발 다가설 것으로 기대해 본다.
“강은 우리의 얼굴입니다. 강이 아름다운 건, 물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섬진강이 죽어가면 머지않아 우리도 죽고 말 것입니다.” 김용택 시인의 절박한 목소리가 그날 밤 섬진강 물결을 따라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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