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한국 석유화학 산업에 다가오는 두가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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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2-12-09 12:00
서울--(뉴스와이어)--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앞날을 내다보는 시각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듯 하다. ‘기대’하는 시각은 현재 한국 석유화학업계가 글로벌 경기침체와 중국 소비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것은 일시적이고 환경이 조금만 개선되면 다시 수익을 동반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90년대 IMF 위기, 2000년대 중동 위기(대규모 투자) 등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했고, 위기 이후 괄목할 성장과 양호한 수익성을 보여준 저력과 경쟁력이 있는 산업이라는 믿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

반면 ‘불안’하게 보는 시각은 국내 수요가 장기간 정체되는 상황에서 성장의 최대 동력이 되었던 중국 수요가 과거와는 달리 구조적 둔화가 우려되는 데다, 미국이 셰일가스 기반으로 대규모 석유화학 투자에 나서고 있어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중장기 전망이 어두워 보인다는 것이다.

기대와 불안의 시각 모두 근거가 있어 보이지만 극단적으로 한쪽의 주장이 막연한 낙관일 수 있다면, 다른 한쪽은 습관적 불안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본고에서는 앞으로 한국 석유화학산업을 좌우할 핵심 변수들을 중심으로 석유화학산업의 중장기 경기를 전망하고, 선진국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기업의 대응방향을 모색해 본다.

Ⅰ.전망의 핵심 변수

과거 석유화학산업은 경기 가시성이 비교적 높은 산업으로 인식되었다. 석유화학제품의 수요는 다양한 산업(자동차, 전자, 주택 등)과 일용품에 폭 넓게 분포되어 있어 전체 수요의 크기는 GDP 성장과 유사한 성장패턴을 보여왔다. 수천억에서 수조원 규모의 주요 기업들의 투자계획 발표가 있으면 3∼5년 뒤에 해당 공장의 완공과 생산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에 주요 기업들의 투자계획을 알면 공급전망도 가능했다. 따라서 석유화학 산업은 어느 정도의 중기 수급전망이 가능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러한 방식의 경기전망에 대한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산업 경기와 경쟁 구도를 지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두가지 변수의 변동성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① 중국 변수 : 석유화학제품 시장 구조의 변화 가능성

첫번째 변수는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특히 범용제품) 수요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최근 중국의 석유화학 관련 지표들을 보면 몇가지 우려되는 징후들이 발견된다. 이것은 석유화학제품의 수요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평균 대비 50% 상회

무엇보다도 중국의 1인당 범용 플라스틱(5대 범용수지 PE, PP, PVC, PS, ABS 기준) 수요가 세계 평균을 크게 넘어섰다는 것이다. ’11년 기준 중국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39kg으로 세계 평균 26kg을 50% 상회하고 있다. 반면 같은 해 중국의 일인당 GDP는 5,432달러로 세계 평균인 10,115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것은 중국의 국내총생산액 대비 플라스틱 소비량이 세계 평균의 3배 수준으로, 향후 경제성장 속도 대비 플라스틱 소비의 증가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중국의 일인당 GDP 대비 플라스틱 소비량 추세를 봐도, 3,000달러대 까지는 고속 성장이 지속되었으나, 4,000달러를 넘어서면서 경제성장 대비 플라스틱 소비량 성장 속도가 현저히 둔화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별로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증가가 둔화되는 일인당 GDP 수준에는 큰 편차가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인당 GDP 5,000달러에서 플라스틱 소비량 성장이 둔화된 이후 8,000달러 부터 거의 정체되었고, 태국은 4,000달러 이후 플라스틱 소비량이 거의 정체된 상태로 5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일인당 GDP로 볼때 어느 수준에서 플라스틱 소비량 증가가 정체되고 그 추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전반적인 지표를 볼 때 플라스틱 소비가 상당 수준 성숙된 것은 분명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요 석유화학 제품에서 중국의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의 측면에서 보아도 이미 과도하게 높아져, 세계시장 수요를 주도하는 중심축 역할을 지속하기가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 수요가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ABS(가전-IT제품 주원료) 55%, TPA(폴리에스터 섬유 주원료) 43%, PVC(창호/바닥재 주원료) 39%, PE/PP(필름/잡화 주원료) 24∼28%로 범용 합성수지 기준으로 세계 수요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 비중이나 인구 비중을 감안 해도 이미 점유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중국의 수출수요에 크게 영향을 받는 전자 및 섬유 산업 원료인 ABS, TPA는 중국의 가공산업 수출경쟁력 약화와 함께 2010년 이후 세계시장 점유율이 낮아지는 추세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제품의 경우에는 중국내수 소비가 강하게 받쳐주지 못할 경우 수요성장의 정체까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국 덕분에’에서 ‘중국 때문에’로

과거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석유화학 수출국 기업들은 신규투자를 발표 할 때 항상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 잠재력을 언급해왔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동아시아,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의 경영성과가 세계 동종업계에서 차별적으로 좋았던 것도 2009∼2011년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Stimulus Package)에 의한 나홀로 수요성장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이제 동아시아 석유화학 시황에 대한 해설에서는 항상 중국 소비 부진, 수요 침체가 언급된다. 즉 중국 때문에 어렵고, 중국이 조금만 회복되면 동아시아 석유화학 경기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2011년 하반기 이후 중국의 주요 석유화학제품 수요가 매우 부진했고, 2012년 중국 플라스틱 수요는 전년대비 3.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플라스틱 수요의 GDP 탄성치가 0.5도 안 되는 현 상황이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정상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중국의 범용 석유화학제품 수요 수준 및 산업구조 변화 추세를 볼 때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이 추세가 되고, 오히려 향후 수요성장 둔화가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그에 따라 시장 성격 및 경쟁구조가 변화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② 비석유계 원료 변수 : 석유화학 투자 싸이클의 예측 가능성 저하

석유화학산업에 비석유계(가스, 석탄 등) 원료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그 이전에도 북미와 중동의 가스기반 화학사업과 중국의 석탄기반 화학사업은 존재했지만, 시장 영향력과 확장성이 제한적이라고 전망되었다. 미국과 중동의 에탄 크래커는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과정의 부산물을 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량이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중국의 석탄 화학은 환경 및 전력 과소비 등의 문제 때문에 한시적으로만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유가 100불 시대가 고착화 되고, 자원보유 개도국의 자원 고부가가치화 및 고용창출을 위한 석유화학 설비투자가 급증하면서 비석유계 원료의 석유화학시장 영향력은 양적으로 크게 강화되고 있다. 2011년 기준 에틸렌 생산에서 석유 베이스(납사, 가스오일)와 가스 베이스의 생산량 비중은 각각 50% 수준으로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2005년부터 최근 6년간의 생산량 증가는 가스 베이스가 전체 증가량의 91%를 점유, 최근 6년간 에틸렌 생산량 증가의 대부분이 가스 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서 석유 베이스의 대규모 신규설비 가동이 있었지만, 이것은 일본 및 서유럽 설비들의 가동중단으로 상쇄되었다.

비석유계 원료 + 신공정 기술 상용화 → 생산제품의 확대

이러한 양적 증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에서 질적 성장까지 진행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과거 PVC와 비료 정도의 원료로 생각했던 석탄이 최근 중국기업의 신공정 상용화로 에틸렌, 프로필렌, MEG(에틸렌글리콜, 폴리에스터 원료) 생산원료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2010∼2011년경 몇 개 설비가 시범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해서 점점 가동률이 상승하고 있고, 2013∼2015년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 신규설비가 완공되어 가동될 전망이다. 이 설비들의 품질이나 정상가동 여부에 대해서는 상업적으로 신공정이고 검증되지 않은 중국 기술 기반이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정상가동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가 문제이지, 정상가동 자체와 품질 수준을 맞추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새롭게 부상한 다크호스가 미국의 셰일가스(부산물) 기반 에탄/프로판 크래커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량 증가로 에탄, 프로판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이들 제품의 고부가 활용을 위해 대규모 증설이 추진되었고, 이 설비들은 2016년부터 순차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미국의 신규 에탄, 프로판 크래커 설비증설은 과거 중동의 가스기반 설비의 확대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중동은 기반설비가 없는 장소에 기술과 마케팅 채널도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로 신규공장을 가동, 가장 단순한 범용제품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나 미국의 가스기반 석유화학 설비는 충분한 인프라와 다양한 제품들이 갖추어진 공업단지에 기술과 글로벌 마케팅력을 보유한 미국 메이저들이 대규모 설비를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초 범용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 제품, 정밀화학 제품 들의 생산이 가능하고 글로벌 판매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초원료(에틸렌, 프로필렌) 투자 계획만 발표하고 최종제품의 세부 구성은 밝히지 않아서 구체적 영향을 파악하기는 아직 어렵다. 그러나 석유화학 산업 전방위적인 위협요인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비석유계 원료 기반 설비 투자는 새로운 투자 싸이클 만들어

비석유계 원료의 석유화학설비 확장은 범용 석유화학제품의 양적 확장 및 질적 범위 확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석유화학산업 투자에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고 있다.

과거 기업들이 수천억∼수조원이 소요되는 범용 석유화학제품에 투자할 때에는 제품의 수급전망과 목표시장, 가용자본 및 자본회수기간 등을 감안하여 결정했다. 즉 전반적인 시장 상황을 보면서 투자를 판단 했다는 것이고, 이것이 범용 석유화학산업의 투자 싸이클을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비석유계 원료 기반 석유화학설비의 투자는 보유자원(원료)의 고부가 활용이 핵심 동기이다. 이에 따라 신공정이 상용화 되거나, 자원이 확보되면 해당 제품/지역 중심으로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중국과 중동의 상당수 국영기업들의 경우 고용창출도 중요한 투자동기 중 하나이다. 결국 이제 석유화학 투자는 신공정, 자원, 고용 등이 투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과잉공급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투자 발표가 빈번하게 나올 수 있다. 이것이 과거 석유화학산업의 경기 싸이클 패턴이 깨질 수도 있는 이유이다.

일례로 사우디에서는 이미 상당량의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고 원료 가스의 추가 배정(공급)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가스와 석유제품 Dual Feedstock에 의한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투자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Saudi Aramco가 Dow와 합작으로 20조원을 투자, 26개 플랜트를 포함하는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2016년까지 완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국의 높은 실업률과 평균연령이 25세에 불과한 인구 구조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의 하나라고 해석되고 있다.

Ⅱ. 중장기 석유화학 경기 전망 - 동아시아지역을 중심으로

이제 석유화학산업 경기 전망에서는 지역 구분이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에도 지역 및 원료에 따라 수익성의 차이는 컸지만, 최소한 전체적인 흐름의 방향성은 비슷했기 때문에 굳이 지역을 구분해서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투입하는 원료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화석 자원별 지역별 가격격차가 커져서 원료 가격의 방향성이 다른 경우 수익성의 방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기 경기전망 ; 완만한 개선

석유화학 경기가 단기적으로는 완만한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는 ① 2012∼2013년은 신규로 완공된 석유화학설비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신규 공급 물량 부담이 제한적이고 ② 2012년 중동과 미국의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이 이미 최대한 높아져서 잉여물량의 아시아 유입이 더 증가하기 어려우며 ③ 중국 수요의 경우 2012년 중 원료와 중간/최종 제품의 과잉 재고가 대부분 소진되었고, 2년 정도의 공백 기간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주요 소비품(가전, 의복, 가구 등)의 재구매가 시작될 수 있다는 예상 때문이다.

또한 석유화학 경기전망에서 매우 중요해진 중국의 거시 경제도 2013년 신지도부 체제가 안착하고 안정된 물가 수준이 지속될 경우, ‘내수를 확대하고 새로운 소비 성장 영역을 키우는 노력을 좀더 강화’(시진핑 총서기 2012.12.4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 발언) 하는 정책이 구체화 될 전망이다. 2012년 12월 5일 중국의 사회과학원(CASS)이 2013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8.2%로 예측, 외부 시각보다 높은 수치를 제시하면서 몇가지 정책 과제를 제시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단기 석유화학 경기는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까지 수요의 진바닥을 확인했고 공급 부담도 점차 축소되어 다소간의 개선 방향이 예상된다.

중장기 경기전망 ; 회복의 더딘 진행과 평균 수익성의 하향화

중장기 경기 전망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것은 개선방향이 다시 악화로 빠르게 반전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기 회복의 수준이 과거 보다 크게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즉 평균 수익성의 하향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2009∼2010년 중동 석유화학 신규설비가 정상가동이 안되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으로 침체된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도 석유화학 경기가 상당히 좋았던 기간이 있었다. 이때 상당수 애널리스트와 컨설팅 기관들은 짧고 높은 경기 저점 후 “Super Cycle 또는 Big Cycle”의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러나 2011년 하반기부터 모든 일시적 호재가 소멸된 뒤에는 석유화학 경기의 수직 낙하를 경험했다.

그 이후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 조짐과 비석유화학 원료 기반의 설비투자 계획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표되면서, 부정적 환경들이 중첩되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여 애널리스트들의 경기 전망 컨센서스도 ‘회복의 기대 수준을 낮추자’ 또는 또다시 ‘태풍(Storm)’이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석유화학 경기전망의 정확도가 크게 낮아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주목해야 할 내용은 전망 자체보다는 우려되는 환경 변수들이 구조적인 흐름으로 고착화 되어 동아시아 석유화학산업의 중장기 경기전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Ⅲ.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과제

산업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측이 틀릴 확률은 매우 높다. 2000년대 이후 중동과 중국의 부상, 고유가 고착화, 유럽과 미국 등 전통 석유화학 메이저의 철수 또는 영향력 소멸 등 많은 변화들이 혼재 되면서 어떤 변화가 일시적이고 어떤 변화가 구조적 트랜드를 형성하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과거의 경험, 고정관념 등에 기대어 미래를 해석하고 준비하는 것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가 더뎌서 확실한 실체로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석유화학산업의 경쟁구도와 패러다임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고, 미래는 더 크게 변할 수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slow & long industry’라는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전략방향의 실행이 단기간 성과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지만 중장기로 갈수록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된다.

중국시장에 의존한 양적 성장, 지속가능성 불투명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과거 성장 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내수(수입 대체), ‘90년대 이후에는 중국의 수입수요 급증에 의존한 양적 성장이 중심축이었다고 평가된다. 즉 시장에 기초한 양적 성장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원료와 제품간 수직계열화를 구축하고, 일부 기업은 연관 제품군도 확장하면서 범용제품에서 비교적 규모 있는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그러면 이러한 성장을 기록해온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인접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 성장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여 초기 수입시장 선점도 가능했다. 다양한 방면(꽌시, T/S, 납기 등)의 고객 대응력도 유리하며, 물류 등 일부 거래비용 우위도 있어 “중국을 제 2의 내수시장” 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 외에 공정 개선 역량이 우수하고 공업단지 효율성이 좋다는 점 등 operation에 해당하는 내용도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경쟁우위가 있었으나 이제는 거의 소멸된 요인도 있다. 신규 대형설비의 효율성과 고부가 제품 기술력이 그것이다. 중동과 중국의 석유화학기업들이 지난 10년 동안 초대형 신규 설비를 다수 가동해서 전체 사업 규모와 단일 설비 규모도 한국 기업을 크게 앞질렀다. 기술력 측면도 중국은 풍부한 기술인력과 현지투자 외자기업들 도움으로, 중동 SABIC은 미국(GE Plastics) 및 유럽(DSM) 석유화학기업들의 인수를 통해 기술력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직 유효한 한국 석유화학기업의 경쟁력은 인접한 중국 시장의 양적 성장과 그 시장에서의 우위인데, 지금은 이것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장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향후 중국시장의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될 가능성이 높고, 경쟁구도도 현지 초대형 국영기업과 비석유계 원료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의 Target 시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각축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 석유화학기업 독자적인 경쟁우위 필요

한국 석유화학기업들에게는 기존 범용 석유화학사업의 수익력 약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새로운 성장전략 모색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위협 요인들이 현실화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지만, 전략을 재정립 하여 실행에 옮기고 그 성과가 발현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충분치 않을 수 있다.

현재 일본과 서유럽 석유화학 기업의 상황 차이를 보면, 석유화학사업에서 명확한 전략방향의 수립과 선행적인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서유럽과 일본의 석유화학산업은 ‘90년대 이후 내수성장은 둔화되고, 신규시장은 동아시아 신흥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선점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원료 조달도 경쟁우위에 있지 못했기 때문에 범용 석유화학사업에서 기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지역 종합화학 기업들의 석유화학 전략방향과 실행은 크게 차이가 났다.

서유럽의 종합 화학기업들은 자사의 강점 및 약점에 근거한 전략방향을 명확히 설정하면서, 석유화학 사업을 체질을 바꾸어 지속적으로 키우는 기업과 석유화학 사업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기업으로 구분되었다. 석유화학 사업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기업은 명확한 목표 시장을 선정하고 목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글로벌 경쟁우위를 보유한 몇 개 사업은 더욱 육성시켰다. 이런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로 BASF를 꼽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의 종합 화학기업들은 ① 기업별로 명확한 전략 방향성을 선택하지 못했고 ② 개별 제품단위 사업들의 기업간 지분 합종연횡(공판회사 설립 등)으로 사업구조의 근본적 변화는 회피했고 ③ 그룹내 상사/금융과 연계된 지분참여 형식의 간접 해외 진출 ④ 내수시장에서 세분화된 제품 차별화와 코스트 절감 등으로 대응했다.

10여년에 걸친 이러한 전략방향과 실행의 차이로 현재의 결과는 크게 달라져 있다. 2000년대 이후 BASF는 독일/중국에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확보한 석유화학단지를 보유하고, PU 등 몇가지 경쟁력 있는 사업은 글로벌 시장을 리딩 하는 지위를 확보하는 등 석유화학 사업의 적극적인 변신과 집중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에 따라 경영성과도 상당히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범위에서 유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 종합화학 기업의 석유화학사업은 경쟁기업과의 수익성 격차가 점진적으로 커지고, 재투자 자본 여력이 축소되면서 2000년대 후반에는 지속적인 축소 계획을 발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의 사례가 한국기업에게 주는 교훈은 ① 시기를 놓치지 않는 선행적 대응의 필요성 ② 기반 경쟁력 약화에는 그에 걸맞는 근본적 혁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③ 차별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확보의 중요성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석유화학 기업도 과거의 양적 확장 방식의 성장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큰 위기를 여러 번 극복했다는 경험으로 앞으로의 위협 요인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석유화학 처럼 원료와 시장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선행적이고 적극적 변신 만이 미래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LG경제연구원 임지수 연구위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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