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시장을 선도하는 R&D…변화 빠를수록 외부기술 활용역량의 파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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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1-01 12:00
서울--(뉴스와이어)--우리나라의 R&D는 80년대 ‘배우는 R&D’, 90년대 ‘솔루션을 찾는 R&D’를 거쳐 2000년대 이후 ‘제품혁신형 R&D’로 진화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우리 경제는 90년대까지 과감한 설비투자와 R&D투자를 바탕으로, Fast-follower의 성공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제 혁신의 가속화 및 혁신의 독점 현상으로 인해 공정혁신의 여지가 급속히 축소되고 있다. 세계시장은 우리에게 First-mover로서의 제품혁신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 제품혁신을 통한 시장 선도가 아니면, 시장에 참여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지속적으로 혁신제품을 내놓는 글로벌 혁신기업을 분석해 보면, ‘선구적 비즈니스 모델’, ‘탁월한 사용자 경험’,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 ‘독창적인 문제의식’, ‘뛰어난 창의성과 예술성’ 등 다양한 혁신의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탄탄한 기술역량이 자리잡고 있다. 기술역량만으로 제품혁신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품혁신의 필요조건으로 뛰어난 기술역량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혁신기업들은 대부분 성장사업에 필수적인 핵심기술을 선정하여 집중하고 있다. 특히 암묵지적 성격과 누적적 특징이 강한 기반역량이 튼튼하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은 이러한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바탕으로, 시장선도 제품에 필요한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하거나, 뛰어난 외부역량을 탐색, 협업하며 시장 변화를 선도한다. 두 가지 접근법의 스펙트럼 상에서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좀 더 강조하는 기업이 캐논, 다이슨, 픽사 등이라면, 외부역량 활용 측면을 좀 더 강조하는 기업은 퀄컴, 구글, 애플 등이 될 것이다. 최근 시장과 제품혁신의 속도가 빨라지고 협업의 생태계가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Fast-follower에서 벗어나 시장 선도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빠른 시간 내에 R&D의 모습을 ‘제품혁신형 R&D’로 전환시켜야 한다. 글로벌 혁신기업들의 사례에서와 같이,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바탕으로 독자적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외부역량을 탐색/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리더의 명확한 비전과 강한 의지를 바탕으로, 실패하지 않는 R&D가 아니라 성공을 열망하는 R&D를 추구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제품과 기술 수명 주기가 매우 짧아지면서 극소수 선두 기업을 제외한 많은 후발 주자들이 시장에서 지위가 약화되거나 몰락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빠른 속도로 시장과 업계도 재편되고 있다.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선두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업계를 리드하기 위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1. 성공한 Fast-follower의 깊어지는 고민

한국 경제는 지난 50년간 경공업, 중화학공업, 자동차, 전자 및 IT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의 성공 체험을 바탕으로 국내 총생산 연평균 12.3%, 수출 연평균 17.9%의 성장을 실현, GDP 기준 세계 15위, 교역규모 기준 세계 9위로 도약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음향기기 수출을 시작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인 전자제조업은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의 첨단 IT 제품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국가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장의 견인차 설비 투자와 R&D 투자, 최근의 딜레마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설비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80년대까지 선진 산업과 제품을 모방하고 기술을 이식하여 빠르고 싸게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성장의 방식이자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우선 설비투자를 진행한 다음, 설비를 가동하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개선하기 위한 R&D투자를 뒤이어 진행하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80년대까지의 모방·이식형 접근에서 진화한 기술혁신형 접근이 본격화 되었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R&D투자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가 이어졌다. DRAM에서의 고집적화, 디스플레이에서의 대면적화 등에 대한 R&D투자와 그 성과를 바탕으로 한 설비투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80년대까지의 R&D가 ‘배우는 R&D’였다면, 90년대의 R&D는 ‘솔루션을 찾는 R&D’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R&D투자는 설비투자에 후행 또는 선행하면서 그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러한 성장 방식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R&D투자 비중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설비투자 비중은 오히려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장 창출 리스크로 인해 R&D투자가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 즉, R&D투자가 늘어나 기술 개발이 되어도, 사업화가 안되어 쉽게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90년대까지 Fast-follower로서 빠르고 효율적으로 선도 기업을 따라 잡으며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이제 이러한 식의 성장이 한계에 달해 또 다른 성장 모델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 우리 산업의 역량과 위치가 한 단계 성숙하였을 뿐 아니라, 제품 생애 주기 내에서 혁신 패턴의 변화로, ‘공정혁신’의 여지가 대폭 축소되고 있다(25페이지 참조) 선도 기업들의 혁신제품을 모방한 다음 공정 혁신을 통해 수익을 얻고 성장하던 위치에서, 우리가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을 수행하며 시장과 산업을 리드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이처럼 제품 혁신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성장과 수익 창출은 고사하고 아예 시장에서 도태되어 버리는 ‘Lead or out’의 환경적 특성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점점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 혁신 제품 뒤에는 탁월한 기술 역량이 뒷받침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출발점으로서든, 기회를 구현해 주는 수단으로서든, 제품 혁신과 기술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물론 혁신에서 기술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기술 만능주의’, ‘기술 지상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객은 가치를 구매하지 기술을 사지는 않으며, 좋은 기술이 언제나 혁신 제품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제품 혁신을 통해 꾸준히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에는 항상 탁월한 기술 역량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아무리 뛰어난 혁신 아이디어라도 기술 역량을 통해 구체화 되지 못하면 컨셉과 페이퍼만으로 존재하고 시장에서의 실질적 가치로 연결되지 못한다. 기술이 제품 혁신의 충분 조건은 아니나, 탄탄한 기술 역량이 제품 혁신의 필요 조건임은 여러 사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Business Week, Forbes 등에서 매년 선정/발표하는 글로벌 Top 혁신 기업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대표적인 선도 기업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캐논이나 인텔과 같이 탁월한 기술력을 기업의 정체성으로 삼는 전통적 기술기업만이 아니라,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혁신의 다른 요소들을 강조하는 기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과 사용자 경험 (애플), 선구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사용자 경험 (아마존), 독창적인 문제의식과 디자인 (다이슨), 뛰어난 예술성과 감동 (픽사) 등 혁신의 포인트는 각기 다르지만 그 기저에는 핵심기술과 관련해 기술기업 못지 않은 탄탄한 기반역량이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혁신 기업들은 예외 없이 성장 전략에 맞추어 핵심기술을 선정하고 기술역량을 키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경주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캐논은 광학, 이미지 처리, 정밀 기계 등의 핵심 기술을 바탕으로 광학기기 분야에서 연속적으로 혁신 제품을 내놓으며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다이슨이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청소기는 물론 최근 주목을 받았던 날개 없는 선풍기에 이르기까지 혁신적인 컨셉의 제품을 구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체 역학, 디지털 모터 등의 핵심기술력이 큰 역할을 하였다. 애플은 고객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다양한 형태의 UX 기술과 OS 및 SW 설계, 제품 HW 및 주요 부품 설계 등 엔지니어링 역량을 가지고 수많은 혁신 제품을 선보여 왔다. 아마존도 전자상거래 기술, 물류 기술,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플랫폼 및 대규모 서버 운영, 빅데이터 기술 등에 힘입어 아마존 스토어, 클라우드, 킨들 등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모든 선도 기업이 핵심기술과 관련해 형식지적 성격의 응용기술력보다 암묵지적 성향이 강하고 누적적 특징이 큰 기반 기술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선도 기업들은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 풍부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과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을 체화하여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혁신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천기술을 직접 개발하거나 외부 탐색/협력을 통해 빠르게 확보해 나가고 있다. 선도 기업들이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과 탐색/협력을 활용하여 어떻게 제품 혁신을 이끌어 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독자적 원천 기술 개발(R&D Execution)

픽사, 캐논: 원천기술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가치창출과 진입장벽 구축에 성공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들이 독자 기술을 추구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제공하고 싶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와, 경쟁사와 명확한 차별화가 필요한 경우이다. 1995년 영화 <토이 스토리>를 개봉한 픽사는, 컴퓨터 그래픽스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해당 공학 분야까지 함께 선도하였고, 그 결과 각종 영화제 수상 기록 못지 않게 풍성한 원천기술 및 특허 목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첫 작품을 내놓은 지 2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도 기업으로 혁신적인 작품을 끊임 없이 선보이고 있으며, 매 작품의 스토리와 캐릭터, 예술적 성취를 위해 새로운 렌더링 엔진을 개발하는데 타협 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고 수준의 독자 기술을 추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캐논의 경우, 애초의 기술개발 목적은 선발 주자의 원천기술을 회피하는 것이었다. 후발주자로서 카메라와 복사기 시장에 진입한 캐논은, 라이카와 제록스의 원천기술을 회피하기 위해 독자 기술 연구개발에 매진,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원천기술들을 개발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지적재산권 방어를 넘어서 자신의 제품에 차별적인 가치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독자적인 원천기술을 보유한 경우, 경쟁 기업과 차별화되는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디지털 카메라 기업들은 독자 ISP를 통해 고유의 화질과 색감을 제공하며, 이것은 그대로 제품과 기업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경쟁사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으며 (캐논의 지재권 포트폴리오), 라이센스 사업 등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픽사의 그래픽스 소프트웨어 ‘렌더맨’ 판매, 퀄컴의 라이센스 사업).

독자 기술, 성공 불확실성 크지만 아웃소싱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 제공

기업들은 독자적인 원천기술이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혁신의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지만,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술의 성공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원천기술 라이센싱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꾸준히 대규모 투자를 하는 퀄컴의 경우에도, 실제 제품화되어 수익으로 연결되는 기술 과제는 5% 미만에 불과하다고 한다. 둘째, 5%의 확률로 수익 창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자원의 투입에서 이익의 회수까지 10년에서 20년의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셋째, 기술이나 부품을 필요할 때 저렴하게 아웃소싱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는 내부 견해가 생각 외로 깊다는 점이다. 특히 사업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 특성상 고비용의 연구 인력과 장비에 장기 투자가 필요한 원천기술 R&D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In-house R&D는 일정 규모 이상 꼭 필요하며, 암묵적 지식의 확보 및 흡수역량 제고 등과 같은, 아웃소싱으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불확실성과 비효율성을 낮추고 성공의 확률을 높이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반기술 역량이 강하면 그 자체에서 획기적인 고객 가치를 창출하거나, 기존 고객 가치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Technology-push 관점의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Demand-pull 관점의 아이디어를 실제 가치로 바꿀 수 있는 힘도 강해진다. 또한 자체 개발 기술의 확보뿐 아니라 ‘흡수역량’도 함께 강화되어, 뛰어난 외부 역량에 대한 탐색, 협력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은 암묵지적 성격이 강하고 누적적으로 쌓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단기에 외부에서 도입할 수 없으며, 많은 경험과 잦은 실패를 통해 사람과 조직에 축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 산업과 기업의 특징에 따라 사이클은 다르겠으나 - Boeing 737부터 787 기종까지의 연구개발을 리드한 Walt Gillette의 다음 발언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산업 경험에 미루어 보면, 회사에서 12년에서 15년마다 새 항공기를 개발하지 않으면 그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지난번 새 항공기를 개발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은퇴하거나 다른 기업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들의 기술과 경험은 다음 세대의 보잉 구성원들에게 전수되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만다.”)

(2) 탐색과 협력(Search & Collaboration)

독자적 기술 포트폴리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면?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하는 방식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장기 투자를 거쳐 확보하여 지금까지 큰 수익을 창출해 주었던 기술 포트폴리오가 시장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인텔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집적회로의 발명에서부터 반도체 설계와 과학적 공정이란 측면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는 인텔은, 기술과 더불어 뛰어난 사업전략과 파트너십으로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완성품(PC) 시장을 지배,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을 창출해 왔다. 제품의 성능이나 전력소모 등이 이슈가 될 때마다 보유한 핵심기술 역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적인 가치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기술역량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실리콘의 물리적 한계, PC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시장 패러다임 전환, ARM을 필두로 하는 저전력 프로세서라는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의 등장 등으로, 지금까지의 성공을 견인해 준 핵심기술의 기반역량과 이에 기반한 원천기술 개발 역량만 가지고는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캐논 역시 ‘디지털 이미징’이라는 제품 테마와 관련하여 광학기술, 이미징 처리, 정밀 기계 등 핵심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독자 기술 개발에 성공하여 복사기, 프린터에서부터 리소그라피 장비,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혁신 제품군을 성공적으로 확장해 왔다. 그러나 격변하는 시장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협소한 기술 포트폴리오 안에 제품군과 기업이 갇혀버릴 위험이 있으며, 최근 프린터, 복사기 시장의 포화와 스마트폰에 의한 디지털 카메라 시장 잠식 등 시장 성장성이 떨어지면서 기업의 성장 또한 함께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적극적인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은, 인텔과 캐논이 처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술의 범위와 깊이, 개별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

제품의 기능과 구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고도화됨에 따라, 제품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기술의 범위와 깊이가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독자적 원천 기술 개발은 시간이 걸리고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모두 내부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은 기업이 처한 시간과 자원 제약 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현재는 협업과 생태계의 시대로, 기업들이 독자적인 경쟁력 외에도 시장과 산업의 흐름을 읽으며 경쟁사, 협력사들과 함께 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독자적인 기술 역량이 없이는 협업의 생태계에 의미 있게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독자적인 기술역량에만 몰두하다 보면 갈라파고스화 되어버리기도 쉽다.

애플: 사용자 경험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기반으로 외부역량 활용에 두드러진 성과

최근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두 혁신 기업 - 애플과 퀄컴 - 은, 뛰어난 탐색과 고도의 외부 역량 활용 능력을 제품 혁신에 연결시킨 대표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애플은 명확한 목표 설정과 탁월한 설계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내부 기술역량을 강화하고 스마트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을 창출, 장악하였다. 사용자 경험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새롭게 정의, 설계하는 것이 애플의 핵심역량이라 할 때, 이러한 근본적 제품혁신을 가능하게 한 것은 내부의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 능력보다 외부 역량을 활용하여 혁신 기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과 고객 가치, 수익으로 실현시킨 ‘실행혁신’ 능력이었다. 제품에 필요한 고도의 기술적 요구사항을 정확히 도출하고, 뛰어난 외부 협업 역량으로 아웃소싱과 기업 인수를 성공시켜 혁신적 제품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특히 기업 인수의 경우 타 회사들의 M&A에 비해 두드러지게 뛰어난 활용 성과를 보이고 있다. 수년 간 20여건의 기업 인수를 수행하였으며 (대부분 수명에서 수십명 규모의 작지만 기술역량이 튼튼한 회사를 대상으로 하였다), 인수의 결과물은 반드시 애플의 제품에 핵심 기능으로 반영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애플의 AP 설계 역량을 최단시간에 확보하게 해 준 P.A.Semi와 Intrinsity 인수, Siri, 카메라 HDR 및 얼굴 인식 기능, 메모리 컨트롤러, 앱 검색,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이 있다.

퀄컴: 시장의 변화를 앞서 읽고 외부기업 인수

또 다른 기업 사례로 퀄컴을 들 수 있다. 퀄컴은 CDMA 이론을 정립한 Viterbi와 Jacobs 등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창업한 회사로, CDMA 원천기술 라이센싱과 모뎀 칩셋 판매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원천기술로 회사를 키운 퀄컴은, 내부 R&D에 대한 막대한 투자 (매출의 20%)뿐 아니라, 영리한 외부 역량 활용 전략을 통해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였다. 특히 3G에서 LTE로,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두 가지의 큰 기술적 전환이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에서 퀄컴은 탁월한 적응력을 보였다. 시장의 변화를 앞서서 정확히 읽고, 필요한 기술역량은 탄탄한 역량의 기업 인수를 통해 빠르게 확보해 나갔다 (GPS, UI, OFDM 원천기술, GPU, Connectivity, 전원 관리 등). 현재 인텔, 삼성에 이어 2012년 출하량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3위 업체로, 스마트폰 1, 2위인 애플과 삼성을 포함, 거의 모든 스마트폰 완성품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며 (PC에서의 인텔 비즈니스 모델과 매우 유사하다)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부역량 활용에 강한 혁신기업, 핵심기술의 기반 역량도 탁월

이처럼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에 강한 혁신 기업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첫번째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 중심의 기업 못지 않게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반역량이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역량뿐 아니라 흡수역량으로도 연결된다는 면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어떤 기술이 제품 혁신의 key가 될 것인지 시장과 기술을 정확하게 읽어 내며 기술의 동향을 파악하고 자사의 기술을 마케팅하며 협업의 판을 만들어가는 역량이 뛰어나다. 셋째, 필요한 기술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 기술의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여 빠르게 확보, 내재화한 후 제품에 적용하여 성공시킨다.

외부 역량 활용은 기업이 빠르게 시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확보하고자 하는 기술이 덜 범용화 되었을 수록, ▲대체 공급자가 적을 수록, ▲해당 기술이 제품의 핵심 가치에 중요하게 기여할수록, 외부와의 제휴 관계에 따른 리스크가 증가한다. 덜 범용화 된 기술일수록 사올 때 따라오지 않는 많은 암묵적 지식이 있고, 내가 사올 수 있는 좋은 기술은 남도 사갈 수 있다. 제품의 핵심 가치에 밀접한 기술일수록 공급 업체 또한 제조 노하우를 빨리 습득하여 직접 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3. 시장 선도를 위한 R&D의 역량

출발은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딜레마, 산업 혁신 단계의 변화 관점에서 딜레마의 배경, 시장 선도와 제품혁신의 중요성 등에 대해 살펴 보았다. 이어서 시장 선도형 혁신기업의 사례를 통해 제품혁신에서 기술의 역할과 제품혁신을 위한 접근 방안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혁신을 바탕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성장전략에 맞는 핵심기술을 선정한 뒤 핵심기술의 기반역량을 강화해,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서비스에 필요한 독자적 원천기술을 개발하거나, 적극적인 탐색과 흡수 역량을 통해 외부 역량을 흡수/활용해야 한다.

혁신제품을 위한 핵심기술을 확보하는데 있어 ‘독자적 기술개발’과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의 두 가지의 큰 접근법이 존재하며, 시장 선도적인 혁신기업들은 스펙트럼 상에서 산업 특성과 기업 문화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혼합하여 활용하고 있다. 스펙트럼 상에서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좀 더 강조하는 기업이 캐논, 혼다, 픽사, 다이슨 등이라면, 외부 역량 활용 측면을 좀 더 강조하는 기업은 구글, 애플 등이 될 것이다. 퀄컴의 경우 독자적 원천기술 연구개발에서 출발하여 적극적인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을 겸비하며 스펙트럼의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장과 제품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 점점 더 중요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할 지,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을 더 강조할지는 기업의 업종과 문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앞서 기업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적으로 전자부품, 정보통신기기, 정밀기기, 자동차, 화학, 소재 등 High-tech 산업인 경우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통한 차별화가 강조되어 온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정보전자기기와 같이 시장과 제품혁신의 속도가 빠르고 협업의 생태계가 비즈니스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는 환경에서, 탐색과 외부 역량 활용, 즉 search 활동은 점점 더 강조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최근 해당 산업 분야의 리더들은 탐색과 협업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며 혁신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만으로는 단기적으로 매우 효율적인 성과를 낼 수는 있겠으나, 핵심기술의 기반역량, 독자적 원천기술이 없이 외부역량만으로 지속적인 제품혁신을 이끌어가기는 어렵다. 핵심기술의 기반역량, 원천기술은 충분한 시간과 투자를 통해서만 축적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장 바람직한 제품혁신형 R&D의 모습은 독자적 역량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탐색과 외부역량 활용을 강화하여 시장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혁신은 재무성과로 이어져야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강조하든, 외부역량 활용을 강조하든 연구개발에는 공통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문제가 있다.

첫째, 시장과 고객의 가치를 간과하고 기술을 위한 기술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과학의 영역에서는 진리의 탐구와 최고의 기술이 지상 과제이지만, 사업은 고객 가치를 통한 수익 창출이 그 목적으로, 기업에서의 기술은 반드시 고객 가치와 수익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기술을 잔뜩 개발하거나 쇼핑해서 쌓아 두고 사업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기술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면 해당 기술에 투자한 자원의 회수가 어려울 뿐 아니라, 다른 잠재 기술에 투자할 여력을 소진하게 되므로 철저히 지양해야 한다. 정기적인 기술 및 지적 자산의 재고 정리,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하다.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매출과 수익으로 변환시키는 것으로… 기업이 획득한 특허 수와 재무적 성공은 사실 상관관계가 없다. 아무리 놀라운 제품이어도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고 기업에 이익을 주지 못한다면, 혁신이 아니다. 재무 결과로 수익을 보여주기 전에는 혁신이 완결되었다 할 수 없다(A. G. Lafley and Ram Charan).”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세번째는, 그렇다고 수익 추구에 대한 잘못된 강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술에서 가치를 이끌어내고 극대화 하여 수익으로 연결해야 하나, 수익에 대한 압박이 지나친 경우 연구개발 비용을 줄여 수익을 맞추려는 잘못된 접근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연구개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성공을 열망하는 R&D가 아닌 실패를 최소화하는 R&D를 추구하게 한다. 이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임계점 이상의 자원이 투입되는 것을 막아 가치 창출을 더 멀고 어렵게 하는 역효과와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연구개발의 효율성 관리와 함께 긴 연구개발 기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투자할 수 있는 리더의 명확한 비전과 강한 의지가 제품혁신형 R&D의 필수조건이다. 제품혁신을 통한 시장선도를 위해서는 이제 우리에게도 업계의 상식과 비즈니스 모델을 거슬러 오랜 기간 R&D를 수행한 다이슨의 CEO 제임스 다이슨이나, 기술적, 경제적 어려움과 타협하지 않고 최고의 예술적 성취를 이끌어 내는 픽사의 CEO 에드 캣멀과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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