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막 내리는 엔고, 엔저 가속화에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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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1-13 13:51
서울--(뉴스와이어)--아베 새 일본 총리의 인플레이션 및 엔저 유도정책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2007년 이후 계속되어 온 엔고 기조가 엔저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엔저의 중심 범위는 달러당 85~92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엔저 기조는 대세인가

작년 11월 이후 엔화의 약세가 뚜렷해지면서 올해 1월 들어 달러당 85~88엔 수준에서 엔화환율이 등락을 거듭하는 엔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7년 7월 달러당 122엔대에서 작년 초에는 76엔대까지 지속된 장기 강세기조는 이제 끝난 것처럼 보인다.

엔화환율은 과거에도 강세와 약세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흐름을 보여 왔다. 2000년대 이후의 추이를 보면 실제 환율이 중기추세인 12개월 평균선과 장기추세선인 24개월 평균선을 뚫고 약세를 보일 때 강세에서 약세로의 추세전환이 확실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초 엔/달러 환율이 1212개월 이동평균선을 벗어났지만 24개월 평균선은 뚫지 못해 그 후 다시 강세로 돌아선 것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이미 12월 경 부터 엔/달러 환율이 24개월 평균선을 벗어나면서 엔화 약세로의 추세 전환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2011년 초의 경우 일본은행이 양적금융완화를 확대하고 인플레이션 유도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었지만 이를 확실한 정책 목표로 삼지는 않았던 데 반해, 이번에는 선거 과정에서 아베의 강력한 금융완화 및 엔저 의지가 반영되면서 엔고에서 엔저로의 추세 전환이 보다 명백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주요통화들과 비교해도 유독 엔화가치의 하락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초 이후 원화가 달러에 대해 8.4% 절상된 것을 비롯, 대만달러 4.3%, 파운드화가 3.5%,유로와 위안화가 1.1% 절상된 데 반해 엔화는12.0%나 절하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원화와의 상반된 흐름이 두드러진다. 이는 원화와 엔화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 기인한다. 경기부진이 심화되고 양적완화 확대 필요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안전통화로서 엔화가 가지는 매력이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약화되고 있다. 반면 원화 및 원화자산에 대한 평가는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되는 모습이다. 일정한 수준의 수익성에 안정성도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으로 평가되면서 대체안전자산(Alternative safe haven)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 결과 원/엔 환율도 빠르게 하락, 2010년 초 이후 3년 만에 1,100원대에 진입했다.

아베 내각의 엔저 유도 정책에 대한 기대

2007년 리먼 쇼크 이후 6년째 지속돼 온 엔고 사이클이 최근 마감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그 동안 불안을 보여 왔던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험이 상당부분 완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국제수지가 악화되고 동시에 일본정부의 엔저 정책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해 11월 14일에 국회해산 및 총선거 실시와 자민당 아베 내각 출범이 확실해지면서 10월 초부터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엔화의 하락세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신임 아베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2~3%의 물가상승을 목표로 무제한으로 금융을 완화 하겠다’, ‘일본은행법을 개정하여 일본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시중에 유통시키지 않고 일본은행이 직접 인수하도록 하겠다’는 등 초강경발언을 거듭하며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킨 바 있다.

사실, 일본은행은 그 동안 미국의 양적금융완화에 대항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양적금융완화 규모를 확대해 왔으며, 작년 초에는 일본은행의 이러한 인플레이션 정책에 대한 기대로 일시적으로 엔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아베 내각이 무제한 양적금융완화와 더불어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2~3%의 물가상승목표 설정을 강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국내외의 투자가들의 엔화매각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그 동안 엔화는 일본의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 등 여타 국가와의 물가상승률 격차가 지속됨으로써 엔화에 대한 중장기적인 절상 압력으로서 작용해 왔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아베 내각이 인플레이션 유도를 공공연히 내세움으로써 엔화환율의 중장기 흐름에 있어서도 변화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아베 내각이 인플레이션과 엔저를 공약처럼 내세우면서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데다 올해 7월에는 참의원 선거도 예정돼 있어 당분간 일본정부는 민의를 내세워 엔화 약세 유도에 진력할 전망이다.

그러나 일본은행이 직접 정부국채를 인수하는 방안은 부작용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은 명목GDP의 2배가 넘는 막대한 정부부채를 안고 해마다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 국채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금리가 2~3%p만 급등해도 재정에 미치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예산의 편성조차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일본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한 일본계 은행들의 경우에는 국채가격 하락으로 막대한 투자 손실이 발생함으로써 다시금 금융경색에 빠질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영향은 일본 국내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구미 금융기관들이 리먼 쇼크 이후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대출자산 회수에 나선 상황에서, 그 공백을 일정하게 메우고 있는 일본계 은행마저 자산매각에 나설 경우 글로벌 금융경색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아베 내각은 전통적으로 대규모 공공사업을 선호하는 자민당의 정책을 기반으로 현재 사업규모 20조 엔이 넘는 긴급경제대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200조엔 규모의 국토정비계획 또한 밝힌 바 있다. 대규모 경기부양책 및 공공사업의 실행 과정에서 재정적자 확대와 함께 국채발행물량이 크게 늘어나고 그것을 일본은행이 직접 인수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엔화약세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될 경우 발생하게 될 위험도 작지 않다. 급진적인 엔저정책이 전 세계 투기 세력에게는 일본국채 투매를 통한 막대한 투자수익 기회를 의미한다. 이 경우 엔화가치는 크게 불안정한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일본정부의 통제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 이 같은 위험요인을 감안하면 아베 내각의 정책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한 간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일본은행법의 일부 개정이 실현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일본은행에 의한 국채인수를 전면 허용하는 정도의 법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역수지적자와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엔저 압력

작년 11월 이후 엔화 약세가 가속화된 데는 작년 9월의 일본 경상수지가 일시적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중단 사태 속출로 인해 일본의 천연가스 수입이 급증해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되면서 전체 경상수지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영토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일본의 대중 수출이 14%나 감소하면서 경상수지도 적자를 보였다(원 계열로는 1월, 11월에 적자).

일본 전자업체들이 TV사업에서 대규모 적자를 지속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 현상은 향후 무역수지 적자기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전망이다. 일본의 경상수지 구조는 해외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에 해당하는 소득수지가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를 뒷받침하는 구조이다. 하지만 일본의 해외자산은 채권 등 현금성 자산이 많은데다, 그마저도 최근의 선진국 금리 하락으로 인해 투자수익 확대에 한계가 따른다. 무역적자의 확대와 함께 2012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700~800억 달러 수준에 그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지속적인 엔고로 인해 일본기업의 해외직접투자, 해외기업에 대한 대규모 M&A도 확대되면서 투자수지의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안정화로 인해 일본의 해외증권투자도 회복되면서 엔화약세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2013년에는 일본 경상수지가 2012년에 비해 흑자폭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기의 회복과 엔화약세 효과로 인해 일본의 수출증가율이 당초 예상보다도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원자력 발전에 보다 적극적인 자민당 정권의 재등장으로 일부 원자력 발전소가 재가동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천연가스 등 원자재 수입 수요 둔화 요인으로 작용한다. 원자재 가격도 이란 핵 위기가 전쟁 상황으로까지 가지 않으면 2013년에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일본의 원자재 수입 증가율은 2012년에 비해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일본 경상수지 흑자가 과거처럼 큰 폭으로 늘어나기는 어렵지만 2013년에는 지난해보다 소폭 늘어난 900~1,000억 달러 정도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여 경상수지 측면에서 본 엔화 약세의 가속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선호 재개가 엔화 약세 요인

일본 제조업의 약화, 무역수지의 적자, 막대한 재정적자의 누적 등 과거 엔고를 지탱해 왔던 일본경제의 강점과 안정성이 상당히 후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엔고가 지속되어 온 것은 리만쇼크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세계 최대의 순 채권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엔화 또한 안전통화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로존 위기로 인한 위험이 고조될 때마다 엔화가 강세를 보여 왔다.

따라서 작년 하반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가 소강상태에 들어서고 미국의 재정절벽 협상도 큰 고비를 넘김으로써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회복된 것이 상대적으로 엔화에 대한 수요를 둔화시키고, 특히 금년 초부터 엔화약세를 가속화시킨 요인이다. 다만, 유럽 경제는 장기정체 양상을 보이면서 긴축을 해도 재정적자가 계속되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등 재정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은행동맹이나 재정통합도 단시일 내에 성과를 내기 어려워 향후에도 상당 기간 금융 불안과 실물경제 침체가 지속될 전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역내 최종대부자로서 유동성 공급에 주력하여 위기를 막는 구도가 지속되는 한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올해 가을에 있을 독일 총선거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미국의 경우도 재정지출 삭감 방안에 관한 완전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다소의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험선호가 가속화되면서 엔화 약세압력을 가중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일본에 이어 미국이나 유럽도 제로 금리 정책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등 비정상적인 통화정책 환경이 금년 중에 쉽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0년 만기 국채금리 기준으로 과거 3~4%p에 달했던 미·일간의 금리차가 1%p 정도로 축소된 상황에서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큰 폭의 하락세를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지난 12월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미국의 실업률이 6.5%(12월의 실업률은 7.8%)로 떨어질 때까지 제로금리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FRB의 공식견해에 따르면 실업률이 6.5%로 떨어지는 것은 2015년 이후로 전망되고 있어, 미국의 제로금리정책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2013년 중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미국경기의 회복세로 미·일간 금리차가 다소 확대되더라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며, 이에 따른 엔저 압력의 가속화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달러당 85~92엔 수준 예상

이상과 같은 최근 엔고의 원인과 강도 및 지속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엔고 사이클의 마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이지만, 엔화의 절하 폭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후반 이후로는 실제 환율의 변동 폭이 수출물가로 본 구매력평가환율 수준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엔고시기에도 엔화의 절상 폭은 제한적이다. 과거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의 초엔고 시기에는 명목 엔/달러 환율이 수출 물가를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환율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까지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2012년의 경우 수출물가 기준 구매력평가환율은 달러당 47엔에 달하지만, 실제 환율의 최저치는 76엔 수준에 그쳤다. 과거 엔고기에는 수출 물가를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환율 부근까지 엔화가 절상되었고, 엔저기에는 생산자물가를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환율을 한계선으로 해서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패턴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에는 실질 엔화가치 대비 명목 엔/달러 환율의 변동폭이 과거에 비해 작아졌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들어서는 엔화 약세가 생산자물가 기준 구매력평가환율을 소폭 상회하는 수준까지 진행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는 일본경제의 위상 약화라는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질 엔화가치를 기준으로 한 절상 및 절하의 한계선과 국제금융시장의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번에도 생산자물가 기준 구매력평가환율 수준 부근을 엔화약세의 한계선으로 볼 수 있다. 2012년 1~11월 기준으로 본 생산자물가 구매력평가환율은 달러당 92.5엔이다. 따라서 금년 상반기 중에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국면에서는 달러당 85~92엔 정도의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난해 80엔대 초·중반 수준에 머물렀던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엔/달러 환율 전망치로 올 들어서는 80엔대 후반 또는 90엔대 초반으로 상향조정되는 흐름이다. 일본 내 25개 연구기관의 엔저 범위에 대한 전망치도 달러당 85~89엔으로 예측한 기관이 13개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의 경우 아베 신내각에 대한 기대와 함께 엔화 약세가 진행되겠지만 점차 정책 효과의 한계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면서 엔저 흐름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2013년 평균 엔화환율은 달러당 90엔대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인 일본이 해외투자를 원활하게 확대하지 않으면 엔고가 발생하기 쉽고 미·일간 금리격차가 과거처럼 확대하지 못한 상태에서 아베 내각의 무리한 엔저 유도 정책에 대한 기대가 무너질 경우 급격한 엔고로의 반작용이 발생하는 국면도 나타날 수 있다.

엔저가 일본기업 수익 회복에 기여

이상과 같은 엔화환율의 하락세는 일본기업의 수익확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엔화가 지속적으로 강세를 나타냈지만, 구매력평가환율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여타 아시아권 기업들과의 경합은 더욱 강화되어 왔으며, 수익 또한 상당한 정도로 압박되어 온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의 엔화약세가 일본 수출기업들의 수익성 제고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역상대국과의 교역규모와 물가수준을 고려해서 계산되는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2007년 7월에서 2012년 11월 사이에 21.9% 절상된 반면, 한국, 미국, 독일 등은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일본 재계에서는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동안 한국의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한·일간 경쟁력 측면에서 일본이 크게 불리해졌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원화와 엔화 사이의 상반된 흐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두 나라 경제 및 산업구조의 유사성이 그대로 반영되면서 원화와 엔화의 가치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가 대표적인 조달통화로 급부상하면서부터는 엔화가치가 자국 경제상황을 반영하기보다는 국제적인 금융위험의 척도로 부각되었다. 경제의 장기침체로 인해 제로금리 및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캐리 트레이드 등에 있어 투자자금 조달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원화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그 동안에는 유사시에 변동성이 크게 높아지는 위험통화로 인식되어 왔다.

그 결과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적일 때에는 원화강세-엔화약세의 흐름을, 반대로 세계경기가 급락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원화는 약세, 엔화는 강세를 나타내는 패턴이 점점 정형화되고 있다. 그 결과 원화와 엔화 사이의 동조성은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으며,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불안하거나 불안이 해소되는 국면에서 원/엔 환율의 변동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향후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이 지속된다는 전제 하에 원/엔 환율의 하락 폭이 원/달러 환율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실질실효환율의 장기추세를 보면, 2012년 말 시점은 지나친 엔고도, 지나친 원화약세도 아닌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2006~2007년경 원화가 고평가 국면에 진입했을 때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원화가치가 크게 절하되면서 가격경쟁력까지 크게 높아졌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소멸되어 가는 상황이다. 따라서 상당수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적 호조세는 원화가치가 급등락을 나타내는 동안의 가격경쟁력에 더해 그만큼 경쟁력이 강화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익숙해졌던 위기 이후의 원화 저평가 국면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엔화약세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원화가치가 과거와 같은 고평가 국면으로 진입하게 되면 한·일간 경쟁에서 한국 수출산업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엔저로 인한 주요 일본기업의 수익 확대 효과를 보면 자동차, 전자산업, 기계 등의 주요 수출기업이 혜택을 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본 자동차 산업이 엔저로 인해 크게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자동차 산업에서의 한·일 기업 간 경합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산업의 경우 디지털 가전의 평판TV나 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 한·일 기업 간 경쟁력 격차가 확대된 상황이기 때문에 다소의 엔저로 한국기업에게 큰 충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예상 외로 엔저가 가속화되어 달러당 110엔대를 넘는 엔저가 발생할 정도가 되면 한국 수출산업 전반에 대한 충격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엔화환율이 2008년 3월 수준, 달러당 114엔 정도까지 하락할 경우 도요타의 영업이익이 2조 6,200억 엔(닛케이비즈니스, 2012.9.10)으로 2012년 3월 결산 실적의 7.3배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일본자동차 기업의 수익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원/엔 환율 하락 충격은 제한적

엔화약세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추이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 1997년 말 이후 엔화가 원화에 대해 약세를 나타낸 대표적인 시기는 2004년 초부터 2007년 7월에 이르는 3년여에 걸친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원/엔 환율은 1,123원(2004년 1월 초)에서 746원(2007년 7월)으로 약34% 하락했다.

2004년 초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원/엔 환율이 일정한 범위 내로 유지되던 기간과, 이후의 원/엔 환율 하락 시기에 우리경제의 모습을 비교하면 전반적인 성장률 수준은 세계경제의 경우 원/엔 환율이 하락한 엔저시기에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2000년대 중반, 서브프라임 사태 발생 직전까지 세계경제의 고성장-저물가 시기와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원/엔 환율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안정되었을 때의 성장률이 더 높았다. 엔저시기에 세계수요 여건이 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2006~2007년 무렵 원고-엔저가 심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상당부분 제약을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세계경제가 호황을 누리는 과정에서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발생한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우리경제의 소득증가를 제약한 측면도 있다.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좀 더 눈여겨볼만하다. 2004~2007년 기간 동안 지속된 세계경제의 호황국면에 힘입어 2004년까지는 원/엔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우리수출이 높은 신장세를 나타냈다. 하지만 원화강세와 엔화약세가 심화되는 2005년 이후가 되면 수출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화될 뿐만 아니라 수출제조업의 영업이익률도 소폭 둔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전기전자 부문이나 자동차, 철강 등의 업종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엔화가 약세를 나타낸다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완화되면서 세계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엔화약세기에 원화가 강세를 나타내더라도 세계수요의 확대를 동반하는 경우에는 전반적인 수출증가세가 유지될 수 있다. 반면 최근처럼 세계수요의 회복속도가 느린 시기에 외채증가를 동반한 원화강세 심화 또는 원화 고평가 국면으로의 진입 시에는 수출 위축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기전자 업종이나 자동차, 선박 등 운수장비, 철강, 화학 등 일본과의 경합도가 높은 업종 및 품목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자동차나 철강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업종지수의 부진은 이 같은 상황판단 및 기대를 반영한다. 반면 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휴대폰, TV, 반도체 등 적지 않은 품목에서 상당부분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원/엔 환율 하락으로 인한 주가하락 요인이 상대적으로 작게 반영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엔저 현상이 달러당 90엔 내외의 수준에 그치고 원화가치도 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원/엔 환율이 100엔당 1,100원을 크게 밑돌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산업에 대한 엔저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 배민근 책임연구원 www.lge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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