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주춤하는 원고·엔저 아직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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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3-06 12:00
서울--(뉴스와이어)--최근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작된 원고·엔저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일본제품과의 경합도가 높아 엔화 대비 원화 가치의 상승은 국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과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져 환율에 덜 휘둘리게 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원화환율이 급락하거나 혹은 현재의 원고·엔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에는 우리 수출 및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원고·엔저의 배경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언제까지 얼마나 더 진행될 것인지를 살펴본다.

Ⅰ. 원고·엔저의 배경

원화강세, 엔화약세 본격화

원화가 강세로 전환된 것은 지난 해 하반기 이후이다. 지난해 중반 달러당 1,180원 수준이던 원화환율은 올해 초 달러당 1,050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최근 들어 원화환율이 다소 반등하기도 했으나, 3월 1일 현재 달러당 1,085원 수준으로 지난해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한편 엔화는 지난 10월말 이후 급격히 약세로 전환되었다. 지난 해 3분기 말 달러당 77엔 수준에서 3월 1일 현재 93.6엔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 6개월 동안에만 엔화는 미달러화에 대한 절하 폭이 15%에 달해 주요국 통화 중에서 가장 크게 절하되었다. 원화는 유로화의 강세 폭에 다소 못 미치기는 하지만 5%의 절상 폭을 나타내고 있다. 원화강세, 엔화약세의 결과로 원/엔 환율은 지난 해 6월초 100엔당 1,510원 수준에서 급락세를 보여 3월 1일 현재 1,159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엔화 대비 원화의 절상률이 30%에 달한다.

최근 들어 원고·엔저가 다소 주춤하고는 있다. 단기간 급격하게 변했던 것에 대한 조정 과정과 함께, 이탈리아 총선 이후 유로존 내 정치리스크가 부각되고 미국의 정부지출 자동삭감을 의미하는 시퀘스터(sequester) 발동 등으로 세계경제가 다소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환율의 경우 북핵문제의 여파 및 해외 펀드 이탈 등 외국인 자금 유출이 원고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면서 올해 1월 중반 이후 반등했다. 엔화환율은 2월 이후 달러당 93~94엔 수준에서 보합권을 유지하고 있어 지난 해 11월 이후 본격화됐던 엔저 현상도 숨고르기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동안 원화강세, 엔화약세를 유발한 원인과 배경을 감안할 때 원고·엔저 현상이 현재의 수준에서 끝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원고와 엔저의 배경

① 세계경제 회복 및 글로벌 금융 불안 완화로 원고·엔저 시작

원고·엔저 엔저 현상이 나타난 것은 우선적으로 글로벌 금융불안 완화와 관련이 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화와 원화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이나 유로존 재정위기를 비롯하여 글로벌 금융시장에 악재가 발생할 때마다 엔화는 강세를 나타냈고, 원화는 국내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인해 약세를 보였다. 엔화는 안전자산, 원화는 위험자산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지난 해 중반 이후에는 유럽 중앙은행의 무제한 국채 매입 조치 및 미국의 3차 양적완화 등이 글로벌 금융불안을 다소 완화시키고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위험 기피 경향이 감소하면서 엔화 등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든 반면, 유럽 및 아시아 국가 통화 등 지금까지 절하 폭이 컸던 통화들에 대한 매수세는 증가했다.

최근 들어 글로벌 불안심리가 다소 확대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글로벌 금융 및 경제안정이라는 큰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반기 부터 시작된 원고·엔저도 금융위기 이후 크게 변동했던 통화가치가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② 아베노믹스(Abenomics)로 엔저 가속

지난 해 4분기 이후 주요 통화 중에서 엔화의 약세가 두드러진 것은 아베 내각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완화정책(아베노믹스, Abenomics)의 영향이 크다.

일본이 재정 및 통화정책 면에서 완화정책을 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버블 붕괴 이후 1990년대부터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일본정부는 크게 저하된 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경기 확장 정책을 지속해 왔다. 특히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는 양적완화 정책 등을 포함하여 각종 경제활성화 정책들이 확대 시행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도 이제까지 실행된 완화정책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의 완화정책이 내각 출범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이미 시장의 반향을 크게 불러일으킨 것은 완화정책의 강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정책의지도 높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의 주요 골자로는 먼저 재정지출의 확대를 들 수 있다. 13.1조엔에 달하는 추경예산안 규모는 과거 금융위기 당시의 15.9조엔(2009년) 이후 역대 두번째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중앙은행의 인플레 목표 수준이 기존의 1%에서 2%로 상향조정되고 채권매입 규모도 101조엔으로 확대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일본은행이 올해 내에 36조엔의 자산을 추가로 매입할 여력이 생긴 셈이지만, 내년부터는 매월 약 13조엔의 자산매입을 무기한 추진하기로 결정되었다.

완화정책에 대한 아베 내각의 실행의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반이 안정적인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재집권에 성공한 자민, 공명 연립 여당은 지난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중의원(하원)의 2/3 이상을 차지했다. 이로써 참의원(상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다수당이 중의원에서 법안을 가결할 수 있게 되었다. 정책의 추진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현재의 엔저는 대규모 완화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차기 일본은행 총재로 내정된 구로다 하루히코 현 ADB(아시아개발은행) 총재는 통화완화론자이다. 디플레 탈출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입장이어서 팽창적인 통화정책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빠르면 4월초에 있을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회의에서 내년으로 예정된 무기한(open-ended) 양적완화 정책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직접적인 시장개입이 없더라도 인플레 상승 기대만으로도 엔 약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③ 우리나라의 기업 경쟁력 및 국가 신용등급 상승이 원고 뒷받침

원화는 실물과 금융 측면에서 모두 절상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경상수지의 흑자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화약세 효과, 일본 대지진의 반사이익, 서비스수지의 개선 등으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국내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제품 경쟁력이 높아진 점도 원화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는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신용등급의 상향 조정 등 국가 신뢰도가 제고되는 것도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을 늘려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투자자들에게 원화자산이 수익률에 비해 위험도가 낮은 투자처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급락했던 국가신용등급은 꾸준한 회복세를 보여 현재는 최고 등급인 AAA에 3~4단계 근접한 수준으로 올라서 있다. 반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은 단계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신용평가회사에 따라 한일간 국가신용등급이 역전된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CDS 프리미엄을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위기 직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CDS 프리미엄이 일본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나 이제는 역전된 상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국채를 그만큼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적 요인 맞물려 중장기적으로 원고·엔저 지속 가능성

현재의 원고·엔저 현상에는 상대적으로 일시적이고 경기순환적인 요인과 함께 구조적, 추세적 요인들이 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회복 기대 및 글로벌 금융불안 완화 등은 원고와 엔저를 유도하는 요인이다. 이 밖에도 원고와 엔저를 야기하는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요인들이 적지 않다. 원화와 엔화가 단기적으로는 등락을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추세적으로는 원고·엔저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원화 강세의 구조적 요인은 대체로 우리 경제의 선진화 과정과 관계가 깊다. 우선 우리 제품의 기술 경쟁력 제고 및 고부가가치화는 경상수지 흑자를 가능케하는 동력이다. 자본시장 선진화로 안정성이 제고되면서 해외투자자금 유입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 데다, 국내 증시가 MSCI 등 여러 글로벌 지수의 선진국 지수에 편입될 가능성도 외국인 자금의 유입을 늘리는 요인이다. 특히 채권시장의 경우 외국인 투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 오래 되지 않았으며, 외국인 보유 비중도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향후 추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엔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으로 주로 지목되는 것은 고령화이다. 고령화가 심화될 경우, 국내 생산에 비해 소비가 커지면서 경상수지 적자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전환된 것이 고령화와 무관하지는 않다. 대중 무역 분쟁 등 일시적인 요인이 해소되면서 무역수지가 다시 흑자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역수지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누적된 해외자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소득수지 흑자에 의해 경상수지는 앞으로도 당분간 흑자를 유지하겠지만, 흑자 규모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본의 재정건전성 문제도 잠재적으로 일본경제를 위협할 요인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 수입 중 세수의 비중이 50%가 채 되지 않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세수 증대를 통한 재정건전성의 개선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반면 해마다 국채의 신규 및 차환 발행 물량이 많아, 금리 상승 시 재정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이다. 자국민의 국채 보유 비중이 높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는 위험도가 덜하다고는 하나, 외국인의 보유 비중이 2004년 4% 수준에서 2012년 말 9%로 계속 상승하고 있어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Ⅱ. 원고·엔저 전망

원고·엔저 재개될 전망

여러 요인들을 종합해 볼 때, 최근 다소 주춤했던 원고·엔저 현상은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불안 완화로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 감소함과 동시에,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가 엔저를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저금리, 통화완화 확대를 배경으로 엔캐리 트레이드가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유로존 및 미국의 재정 이슈가 큰 충격 없이 지나간다면, 원화는 올해 연평균 달러당 1,050원 수준, 엔화는 달러당 95~100엔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엔화에 대한 원화환율로 보면 100엔 당 1,050~1,100원 수준이 되고 지난 해 평균 대비 20% 이상 하락하게 된다.

수년 내 원엔환율 100엔당 800원 수준으로 하락 가능성도

단기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원고·엔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원고·엔저는 추세적인 흐름 전환의 초입인 것으로 판단된다. 단기적으로는 등락을 거듭하면서 원엔환율이 상승하는 국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적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원화 가치는 엔화 대비 강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중장기적으로 원화환율은 어느 수준까지 하락할 수 있을까. 그 기준선으로 우선 경상수지 균형환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과거 경상수지가 균형을 이루었던 시점의 환율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 환율이 균형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 지를 보면 향후 변화의 방향과 폭을 가늠해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대 이후 경상수지가 균형에 근접했던 시점들의 환율 평균치를 적정으로 본다면, BIS에서 발표되는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할 때 1월 현재 원화는 8% 가량 저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른 통화환율이 1월 수준을 유지한다고 보면 원화환율은 경상수지 균형 관점에서 달러당 1,000원 수준까지 절상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우리기업의 경쟁력 향상으로 경상수지 균형환율이 더욱 낮아졌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상수지 균형환율은 달러당 900원대로 낮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기준선으로 구매력평가(PPP) 환율이 활용될 수 있다. 구매력평가환율은 장기적으로 환율이 각국 물가수준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양 국가에서 동일한 재화의 가격을 같게 만들어주는 환율 수준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1,000원에 살 수 있는 물건을 일본에서 100엔에 살 수 있다면 구매력평가에 근거한 원엔환율은 100엔당 1,000원이 된다. 비교역재의 문제 및 자본, 금융측면에서의 외환거래 문제 등 여러 한계점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구매력평가환율은 시장환율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OECD에서는 2005년 세부 품목들에 대한 각국의 가격 조사를 바탕으로 구매력평가환율을 산정한 후 매년 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여 구매력평가환율을 재산정해 오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2년 원화의 PPP환율은 달러당 830원이고 엔화는 달러당 108엔이다. 이 수준에 비하면 현재 원화는 저평가되어 있는 반면, 엔화는 고평가되어 있는 것이다. 원엔환율로 환산해 보면 100엔당 770원 수준이 엔화에 대한 원화의 구매력평가환율이 된다. 만약 최근과 같은 속도로 원엔환율 하락세가 당분간 이어진다면, 2015년경에는 시장환율이 구매력평가환율 수준에 상당히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IMF의 물가 전망치를 적용할 경우 원엔환율은 100엔당 800원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원엔환율의 최고치였던 2009년 2월 무렵의 100엔당 1,550원에 비하면 6~7년 동안에 원화가 엔화에 대해 94% 가량 절상되는 셈이다.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 단기적으로 급등할수도

문제는 원화가치가 단기에 급등할 가능성이다. 과거 엔고 기간 중에 엔화가치가 단기간 급속히 절상된 것과 유사한 사례를 원화도 겪을 지 여부이다. 엔화는 이미 1970년대부터 절상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절상 추세는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달러 당 240엔이었던 엔화는 1987년말에는 달러당 120엔 수준으로 급등했다. 불과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엔화가치 상승 폭이 거의 100%에 달했다. 이후 엔화는 주기적으로 엔저와 엔고를 반복하면서도 추세적으로는 강세를 유지해 왔다. 플라자 합의 이후 몇 차례 엔고기간 중에 엔화가치는 30%~90% 상승했다.

현재 우리경제는 장기간 지속되는 경상수지 흑자, 높아진 제조업 경쟁력, 해외투자자의 신뢰도 상승 등 몇 가지 점에서 플라자합의 당시의 일본경제를 연상시킨다.

일본의 경상수지는 1981년부터 안정적인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해 1985년에는 GDP 대비 3.7%로 커졌다. 1980년대 중반 일본이 제품, 생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자, 자동차를 위시하여 제조업 강국의 위치를 굳힌 결과이다.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부터 매년 GDP 대비 1~2%대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위기 무렵인 2008년에는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0.3% 수준에 그쳤으나 이후 다시 확대되어 2012년에는 432억달러, GDP 대비 3.8%(추정치)를 기록했다. 경제 내에서 30%가 넘는 제조업 비중과 높아진 제조업 경쟁력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시키는 중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는 미국의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표적이 되는 구실이 될 수 있다. 플라자합의 당시 일본은 독일과 더불어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던 때문에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이 되었다. 현재는 미국 국제수지 불균형 해소를 위한 주된 대상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막대한 중국이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가 GDP 4%에 가까운 수준을 보이면서 국제적으로 주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우리나라에 대해 높아진 투자매력도와 해외투자자들의 높은 신뢰도로 인한 대규모 해외자본 유입 가능성도 잠재적으로 급속한 원고를 야기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일본의 경우도 플라자합의에 따라 자본시장 개방이 진행되면서 나타난 해외자본 유입이 엔고를 유지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플라자합의 당시의 일본과 다른 점

일본과의 여러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원고를 예상하기에는 다른 점도 적지 않다. 플라자합의 무렵의 엔고는 G5(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의 비밀합의에 의한 시장개입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무역적자를 야기한 주요 상대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이 자발적으로 자국통화의 강세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면서 저달러, 마르크 및 엔화 강세의 시발점이 되었다. 현재 미국의 무역적자는 일본보다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과의 교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나 합의에 의한 통화가치의 대폭 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신흥국으로의 대규모 자금유입과 자산버블 위험, 통화가치 상승압력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흥국들의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수출품은 세계수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수출품의 세계수입시장 점유율은 그동안 꾸준히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 3%에 불과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2년 중 152억 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 5,400억 달러의 3% 수준이나 1980년대 중반 플라자합의 이전 일본의 대미 흑자는 미국 전체 무역적자의 28%에 달했다.

Ⅲ. 시사점

원화가 달러화에 대해 단기 급등할 가능성은 높지 않더라도, 향후 원화는 조정과정을 거쳐가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강세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나타나고 있는 원고, 엔저 현상을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장기적인 원화강세, 엔화약세로 전환되는 추세 전환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원고, 엔저가 맞물리면서 원화가 엔화에 대해서는 단기간에 급속히 절상될 여지도 있다. 향후 일본은행의 통화완화 강도, 인플레 기대심리 확산, 엔 캐리 트레이드 증대, 또는 일본 재정 및 국채시장에 대한 불안감 확대 등에 따라 엔화가 추가적으로 급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제품들은 일본제품과의 해외시장 경합도가 가장 높아 달러화에 대한 원고 못지 않게 엔화에 대한 원고가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 원고에 따른 경쟁력 약화에 더해, 향후 일본기업들이 엔저를 배경으로 경쟁력을 높여 나갈 것으로 보여 우리기업들은 이중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야 한다.

환율변동에 대해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환위험 헤지를 통한 위험관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진행되는 원화강세기에 환위험 헤지 효과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고, 엔저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원가절감 차원을 넘어서서 생산과정 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을 통해 근본적으로 생산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격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근원적인 제품경쟁력을 높여 나가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원고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 설비투자와 R&D 투자가 위축되면서 제품경쟁력이 뒤처지고, 이것이 매출부진과 수익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을 피해 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 원고 추세가 이어질 경우 기업들은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또는 해외생산 비중 조정 등의 대응방안을 강구해 나가게 된다. 환율 요인이 아니더라도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전은 이전부터 지속되어 온 현상이나, 원고 시기에 해외투자가 더욱 늘어나는 것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도 나타난다.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은 기업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겠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제조업 공동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 서비스 산업의 확장과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제조업체의 이탈 충격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경제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책당국은 원고·엔저 현상으로 인해 수출여건이 어려워질 경우 어느 정도 내수 부양을 통해 경기위축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따른 내수활성화가 지나칠 경우 나타날 부작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직 가능성이 낮더라도 과거 플라자 합의 이후 급속한 엔고와 유사하게 단기간에 원화가 급속히 절상될 경우에 유의해야 한다. 플라자 합의 직후 진행된 엔고를 일본기업과 일본경제는 표면적으로 훌륭히 극복해 냈다. 그러나 엔고 추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장기간의 저금리 및 과도한 내수부 양 조치 들이 1980년대 후반의 부동산 버블로 연결되어 결과적으로 장기불황을 잉태한 시초가 되고 말았다.

장기적으로 원고 추세를 막을 수는 없더라도 정책당국은 기업, 산업, 경제가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원고 속도를 늦추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경우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도 필요하겠지만, 해외자본의 유입 유인을 억제하는 것이 보다 장기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다. 기존의 자본유출입 안정화 3종세트로 불리는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이익에 대한 원천징수 과세, 단기 외화차입에 대한 거시건전성 부담금 부과 등이 그동안 해외자본 유입을 억제하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해 온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원화절상 압력이 커질 경우 우선 3종세트의 강화를 모색하는 한편, 금융거래세 등 새로운 조치의 도입도 신중히 논의될 필요가 있다. 자본유입의 억제는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하는 효과와 함께, 장래 국내외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잠재적 충격을 예방한다는 의미도 있다.[LG경제연구원 최문박 선임연구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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