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한미 FTA 발효 1년, 통상 질서 변화에 대비해야 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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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3-17 12:34
서울--(뉴스와이어)--한미 FTA 발효 1주년을 맞아 한미 FTA의 성과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러나 글로벌 통상 무대에서는 기존 FTA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자화 움직임과 함께, 미-EU FTA, 일본의 TPP 참여 선언 등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생산 블록을 견제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시 단기적 논란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2012년 3월 15일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공식 발효된 후 1년이 흘렀다. 한미 FTA는 2006년 2월 협상 추진 선언 이후 경제적 실익에 대한 논란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치열한 논쟁을 일으켜 왔다. 미국과의 FTA를 계기로 수출 확대와 서비스 산업 경쟁력 향상을 통해 제 2의 도약을 이룰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부터 값싼 미국 농축산물 수입으로 우리 농업이 무너지고 투자자국제소송제도(ISD) 허용으로 사법주권을 잃게 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우려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그러나 발효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아보자면 한미 FTA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뒀다고 하기도, 우려했던 피해가 현실화 됐다고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적 평가는 아직 일러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FTA의 성과는 무역 확대, 직접투자 활성화, 산업경쟁력 개선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무역이나 투자 실적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지난 1년 간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도 대미 수출은 1.4%나 증가했으며, 특히 FTA 혜택 품목의 경우 수출증가율이 10.4%에 달했다. 그 결과, 작년 6월까지 50%대에 머물던 FTA 활용률도 지난 2월 말에는 69.6%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수입 면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우리의 총수입이 3.8% 줄어든 반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9.1%나 급감하면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전년 대비 39.1%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FTA의 기본 목표가 양국 간 교역 확대를 통한 자원 배분의 효율화라는 점에 비춰보면 무역수지 급증에 대해 마냥 높은 점수를 줄 상황은 아니다. 직접투자 역시 미국의 대 한국 투자는 두 배 이상 늘어난 45억 달러(신고 기준)에 달했지만 한국의 대미 투자는 건수와 금액 모두 줄어드는 등 양국 간 무역과 유사한 패턴의 비대칭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적을 근거로 한미 FTA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어렵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는 작년 3월부터 즉시 철폐 됐지만 완성차의 경우 2016년 이후에나 관세가 사라지기 시작하고, 의약품과 같은 민감 품목들 역시 본격적인 개방은 4~5년 이후부터 이뤄진다. 본격적인 손익 평가는 그때부터 가능하다는 뜻이다.

산업경쟁력 제고 측면도 아직은 판단할만한 시점이 아니다. 미국에 비해 생산성이 낮은서비스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지만 주요 사업서비스 분야가 이제 겨우 1단계 개방을 시작하는 시점이라 본격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법률, 회계서비스 분야의 경우, 1단계, 즉 현지 사무소 개설 수준의 개방만으로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한국 업체와의 제휴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이 허용되는 2~5년 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미국 법무법인들의 한국 진출은 지난해 1단계 개방이 이행되자마자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2월 15일 현재 국내에 진출한 외국 변호사 37명 중 28명이,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 15개 중 12개가 미국 소재 본점사무소 소속이며, 미국 법무법인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우리나라 법무법인의 대형화와 국제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질서의 새로운 변화 조짐

한미 FTA가 발효된 지난 1년간 국제통상 무대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몇 가지 나타났다.

첫 번째 변화는 다자간 특혜무역협정의 본격화다. 한중일 3국과 아세안, 호주, 뉴질랜드, 인도가 회원국인 아시아 중심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미국, 칠레, 호주, 베트남, 브루나이와 같은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참여하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등이 좋은 예다.

모든 회원국의 참여를 전제로 한 WTO 중심의 다자간 무역자유화가 난관에 봉착한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경제의 통합 움직임은 상당 기간 동안 두 나라 간 특혜무역협정, 즉 양자간 FTA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양자간 FTA는 대상국 선정이 용이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과 빠른 추진이 가능하다는 장점 덕분에 전세계 시장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양자간 FTA 증가로 스파게티 보울 현상, 즉 원산지 규정의 복잡화로 FTA 혜택을 누리기 위한 행정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지역적/문화적으로 인접했거나, 혹은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소규모 다자간 무역자유화 논의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유럽연합(EU) 등 다자간에 체결된 특혜무역협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의 다자화 움직임은 기존 FTA의 결점을 보완하는 FTA 2.0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유의할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선진국 간의 FTA 확대 추세이다. 미국과 일본이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매개로 시장 통합을 시도하는가 하면 환대서양무역및투자동반자협정(TTIP), 즉 미국-EU 간 FTA도 협상 개시가 임박했다.

과거에도 선진국들간 경제통합을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개념 수준의 검토와 비공식적 연구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1~2% 수준에 불과한 낮은 관세율과 상대적으로 용이한 시장 접근성으로 인해 FTA 체결의 추가 개방 기대 효과가 높지 않았던 데다, 강대국 간의 외교적 긴장 관계 해소도 순탄치 않아 가시적인 결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런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제조업과 수출의 중요성이 커지고 중국과 아시아 후발 개도국의 빠른 부상이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지적되면서 선진국들 간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선진국 간의 FTA는 산업구조의 높은 유사성, 취약 부문의 목소리가 더 잘 반영되는 정치구조 등으로 이해관계 상충이 큰 편이라 단기간에 진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선진국들 간의 산업 협력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곧 후발국에 불리하고 선진국에 유리한 새로운 제조업 표준이나 무역 규범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 번째는 일본의 변화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정부는 FTA에 큰 관심이 없었다. FTA 협상에 참여하더라도 주도적으로 논의를 이끈다거나 협상 진전을 위해 통 큰 양보를 하는 등의 적극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높은 수준의 무역자유화나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선진국과의 경제통합에 대해서는 더욱 소극적이었다. 그러던 일본이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의 TPP 참여 선언에 나타났듯이 시장 개방에 적극적이며, 농업 등 취약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개방을 유예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일본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통상 질서 변화 대비가 더 중요한 과제

이와 같은 세계통상 질서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자 중심의 FTA 확대와 재편은 그 동안 양자 간 FTA에 치중해 온 우리에게도 필요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특히 원산지 증명 등 FTA 혜택을 위한 행정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다자간 FTA는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유용한 대안이다.

선진국 간의 경제통합 확대는 우리에게 부담이다. 선진국들끼리의 합종연횡과 중국견제가 그 동안 중국과 동아시아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일본의 적극적인 FTA 참여는 우리가 누려온 FTA 허브로서의 지위를 위협할까 우려된다. 미국, EU 등 주요국과의 FTA 체결을 계기로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직접투자가 몰려오고 글로벌 생산 분업이 이뤄져 왔는데, 자본재 생산이나 제조 역량에 경쟁력을 갖춘 일본이 이 경쟁에 뛰어들 경우 앞으로는 그 몫의 상당 부분을 일본과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미 FTA 발효 이후 1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로벌 통상 질서에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비가 더욱 긴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LG경제연구원 김형주 연구위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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