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엔고 시대의 일본기업이 주는 엔저원고 시대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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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3-19 12:00
서울--(뉴스와이어)--최근 원고현상이 주춤하고 있으나 엔저원고의 기조가 퇴색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엔저에 의한 일본제품들의 가격경쟁력 상승은 엔고의 시기에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높여온 한국기업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전망이다. 특히 수년전부터 일본기업들이 역점을 두어온 신흥국시장을 향한 볼륨존 전략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오랜 시간 혹독한 엔고를 겪어온 일본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세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엔고기간동안 일본기업들의 성공과 실패사례들은 원고의 시대로 접어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부분의 일본기업들은 피나는 원가절감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런 노력만으로는 장기간의 강도 높은 엔고에는 한계가 있었다. 도요타와 캐논과 같이 기업 특유의 생산혁신을 이룬 기업, 후지필름과 신에츠화학과 같이 기업의 핵심기술역량을 중심으로 다각화 하거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해 간 기업, 일본전산과 같이 엔고의 시기를 활용해 중소규모의 M&A를 거듭하며 기업의 기술역량과 생산역량을 강화해간 기업 등은 혹독한 엔고를 거치면서도 강한 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싼 임금을 찾아 해외생산을 확대하며 국내의 생산기반이 약화된 AIWA는 시장에서 사라졌고 독창적 기술을 가지고 Only1을 강조해왔던 샤프도 매스소비시장의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기업의 현재의 모습은 80년대 후반의 일본기업의 모습에 상당히 근접해 있다. 그 후 일본기업의 위상은 혹독한 엔고시대를 거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엔저와 원고로 우리기업들의 원가경쟁 부담은 점점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사례들은 그럴 때 일수록 제조역량의 내재화와 기업 특유의 생산혁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자체역량의 강화가 전제되지 않은 채 가격경쟁력을 맞추기 위해 싼 임금을 찾아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나 제품의 본질이 아닌 부분에서의 변화로 부가가치를 올려보려는 방식 등은 시장의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고 기업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기업의 핵심역량을 더욱 강화하여 제품의 실질적 가치의 고부가가치화를 이루어내거나 그 역량을 중심으로 사업영역과 분야를 확대해가는 전략이 산업간 경계를 넘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에 경쟁력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유력한 전략으로 보인다.

Ⅰ. 엔저로 회생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

채산성 환율을 훨씬 넘는 엔저

작년 4분기 이후 가속된 엔저 현상으로 일본기업 수익이 급격히 회복되고 있다. 엔저와 함께 일본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투자심리, 소비심리가 개선되고 있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도 고조되고 있다. 일본기업은 그동안 엔고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강구해 왔으며, 이러한 노력의 성과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엔저가 발생하면서 기업 수익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일본기업의 채산성 환율(기업이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율)은 1달러당 83엔으로 조사 집계되고 있다. 이보다 12% 이상 낮은 95엔 전후의 현재와 같은 엔저는 일본기업이 수익을 올리기가 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산성 환율 수준을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엔고 극복 능력을 강화해 왔던 일본기업의 전략적 대응은 우리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많은 분야에서 한일 기업이 경합하는 속에서 과연 일본기업들이 엔고시기에 축적한 힘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가늠하기 위해서는 일본기업의 엔고 극복 사례 및 과정을 검토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엔저에 따라 일본기업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샤프와 같이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기업의 수익도 회복되고 있다. 2008년 회계연도(2009년 3월 결산) 적자 이후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던 샤프는 작년 4분기 실적 발표 결과 흑자로 전환했다. 또한 작년 11월 1일 기준 414엔에 거래되던 파나소닉의 주가는 올해 2월 초 716엔까지 가격이 상승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의 경우 올해 1월 북미 판매 대수가 작년 동기대비 3만 3천대 증가한 15만 8천대에 달해 시장 점유율도 1.5%p나 상승하였다.

개별 기업뿐 만 아니라 일본 제조업 전체의 경영 성과 또한 엔화 가치 약세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기업의 분기별 영업이익률과 엔/달러 환율의 변화 추이를 보면, 최근 엔저에 따라 일본기업의 경영성과가 개선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환율과 경영성과간의 관계는 최근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과거 엔화 가치의 변화와 일본 기업의 성과 변화를 보면 환율이 일본기업의 성과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리만 쇼크 이후 일본기업의 산업별 수익 충격을 보면 거꾸로 엔저기의 산업별 수익 개선 효과를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만 쇼크 이후의 엔고시기에 글로벌 기업과 비교한 일본기업의 수익 악화 정도를 보면 자동차 등 운수장비 산업이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엔저로 인해 일본 자동차산업의 수익이 상대적으로 크게 반등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기업의 회생으로 한일 경쟁 심화

엔저에 따른 일본기업의 수익 회복은 한일 기업간 경쟁을 한층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물론, 기업의 성과를 환율 요인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환율이 기업의 가격 경쟁력에 영향을 주고, 이로 인해 기업의 매출이 늘고 점유율이 확대되고 이익이 증가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기업의 성과 개선이 지속되면 이를 기반으로 투자 확대 통해 제품 경쟁력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엔화 가치의 하락은 한국기업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기업들의 수익 개선 및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엔고 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통해 일본기업들이 채산성 환율 수준을 낮춘 상황에서 엔저가 발생했기 때문에 원고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기업이 한일 경쟁에서 불리해질 분야가 많아질 가능성이 있다.

리만 쇼크 이후 엔고시기 한국기업은 LCD TV, 자동차, 리튬이온 2차전지 등에서 점유율을 높여 한일기업간 역전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러한 한국기업의 대일 경쟁력 강화 추세가 이번 엔저로 약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기업으로서는 이번 엔저로 인한 수익 개선을 이용해서 ▲가격 인하 및 마케팅 지출 확대 ▲매출확대 및 투자 확대 ▲점유율 확대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 회복에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

Ⅱ. 일본기업의 엔고 극복 전략과 사례

1. 생산기술의 지속적 혁신

엔고가 계속되는 시기에 일본기업은 전통적으로 원가절감에 주력하여 수출가격의 인상을 자제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잔업 시간 단축, 임금 억제, 각종 경비 절감 등의 합리화에 매진해 왔다. 이러한 전략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엔고가 40년 이상 지속되면서 3배나 오른 엔고의 충격을 흡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기업이 전체적으로 원가절감 등을 통해 엔고를 극복해 온 것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의 엔고시기 정도까지였던 것으로 보이며, 1990년대 이후에는 점차 단순한 합리화나 원가절감 대책을 넘어서 강한 제조 현장을 유지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조기술을 축적한 기업들만이 엔고를 극복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도요타의 생산시스템 진화

예를 들면 도요타자동차의 경우 각종 낭비를 억제하는 경영체질 강화대책을 오랜 기간에 걸쳐 강구하면서 고도의 생산기술을 축적하여 일본 내에서 생산 공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도요타는 엔고와 동일본대지진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 생산 능력을 연간 300만대로 유지한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생산 라인에서 부품 재고를 감축하여 각 공정에서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만큼 적시에 공급하는 도요타식 생산시스템은 이러한 JIT(Just in Time)와 함께 불량품 발생 시에 인위적으로 생산 라인을 정지한다는 원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불량품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자체 완결형 생산 공정의 구축과 생산의 평준화 및 작업 시간 최소화에 더욱 역점을 두고 있다. 자동차의 디자인 자유도를 높이면서도 각 차종 간에 공통 부품 및 유닛을 사용해 코스트를 줄일 수 있는 모듈형 생산시스템을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는 리만 쇼크와 엔고로 글로벌 판매 대수가 1,000만대 수준에서 한때 700만대까지 감소하는 어려움 속에서 적은 생산 규모에도 각 공장이 생존할 수 있는 생산기술 혁신에 매진해 왔다. 고객의 주문량에 따라 생산량을 감축해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생산설비의 소형화를 통해 설비투자 부담을 절감했다. 예를 들면 각종 부품의 금형 크기를 1/2~1/10로 줄여서, 설비 투자 코스트를 40% 절감 했다. 그리고 생산 라인의 생산품목을 수시로 교체하기 위해 생산 라인의 공구 교체 시간을 종전의 4시간에서 20분으로 단축했다. 또한 기계가공의 정밀도를 올려 최종 마무리에 따른 절삭 공정을 절감하여 재료의 낭비 비율을 20%에서 10%로 감축했다. 이러한 혁신 과정에서 도요타는 숙련된 근로자의 노하우를 다각도로 활용하는 한편 숙련공의 일부 노하우를 기계화시켜서 숙련공은 보다 고도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여 생산 시스템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

교세라의 소재 혁신

생산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가공 공정, 설비 개선뿐만 아니라 재료 자체의 혁신도 모색되었다. 예를 들면 교세라의 경우 반도체 제조 장치에 쓰이는 세라믹 히터의 생산 과정에서 수율 100%의 고품질 생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소재 생산 공정을 혁신해 왔다. 단기적인 채산성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철저한 품질 경영을 위해 기술진을 대거 투입하여 생산 공정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또한 용광로의 온도 센서를 2개에서 50개로 확대, 소성(燒成) 과정에서의 온도의 역할을 규명하여 불량이 없는 생산 공정을 개발했다. 교세라는 소재, 부품, 장비, 제품에 이르는 수직적인 기술력을 통해 전체적인 기술혁신 능력을 높이고 있다.

캐논, 로봇과 인간의 효율적 분업

디지털 카메라, 복사기, 토너, 프린터 등을 생산하는 캐논의 경우 달러 대비 1엔의 엔고가 영업이익을 100억엔 이상 감소시킬 정도이지만 일본 본국 생산체제를 고수해 왔다. 캐논은 엔고를 극복하기 위한 코스트 절감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여 생산시스템을 혁신해 왔던 것이다.

엔고에 맞서면서 1990년대 말에는 벨트콘베이어 생산라인 방식에서 벗어나 근로자 1명이 여러 공정의 작업을 담당하는 ‘셀(세포) 생산방식’을 도입해서 생산성 향상 효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서는 셀 생산 방식에 로봇을 활용해 로봇과 근로자가 협업하는 ‘Machine Man Cell’ 생산 방식을 도입하였다. 일본 큐슈의 오이타현의 디지털 카메라 공장은 이 생산 방식을 도입하여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캐논은 세계 각국에도 생산 공장을 전개하고 있으나 제조 기술이 가장 앞선 일본 본국 공장에서 끊임없이 생산기술력을 높여 이 기술을 세계 각국의 공장에 이전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수한 부품 및 소재 기업이 많은 일본 본국에서 다양한 협력 기업과 함께 제조 기술력을 높여감으로써 본국 공장을 세계의 캐논 거점의 모범인 Mother Factory로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2. 글로벌 생산체제의 진화

해외거점의 단순 활용에서 현지의 창의를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이행

생산거점을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엔고의 영향을 원천적으로 상쇄하는 전략은 오래전부터 일본기업의 엔고 대책으로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글로벌 생산 전략이 모든 기업에게 엔고 극복 효과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저임금 근로자에 의한 낮은 생산 코스트를 위해 아시아 각국으로 생산거점을 이전한 일본기업 중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데도 많았다.

오디오 기기의 Aiwa의 경우 단순 조립 거점을 순차적으로 해외로 이전하면서, 해외 생산 비율이 1985년 10%에서 1999년 89.9%로 높아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어 모기업인 소니가 사업을 흡수해, 2002년에는 회사가 소멸되고 말았다. 이러한 제조 기능의 단순 이전은 현지 노동임금 상승, 현지 기업의 성장 등 사업 환경의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차별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내 제조기능을 포기하고 해외기업에게 생산기능을 위탁하는 아웃소싱 전략을 통해 역수입에 나선 일본기업의 경우도 제조 노하우를 상실하고 외국의 제조 기업을 잘 통제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가격 교섭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결국 수익성이 악화되는 패턴도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성과를 거둔 일본기업을 보면 본사 공장과 해외공장의 조직 능력을 연계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로서의 차별적 가치와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이들의 경우 생산거점의 이전에 있어서 초기에는 해외 현지 공장에 대해 본사가 집중적으로 기술, 노하우를 지원하지만 단계적으로 현지화를 이루고 현지의 제품 개발 및 연구개발 능력을 강화하여 해외거점의 생산기술력을 높였다. 또한 해외거점의 개발 성과를 본사에 피드백하면서 다른 해외거점에서도 활용하는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을 위한 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닛산의 경우 태국 등 아시아 거점 인력을 활용해서 신흥국 중산층(볼륨 존) 시장용 소형차 ‘마치’를 개발해 범 아시아 시장 공략에 성공했다.

이와 같이 엔고 극복에 성공한 일본기업은 중장기적 시각에서 잠재력 있는 지역에 진출하고 자사의 강점과 현지에 맞는 생산기술력의 향상에 주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대표적인 식품 회사인 아지노모토의 경우 창업 초기부터 획득한 아미노산 가공 기술을 계속 진화시키고 기능성 식품, 바이오 의약품 등으로의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의 인천 특구에도 거점을 설치했다. 인천 특구가 가진 바이오산업 유치 프로그램, 협력 가능한 벤처기업의 존재, 유능한 스탭이나 연구원 확보의 용이성, 미국, 유럽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 등을 평가하여 한국이 수출을 위한 생산거점으로서도 유망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또한 동사는 식품회사로서 아지노모토 특유의 전사적인 기술 강점을 활용하면서 현지의 원료를 활용한 현지 연구개발에도 중점을 두어 철저하게 현지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왔다. 아지노모토는 현지 원료를 활용해야 한다는 등 공통의 현지화 전략 방침을 가지고 있으나 구체적인 현지화 전략은 진출한 26개 국가마다 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의 타이어 제조업체인 일본의 브리지스톤의 경우도 미국, 유럽 등지에 연구거점, 대규모 주행 시험장을 운영하면서 현지 시장용 제품을 개발해 왔다. 유럽에서는 고속 주행도로를 즐기려는 소비자에 대응하여 고속주행시의 안전성, 핸들링을 고려한 타이어 개발을 하는 한편, 미국에서는 현지 소비자가 요구하는 안정적 내구성을 강조한 타이어를 개발하고 중국에서는 열악한 도로 사정에 적합한 타이어를 개발하는 등 해외고객마다 다른 구매 선호 포인트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는 데 현지 거점의 창의를 활용하고 있다.

엔고 호기를 활용한 글로벌 M&A

엔고는 한편으로 일본기업의 글로벌 자금력을 확대하여 해외 유망기업의 매입 조건이 유리해지는 호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글로벌 M&A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포인트가 되었다. 1980년대의 엔고시기에 일본기업이 미국 영화사나 록펠러 빌딩을 고액으로 매수하여 실패한 경험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실패를 경험 삼아서 일본기업은 해외사업 기반을 확장하거나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M&A는 기업의 내재화된 가치에 대한 판단이 어렵고 높은 매입 가격이 그 후의 기업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소프트뱅크, 일본전산 등은 일시적으로 지나칠 정도의 엔고가 진행되어 엔화 기준의 매입가격이 급락할 때 그 기회를 잘 활용한 기업들이다.

일본 통신업계 제3위인 소프트뱅크의 경우 엔고와 저금리를 활용해서 2012년에 미국 제3위의 통신사인 스프린트의 매수에 합의해(미국 정부의 심사 중) 고객 수로 일본 기업 중 1위로 도약하게 되었다.

M&A로 유명한 일본전산(日本電産)의 경우도 중소규모의 M&A를 거듭하면서 기술력을 강화하고 사업 범위도 확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전략을 주도하는 오너인 나가이(永守重信) 사장은 항상 가치 있는 M&A 유망 대상 기업의 리스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엔고 등의 기회를 잡아서 속전속결로 매수계약을 성사시키고 있다. 동사는 모터와 관련된 세계 각국 기업의 동향을 수시로 예의주시하고 투자은행 등이 가지고 있는 매각 대상 기업의 리스트에서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사의 매수 대상 기업 선정 기준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기업을 발굴하여 알짜 기업을 매수하고 있다. 매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자사의 기술을 신속하게 전수하면서 자체 생산비율을 올리고 공동설계, 공동구매, 원가관리 강화 등을 통해 매수한 기업의 수익성과 함께 본사의 수익성을 향상 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고 있다.

3. Only1 + No.1 전략

Only1 전략을 강조한 샤프의 부진

독창적인 기술을 가지고 자사만이 공급할 수 있는 제품에 특화하고 있으면, 환율이 하락해도 제품 가격을 그대로 인상할 수 있기 때문에 엔고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사실, 부품 및 소재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일본 제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야도 많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서 일본기업은 그동안 자사만이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의 Only1 전략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Only1 전략은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No.1 전략없이는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실제 엔고에도 불구하고 제품력을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일본기업은 Only1으로서의 독창적 기술력과 함께 No.1 기업으로서의 양적 확장능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Only1을 기업 방침으로서 강조해 왔던 샤프의 경우 최근 다소 실적이 개선되고는 있으나 2000년대 이후 전략적 성과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샤프는 초창기인 1915년에 샤프 펜슬을 발명하고 특허를 취득해서 사업을 확장한 이래 독창적인 제품의 개발에 주력해 왔다. 전자 계산기, 전자수첩, LCD TV 등 고객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도전해 왔다. 샤프의 이러한 Only1 전략은 특정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틈새시장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LCD TV가 점차 대중 소비시장으로 변하면서 한국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할때 샤프의 투자 타이밍은 한발 늦었고 글로벌 마케팅도 적극적이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이후 대규모 설비투자를 감행하였으나 사카이시에 설립한 신공장이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해 처음부터 저조한 가동률로 샤프의 경영을 어렵게 했다. 샤프는 세계최초로 10세대 (2,880×3,130mm) 대형 Mother Glass를 이용한 LCD 공장을 건설하는 등 기술이 우수하기 때문에 당연히 성공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10세대 공장에서 유리한 60인치 이상 대형 TV 수요에는 한계가 있었고 샤프가 강조하는 기술력에 대해 소비자의 호응도 저조했다. 좋은 기술을 앞세우면 당연히 대중소비자가 따라올 것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Only1 전략이 글로벌 대중시장에서는 외면을 당했던 것이다.

강점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한 일본의 전문 화학기업

한편, 일본 화학기업 중에는 자사의 강점 기술을 기반으로 독창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마케팅, 사업 역량을 갖추고 Only1+No.1 기업으로 도약한 사례가 많은 편이다. 이들 기업의 경우 엔고나 세계경기의 변동으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엔고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핵심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글로벌 전략과 연계시키는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신에츠화학의 경우 실리콘웨이퍼(세계시장 점유율 40%)와 LCD용 포트마스크 기판(세계시장 점유율 40%) 등에서 미쓰이화학이나 스미토모화학 등 종합화학기업을 능가하는 실적을 거두어 왔다. 신에츠화학은 엔고, 리만쇼크 등 시련을 겪을 때 오히려 과감하게 투자해 경쟁사를 압도하면서 점유율을 유지·확대해 왔다. 위기 때에는 보유 현금을 이용해서 M&A, 설비 확대를 기동적으로 전개해 왔다. 이와 같이 Only1+No.1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엔고 등 위기를 극복해 가는 능력도 중요했다.

후지필름의 경우도 엔고와 함께 주력 필름 시장 규모가 2000년대에 1/20로 축소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경영능력이 돋보였다. 사진 필름 시장을 도태시킨 IT혁명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여 LCD 필름의 개발에 주력하는 한편 자사의 필름 기술에서 축적한 미립자 가공기술을 이용해서 헬스케어 분야를 개척했다. 미세 가공기술을 통해 축적한 콜라겐 가공 능력, 抗산화물질 가공 능력, 나노 레벨의 피부 침투능력 등의 기술을 발전시켜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 화장품 등을 개발했다. 후지필름의 경우와 같이 IT혁명이나 고령화 등 기술 및 사회트렌드의 의미를 자사의 기존 사업과 연계적으로 분석하여 기존의 강점 기술을 심화시키면서 부족한 기술을 M&A로 보완하여 독보적인 강점사업을 육성한 것이 성공적인 엔고 극복 포인트가 되었다.

고부가가치화의 함정

엔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가격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부가가치화 전략이 중요하다. Only1+No.1 전략은 이러한 고부가가치화 전략이 성공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쉽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 엔고가 진행된 시점에서 고부가가치화 전략을 근시안적으로 모색한 기업의 경우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엔고 극복을 위해 내수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단순하게 자동차의 내부 인테리어나 외형을 고급화시켜 가격을 인상하거나 전자제품의 본질적 기능 개선 없이 부분적 기능을 추가하는 식의 고부가가치화 전략 등은 일시적 효과에 그쳤다.

반면, 도요타가 휘발유와 전기의 두 가지 동력을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개발한 사례나 니치아화학 등이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LED 조명을 개발한 사례 등은 엔고 극복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부하를 낮추고 고객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고부가가치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경우는 이러한 측면에서 실질적인 고품질 전략을 강조해 온 기업이다. 동사는 미국에서의 품질 사고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그 여파가 아직까지 일부 계속되고 있지만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개발체제의 혁신은 계속되어 왔다. CE(Chief Engineer)가 자동차 개발의 전 과정을 총괄하여 디자인, 지역중시의 개발체제로 재편했다. 그리고 좋은 차의 목표 품질을 4가지 고객 세그먼트로서 추구 하도록 했다. 기존의 고객 세그먼트와 달리 △ 취미 및 감성 중시 차량 △ 일반 양산차 △ 사회공헌형 자동차 △ 그린카 등 차세대 차 등 4가지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디자인, 성능의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리터당 35㎞를 주행할 수 있는 대당 169만엔의 저가형 고성능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Agua의 성공은 이러한 도요타의 전략 전환이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일본정부도 고부가가치 산업의 활성화, 수출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수출산업의 경쟁격화, 부가가치 제고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어서 의약품 및 의료 등 부가가치가 높지만 수출경쟁력은 높지 않는 분야의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iPS(만능 유도 줄기 세포 : 본인의 세포 증식으로 이식용 장기 생산 등)를 이용한 첨단의료 기술의 혁신을 위해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는 단계이며, 이를 기반으로 세계 첨단 의약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Ⅲ. 시사점

일본기업의 엔고 극복 전략 및 성과를 전제로 할 경우 최근의 엔저 전환은 우리 기업과 일본기업의 가격 경쟁을 한층 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은 오랫동안의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기업의 비해 가격경쟁에 대한 강박감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닛케이비즈니스(2013년 2월 4일자)에 따르면 일본기업의 75%는 가격경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해 40%대에 불과한 미국기업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과거 1년 동안 가격 인상을 검토하지 않았던 일본기업의 비중도 62%로 미국의 30%의 두 배를 넘었다. 거시적으로도 2000년대 이후 일본의 수출 물가는 지속적으로 정체 및 하락 경향을 보여 왔다.

최근 수년간 신흥국 시장 진출을 확대해 온 일본기업들은 이번 엔저의 호기를 활용해서 더 적극적인 볼륨 존 전략을 펼칠 것으로 보여 우리기업과의 경합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엔고원저기에 늘어난 한국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엔저원고기를 맞아서 하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우리기업들로서는 우선, 일본기업의 엔고 극복 전략에서 본 바와 같이 제품의 생산기술과 역량을 높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안이한 아웃소싱이나 단순한 해외생산 거점의 이전전략은 AIWA의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근본적인 제조 능력의 약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고부가가치화가 중요하지만 일본기업의 사례를 보면, 결국 고객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자사 핵심 역량 중심의 고부가가치화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산기술의 혁신 과정을 통해 자사의 핵심 기술을 보다 명확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고부가가치화하거나 신규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성공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후지필름처럼 필름기술에서 축적한 미립자 가공기술을 IT, 헬스케어 등으로 다각화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후지필름은 자사의 핵심적 강점과 시대의 변화 트렌드를 잘 접목하여 독창적인 분야를 개척하여 실질적 고부가가치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이러한 핵심기술의 다각적 활용은 일상적인 경영판단으로는 어려운 Top Down식의 비연속적인 전략 경영을 필요로 하기도 하며, 유관분야의 기술을 새로 습득하기 위한 결단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본의 중소형 소재 기업의 경우 Only1 전략으로 엔고를 극복해간 사례들이 많지만 우리기업의 경우 그런 분야가 많지 않다. 일본기업과 달리 오랜 시간을 들여 수익이 나지 않아도 자사 강점에 투자하여 10년, 20년 후에 꽃을 필 수도 있는 신사업을 육성하는 것은 경영 문화나 조직능력 측면에서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Only1 자체로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시장의 크기가 한정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독창적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술에만 매몰되지 말고 이러한 기술을 도약의 발판으로 활용해서 관련 시장을 확대시키는 비즈니스 모델의 구상 능력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의 Only1+No.1 전략에서 본 바와 같이 단순한 기술 중심, 생산 중심 사고로는 한계가 있으며, 마케팅 및 글로벌 전략 역량을 동시에 강화해 간 경우 후지필름과 신에츠화학 등에서와 같이 큰 성공으로 이어진 경우들이 있었다.

원고시기에는 M&A를 통해 강점 분야를 강화시키는 전략도 유효해 보인다. 자사의 기술적 우위를 강화하기 위해 기업 매수를 통해 약점 기술이나 신규 필요 기술을 보완하는 M&A 전략이 원고가 진행되는 시기에는 비용측면에서도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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