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일본형 저성장에 빠지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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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5-06 12:00
서울--(뉴스와이어)--우리나라 경제의 성장활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크다. 미국경기가 주택시장 회복을 계기로 활력을 되찾고 중국도 굳건한 성장을 지속하면서 세계경제의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진한 성장에 머물고 있다. 과거 세계경기의 회복기에 더 빠르게 반등하던 모습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경제가 90년대 이후 일본과 같이 저성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고령화나 주택가격 하락, 원화강세와 후발개도국의 추격 등 1990년대 버블붕괴 이후 장기 저성장을 겪고 있는 일본의 상황과 흡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는 일본의 장기저성장의 원인에 대한 이론들을 정리해보고 저성장을 가져온 요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비교해보고자 한다.

1. 일본경제 저성장의 원인

일본은 자산버블 붕괴와 함께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 4%에서 1990년대 1%대, 2000년대에는 0%대로 급격히 낮아졌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평가되는 일본 장기침체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하나의 수렴된 주장에 이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의 장기 저성장은 20년 이상의 긴 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주목했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가지 요인만으로는 일본이 오랜 기간 저성장에 머문 원인을 모두 설명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시기에 따라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버블붕괴와 정책대응 부족

일본 장기침체의 시발점이 된 것은 1990년대 초반 버블붕괴에 따른 자산가격의 급락이다. 일본은 8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가격의 빠른 상승으로 건설 및 부동산 기업들이 크게 늘어났고 일반 기업들도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1991년 이후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면서 건설 및 부동산 기업 뿐 아니라 부동산 자산의 비중을 높였던 기업들의 파산이 본격화되었고 이러한 기업들에 대출을 늘렸던 은행들이 대규모 부실채권을 보유하게 되었다. 결국 은행이 정상적인 신용창출을 하지 못하면서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부의 자산효과로 인해 소비심리도 급랭하면서 불황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버블붕괴만으로 장기저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버블붕괴를 겪었던 대부분 국가들이 수년 이후 반등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처럼 장기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한 사례는 없다. 이와 관련해 버블붕괴에 대한 일본정부의 잘못된 대처가 경제의 정상화를 지연시켰다는 점이 지적된다. 일본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부양책을 썼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해 정책의 강도나 일관성이 높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산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기업 및 금융부실이 이어졌지만 일본정부는 금융기관의 부실처리를 계속 미룸으로써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시 버티지 못하고 일본경제는 심각한 신용경색과 함께 마이너스 성장을 맞이하게 되었다.

2000년대 디플레이션 악순환

버블붕괴와 이에 대한 대응의 실패로 2000년대 이후까지 일본의 저성장을 설명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2000년대의 저성장에 관해서는 디플레이션을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는 견해가 많다. 일본은 1998년 이후 소비자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2005년까지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지속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도 소비자물가는 등락을 반복했으며 상승기에도 0%대를 넘지 못했다.

디플레이션이 예상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하더라도 미래 제품가격의 하락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투자를 미루게 된다. 가계 역시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되도록 소비를 늦추려고 할 것이다. 결국 소비, 투자 등 수요가 위축되면서 물가하락 압력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또한 디플레이션은 자산가격의 경로를 통해서도 악순환을 발생시킨다. 버냉키 등이 주장한 부채디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디플레이션은 채무자들의 부채부담을 높이기 때문에 채무자들이 자산매각에 나서게 되고 이로 인해 자산가격이 더 떨어지게 된다.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수요위축이 물가압력을 더 떨어뜨리면서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는 것이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미흡한 정책대응이 지적된다. 디플레이션 발생 초기에 일본정부는 오히려 생산성 향상과 원자재 가격 안정에 따른 ‘좋은 디플레’에 대한 기대로 대책마련을 서두르지 않았다. 일본은행은 2000년에 경기가 다소 회복되자 오히려 금리를 올리기까지 했다. 일단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유동성함정이 발생하면서 금융정책은 힘을 잃게 되었다. 제로금리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불가능했고 양적 완화도 개인들의 화폐수요로 흡수되어 버리면서 경제의 수요증가를 이끌 부분이 없었다. 재정정책이 유력한 수단이지만 버블붕괴 이후 크게 늘어난 국가부채로 인해 정부지출을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엔고에 따른 경쟁력 저하로 생산성 향상 둔화

정책실패나 금융적 현상만으로 경제가 이처럼 장기적으로 위축되기는 쉽지 않으며 일본경제의 잠재적 성장능력 자체가 떨어진 것이 장기적인 성장률 저하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우선 노동투입 측면에서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현재까지 연평균 0.4%씩 줄어들고 있다. 이와 함께 근로시간 감소도 노동투입을 축소시킨 요인이 되었다. 일본은 1990년대 들어 법정근로시간이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들면서 근로시간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생산성 상승 속도도 떨어졌다.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일본의 생산성 둔화 추세가 뚜렷했다는 연구결과들이 제시된다. 생산성 하락의 원인으로 우선 일본의 고성장 방식이 한계에 이른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전자 등이 일본의 고성장을 주도해왔지만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추가적인 시장확대 여지가 줄어들고 이를 대체해서 성장을 이끌만한 부문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즉 빠른 성장으로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들어 추가적으로 모방할 부분이 많지 않았고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창조하지 못하면서 성장의 속도가 저하되었을 것이다.

특히 엔화의 빠른 절상은 일본의 대외 경쟁력을 떨어뜨려 생산성 향상을 어렵게한 요인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 빠르게 절상되었고 이후 일본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떨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는 유가하락으로 생산비가 떨어지면서 엔고의 영향이 다소 상쇄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이러한 효과가 사라지면서 엔고에 따른 경쟁력 저하효과가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률과 엔화환율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게 나타난다. 엔고가 진행될수록 성장률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일본은 엔고에 따른 영향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었지만 이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시키면서 핵심소재 및 부품수출형으로 무역구조를 전환시킨 데 따른 것이다. 주력 완제품인 TV, 가전, 자동차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크게 떨어졌으며 상대적으로 반도체 등 부품이나 화학 등 소재 부문의 점유율은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폐쇄된 유통시장과 일본국민들의 자국제품 선호경향으로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입도 크게 늘지 않았다. 결국 생산기지 이전으로 자국내 생산, 특히 노동집약적인 최종단계 생산이 공동화되면서 내수위축의 요인이 되었다.

구조적 내수저하 경향

1990년대 일본의 수요확대를 이끌어갈 부문이 없었다는 구조적 수요저하설도 설득력을 가진다. 우선 소비 측면에서는 1980년대까지 주요 내구재 수요가 거의 충족되고 추가적으로 소비를 유도할만한 산업부문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소비포화설이 제시되고 있다. 일본의 높은 주택가격으로 주거면적이 넓지 못해 내구재수요가 대형화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또한 버블붕괴에 따른 경제적 불안감이 고령화와 맞물리면서 소비심리가 장기적으로 위축되어 소비부진에 기여했다. 정리해고가 도입되는 등 종신고용의 개념이 무너지면서 근로자들은 평생 벌어들일 수 있는 기대소득이 줄어들게 되고, 가지고 있던 자산의 가치도 빠르게 떨어지면서 노후대비 저축이 부족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은퇴연령층을 중심으로 소비성향이 낮아지면서 수요위축이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장기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과도한 건설자본스톡도 장기적으로 건설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생산을 위한 인프라, 상업 및 공업용 건설투자를 빠르게 늘렸으며 이에 따라 경제내의 건설자본 스톡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높은 성장이 지속될 것을 예상하고 크게 늘려놓은 건설자본은 성장률이 급격하게 둔화되면서 성장속도에 비해 과도한 수준이 되었으며 이후 일본의 건설투자는 장기부진을 경험한 바 있다.

주택가격 하락이 장기화되면서 주택투자도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속되는 엔고에 의한 수출경쟁력 저하와 소비 및 건설투자의 구조적인 부진이 일본의 수요위축 현상을 장기화시켰고 이는 생산 및 고용둔화로 이어져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가져온 것이다.

2. 우리나라의 일본형 저성장 가능성

현재 우리나라는 여러 측면에서 1990년대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60년대 10%대에서 7~80년대 4~5%로 낮아진 바 있으며 1990년대 이후 평균 1% 미만으로 크게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1970~1990년대까지 7~9%의 고성장을 유지하다가 2000년대 4%, 2010년대 들어서는 평균 3%대로 성장률이 낮아져 있는 상황이다. 일본과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면 우리나라도 조만간 제로성장에 도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고성장과 함께 추세적으로 높은 상승세를 유지하던 부동산 가격이 정체하면서 가격급락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근로시간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일본의 고성장을 주도했던 산업들이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이 되면서 성장전략이나 산업구조도 유사하다. 일본의 장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되는 부문에서 과거 일본과 현재 우리나라의 지표들을 비교해봄으로써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성장경로를 따르게 될 것인지 살펴본다.

1) 주택가격 급락 가능성

우리나라에서도 주택가격의 급락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자주 제기된다. 가격하락의 근거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주택구입 연령의 감소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주택구입 빈도수가 높은 35~54세 연령이 2012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주요 국가에서 주택구입 연령이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가 주택가격 급락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1990년부터, 미국은 2007년부터 주택구입연령층이 감소세로 돌아서 가격하락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주택구입연령층의 감소만으로 향후 가격하락을 전망하기는 어렵다. 일본과 미국은 가격급락 이전에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 버블형성기를 경험한 바 있으며 주택가격 하락은 잘못된 기대로 인해 과도하게 높아진 주택가격이 조정되는 과정이었다. 같이 주택가격 급락을 경험한 스페인, 아일랜드 등은 주택구입연령 인구가 현재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부동산 가격하락이 장기화되지 않았으며 수년간의 조정을 마치고 최근 다시 반등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규제 강화로 가격거품 크지 않아

우리나라의 주택가격 거품은 과거 일본에 비해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가격은 빠르게 상승한 서울시 기준으로도 1990년 이후 20년만에 2.2배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동경의 주택지가격이 1990년까지 15년 동안 4.6배로 상승한 것에 비해 완만한 수준이다. 더욱이 일본은 주택지보다 상업지의 가격이 훨씬 빠르게 상승했으나 우리나라는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동산 자산의 규모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보다 낮은 수준이다. 1991년 일본의 지가총액은 2,190조엔으로 GDP의 4.8배에 달했던 데 반해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지가총액이 3,711조원으로 GDP의 2.9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가격 거품은 과거 일본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수간의 공적분 분석을 통해 보더라도 주택가격과 주택임대료의 시계열적 관계가 안정적이어서 가격이 실제가치에서 크게 괴리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주택가격 거품이 크지 않은 데에는 부동산 규제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부동산 부문에 은행 포트폴리오가 집중되었지만 적절한 긴축정책이 선제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 금융자유화 흐름 속에서 은행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규제와 감독도 강화되지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DTI, LTV 규제가 강화되면서 부채확대를 통한 주택가격 상승을 제약하는 역할을 했다. 향후 과거와 같은 가격의 대세상승기가 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나 일본과 같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2)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 저하

1980년대 일본, 주력상품의 점유율 포화

1991년 일본의 일인당GDP는 구매력환율 기준으로는 미국의 86.5%, 달러환율 기준으로는 120.7%에 달해 선진국 가운데서도 높은 소득 수준을 기록했다. 고성장으로 미국 등 선도국과의 생산성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면서 모방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일본이 추가적인 성장활력을 회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선진국 수준의 소득과 임금, 여기에 빠른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높은 지가가 형성되면서 일본기업들의 비용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일인당 GDP는 2012년 기준 구매력환율 기준으로는 미국의 2/3, 달러환율 기준으로는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해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고는 하나 아직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들과의 격차가 크다. 일부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선진국과의 격차가 큰 부문도 많기 때문에 과거 일본에 비해서는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세계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도 일본은 1980년대 중반에 10%를 넘어섰지만 우리나라는 2011년 기준 3.3% 수준이다. 추가적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을 늘리면서 수출에 의한 성장주도를 지속할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별로 보면 일본은 플라자 합의 시기인 1985년 주력 수출상품이었던 TV 부문에서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이 무려 47.3%에 달해 2위였던 독일의 10.7%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바 있으며 당시 TV와 교역규모가 유사했던 라디오 부문에서도 전체 수출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다(<표 1> 참조). 이와 함께 선박, 광학기구 수출의 1/3, 자동차와 기타 가전 수출의 1/4을 차지하는 등 주력제품 부문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면서 추가적인 시장확대 여력이 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엔화의 빠른 강세와 함께 세계시장에서 주력제품의 점유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수출을 통한 성장활력 제고가 어려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품목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과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선박, 반도체, 휴대폰, 가전 등의 일부 품목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열에 합류한 바 있다. 다만 과거 일본이 대부분 주력 품목에서 절반에 가까운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보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주력제품의 세계 수출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보면 2011년 기준 선박은 36.2%를 차지하고 있으나 반도체 11.5%, 통신기기 9.6%, 철강 5.1%, 자동차 6.7%, TV 2.9% 등으로 해외생산분을 포함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릴 여지가 아직 있다.

원화절상 우려되나 일본에 비해 제한적

우리나라도 중기적으로 원화가 절상기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 이에 따른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2.7%를 차지하고 외국자금의 순유입도 이어지면서 원화는 절상추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이는 특히 최근의 엔화약세 기조와 맞물리면서 우리나라 주력제품의 수출확대를 크게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다만 원화가치가 과거 엔화만큼 빠르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엔화가치는 플라자합의 이후 약 3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일본은 빠른 엔화절상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시키고 자기업에 핵심부품과 소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출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바 있다. 일본 국민들의 자국제품 선호경향이 강했고 유통시장이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엔고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크게 늘지 못했고 수입대체 부문이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더욱이 해외자산의 확대로 소득수지 흑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엔화절상 압력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는 원화가 절상되는 시기에는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외환위기 이전, 그리고 금융위기 이전 원/달러 환율이 900원대 아래로 내려갔을 때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 즉 우리나라는 수입품에 대한 폐쇄적인 경향이 일본보다 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높은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절상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원화절상이 지속되면서 흑자가 줄어들고 결국 원화는 일정 수준에서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북한 리스크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효과가 남아있는 점도 원화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다.

3) 노동투입 감소

고령화 속도 일본보다 빠를 것

노동투입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1990년대 이후 일본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인구고령화의 진행속도가 일본보다 더 빠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1990년 12.1%에서 2010년 23.0%로 20년간 연평균 0.5%p씩 높아졌다. 반면 통계청의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비중은 2012년 18.3%에서 20년 후인 2032년에는 41.9%로 매년 1.1%p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도 과거 일본보다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피크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2년의 3,656만명에서 2032년에는 3,215만명으로 약 10% 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1995년을 피크로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1990년 8,614만명에서 2010년 8,174만명으로 20년 동안 약 5.1% 줄어든 바 있다.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의 감소속도도 빠를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상용직 평균 근로시간은 2002년 199.6시간에서 2012년 180시간으로 연평균 1%씩 줄어들었다. 일본에서도 상용근로자 평균 근로시간은 1990년 월평균 171시간에서 2000년에는 155시간으로 연평균 1%씩 줄어 우리나라와 비슷한 추세를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월 근로시간이 150시간에 가까워지면서 근로시간 감소 속도가 완화되었으나 우리나라는 현재 근로시간이 일본의 1990년 수준보다 훨씬 긴 상황이어서 추가적인 하락여지가 크다. OECD 근로시간 통계에 따르면 국가별 집계방법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가 대부분 국가보다 근로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근로시간 축소로 인해 우리나라는 향후 성장에서 노동의 기여도가 빠르게 떨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서 2010년 노동의 기여도는 0으로 낮아진 것으로 평가되며 향후 10년간 -0.4%, 2020년에서 2030년까지는 -1%p 가량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인적자본 손실 우려 크다

고용의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의 손실도 우려된다. 일본의 성장활력 저하가 장기화된 원인 중 하나로 청년층 인적자본이 손상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버블붕괴기에 기존의 고용은 종신고용제에 의해 보호된 상태에서 수요충격으로 청년실업이 크게 늘었고 이것이 청년층의 인적자본을 훼손시켰다는 것이다. 청년층은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용을 통해 숙련도를 높일 기회를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화로 기술과 시장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기존의 기술에 종속되는 고연령층 노동자의 비중이 커지면서 세계적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들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층의 실업이 크게 높아진 바 있다.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외환위기 이전 5.5%에서 2000년대에는 7%대로 높아졌다. 취업이 어려워 경제활동참가를 포기하고 노동시장에서 멀어지는 청년들도 늘어나면서 청년층 고용률도 40% 내외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적자본의 손실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2010년 기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하는 데 따른 임금손실이 임금수준의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LG Business Insight 2012.8.22일자 ‘대한민국 인적자본이 흔들리고 있다’ 참조). 임금손실 전체 규모는 2.8조원에 달하며 결국 근로자가 제공하는 노동의 가치가 그만큼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서 근로의욕 자체를 상실한 니트족이 빠르게 늘어나고 또 1990년대 일본과 같은 안정 추구성향이 높아지는 등 청년 인적자본의 손상이 확대되고 있다.

4) 구조적 내수부진 : 건설투자 과잉, 소비성향 저하

고령층 소비성향 저하

일본은 2차 오일쇼크 이후 성장률 저하와 함께 소비성향의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한 바 있다. 1981년 일본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9.2%였으나 1990년에는 75.3%로 떨어졌고 1998년 71.3%까지 하락했다가 이후 완만하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저성장과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불안심리 증가, 노후대비 부족 등이 소비성향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성장률 저하와 함께 소비성향이 떨어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4.1%를 기록해 2010년의 77.3%에서 빠른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성향의 하락을 경기부진에 따른 일시적 측면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소비성향의 저하를 주도하는 연령층은 고령층이다. 최근 소비성향 추이를 보면 40대 이하 연령층 가구주보다 50대 이상 연령층 가구주가 주도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50대 이상 은퇴연령층과 고령층은 공적 연금보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녀교육비 지출 등으로 노후대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과거에는 실물 및 금융자산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미래수익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으나 부동산 가격의 대세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금리도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50대 이상 연령층은 보유자산의 수익창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더욱이 평균수명이 점차 길어지면서 부족한 은퇴자산을 더 오랜 기간 동안 나누어서 써야할 형편이다. 공적 연금보장의 부족, 평균수명 상승, 부동산 가격 상승세 둔화 등은 일시적이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지속될 가능성이 큰 현상들이다. 결국 50대 이상 연령층의 소비성향 저하 현상은 우리경제의 장기적 추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건설투자 부진 장기화될 전망

우리나라는 지난 3년간 건설투자가 마이너스 성장했으며 2012년 실질 건설투자는 1996년의 투자규모에도 미치지 못해 이미 건설투자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건설투자 상황은 과거 일본에 비해서는 다소 양호한 편이다. 일본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1990년 19.0%에 달했고 건설자본 스톡은 GDP의 3.8배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선진국 평균 2.5배 수준에 비해 크게 높았다. 이에 따라 1990년 이후 20년간 일본의 건설투자는 평균적으로 감소추세를 지속했다. 2011년의 건설투자는 1990년의 절반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건설자본스톡은 2012년 기준 GDP의 2.6배로 선진국 평균 수준이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의 건설자본 축적을 빠르게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건설투자의 비중이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건설투자 비중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2012년 기준 GDP의 15.5%로 주요 선진국들의 10.6%에 비해 크게 높다. 높은 건설투자가 지속된다면 결국 건설자본이 과도하게 누적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일본과 같은 급격한 건설투자 감소는 아니더라도장기적으로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상을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는 일본의 저성장 진입기와 유사한 현상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와 근로시간 감소로 노동의 투입이 줄어들면서 잠재성장력의 저하요인이 될 것이다. 노후대비 부족에 따른 고령층의 불안감 확대가 소비성향을 떨어뜨리고 건설투자 조정도 장기화되면서 수요부진이 만성화될 우려도 크다. 다만 일본에 비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주요 선진국들과 소득수준 격차가 아직 크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높지 않아 과거 일본에 비해서는 추가적인 성장 여력이 크다. 원화가 중기적으로 절상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나 절상속도는 과거 일본에 비해 완만할 전망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보면 우리나라는 2010년대에는 2000년대보다 성장세가 한단계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과거 일본과 같이 단기간 내 제로성장에 가까운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는 당분간 평균 3%대의 성장세는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일본과 같은 정책의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3. 정책적 시사점

1) 원화의 빠른 절상기조 경계 : 수입 확대에 대한 거부감 줄여야

중기적으로 원화의 절상기조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1,100원을 넘어섰으며 GDP의 2.7%에 해당하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과거 경상수지 균형시점과 비교해보았을 때 현재 경상수지 균형 환율은 달러당 1,000원 이하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국가신용등급 향상으로 외국자본도 순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완만한 절상기조는 우리 수출기업들이 경쟁력 향상을 통해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절상속도가 너무 빠를 경우 기업들의 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수출의 경제성장 견인력이 과거 일본에서처럼 크게 떨어질 수 있다. 더욱이 경쟁국인 엔화가 절하기조로 돌아선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 일본에서 가져왔던 시장을 다시 내어줄 우려는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외환시장의 급변동을 막기 위한 시장개입, 그리고 나아가 자본유출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들이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상수지 흑자가 과도하게 누적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의 대외신뢰도 확대를 위해 일정 수준의 흑자 유지는 필요하지만 흑자폭이 클 경우 원화절상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더욱이 경상수지 흑자가 대외자산 증가로 이어져 일본에서처럼 소득수지 흑자가 확대될 경우 원화절상 기조가 굳어져버릴 우려도 있다.

내수활성화 정책의 방향성이 바뀔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내수산업 육성 정책은 서비스시장의 경쟁력 확대와 혼재되어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을 유치해 외자를 벌어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충분히 소비하지 못하는 여가문화, 관광, 의료보건 등의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내수가 늘어나는 것 자체가 수요를 견인할 뿐 아니라 원화절상 압력을 줄여 우리 수출의 가격경쟁력이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막아줄 것이다. 일본에서처럼 엔고에도 불구하고 유통시장의 폐쇄성, 국민들의 자국산 선호 경향에 따른 수입대체 확대 등으로 수입을 늘리지 못해 엔고가 지속되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우리가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수입과 수출이 같이 늘어나는 것은 경쟁력 있는 부문에 생산이 집중되는 것인 만큼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수입확대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줄어드는 것이 필요하다. 내수확대는 또한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에 따른 제조업 공동화를 막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소득수지 흑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외자산 구입의 확대는 단기적으로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절상 압력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지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으로부터의 수익창출로 인해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외국인의 국내자산 구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자산 측면에서도 대외개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2) 무리한 단기적 성장률 제고노력 지양 : 잠재성장률 하락을 인정해야

일본의 정책 실패는 정책이 가져올 경제적 영향을 잘못 예측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시의 경제상황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성장능력 저하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성장을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침체를 장기화시킨 측면이 크다. 특히 재정지출을 확대시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노력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그쳤으며 장기적으로 경제의 부작용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블붕괴 초기에 수년간 대규모 재정지출을 확대시킨 것은 당시의 심각한 위축을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했지만 큰 폭의 재정적자를 만성화시킴으로써 국가부채를 빠르게 누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채누적으로 일본은 이후 경기조절의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1997년의 신용경색시기나 2000년대의 디플레이션 시기 등 통화정책이 무력화된 시기에 재정정책도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더욱이 국가부채가 누적적으로 확대되면서 국가신뢰도도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정부투자의 확대는 민간부문의 투자를 구축하여 경제전반적인 투자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요부양을 위해 수요예측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SOC 등 공공투자를 늘림으로써 자본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도 금융위기 이후 경제의 성장활력이 한단계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기가 심하게 위축되는 시기에 수요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지만 정부적자가 만성적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항구적인 지출확대보다는 한시적인 지출 중심으로 재정정책을 가져가고 세수확대를 통해 장기적인 재정건전성 달성 목표를 준수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부동산이나 건설투자를 통해 수요를 늘리는 정책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엔고로 수출경쟁력이 저하되는 시기에 내수확대를 위해 자산가격의 거품을 제거하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산가격은 미래 창출되는 수익의 현재가치인 만큼 장기적인 성장률이 낮아지면 자산의 근본가치(fundamental value)도 낮아지게 된다.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할 필요는 있지만 자산가격을 다시 높여 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은 가격조정을 늦추어 이에 따른 불확실성을 장기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건설투자 조정도 미루어지면서 일본과 같은 자본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3) 물가안정 중시에서 디플레이션 경계로

버블붕괴에 대한 일본의 정책적 대응의 실패와 관련해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문이 금융정책이다. 80년대 중반 저금리로 자산버블을 부추겼고 경제침체기에는 반대로 금융완화에 소극적이었으며 부실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미루어 금융기관의 정상화를 지체시킨 점 등이 경기침체를 장기화시켰다고 분석된다.

특히 버블붕괴 이후 통화정책의 대응이 부족했다는 지적들이 다수 제기된다. 일본중앙은행은 버블붕괴 이후 금리인하에 나섰으나 인하의 규모나 속도 측면에서 과감하지 못했고 양적 완화 등 다양한 수단이 제시되지 못했다. 1990년대 초중반 일본의 정책금리는 경상성장률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회한 바 있다. 2000년대 디플레이션이 한참 진행되자 제로금리를 채택하고 양적완화 등 당시로는 새로운 정책수단을 도입했으나 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하면서 정책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확대시키고 정책효과를 반감시켰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신속한 금리인하 및 양적 완화정책과 대조적이다. 미국이 일본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요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특히 최근처럼 구조적 내수부진 요인들이 작용할 경우에는 높은 물가만큼이나 낮은 물가상승률에도 주의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나 자산가격 거품 등 부작용 우려가 크지 않다면 보다 신축적으로 금리정책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인플레이션 목표치도 보다 탄력적으로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고성장-저물가 시기 형성된 낮은 인플레이션율은 개도국의 빠른 임금 상승, 선진국의 대규모 양적 완화 등으로 세계경제의 현재 흐름에 맞지 않을 수 있다.

4) 청년 인적자본 손실 막아야

저출산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선진국보다 긴 근로시간의 축소에 따른 노동의 성장기여도 저하는 당분간 우리나라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인적자본이 훼손되는 것은 최대한 막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고도성장 기간 중 높은 성장률을 가정한 복지정책을 수립하였다. 성장저하 이후 상대적으로 고령층이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린 반면 청년층은 복지부담은 크지만 미래 수혜는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고 이것이 인적자본 손실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령층에 대한 지원만큼이나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과 조세·사회부담의 크기는 60세 이상의 경우 혜택은 가장 많고, 부담은 가장 적어 2011년의 순혜택이 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30대와 40~50대는 각각 240만원, 400만원의 순부담을 지고 있다(LG Business Insight 2012.7.4일자 ‘조세·사회보장 부담과 혜택, 세대간 격차 크다’ 참조).

인적자본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고용률을 높여 업무를 통해 숙련도를 제고시키고 또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성장둔화로 미래의 수익창출이 불확실해지고 노동의 이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숙련자 선호 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청년고용에 대해 세금공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공공 직업교육을 대폭 강화해 기업들이 비경력자를 뽑아 훈련시키는 데 따르는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단기근로자와 비정규직 고용은 직장 내 교육을 통한 노동의 질 향상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성장 저하를 과거의 성장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본이 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고성장하는 과정에서 내부협력과 동의를 바탕으로 집단 방향성을 설정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하던 시스템은 선진국이 되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상산업부로 대표된 관료의 명확한 방향성 제시도 모방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이르면서 성공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미래가 과거 트렌드의 단순 연장이 아닌 시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단기적으로 성장을 제고하기보다는 경제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구조개혁에 주력해야 한다. 창의성이 더 높은 부문, 즉 정부부문보다는 민간부문이, 또 젊은 층이 경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이근태 수석연구위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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