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작지만 강한 혁신 동력, 스컹크 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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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5-19 12:00
서울--(뉴스와이어)--오랫동안 탁월한 기술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선도적인 제품을 개발해 온 작은 R&D 조직이 있다.그 조직은 독창적인 운영 원칙을 고수하면서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해해당 기업을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부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은 글로벌 방위산업 시장의 선두 기업이다. 설립된지 100년이 지난 록히드 마틴이 지금과 같은 입지를 구축한 이면에는 시장에 선행하는 R&D와 제품화로 50여 년에 걸쳐 지속적인 성과를 창출해 온 스컹크 웍스(Skunk Works)가 있었다.

혁신적인 개발의 대명사

선진국의 엔지니어링, 기술 관련 업계에서 잘 알려진 스컹크 웍스(Skunk Works)는 관료주의에 얽매이지 않게 자율성을 부여받아 고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선행 연구 또는 비밀 프로젝트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랜덤하우스 사전 등에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컴퓨터, 항공우주 분야의 혁신적인 프로젝트(secret, innovative project in the computer or aerospace fields)라고 정의되기도 했다. 오늘날 보통 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스컹크 웍스는 1943년 록히드 내부에 만들어진 선행 연구 개발 조직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록히드 마틴이 상표권으로 등록한 무형 자산이기도 하다.

설립 이후 1990년대까지 50여 년 동안 전성기를 구가한 스컹크 웍스를 본떠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유사한 방식의 신규 사업 조직을 운영한 경우도 있었다. 경쟁사이던 맥도넬 더글라스는 선행 R&D 조직인 팬텀 웍스(Phantom Works)를 설립했다. 1980년대 중반 IBM은 PC 사업 개발팀에 스컹크 웍스 방식을 도입했다. 2000년대에는 모토로라, Microsoft, Google 등이 변형된 형태의 스컹크 웍스식 조직을 운영하기도 했다.

오랜 구조조정에서 생존한 록히드

록히드의 발전에 일조한 스컹크 웍스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 항공기 제작 산업의 변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으로 시작된 미국의 항공기 제작 산업은 2차 세계 대전 중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가 종전과 함께 위축되기 시작했다. 전시라는 특수 상황에 맞춰 과도하게 확장된 전투기 생산 설비가 남아 돌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났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수요가 늘어났던 민항기 제작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제한적인 성장성과 치열한 경쟁, 그 후유증인 설계/제작 결함에 의한 잦은 사고 등으로 1970~1980년대에 많은 업체들이 철수했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는 국방 예산의 축소로 미국 내 32개의 거대 방산업체가 9개로 정리되기도 했다.

장기간의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보잉(Boeing), 맥도넬(McDonnell), 더글라스(Douglas), 콘베어(Convair), 그루먼(Grumman), 보우트(Vought),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페어차일드(Fairchild), 노스럽(Northrop), 마틴(Martin), 록히드(Lockheed), 록웰(Rockwell),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등의 주요 업체들 중 대부분이 해체 또는 인수, 합병되거나 항공기 제작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항공기 제작 시장은 개인용 소형 항공기를 제외하면 록히드, 보잉, 노스럽 3개사의 과점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혹독한 변화 과정에서 록히드도 숱한 난관을 거쳤다. 1912년 설립되었다가 1932년 민간 수송기 사업에 사운을 걸고 재출발한 록히드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중견 업체들 중 하나였다. 1950년대, 주력 사업이던 민간 수송기 부문에서 미국 최초의 대형 터보 프롭기로 평가받는 L-188 엘렉트라를 개발했지만 기체 결함에 의한 연이은 대형 사고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받기도 했다. 이후 보잉과의 경쟁에서 밀려 록히드는 결국 민항기 부문에서 철수했다. 그렇지만 주력 사업에서 철수한 록히드는 오히려 첨단 군용기 개발에 잇달아 성공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지금은 세계 1위의 방산업체로 성장했다.

이 같은 록히드의 발전 배경에는 연이은 창의적 제품 개발과 사업화로 시장을 선도하고 기업 이미지와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한 소규모 개발팀, 스컹크 웍스가 있었다.

신제품 개발팀의 간소한 출발, 비약적인 발전

스컹크 웍스는 전쟁 중이던 1943년 록히드의 소규모 개발팀으로 긴급히 설립되었다. 당시 업계에서 촉망받던 록히드의 엔지니어 켈리 존슨(Clarence “Kelly” L. Johnson)에게 국방부가 6개월 기한의 신형 제트기 설계를 급히 의뢰했기 때문이다. 본사로부터 설계사와 기계공 50여 명 정도를 지원받은 켈리 존슨은 기한보다 1달 이상을 앞당겨 시제품을 완성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양산된 이 제품(P-80)은 9,000대 이상 팔려 당시 최고의 히트 제품이 되었다.

켈리 존슨의 성과를 인정한 록히드의 경영진은 예산 한도를 초과하지 않고 본업인 수석 엔지니어의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업계 최초로 시도된 방식인 그의 소규모 개발팀을 유지할 수 있게 승인했다. 그는 매일 귀가하기 전에 스컹크 웍스에 들러 미래의 군용, 민간용 항공기에 대한 자유 토론을 했고 그 결과와 부합하는 시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계약을 만들어 내면 본사에서 소수의 인원을 빌려와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물론 실패도 적지 않았다. 새로 개발한 소형 여객기는 전쟁 잉여품을 싸게 사들인 민간 항공사의 외면을 받아 사업화되지 못했다. 1950년대의 기술로 시도한 수직이착륙기도 실용성 측면의 취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나 본사에서 소수의 인원을 빌려 창의적으로 작업하는 방식 덕분에 투입 비용과 본사의 재정 부담도 크지 않은 수준이었으므로 스컹크 웍스는 계속 존속할 수 있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축적한 기술력과 창의성은 시장을 선도하는 획기적인 제품들의 연이은 개발과 성공으로 결실을 맺었다.

1954년, 최초로 음속 2배 이상의 속도를 기록했고 세계 15개국에 판매된 베스트 셀러인 초음속 요격기 F-104를 발표했다. 1955년에는 다른 비행기들이 접근하지도 못하는 21.3km 상공에서 비행하는 U-2 개발에 성공했다. U-2의 초기 20대 판매 실적은 22.5백만 달러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1950년대 말 L-188 엘렉트라 개발 실패로 인한 록히드 본사의 총 손실액 57백만 달러의 40%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U-2는 그 후에도 70여 대 정도 더 생산된 것으로 알려지므로 소규모 개발팀의 단일 제품이 본사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의 실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1964년에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고고도(25.9km), 고속(3,529km/h)의 비행 기록을 모두 보유한 SR-71 블랙버드를 개발했다. 1981년, 전 세계 항공 업계와 방산 시장을 엄청난 혼란에 빠뜨린 스텔스기 F-117 나이트호크 개발에 성공했다. 당시 관련 업계가 받은 충격은 2000년대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한 아이폰의 파괴력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스텔스기를 상용화한 국가는 미국에 불과할 만큼 스텔스기는 선도적인 제품이었다.

스컹크 웍스는 창립자인 켈리 존슨과 초창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그의 후임 벤 리치 등 주요 멤버들이 모두 은퇴하면서 과거의 혁신적인 정신과 운영 원칙이 다소 희석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본사의 선행 개발 프로그램(Advanced Development Programs, ADP)이란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스컹크 웍스의 유산은 2000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힘입어 록히드는 지금까지 총 4회에 불과한 미국 정부의 스텔스기 발주 기회 중에서 3번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가장 큰 특징은 지속적인 성과 창출

스컹크 웍스가 여타 신규 사업 조직과 확연히 다른 특징은 비교적 소규모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으로 시장 선도적인 제품을 개발했고 이전에 없던 신시장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 선도적 제품의 지속적인 개발

스컹크 웍스는 수많은 기업들의 신규 사업 조직들과 달리 50여 년에 걸쳐 기존에 없던 제품의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했다. 각종 성능 면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한 항공기를 연이어 개발하고 사업화한 것이다. 비록 1980년대 당시에는 사업화되지 못했지만 스텔스 선박도 개발했다. 스컹크 웍스가 개발한 제품들이 얼마나 시장 선도적이었는지는 미국 정부가 취한 조치에서 잘 드러난다.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안보 전략 차원에서 NATO 등 우방 국가에마저 수출을 금지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 새로운 시장의 창출

개념에 불과했던 스텔스기를 제품화하면서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다양한 제품 시장을 새롭게 만들었다. 먼저 미국을 중심으로 스텔스 기 시장이 형성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스텔스 함선 시장도 만들어 졌다. 스텔스기, 함선을 탐지하기 위한 수동형 레이더(Passive Radar) 등 관련 장비 시장도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또한 유리, 도료, 파우더를 비롯한 각종 소재, 부품 영역의 시장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중국도 스텔스 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속적인 성과의 원동력은 원칙에 충실한 운영

선도적 제품을 꾸준히 개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조직의 수장이던 켈리 존슨이 수 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0년대에 직접 작성한 14개조 원칙에 충실했던 운영이라고 알려진다(27페이지 참조). 스컹크 웍스의 인력 영입을 시도하면서 유사 조직을 만든 경쟁사는 의미 있는 실적 개선을 이루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비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 대해 켈리 존슨 등 핵심 인력들은 스컹크 웍스 시스템의 개념과 한계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조직 운영의 특징

스컹크 웍스의 개발 문화로는 고품질의 제품 개발을 신속하게 하거나, 한정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신속성과 효율성에서 남다른 개발 문화가 록히드를 대표적인 방산업체로 성장시킨 힘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속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스컹크 웍스의 조직 운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다.

- 소수의 비전통적 만능인으로 구성

불과 50여 명으로 출발했던 스컹크 웍스는 민첩하게 일하기 위해 소규모 조직을 지향했다. 예를 들어 스컹크 웍스는 1958년 초기의 주요 과정에 6명만 참가하고도 민간용 쌍발 제트기를 8개월 만에 만드는 기록을 세웠다. 후에 똑같은 성능의 미 해군 군용기 개발에 동원된 스컹크 웍스는 초기의 주요 과정에 해군 300명이 추가로 참여했는데도 개발 기간이 27개월에 이르자 군용기가 민항기보다 30배나 복잡하지는 않았다고 촌평했다.

조직의 구성원으로는 시야가 좁은 전문가보다 비전통적 접근 방식을 받아들일 줄 아는 폭넓은 만능인을 선호했다. 특수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모험도 하고 실패도 할 수 있는 자유를 전통적으로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스텔스기 개발에서도 잘 드러났다. 모스크바에서 출판된 지 10여 년이 지난 소련 과학자의 논문에서 스텔스 기능의 핵심 원리를 찾아낸 팀원은 항공 공학자가 아니라 수학 전공자였던 것이다.

또한 구성원 유지의 중요성을 인식한 스컹크 웍스는 소수 정예로 일하는 대신 1950년대 당시에 이미 성과급제 실시를 주장했다.

- 폭넓은 재량권 부여

품질 관리를 위해 엔지니어와 현장 작업원 간에 의사 소통 루트를 만들고 현장에서 즉시 설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팀원이 품질 관리를 맡도록 했고 부적합한 부품의 반송 조치까지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의 Total Quality Management 개념과 유사한 조치를 이미 당시에 실시했을 정도로 작업의 효율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또한 고객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하청업체의 선정과 발주, 반송 등에 대한 권한을 스컹크 웍스가 직접 맡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현장 제작진의 판단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인 개발 작업이 진행되도록 했다.

- 효과적인 비용 관리

스컹크 웍스는 조직의 존속을 보장받기 위해 개발비 절감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때로는 지나치게 비용 지출을 억제하기도 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 생산 과정에서 최대한 기성품을 사용했는데, 스텔스기의 프로토 타입은 폐품을 모아 만들었다고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였다. 조종 제어 컴퓨터, 관성 항법 장치, 엔진, 헤드업디스플레이 등 중요 부품들까지도 다른 항공기용 제품을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스컹크 웍스는 GM의 새턴 차종 개발비 36억 달러보다 10억 달러 적은 26억 달러로 스텔스기를 개발했다고 자평한 적도 있다.

수소 비행기 개발 과정에서는 실험비 절감을 위해 철제 난로보다 저렴한 목재 난로를 사용하다가 화재 사고를 겪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수소 비행기 개발은 실패했지만 배정받은 연구비 9,600만 달러 중 지출액은 600만 달러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정부에 반납할 수 있었다.

- 관료주의 최소화

스컹크 웍스의 구성원들은 관리, 통제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이 스컹크 웍스의 성공에 필수적인 요소라 보았다. 그래서 보고 절차를 최소화했고 서류 작업도 아주 중요한 경우에만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스컹크 웍스가 6명을 투입하고 8개월이 걸린 작업에 미국 해군은 300명을 투입하고 27개월이 소요된 사례, 록히드 본 공장과 하청업체 간에 오고 간 요구서와 제안서가 각각 200여 장, 1,200장이었던데 비해 스컹크 웍스와 하청업체 간에는 불과 3장의 요구서와 4장의 제안서로 동일한 업무를 처리한 사례 등 간소화의 효과는 비용 절감과 처리 속도의 향상으로 나타났다.

- 다양한 시도와 그에 따른 실패는 용인

1950년대 중반에 수소를 사용하는 제트 항공기 개발을 시도했다. 결국 액체 수소의 연비와 저장 문제에 봉착하면서 실패하기는 했지만 현재 기술로도 난항을 겪는 문제를 당시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과감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수직 이착륙 기능을 가진 고정익기 개발 시도라든지, 지금은 생산되고 있는 스텔스 선박 개발 시도 등도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위한 노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 창의적인 접근을 통한 문제 해결

효과가 기대될 경우에는 종종 비전통적인 방식조차도 적극 수용하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U-2 개발 당시에는 기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코텍스(여성용 위생용품)을 사용하자는 숙련공의 아이디어를 즉각 채택해서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 스텔스기 개발 과정에서는 현장 테스트 도중 적합한 부품을 찾지 못하자 즉석에서 철제 금고를 분해, 활용해서 엔진 열처리 문제를 해결하는 부품으로 활용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 선명한 목표 의식을 가진 강력한 리더의 선도

스컹크 웍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에는 창설자인 켈리 존슨이나 그의 후임 벤 리치와 같은 강력한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리더는 프로젝트의 모든 면을 파악, 통제하고 개발 목표, 기능과 구조화 등 최종 제품의 이미지를 미리 설정해서 작업을 주도할 것을 요구 받았다. 이와 동시에 소규모 개발팀이란 독특한 조직에 개발에 대한 확신과 동기를 부여하고, 모험적인 구성원들이 가진 특이한 능력과 사기를 유지할 것도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량이었다.

IBM 등도 유사한 조직을 도입해서 성과 창출

1990년대 말, 민항기 사업에 주력하던 보잉은 군용기 중심의 맥도넬 더글라스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이질적인 사업부간의 결합과 신사업 부문 개설에 따른 문제에 봉착했다. 이때 맥도넬 더글라스 산하의 팬텀 웍스(Phantom Works)가 양사의 결합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그리고 합병 이후에는 보잉 그룹의 기술 개발 부문을 주도하게 되었다.

IBM은 스컹크 웍스 방식을 채택해 최고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종종 인용된다. 1980년대 중반, PC 사업 활성화에 애로를 겪던 IBM은 사업 개발팀을 새로 구성하면서 기존 조직의 간섭을 물리적, 문화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뉴욕 본사와 멀리 떨어진 플로리다에 작업 공간을 두고 최고 경영진에 직접 보고하도록 했다. 개발팀은 기존 사업부들과 다르게 접근했다. 시중의 기성품을 사용해 신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우수한 SW 개발자들이 몰리도록 디자인을 공개했던 것이다. 그 결과, PC 사업 활성화의 계기가 된 저렴한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스컹크 웍스 방식은 또 다른 비용 낭비 요인으로 치부되면서 한동안 잊혀졌다가 2000년대 들어 시대에 맞게 변형된 형태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모토로라는 일리노이 교외의 Main R&D 시설에서 멀찍이 떨어진 시카고 시내에 신제품 개발팀의 작업장을 설치하고 본사와 다른 인테리어로 실내를 꾸몄다. 하지만 상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스컹크 웍스와 달리 본사의 마케팅, 디자인, 회계 부서 등과 철저하게 협력해서 획기적인 신제품 Razr 폰을 출시했다. 말레이시아 에어라인은 특정 주제의 해결을 위해 즉석에서 구성된 소수 인원이 일정 기간 함께 근무하도록 하는 연구소(Laboratories)라는 명칭의 유사 조직을 운영했다.

이 밖에 스컹크 웍스 방식은 Google의 Google X, Amazon의 Lab126과 A9, Microsoft의 Xbox Division 등으로 도입되기도 했다.9 폐쇄적인 학풍을 탈피해서 젊은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학제간 연구와 Open Innovation 식의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2011년 설립된 일본의 Okinaw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OIST)는 학계에 도입된 스컹크 웍스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누구든지 스컹크 웍스 방식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작업 공간을 분리시키고 인원 수, 차출 방식, 예산 배정 등 외견상 요인만 모방해서는 기대하는 혁신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조직을 이끌 리더의 발굴과 조직 운영 방안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목적에 맞는 운영 원칙을 수립하고 리더와 구성원들은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진들도 이를 용인하고 성원해야 한다. [LG경제연구원 진석용 책임연구원]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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