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969년 강원도 인제군의 최전방 철책근무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려울수록 사람은 서로 따뜻해진다는 것을 (군 생활을 통해) 느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28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강원도 인제군에 건립될 ‘역대 대통령 테마공원’ 조성과 관련해 행한 인터뷰에서 “소위 끗발도 없고 모두가 고생하는 전방의 군 동료 사이에서, 휴가도 자유롭지 못하고 외출도 불가능한 최전방 철책선 근무를 하니까 서로에 대해 굉장히 따뜻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믿음이 있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려고 노력하는 그런 군대생활을 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는 고려대 함성득 교수(행정학)와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또 “최전방 군대생활을 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군대를 갔다와야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내 경험으로는 군대를 갔다오고 나니까 그때부터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와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고, 장가도 가야 되고, 부모님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하나하나 책임감 있게 다가왔다”고 전하면서 이 같은 경험에서 “아이한테도 ‘군대를 갔다와야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아무래도 나태하기 마련이다, 빨리 갔다와서 인생을 새로 준비하라’고 얘기해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인제군이 ‘강원도의 밑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점차 남북관계가 열리고 또 사람들이 자연의 중요성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로 가면서 강원도가 관광과 문화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그 중에서도 인제가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과 환경은 새로운 밑천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인제군의 ‘역대 대통령 테마공원’ 건립과 관련한 노 대통령의 인터뷰 전문.

▲ 함 교수 : 인제군과 첫 인연을 맺게 된 상황을 설명해 달라.

▲ 노 대통령 : 1968년 3월 5일 입대해서 7일에 군번을 받았다. 6주 훈련을 마치고 춘천 103보충대에 와서 근무지를 배치받은 것이 원주 1군사령부였다. 원주 1군사령부 부관부에서 1년 남짓 근무하고, 1969년 7월 1일자로 12사단으로 전출명령을 받았다.

사실은 내가 자원했다. 당시 전방 차출이 있었는데 자원해서 12사단 전출명령을 받고 12사단으로 가게 됐다. 전출자들은 전부 군부대에서 함께 가는데 나는 마침 그때가 휴가 중에 전출명령이 났기 때문에 혼자서 휴가를 마치자마자 짐 보따리를 꾸려서 혼자서 민간버스를 타고, 전출명령서 들고 인제 원통에 갔다. 가도가도 끝이 없더라. 버스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산만 보이고 하늘이 없더라.

해가 뉘엿뉘엿할 때 원통에 내려 헌병초소로 가서 ‘내가 전출 온 전출병인데 길 좀 안내해 달라’고 신고했더니 헌병이 ‘야, 군대에 와 보충대 가서 자면 뭐 하느냐, 날짜가 남았으니까 하룻밤이라도 원통에서 자라’고 해 주었다. 그래서 원통에서 하룻밤을 자고 부대에 들어가 그때부터 12사단에 근무하게 된 것이 인제하고 인연을 맺었다. 당시에 원통에 가서 만난 헌병은 내가 생각하던 ‘겁나는 헌병’과 달리, 아주 따뜻한 헌병이었다. 그것이 기억나고, 원통의 민간인 숙소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12사단 보충대 가서 12사단 생활을 시작했다.

▲ 함 교수 : 인제군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 노 대통령 : 훈련을 막 마치고 춘천의 103보충대에 가니까 보충대 안에서 제일 가기 싫어하는 곳이 12사단이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가겠네’ 이런 얘기들을 하고 수군거렸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걱정이었던 것이 인상에 남고, 그 뒤에는 막상 내가 12사단 52연대에 근무할 때는 진중버스가 제일 기억난다.

12사단은 고성군 해상리, 간성면 하고 인제군 원통하고 다 걸쳐 있다. 그 사이를 하루 한 번씩 진중버스가 다녔다. 우리가 연대본부에 볼 일이 있으면 건봉산에서 진중버스를 타고 원통면을 지나서 송학리 연대본부로 오는데 진중버스를 타고 온다. 그 길이 진부령이다. 진부령의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진중버스를 타고 넘어오는 풍경이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참 아름답다. 그것이 군대 생활할 때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모든 거리가 아름답고 겨울에는 향로봉에 올라가고, 진부령 꼭대기를 넘어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 함 교수 : 군대생활 중 만난 사람이나 재미있던 에피소드는?

▲ 노 대통령 : 내가 지금 말한 것은 후방에 중대본부에 근무하면서 행정병으로 오락가락할 때 얘기이고, 역시 군대생활에서 제일 재미있고 추억에 남는 것은 최전방 철책선 근무, GP근무 이쪽이다. 그런데 철책선 근무하면서 만난 사람들 역시 우리 군 병사들, 동료들이다. 민간인들은 거의 볼 수 없으니까.

하나 그저그저 재미있는 일은 전방 철책선 부대에 있으면서 개를 키웠다. 우리 부대에서는 소대 단위로 근무했는데, 보통 전방초소에 가면 다 소대단위로 근무한다, 우리 소대에서 개를 키웠다. 이 개가 부대이동을 하느라 후방으로 나오니까 길가에 걸어가는 민간인들을 보면 마구 짓는다. 그런 것이 기억에 남는 달까. 또 그 행정동명을 잘 모르겠는데, 원통에서 진부령을 넘어가면 미처 다 넘기 전에 조쟁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서 훈련대대로 근무하고 있을 때, 군부대 바깥에 민가가 있었다. 민가에 살짝 나가 빵도 사먹고 통닭도 사먹고 그랬던 것이 생각난다.

▲ 함 교수 : 역대 대통령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인제와 관련이 있는데 특히 노 대통령이 가장 오래 있었다. 그 오랜 군 생활이 향후 인생에 어떤 영향이 미쳤는지?

▲ 노 대통령 : 누구나 군에 갔다오지만 기억해 보면 군 생활이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제대하고 난 뒤 걱정이 많거나 몸이 특별히 피곤하거나 또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거나 하면 군대생활했던 때의 꿈을 꾼다. 특히 군대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의 꿈을 꾸고, 또 있지도 않았던 군대생활 꿈을 꾼다. 제대특명을 받아놓고 막 제대하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생겨서 제대가 취소되고 보충대에 묶여서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꿈, 그런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역시 군대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또 반대로 그 뒤에 무슨 일이든 하다가 어려울 때는, ‘군대생활할 때는 삽 한 자루 갖고 집도 짓고, 곡괭이 하나 가지고 못하는 일이 없었는데 이깟 일로…’ 하는 생각을 한다. 또 군대생활하면서 무슨 일이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 같은 것, 이런 것이 좀 생긴다.

그 다음에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있고, 고향에도 친구가 있지만 군대생활할 때 사람이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배웠다. 원주 1군사령부 시절에 길거리에서 만났던 헌병의 인상과 내가 조금 전 말한 원통에서 길을 안내해주면서 ‘야, 하룻밤 자고 가라’고 얘기해 주던 헌병하고는 느낌이 참 달랐듯이 다른 데서 군대생활했을 때와 인제군에서 군대생활했을 때는 아주 달랐다. 제일 달랐던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믿음이 있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우려고 노력하는 그런 군대생활을 했다.

왜냐 하면 전방의, 소위 말해서 끗발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고생하는 군인들 사이에서, 휴가도 자유롭지 못하고 외출도 불가능한 곳에서 최전방 철책선 근무를 하니까 서로에 대해 굉장히 따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사람에 대해 믿음 같은 것도 생각하고 그랬던 것이 뒤에 두고두고 사람관계를 생각할 때, ‘어려울수록 사람은 서로 따뜻해진다’는 것을 느낀 것 같다.

또 하나 얘기한다면 어떻든 내가 군 생활을 잘했기 때문에 내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교 입학하면 바로 군대를 갔다오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얘기해왔다. 왜냐 하면 군 생활을 경험하기 전에는 아무리 자세를 가다듬고 열심히 하라고 해도 잘 안되고 방심하고, 말하자면 책임성 없이 인생을 보내게 된다. 내 경험으로는 군대를 딱 갔다오고 나니까 그때부터 모든 것이 현실로 다가와서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고, 장가도 가야 되고, 부모님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하나하나 책임감 있게 다가왔던 그런 경험이 있어서 내 아이한테도 ‘군대를 갔다와야 비로소 인생이 시작된다, 그 이전에는 아무래도 나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빨리 갔다와서 인생을 새로 준비해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다.

그것이 본인이 출세하는 데 큰 도움이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군대생활을 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것이 일반적인 군대생활, 부대에 있어서의 상급자의 서슬 퍼런 군기, 그리고 심통하면 곡괭이 자루 들고 두드리는 그 군기가 아니라 우리가 최전방에서 겪었던 정말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돕고 협력하는 이런 따뜻한 군대생활을 거치면서 내가 얻었던 그런 경험이 아닌가, 생각한다.

▲ 함 교수 : 테마파크는 가족나들이 공간이다. 청소년 세대를 위해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 노 대통령 : 내 경험으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내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사랑, 또 사물에 대한 사랑 등등.

어떻든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또한 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해서,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정말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또 내가 부닥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에 대해서 사랑과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모든 일에 대해서 애착을 갖게 하는 그런 기본이 된다. 그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또 자기 인생을 대하면 모든 것이 다 밝게 보이고 또 열심히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 그래서 저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서 관심과 애정을 가져라, 그리고 애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부닥쳐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 함 교수 : 마지막 질문으로 강원도 인제군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은?

▲ 노 대통령 : 아마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이, 다는 아닐 테지만, 군대생활을 했거나 하는 많은 남성들이 인제군 하고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그 시기에 인제군과 맺었던 인연을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인제군 전역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고기도 잡고 냇물에서 헤엄도 치면서 함께 지냈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제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따뜻한 인심에 대한 추억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개 대한민국 남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옛날에 아빠가 군대생활을 했던 곳이고, 여기서 물고기도 잡고, 그렇게 하면서 청춘을 보냈던 곳이다’라고 가족들한테 자랑하는 곳이 아마 인제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옛날에는 강원도 하면 ‘밑천 없는 그래서 억울한 강원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점차 남북관계가 열리고 또 점차 사람들이 자연의 중요성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로 가면서 강원도가 관광과 문화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인제가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과 환경은 새로운 밑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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