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시련의 계절 앞둔 국내 석유화학 핵심역량 중심의 변화 일궈내야’

서울--(뉴스와이어)--LG경제연구원이 ‘시련의 계절 앞둔 국내 석유화학 핵심역량 중심의 변화 일궈내야’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Ⅰ. 터프해지는 석유화학 시장

최근 중국 광저우에서 차이나 플라스 박람회(Chinaplas 2013)가 열렸다. 이는 세계 플라스틱 3대 전시회 중 하나로서 많은 석유화학 기업들이 아시아 고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각 기업들이 미래에 중점을 두는 사업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제품에 역점을 두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국내의 내로라하는 석유화학 기업들도 참가했으며 이들 기업들은 중대형 전지, 태양광 전지, 수처리 등 미래 유망 제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화학 제품 소개에 중점을 두었다. 대량 생산이 용이한 범용 제품 보다는 좀더 부가가치가 있는 미래 유망 소재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미래에 적극 대비하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신사업 개발이 최근의 실적 부진을 개선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2011년 하반기부터 부진하였으며 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세계 경제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중국의 수요 둔화가 가장 큰 요인이라면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낙관적 전망을 어렵게 하는 것은 공급적 측면이다. 북미에서 경쟁력 있는 셰일 가스가 대량 개발되면서 북미 화학 기업들이 다시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 저가 원료에 기반한 범용 제품들이 미국에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제품은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사업 구조 전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어떤 식으로 사업 구조 전환을 해야 할 것인가? 서구,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과거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한 위기 극복에 실패한 기업들은 어떤 이유로 실패했는지를 분석해보고 이를 통해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모색해 본다.

Ⅱ. 위기를 통해 강해진 기업, 약해진 기업

1.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과 위기

석유화학 산업의 역사는 성장 과정에 따라 크게 1910~1940년대, 1950~1970년대, 1970~1990년대, 2000년 대 이후의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각 시대별 환경 변화를 간단히 살펴보자.

우선, 1910~1940년대는 석유화학 산업이 태동하면서 다양한 신제품이 개발되던 시기다. 1900년대 초 석유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비교적 값이 싸고 사용이 편리한 석유를 이용하는 산업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석유 제품들은 운송용 제품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고 기업들은 석유에서 생산되는 경유와 등유 외에 나프타를 이용한 화학 제품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석유화학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30년대를 지나면서 DuPont의 나일론 등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었고 석유화학 산업은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였다. 당시 새로 개발되는 화학 제품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획기적인 제품들이었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때 개발된 제품들의 상당수가 지금도 대량 생산되어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도 화학 산업은 있었지만 주로 원료로 석탄을 이용하였다. 석탄의 경우 고체이기 때문에 운송이 쉽지 않고 대량으로 취급하기가 어려워 확대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다가 석유가 개발되면서 부산물로 비교적 취급이 용이한 나프타가 쏟아져 나왔고 이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다. 또한 석유화학 제품을 건축, 일상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전기전자 제품, 자동차 등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빠르게 늘어났다.

1950~1970년대는 석유화학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기업들의 참여가 확대되던 시기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석유화학 제품을 사용하는 분야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석유화학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였다. 많은 기업들이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 참여하면서 서서히 경쟁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기존 화학기업들은 물론 석유 개발을 하는 기업들도 사업 수직 계열화를 바탕으로 적극 참여하였고, 심지어 화학이 아닌 전자나 사진 필름사업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GE, Eastman Kodak 같은 회사들도 석유화학 사업을 적극 확대하였다. 그 결과 1960년 말에 접어들면서 점차 공급 과잉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편, 이 기간 동안에는 예전과 같은 획기적인 제품 개발 건수가 줄어들면서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새로운 응용 분야를 적극 찾기 시작했다.

1970~1990 년대는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가 닥쳤다. 1973년 제 4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면서 주요 원유 생산국들인 중동 국가들이 감산과 가격 인상을 단행하였고 이에 따라 세계는 큰 폭의 물가 상승과 함께 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된다. 초기에는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 인상을 염두에 두고 미리 사 두려는 수요 때문에 오히려 수요 성장 폭이 더욱 컸다. 하지만 수요 성장이 둔화되면서 점차 설비 과잉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이란의 회교 혁명에 이어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2차 석유 파동이 일어났고 이 때부터 석유화학 경기는 크게 영향을 받았다. 수요 성장은 급격히 둔화되고 일시적으로 수요가 감소하기도 했다. 여러 범용 제품들의 설비들은 가동률 하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했고 급기야는 크게 적자를 보는 기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던 석유화학 산업의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사업 구조 전환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었고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의 사업 인수, 매각 들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동안 원유 판매에만 집중했던 중동 기업들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석유화학 사업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면서 기존 서구 기업들의 사업 전환은 점차 가속되었다. 이 시기는 많은 기업들이 어떻게 해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지 고민을 한 시기였고 다양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때 어떻게 대응했는가에 따라 지금까지 성장을 지속하며 Top tier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는 반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대폭 사업을 정리하거나 타기업에 인수되면서 역사 속에 사라진 기업들도 있다.

2000년 대 이후 선진국에서는 점차 석유화학 수요가 정체되고 있는 반면, 중국 등 신흥국에서는 경제 성장에 힘입어 본격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가 원료를 기반으로 한 중동 기업과 대규모 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석유화학 제품이 개발되긴 하지만 과거와 같은 시장 파괴력이 없는 상황이어서 석유화학 시장은 성장기 후반 내지 성숙기에 점차 접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1970~1990년대 석유화학 산업이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사업 구조 전환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은 무엇이었는지 대표적인 서구/일본 기업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2. 주요 기업들 사례 분석

DuPont : Product leadership에 기반한 지속적인 변화 추구

DuPont은 1802년 화약을 만들면서 화학 사업을 시작한 회사다. 창사 이래로 지금까지 취해 온 전략 방향은 주로 경쟁 기업이 가지고 있지 않는 제품을 개발해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자는 Product leadership에 기반한 전략이다.

DuPont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석유화학 제품들이 많다. 우선 나일론을 들 수 있다. 나일론은 1938년 개발되었던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군용 낙하산에 사용되는 등 특수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나일론을 사용한 스타킹과 같은 새로운 제품이 탄생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1938년 개발된 Teflon, 1960년에 개발된 Delrin 등 제품들은 지금도 자동차, 전자,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제품이다. DuPont은 이러한 신제품 개발 노력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시장 창출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러나, 석유화학 산업 붐이 한창일 때 DuPont은 석유화학 사업의 전환을 시도했다. 1956년 기초 석유화학 제품 (방향족, 에틸렌 등)에 대한 생산 확대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는 Dow, Union Carbide 등 화학 기업뿐만 아니라 Shell 등 여러 석유 기업들이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시장에 적극 진입하면서 DuPont의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1959년에 크게 두 가지의 사업 전략을 추진하기로 한다. 첫째는 적극적인 해외 시장 확대를 통해 성장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회사의 다양한 보유 역량을 조합하거나 최적화를 해서 새로운 제품 개발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새로운 제품 개발을 자체적으로 진행해 왔으나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 이때부터는 벤처 투자 등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신제품 개발을 추진한다. 이러한 벤처 투자 방식의 제품 개발은 1960년대 말까지 적극 추진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한 경우가 매우 제한적이기 하나 DuPont의 경영진은 적은 비용으로 새로운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이후에는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이 점점 어렵다고 판단하고 제품 공정의 상업화나 개선 등에 중점을 두는 연구를 주로 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Conoco를 인수하는 등 안정적인 원료 확보를 위한 활동을 확대하고 회사 보유 역량에 기반한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중장기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 전략을 펼친다. 1984년 Conoco내 사업이지만 DuPont과 관련이 없는 비닐 관련 제품 생산 설비를 매각하고, 패키징, 우레탄 고무 사업 등도 매각한다. 반면, 지금까지 역량이 있다고 판단했던 섬유 관련 사업 및 페인트 사업은 지속적인 인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한다. 1984년 Exxon의 탄소섬유 사업을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1989년 Hercules의 섬유 카펫 사업을 인수하였다. 또한 Ford의 페인트 사업부를 인수하였고 1998년 페인트 등 코팅 전문 회사인 Herberts를 인수하면서 자동차 코팅 분야의 1위로 자리매김하는 등 페인트 등 당시의 고부가 사업 확대에 적극적이었다.

DuPont의 Product leadership 전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농업 바이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자체 연구 개발뿐만 아니라 바이오 기술 회사인 Pioneer 지분을 인수하였고, Optimum Quality Grains라는 J/V형태의 연구 개발 회사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병충해에 강한 다양한 품종을 개발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바이오 분야에서의 신제품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하에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최근 바이오 리파이너리 공정 개발뿐만 아니라 Sorona 제품 개발 등 바이오 화학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2004년 섬유 사업의 상당 부분을 매각하면서 현재는 바이오 관련 사업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43%를 차지할 정도로 바이오 기술 기반의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

Dow Chemical : Process leadership 역량에 기반한 점진적인 다운스트림 사업 확대

DuPont이 Product leadership에 중점을 두었던 반면 Dow는 Process leadership에 기반한 원가 경쟁력을 추구했다.

Dow는 석유화학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브롬과 염소와 관련된 화학 제품을 생산해 왔었다. 특히 1920~1930년 기간 동안에는 염화 칼슘, 염화 마그네슘 등 마그네슘/ 칼슘 컴파운드 제품의 강자였다. 석유화학 사업은 1930년대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석유 개발 과정에서 쓰이는 화학 제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사업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생산 설비의 공정 설계 등의 기술이 축적되었다. 1950년대에는 올레핀, 방향족, 그리고 기타 기초 석유화학 제품 및 플라스틱 생산에 주력한다. 특히 그동안 Dow 에서 축적해온 염소 관련 기술을 바탕으로 PVC를 대량 생산하고 플라스틱 백이나 클리너 등 실제 응용 제품을 직접 생산하면서 석유화학 제품의 사용 분야를 더욱 확대시켰다.

한편 Dow는 오일과 가스를 대규모로 확보하고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는 등 원가 경쟁력을 위한 수직 계열화에도 집중하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회사의 주요 목표는 ‘Cost leadership’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범용 화학 제품을 최대 규모로 확보하고 최고 수익을 내는 회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내수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 시장에 관심을 두고 직접 투자나 J/V를 통해 적극 진출하면서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54년 일본의 Asahi와 Asahi-Dow를 설립했고 이후 영국의 Distillers와 J/V를 설립했으며 네덜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유고, 브라질, 그리고 한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40년대 말 해외 매출 비중이 약 5%에서 1991년 52%로 급증하였다.

그러다가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한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가 오고 회사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1978년 새로 임명된 CEO인 Oreffice는 미시간의 Shanty Creek 에 Dow의 중견급 간부들 30명을 모아 어떻게 해서 2000년에 위대한 회사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3일간 논의한 결과 기존과 확연히 다른 새로운 전략과 조직을 세웠다.

기초 화학 및 플라스틱 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리면서 비교적 부가가치 높은 다운스트림 제품(플라스틱 생활용품 등) 그리고 농화학 같은 스페셜티 화학 제품의 판매 비중을 50%로 늘리겠다는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을 세웠으며 또한 이를 위해 각 국가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조직 형태를 바꿔서 각 지역별 조직을 통합 운영하기로 했다. 효율적인 전략 이행을 위해 분산형 조직에서 중앙 집중형 조직으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Dow는 석유와 가스 사업을 매각하였고 같은 시기에 브롬 사업도 처분한 반면 생활용품 플라스틱, 산업용 스페셜티 화학 제품 사업은 확대하였다. 생활용품 생산 판매 업체인 Morton Thiokol의 플라스틱 관련 사업 부문과 Dompak를 인수하였고 폴리우레탄 폼을 생산하는 Upjohn, 수처리 분리막 기술을 보유한 Film Tec 그리고 농화학 회사인 United Agriseeds 등을 인수하였다. 1979년 Dow 사업의 약 85%가 기초 석유화학 및 범용 플라스틱이었지만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1987년 기초 석유화학 제품과 플라스틱 제품 매출 비중이 48%로 줄어들었고 나머지 52%는 다운스트림 화학 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용품 화학 제품, 그리고 산업용 화학 제품들이었다.

하지만, 기초 화학 및 범용 플라스틱 사업의 비중을 단순히 축소만 한 것은 아니다. 1990년 중반에도 경쟁력을 가진 기초 화학 및 범용 플라스틱 설비를 신증설하였고 기존 범용 제품 생산 공정의 기술 개선을 위한 연구 개발도 지속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1993년 메탈로센 촉매를 이용한 폴리에틸렌 생산 신공정(‘Dowlex 공정’)을 개발한 경우가 있다. 메탈로센 촉매를 사용하면 기존 공정에 비해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고 또한 더 좋은 품질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대표적인 범용 제품인 폴리에틸렌 중에서 메탈로센 촉매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제품은 지금까지도 다른 폴리에틸렌 대비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 기업과 함께 중국에 석탄을 원료로 한 대규모 범용 석유화학 제품 생산 설비에 투자하였고 브라질에선 식물자원을 원료로 사용한 폴리에틸렌 생산 설비에 투자하는 등 저가 원료 기반의 범용 제품 생산 설비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Dow의 경우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에 변화를 주면서 원가 경쟁력을 기반으로 부가가치가 높거나 다운스트림 쪽 제품에 집중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고 현재 석유화학 산업을 이끌어가는 Top tier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ICI : 관료적인 기업 문화로 인해 사업 구조 변화에 소극적

ICI는 영국 기업으로서 독일의 IG Farben (독일 BASF, Bayer, Hoechest 가 분리되기 전 기업) 에 대응하기 위해 1926년 영국의 여러 화학 기업들이 합쳐져서 만든 기업이다. 설립목적도 ‘대영제국 화학산업의 발전’을 위한 것으로서 다분히 화학산업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주로 북미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아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하였지만 1950년대 초에 자체 기술로 폴리에스터를 개발하는 등 점차 기술력이 향상되면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개발하였다.

1950년대에는 폴리에틸렌, PVC, 폴리프로필렌 및 폴리에스터 등의 사업 규모를 키웠고 예전부터 진행해 왔던 염소, 가성소다 사업들도 확대하였다. 1960년대에는 후방 사업 확장을 위해 Burma Oil과 J/V를 만드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 결과 1979년 범용 석유화학 제품, 농업 관련 화학 제품 등이 전체 매출의 60%, 그리고 수익의 72%를 차지하였다.

이후 1970년대 말 위기가 오면서 큰 폭으로 수익이 하락하였다. 당시 수익 하락폭은 경쟁기업보다 컸는데 그 이유로서 너무 많은 종류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었고 각 제품의 생산 규모도 크지 않아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대부분의 경쟁 기업들은 생산성이 약 10% 개선되었지만 ICI는 복잡한 제품 구조로 인해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ICI가 석유화학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대영 제국이라는 큰 시장을 목표로 카르텔 형태로 시작했기 때문에 조직문화가 다분히 관료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 언론에 의하면 ICI내에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초창기부터 있던 부서가 전체 회사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하였고 이로 인해 새로운 부서를 만들거나 오래된 부서들간 합병 등의 결정이 쉽지 않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마케팅 조직을 만들거나 제품 개발과 생산, 마케팅 조직의 연계 등이 순조롭게 이루어 지지 않았다. 새로 개발된 제품을 주로 라이센스로 경쟁 기업에 판매하는 형태가 많았다는 점은 ICI가 제품 개발-판매를 원활히 연결해주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미국에 적극 진출하고 BP, DuPont과의 사업 교환을 통해 강점이 있는 사업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경쟁 기업 수준의 경쟁력을 갖기가 여전히 쉽지 않았다. 1960년대 당시 Forbes는 ICI에 대해 획기적인 산업혁명이 또 있지 않고서는 ICI를 구할 수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결국 ICI는 1980년대에 대부분의 석유화학 사업들을 대폭 정리하게 된다. 이후 Unilever의 스페셜티 화학 사업을 인수하면서 스페셜티 회사로의 탈바꿈을 시도했지만 최근 Akzo Nobel이 ICI를 인수하면서 ICI는 역사속 기업으로 사라졌다.

Union Carbide : 핵심 역량과 무관한 사업으로의 사업 구조 전환 시도

Union Carbide는 1917년 전기화학 기술과 관련된 회사들이 합병돼서 만들어진 회사로서 설립 초기부터 자회사 형태로 각 사업부마다 독자적으로 사업을 운영하였다. 1920년 Union Carbide는 Carbide and Carbon Chemical 이라는 자회사를 만들면서 다양한 석유화학 사업을 추진했다. 이후 석유화학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미국내 최대 석유화학 회사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섬유와 고기능 플라스틱 분야에서는 DuPont에 처졌으며 기초 석유화학과 폴리머 분야에서는 Dow의 대규모 투자에 밀려 1위의 시장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1949년에 석유화학을 하던 여러 회사가 Union carbide 라는 회사로 통합되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회사 운영은 4개 그룹내 18개의 사업 부서에서 독자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전체 사업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Corporate 기능이 있었지만 Dow나 DuPont과 달리 규모도 작고 권한도 한정되었다.

1960년대 중반 Union Carbide는 다양한 사업 분야로의 확장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회사가 보유한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당시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사업 위주로 인수하였다. (때로는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없는 사업들도 인수하였다.) Union Carbide가 각 사업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전체적인 관점에서 기존 역량에 기반한 사업 확장보다는 기존 사업에다 하나의 사업을 단순히 더하는 식의 접근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64년 매트리스 회사를 인수하고 그로부터 2년 뒤 레이저 시스템 회사를 인수하였다. 이후에도 우라늄 채굴 장비 회사를 인수하는 등 당시 주목을 받았던 사업들을 대거 인수 했다. Union Carbide는 새로 인수한 사업들이 스타 사업이 될 것으로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 Union Carbide가 새로운 사업들을 개척한 방식 또한 DuPont 등 사업 구조 전환에 성공한 다른 기업과 달랐다. DuPont은 벤처 투자 형태로 손실을 최소화한 반면 Union Carbide는 기존 기업들을 인수하는 형태로 사업을 확장했다. DuPont의 벤처 투자는 비록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손실이 크지 않았던 반면 Union Carbide는 기업 인수 후 성공하지 못했고 손실 규모도 컸다. 그만큼 Union Carbide는 신사업 개척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석유화학 사업의 위기가 시작되자 회사는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시 경쟁력 있는 사업 분야 중심으로 사업 범위를 제한하였다. 1960년대부터 1970년 초반까지 인수를 통해 확보된 사업들 (알루미늄, 자동차 라디에이터 등)의 투자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또한 경쟁력이 떨어지는 화학 사업들도 철수하기 시작했다. DuPont과 경쟁하였던 섬유사업을 철수하였고 Dow가 시장을 잠식하고 있던 기초 석유화학과 일부 플라스틱 분야도 사업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업들 즉 산업용 가스, 농화학, 합금 등 사업을 강화하였다. 또한 당시 폴리에틸렌의 새로운 생산 공정(‘Unipol 공정’)을 개발하면서 라이센스를 통해 사업 규모를 늘려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 구조 전환 노력은 1984년 인도의 보팔 사고를 맞게 되면서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보팔 사고로 인해 회사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적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이후 적대적 인수 공격을 받게 된다. 적대적 인수 공격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사업을 매각하였지만 결국 회사는 경쟁사였던 Dow에게 넘어가게 된다.

Allied Chemical1 : 기술 역량 확보에 소극적, 단순한 범용제품 공급

Allied Chemical은 1920년 5개의 화학 회사들이 합병해서 만든 회사다. Allied Chemical는 석유화학 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제품 개발보다는 다운스트림 제품의 원료로 해당하는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대량 생산 공급하자는 식의 접근 방식을 취했다. 회사 모토가 ‘우리는 다른 기업들이 개발한 신제품의 기초 원료를 제공하자 (Let other companies invent specialized product for end-users. We would supply their basic chemicals)’ 이었을 정도다. 당시 애널리스트가 회사에 대해 평가하면서 일관성 있는 중장기 전략이나 대책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은 1960년대 초 새로 CEO가 임명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 중앙 연구소를 적극 확대하는 등 회사의 기술 역량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1962년 Union Texas Natural Gas 를 인수하면서 후방 사업을 확보하기도 했고 이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타이어 등을 위한 나일론 섬유, 그리고 냉장고나 에어컨에서 사용되는 불소 화학 제품 등을 상업화하면서 고부가 사업을 확대하였으나 기술 경쟁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여전히 1970년 말에도 다운스트림 화학 제품의 원료로 사용되는 기초 석유화학 제품들이 전체 수익의 80%를 차지했다.

1979년 Allied Chemical은 석유화학 사업이 어려움을 겪자 사업 인수 및 매각 전문가를 CEO로 임명하면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의 기초 석유화학 사업을 매각하고 전기 전자 회사 및 장비 제조업체 등을 인수하면서 회사의 구조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자 했다. 또한 1983년 자동차 및 항공기 장비 업체를 인수하는 등 기존 사업과 무관한 사업들을 인수하며 규모 키우기에 집중하였다.

결국 화학 관련 사업 규모는 대폭 축소 되어 1987년 전체 매출의 25%가 되면서 예전 화학 회사의 모습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Honeywell을 인수하면서 Honeywell로 회사 이름을 바꿨으며 주로 자동차와 항공기 관련 부품이나 솔루션을 제공한다. 화학관련 사업은 회사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부품에 사용되는 소재를 공급하기 위해 유지되고 있으며 전체 매출의 약 15%에 불과하다.

Mitsubishi : 복잡한 경영 구조로 인해 끝나지 않는 사업 구조 전환

Mitsubishi 는 1934년 Nippon Tar Industries를 설립하면서 화학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대규모의 재벌 집단이 여러 가지 다양한 사업을 하면서 서로 얽히는 경우가 많았다. Mitsubishi도 예외는 아니었다. Nippon Tar Industries는 Mitsubishi 내의 Mitsubishi Mining 과 Asahi Glass가 지배하는 구조였다. 회사는 1936년 Nippon Chemical Industries로 이름을 바꾸면서 석탄 화학, 비료 등 사업을 확장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전쟁 물자를 납품하면서 빠르게 성장하였고 1944년 Asahi Glass와 합쳐지면서 Mitsubishi Chemical Industries로 이름을 바꾼다. 전후에는 재벌 해체 정책에 의해 3개 회사로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Mitsubishi 라는 이름 하에 3개 회사간 전략적 협력관계가 형성되었다.

1950년 중반 일본에서는 자동차, 섬유, 전자 등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일본 정부는 이들 제품의 소재로 사용되는 석유화학 제품이 대부분 수입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석유화학 산업을 적극 육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우선 석유화학 산업 성장을 위해 대규모 석유화학 산업 단지를 조성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석유화학 산업 단지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할 만한 회사가 많지 않아 화학기업, 석유 기업 외에 은행, 상사 등 다양한 배경의 기업들이 사업에 관여할 수 밖에 없었다. Mitsubishi의 경우 그룹 내 여러 기업의 지원을 받고 기술적으로는 Shell 등 서구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서 대규모 석유화학 단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Mitsubishi와 같은 대형 일본 화학 기업들은 이러한 독특한 방식의 성장으로 인해 1970년대 말 석유화학 사업 위기가 왔을 때 적절한 대응이 쉽지 않았다. 즉, 지배구조가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의사 결정에 관여하면서 위기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 결정이 매우 어려웠다. 경쟁력이 없는 설비들도 이해 관계자가 많아 매각 내지 폐쇄하기 보다는 공동 운영 방식으로 계속 운영하면서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였다.

또한 일본 석유화학 산업은 초기부터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석유화학 위기가 왔을 때 대량 생산하는 기업보다 경쟁력이 낮아 타격이 더욱 컸다. 원가 절감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용이하지 않아 대량 생산 설비를 가진 한국 기업에 밀리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일본 화학기업들은 초기부터 주로 일본 시장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서구 기업들의 사례처럼 개발 도상국에서의 수요 성장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1980년 대 중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의 회복도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Mitsubishi 와 같은 일부 일본 기업들은 고부가 제품 개발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기능성 제품의 시장 지배력을 늘렸지만 여전히 범용 제품의 생산 설비들이 회사 실적 개선을 가로막아 전체 화학 사업의 실적이 저조한 경우가 많다.

Ⅲ. 시사점

지난 수십년 간의 석유화학 산업의 성장과 위기 가운데 DuPont과 Dow의 성공과 다른 기업들의 실패가 던져주는 시사점은 다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사업 전환은 외부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들이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사업 구조 전환을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포기하거나 정리한 경우가 많다. 각 기업마다 강점을 갖는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에 기반한 사업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사업 전환에 성공했다는 DuPont이나 Dow도 핵심 역량에 기반하지 않은 제약 사업을 고부가 사업이라는 이유로 적극 추진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다른 기업에 매각하였다. 단순 고부가 사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Dow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로는 범용 사업에서도 핵심 역량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단순 Follower로서, 핵심 역량을 쌓지 못했던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 살아남기가 어려웠다. Allied Chemical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 역량 확보 없이 단순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대량 생산해서 공급하면 된다는 접근 방식은 일시적으로 유효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둘째, 사업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소극적인 자세로 임한 기업들의 경우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석유화학 사업은 다른 사업과 달리 상당히 긴 성장 곡선을 보인다. 1930~40년대에 개발된 제품이 아직까지 상당량 사용되고 있어 기업 내에선 오래 전부터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던 부서들의 입김이 세지고 또한 기업 문화도 관료적으로 변하기 쉽다. ICI의 경우 정부의 지원하에 성장하고 당시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었던 대영 제국을 대상으로 거의 독점하다시피 사업을 하다 보니 규모가 크고 오래된 사업부서가 자연스레 기업 내에서 발언권이 컸다. 이런 분위기에선 획기적인 생각이나 변화에 대해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ICI는 이러한 정체된 분위기를 바꾸지 못해 결국 산업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마지막으로, 글로벌화를 적극 실천한 기업일수록 성공의 확률이 높았다는 점이다. 반대로 국내 시장 위주로 성장 전략을 편 경우 실패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지역에서의 성공 방식에 머물지 말고 성장하는 다른 지역에 적극 투자 및 진출하여 특정한 지역에만 의존하는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 석유화학 기업들은 일본 내 수요 산업의 원료 공급이 우선이라는 석유화학 산업의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한국, 대만 기업들이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경우 초기 석유화학 산업에 진입할 때 정부의 협조 하에 경쟁력 있는 대규모 산업 단지를 세우고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 2000년 대 초 세계 경기 악화로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긴 했으나 중국 시장 부상으로 다시 경기 회복이 되면서 상당 기간 동안 높은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최근 저가 원료에 기반한 설비들이 늘어나고 중국 경기가 예전 같지 않으면서 국내 기업들은 실적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상황이 어려울 때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왔던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현재의 상황도 조금만 기다리면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 상 저점에서 다시 상승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국내 기업들도 어려운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석유화학 경기는 다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석유화학 경기 사이클이 다시 상승한다고 해도 국내 기업들이 얼마나 개선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환경이 개선될 요인보다 중국 성장 둔화, 저가 원료 기반의 북미 설비 확대 등 악화될 요인이 더 많기 때문에 전체 석유화학 경기가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향후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운이 좋기만 기다리는 경영 방식으로는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 될 수 없다.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Follower 전략은 유효성을 다하고 있고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비상을 계획하는 지금의 우리 석유화학 산업의 위상과도 맞지 않다.

변화를 추구하더라도 성급한 변화는 오히려 사업을 망칠 수 있다.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변화를 추진할 것인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것인가, 어떤 속도로 변화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보유 핵심 역량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것이다. 만약 충분한 고심 끝에 전략 방향이 결정된다면 기존 사업의 입김, 관료적인 기업 문화 등을 극복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해야만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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