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 박태옥 미술대전

서울--(뉴스와이어)--백양 박태옥 미술대전

전시일시 : 2005. 8월. 11일(목) - 9월 30일(금)
전시장소 : 백양전시관 (02 - 588 - 1579)(서울 강남 서초동 1445-14 오키즈 B1(3호선 남부터미날역 앞)
공동주최 : 사단법인 국제친선회, 후소문화
주 관 : 문화경제신문사
후 원 :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한국미술협회

나의 그림은 외로운 길에서만 피는 꽃처럼 고독 할 때만 눈을 뜬다. 자연의 신비로운 그 뒤에 숨긴 그리움으로 가시밭 벼랑길을 숨 가쁘게 정신없이 한평생을 올랐다. 오르고 또 올 라도 신비로움은 잡히지 않는데, 잠시 쉬어가자고 앞을 바라보니 자연의 신비는 나의 화폭 속에 들어와 있었다.

나의 인생은 끝없는 예술의 바다에서 도전과 웅전의 항행 길이었다. 전통과 우수한 현대미술의 긴 학문의 터널을 지나 독창적 예술, 창작의 고속도로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험난한 고개를 넘어서 정상적 창작의 길에서 몇 십 년 숨가쁘게 줄달음쳐 이 자리에까지 왔다. 세월에 비해 너무나 짧은 인생 , 끝없는 예술에 비해 너무나 보잘것없고 미천한 나의 예술체험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생명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최선의 노력의 성과가 육신과 함께 사라 지지 않고 끝없는 예술의 바다 속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되어 영원히 푸른 파도와 함께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람 , 바람이 분다. 나의 고향땅 . 연초록 안개가 감도는 나무를 가슴에 안고 난 길을 걷는다. 몇 십 년 잃었던 고향땅을 다시 나의 발로 밟을 때 메어지는 가슴은 눈물이 되고 비가 되어 염원의 싹을 틔워 꽃이 된다. 나의 실생활에는 아픔과 슬픔이 너무 많았다 . 그러나 극한 삶의 아픔과 슬픔을 힘껏 들어 올려 황홀한 희망적인 예술의 세계에로 승화시키는 일 은 나에게 더없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해님 / 긴 세월 폭우도 눈바람도 해님을 잡지 못하고 / 이리떼와 같은 검은 구름도 해님을 잡아가두지 못 하였다네 /
추위도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 해님의 빛발 한 가닥 한 가닥 끝없이 화폭에 수놓아 50 년 / 지친 몸 허리 펴고 하늘을 바라보니 / 깜짝이야 해님이 보이지 않네 / 웬일일까 / 황홀한 해님은 / 손바닥만한 내 화폭 안에 들어와 있었다.’
완전한 예술을 위하여 삶을 버려야 했고 많은 것을 잃어야 했을 때, 그때 난 7살이었다. 산다는 건 평탄한 길을 걸을 수만은 없으리라 . 더욱이 예술과 동행하는 여자의 삶은 땅이 생명을 잉태하여 긴 침묵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운다. 들에 피어난 한줌 꽃이 아름다움은 그 꽃의 화려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파른 벼랑길에서도 생명의 불꽃을 간직한 그 참됨에 있는 것이리라. 난 그 참된 생명, 서러운 가난과 처절한 세파 속에서 피어난 초라한 한줌 꽃을 수줍은 마음으로 건네주고프다. 나의 땅 , 나의 민족 , 나의 대자연에게.

작가약력
1941. 8. 19 중국 요녕성 ( 遺寧省 ) 환인현 ( 桓섭縣 ) 출생 / 1963. 7 중국 노변미술학원 ( 魯辺美術學院 ) 중국 화계 졸업 / 1982 중국 1 급화가 대학 교수 / 1984~1989 중국 전국미술대전 출품 (3 호 |) / 1987 중국 대 련시 개인미술전 / 1990. 8. 중국 요녕성미술관 개인전 / 1991. 4 / 한국일보사 백상기념관 초대 개인 전 / 1991. 6 한국예총 광주시지회 초대전 / 1991. 6 한국예총 대구시지회 초대전 / 1991~1992 국제 종합미술대전 초대작가 출품 (2 호 |) / 1991. 9 제주도 세종미술관 초대전 / 1991. 11 부산 눌원미술관
MBC 방송 초대전 / 1992. 4 조선일보 초대전 / 1993. 4 강릉문화예술회관 건립 1 주년 기념 초대전 / 1993. 5 경남문화원 초대전 ( 진주 ) / 1993. 5 일본통합미술대전 출품 / 1993. 8 EXPO 한일미술교류전 출품 / 대하장편소설「朝蘇族 女子」 ( 전 5 권 ) 출간 / 1993. 9 한국예술의전당 개인전 ( 한국예총 후원 ) / 1994. 4 남강미술대학원 건립기념전 / 1994. 9 일본 동경 한국문화원 초대전 ( 일본 국제문화원 한일미술 협회 후원 ) / 1996. 9 불란서 파리 한국문화원 초대전 , 불란서 파리 Ga|erie Sylvee 초대전 / 1997. 4 한국예총 전북지회 초대전 / 작품 〈백두산〉 청와대 소장 전시 / 1997. 6 한국예총 대전시지회 초대전 , 미국 한양문화센터 초대전 / 2OO1. 예술의 전당 초대전 / 2OO3. 인사 플라자 초대전 / 현재 국제종합예 술단체 중국지회장 한국여성미술작품전 심사위원 동방미술협회 회장 한국미술가협회 회원


민족혼과 대자연의 꿈을 형상화한 서사적 예술의 극치
민족화가 백양(白陽) 박태옥(朴泰玉)

"그림은 마음의 거울이다. 백양은 육체적 정신적 극치의 고통을 느낄 때마다 극치의 행복을 꿈꾸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과거보다는 보다 강렬하고 열광적이고 희망적인 환상의 표현이었다 ."
여류화가 백양(白陽) 박태옥(朴泰玉 ) 은 1941년 8월19일 중국 요녕성(違寧省) 환인현( 桓仁縣)에서 태어났다.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때 환인이란 곳에서 독립 운동가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그의 인생이 우리 한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심상치 많은 관계로 전개되리란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작품 : 생명수

어린 시절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자란 그는 이웃집 언니가 시집가는 날 새 각시방에 놓인 아름다운 병풍을 보고 화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때가 7살, 산에서 꺾은 싸리나 무를 태운 숯으로 그림을 그리며, 동생을 업고 손잡으며 교실 문밖에서 6년을 공부하면서도 그는 언제나 우등생 이었다. 이 천부적인 소녀화가는 중국 모택통(毛澤東) 이 건립한 노신 대학(盧迅大學)에 6만명의 경쟁을 물리치고 당당히 수석으로 입학해 우등생으로 l963년 졸업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과 기쁨도 잠시였다. 그는 중국의 문화혁명이라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조선족이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 하나로 10년 동안 반역자 낙인으로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탄압을 당해야만 했다. 3년간은 미역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 그러나 그의 예술혼은 꺾이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물감과 붓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백양의 눈앞엔 자연이라는 작품 소재가 있었다.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대자연의 무궁무진한 소재는 그녀의 즐거움이었고 미술은 그녀의 안식처가 되었다 .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과 영혼 속에서 창작을 향한 열정과 집념은 더욱 강해져만 갔던 것이다 .

고난과 역경을 감내하며 부친의 가르침을 따라 오로지 조국의 민족혼을 그려온 그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중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밝은 태양의 빛이 그녀에게 드리워지게 된다.
등소평(都小平)에 의해 중국대륙의 당대 최고 화가로 선발되어, 1987년 중국 역사상 최초로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모진 핍박 속에서 초인적인 의지로 그려낸 미술작품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는 중국 전 조선족의 영광이었다. 조선족 전체가 들썩거렸다. 중국에서, 그것도 한족도 아닌 조선족의 한 여인이 중국사회주의 역사 이래 최초의 개인전을 갖게 된 것이었으니 이 의미있는 최초의 미술전시회의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그는 중년이 훨씬 넘은 나이에 화폭을 가슴에 안고 그리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

1991년 4월 한국일보사 백상기념관 초대 개인전으로 조국에서 첫 전시회를 갖고 한국화단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 1992년 4월 조선일보 초대전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이때 운보(雲南) 김기창(金基창) 화백은 추천사에서 "그의 화폭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실로 박 태옥이 즐겨 담은 소재들은 민족을 향한 염원과 그리움이 간절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라고 했다 . 그 뒤 1993년 9월 한국예총 후원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이 열려 중국 화가들과 함께 화려한 개막식을 가졌다. 중국에서 가난과 고통 속에 지냈던 인고의 세월 50 여년 만에 이젠 고국에서 한국화가의 대표로 중국 대가들과 함께 한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때를 회상하며 백양은 "자신이 행복한지 슬픈지 구별할 수 없던 때“라며 감격했다.

이러한 성공적인 전시가 계기가 되어 문화부 후원으로 세계 화단에 진출, 일본을 시작으로 불란서, 미국, 스페인 등에서 개인 초대전이 이어지게 된다. 1996년 백양은 50여 년 인생과 예술의 한계를 넘어 세계 예술의 고봉으로 알려진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적인 개인전을 완성한다. 이것은 그에게 인간의 소우주와 자연의 대우주의 꿈을 담아 창작의 영역을 넓 혀 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백양을 ‘동양의 피카소’ 라며 동양화가로는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극찬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초대전에 참가한 미술인들이 한결같이 찬사를 보내며 그의 작품에 넋을 잃었다고 한다. 이제 백양 박태옥은 이미 세계 인물속의 한사람이 되어 있었다.
비로소 그는 고행과 역경의 막을 내리고 새로운 희망을 향해 높은 단계로 오르는 보람찬 삶을 내딛게 되었다. 그의 그칠줄 모르는 창작 혼은 설치미술에서 입체미술로 확대되어 대한민국의 위대한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을 뛰어넘는 입체미술의 최고 걸작을 선보이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미 문단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그의 대하소설 〈조선족 여자〉는 박경리의 〈토지〉와 같은 맥락 에서 국경을 초월해 우리 민족문학의 가능성과 지평을 한층 넓힐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설의 서사성이나 구성으로 보아 한 때 이목이 집중되었던 일본의〈오싱〉, 중국의〈부용전〉, 미국의〈스토링〉에 비견되는 수작이라는 게 문단의 평이다 . 그녀의 화풍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의 / 아름다움’ 이 소설에서도 배어나와 그 미를 한껏 분출하는 것을 보면 그 야말로 한국인의 한을 아름다움으로 꽃피운 감성의 연금술사라 하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지니고 있는 박 화백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땀과 노력의 투자로 찾아온 행운, 그 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백양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세계는 정(正)·반(反)상극의 조화와 음(陰)·양(陽)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물은 언제나 정·반 양면의 조화로만이 안정과 균형이 이루어진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생활을 예술화한 예술작품도 마찬가지로, 한 작품 속에서 어떻게 정·반 양면을 잘 조화시키면서 작가의 감정으로 인격화해 예술작품으로 창조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영혼의 안목으로 인생과 자연 우주의 섭리 및 본질을 깊이 인식해 예술로 승화 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예술의 천국 한 자락을 접하는 감동을 던져주며, 죽음과 삶을 수 없이 넘나 든 작가의 참된 삶을 체험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영혼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를 높이 펼쳐 현실의 근원에서 보다 이상적 인 예술의 우주세계를 창조, 무궁무진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예술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며 작가는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영원의 세계에 이르게 하고, 예술의 유한한 형식을 넘어 무한무법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이는 사유의 도약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벽, 시공의 벽을 자유로이 뛰어넘어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흐름 속에 귀속됨 과 천지인이 하나라는 작가의 성숙한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작가는 예술 속 생활 , 생활 속 예술 , 예술 속 자연 , 자연 속 예술 , 인간 속 우주 , 우주 속 인간 , 세계 속 한국 , 한국 속 세계를 폭넓고 심오하게 표현하고 있다 . 작품 〈조물주 어머니〉는 가장 친근하고 포근하고 화려한 한국산 비단 · 실을 주된 원료로 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한 조물주와 한민족 생명과 삶을 개척한 베 짜는 어머니의 기맥을 연관시켜 완성한 설치 거작이다 . 한민족의 삶의 역사와 우주를 한줄기 맥락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5Om 크기로부터 시작하여 무한의 대작으로 이어갈 이 작품은 온 한민족의 작품인 동시에 인류 · 우주의 작품으로 세계 예술의 새 지평을 여는 기적의 명작으로 평가 되고 있다.

글 / 정동화 문화경제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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