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단가(短歌)는 일본의 국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인들이 추앙하는 일본 고유의 정형시다. 일본인도 문학적인 재능과 부단한 훈련없이는 어렵다는 단가를 짓는 한국인이 있다. 바로 손호연(1922-2003) 여사다. 열일곱살에 단가와의 인연을 맺고 여든살 생을 마감하기까지 육십 평생을 단가와 함께 해온 손호연 여사. 일본 고유의 정형시에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 노래한 그녀의 단가는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일본 아오모리시에는 손호연 여사의 단가 시비(詩碑)가 있다. 문학의 도시 아오모리현에 처음으로 일본인들의 손으로 한국 시인의 시비(詩碑)를 세웠다. 그녀의 단가에 감동받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세워진 시비다. 일본 굴지의 출판사인 고단사. 이곳에는 60여년 동안 그녀가 지은 단가를 전적으로 도맡아 출간하고 있다. 일본 단가의 대가인 나카니시 스스무도 극찬한 손호연의 단가. 그녀의 단가에 왜 일본인들은 감동하는 것일까?

일본 일간지에는 매일 전 국민 대상의 단가 응모작이 실린다. 31자의 응축된 단어로, 일본인의 감성을 표출하는 단가는, 일본인의 정신이자, 생활 그 자체다. 일본의 단가 시인은 무려 십만 명. 하지만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은 50여 명에 불과하다. 거기에 한국인 손호연이 있다. 손호연의 단가 시집, '무궁화'는 모두 이곳 고단사 출판사에서 출간된 것이다.

일본의 근대사를 단가로 정리하여 집대성한 '쇼와 만엽집'. 여기에는 손호연의 단가 5수가 실려 있다. 한국인이면서 일본어로 단가를 짓는 그녀를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선어가 금지됐던 때,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그녀에게 한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더 쉽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알게된 단가는 손호연의 문학적인 재능을 눈뜨게 했다. 이후 단가는 손호연의 삶과 늘 함께 해왔다. 해방 후 반일 감정이 극심하던 때도 손호연은 단가를 그만 두지 않았다. 조국 분단의 쓰라린 세상을 살아온 한민족의 비애를 단가로 노래했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단가를 짓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언제나 주눅 든 죄인이었다. 그녀에게 단가의 길은 실로 고독한 가시밭길이었다. 출판회 기념식 날, 그녀는 축하 대신 심한 질타를 받아야했다.

일본인도 하기 어렵다는 단가 가인의 길을 그녀는 왜 선택하게 되었을까? 일본 통치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 시절, 손호연은 왜 일본 고유의 전통시인 단가를 읇었는가?

일본 통치와 해방, 그리고 한국 전쟁의 커다란 동아시아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쉽지 않았던 손호연의 단가 행로를 자료 화면과 주변 인물의 증언을 통해 들어본다. 단가의 뿌리를 찾는 작업을 통해 그 옛날 한반도와 일본 문화 교류의 장을 입체적으로 펼쳐보인다.

새해가 시작되면 일본 왕실에서는 가장 첫 번째 행사로 궁중 신년 가회를 열고 短歌를 노래하며 한해를 시작한다. 일본 왕족들이 단가를 짓는 것은 왕실의 오랜 전통이다. 그 전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본 고전 문학의 정수로 보물중의 보물인 만엽집(萬葉集). 단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만엽집(萬葉集)에서다.

만엽집은 일본 고전 문학의 정수로, 일본의 국보다. 만가지 사연을 모은 만엽집은, 모두 4,500여수로, 그 중 4,000여수가 단가다. 이 만엽집은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백제인들은 당시 문자가 없던 일본인들에게 문자와 표기법을 가르쳐 주었다. 현재에도 만엽집은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한국어로 읽으면 그 내용을 파악할 수가 있다. 고대의 한국어가 만엽집을 읽을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최초의 사찰인 '아스카사'를 건립한 사람은 천황을 능가하는 권력을 가졌던 '소아마자'. 그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백제인이다. 일본 고대 불교 문화의 꽃인 '아스카 문화'는 백제인들이 전해준 문화다. 그 옛날 백제인들이 읊었던 단가는, 일본 천황과 귀족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단가는 일본 황실의 중요한 연례 행사로 남아있다. 새해 황실이 주최하는 신년가회가 그것이다. 여기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손호연이 초대됐다.

일본의 큰 축제 중 하나인 만엽제. 이곳에 손호연은 만엽집을 일본에 전한 백제인의 영광된 후예로 자리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단가에 담아,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린 손호연. 그녀는 한일 문화 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한일 양국으로부터 문화 훈장을 수여 받는 영예까지 안았다.

가장 일본 색이 짙은 단가에, 한국 정신을 담아냈던 손호연. 일본인들은 그녀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문학평론가 이어령씨는 “일본 사람들이 거꾸로 한국말로 썼으면 한국인의 정서를 몰랐을 텐데, 자기네들이 가장 잘 아는 언어로 한국인의 정서를 전달하니까, 자기네들이 갖고 있지 않은 한국적 문화전통이, 자기나라말로 가슴을 치는, 거기에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라며 분명히 손호연 선생은 일본말로 썼지만, 한국의 시인이고 한국 시 흐름의 큰 줄기를 이룬다고 말한다.

2005년은 한일수교 40주년이자 광복60주년이 되는 해이다. 국경을 초월한 손호연 여사의 단가 사랑을 통해 펼쳐지는 생생한 한일 문화 교류의 근 현대사를 조명해 본다.

* 광복절특집 -한일수교 40주년을 맞아 살펴본 한일 문화 교류 근 현대사 <일본 열도를 울린 무궁화> 8월 15일(월) 밤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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