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디지털 시대의 ’잊혀질 권리‘ 규제만으로는 한계, 다양한 해법 모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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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경제연구원
2013-09-08 12:17
서울--(뉴스와이어)--‘나를 해고한 전 직장에서의 일을 잊고 싶어요’, ‘헤어진 애인의 기억을 지우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친구와 다퉜던 기억을 없애고 싶어요’ 미국의 뉴욕 타임스퀘어 신년행사 중 하나인 굿 리든스 데이(Good Riddance Day)는 한 해 동안 겪었던 나쁜 기억을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행사로, 해마다 다양한 사연이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행사 참가자들은 종이에 잊고 싶은 기억을 적어 분쇄기에 넣는데, 2012년 열린 여섯번째 행사에서는 학교 다니기 막 시작한 어린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노인들까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분쇄기 앞에 몰려 장사진을 이루었다.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은 있다. 매일 머리 속에서 떠올리고 싶은 기쁘고 즐거운 기억이 있으면, 반대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프고 화난 기억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또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살면서 실수를 하고 이를 후회하며 잊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억을 잊고 싶은 니즈가 큰 만큼 기억을 잊는 능력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기억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머리 속에서 긍정적으로 재구성되거나 잊혀지게 마련이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세상에서는 이러한 축복을 누리기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있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는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온라인 상에는 기록이 계속 남아 검색 엔진을 통해 쉽고 빠르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NS에 무심코 올린 사진이나 웹 게시판에 쓴 댓글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지우지도 못하고 ‘온라인 주홍글씨’로 작성자를 평생 따라다니는 사례가 많다. 게다가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신기술 발전으로 정보의 수집과 공유가 대폭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통제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법적 분쟁으로도 연결되고 있는데, 2011년 스페인 법원은 구글에게 9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검색 정보를 지우라는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다. 이들 원고 중에는 가정폭력 희생자로서 자신의 집주소가 검색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사람도 있고 대학 시절 체포 경력을 지우고 싶은 중년의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주목 받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촉발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빅토르 마이어 쇤베르거(Viktor Mayer-Schönberger)다. 그는 2009년 자신의 저서(Delete: the virtue of forgetting in the digital age)에서 망각을 잊어버린 디지털 시대를 비판하면서, 디지털 정보의 소멸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각국 정부도 잊혀지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라이버시를 강하게 보호하는 EU는 2012년 1월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보보호규칙(Regulation)을 제안하여, 2014년까지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는 삭제의 대상이 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삭제 대상 정보는 크게 생산자에 따라 자신이 직접 생산한 것, 자신이 생산한 것을 다른 사람이 Repost 한 것, 자신의 정보를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자신이 직접 생산한 정보는 현재 대부분 삭제가 가능하다. 별다른 법률이 있지 않아도 대다수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작성자 본인이 요구하면 삭제해 주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Repost와 자신의 정보를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경우이다. Repost 삭제에 대해서 미국과 유럽, 우리나라 모두 관련 규정이 부족하고, 타인이 자신에 대해 생산한 정보는 나라마다 규정이 다른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최근 EU가 도입하려고 하는 잊혀질 권리는 Repost 영역과 개인정보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Repost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링크를 삭제하고,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최근 미국 의회에서는 ‘Do Not Track’ 법률안이 제출되었다. 전통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며 정보의 삭제 요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 잊혀질 권리가 이른 시기에 법제화 될 가능성은 낮지만 논의는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잊혀질 권리를 상당히 강력하게 인정하고 있다. 타인이 작성한 정보 가운데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는 정보는 정보통신법에 따라 삭제를 요구할 수 있으며, 제삼자가 수집한 개인정보도 수집 목적에 따라 기한이 지났을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삭제를 요구할 수 있다.

잊혀질 권리에 관한 주요 이슈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적용과 실행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다른 기본권과의 충돌 문제, 인터넷 정보 삭제 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및 시스템적 한계, 국가간 갈등 같이 풀어야 될 이슈들이 많다.

표현·언론의 자유와의 충돌잊혀질 권리는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그 범위를 무제한적으로 확장한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 특히 다른 사람이 Repost하는 것과 제삼자가 자신에 대해 작성한 정보를 삭제하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본인이 작성한 글을 Repost하는 것은 단순한 퍼나르기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의 한 부분이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글을 블로그 등에 퍼나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논평과 댓글을 달거나, 자신의 글과 함께 배치하여 새로운 글을 작성할 자유가 있다. 잊혀질 권리는 이러한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본인에 대해 제삼자가 작성한 정보를 삭제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공직자의 비리 보도나 일반 시민의 범죄 보도에 대해, 보도의 대상자가 잊혀질 권리와 보도 삭제를 주장한다면 언론의 자유는 크게 침해 받을 것이다.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블로그나 SNS를 통해 사회와 타인의 문제를 비판할 수 있는 시대에 제삼자가 작성한 정보와 글에 대해서도 무제한적인 잊혀질 권리를 주장한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EU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잊혀질 권리 법안에 표현의 자유에 위반되는 공공 목적의 정보나 역사적 사료의 경우 삭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Repost에 대해서는 Repost된 글 전체의 삭제가 아니라 링크 삭제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온라인에 퍼진 무수한 정보의 삭제 어려움잊혀질 권리가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하더라도, 인터넷에 있는 모든 관련 정보를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터넷은 개방된 시스템으로서 한번 정보가 공개되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복사하고 빠르게 확산될 수 있기 때문에, 약 6억개에 달하는 전세계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삭제할 정보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설령 검색엔진을 통해 사이트 정보와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정보를 모두 지운다 하더라도 정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누군가의 컴퓨터 내장 하드 디스크에 저장하고 있거나, 출력하여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개인별 디지털 저장매체는 시간이 흘러도 정보가 손실될 확률이 적기 때문에, 세월이 지난다 해서 저절로 해결될 가능성도 적다.

삭제할 자료를 찾는 문제 이외에도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지울 것인가라는 이슈가 남아 있다. 구글, 야후와 같은 검색 및 포탈업체가 정보를 수집하거나 플랫폼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모든 자료에 대한 삭제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사람이 지우고 싶은 정보가 게시된 사이트 담당자들과 연락하여 일일이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또 자료가 개인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경우도 문제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같이 찍은 과거 사진을 지우고 싶을 경우 사진에 찍힌 모든 친구들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특정인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세상과 공유하고 싶은 자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네트워크정보보안기구(ENISA, European Network and Information Security Agency)도 잊혀질 권리에 대한 보고서에서 오픈 시스템의 경우 개인 관련 정보를 모두 삭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의 입장차 뚜렷잊혀질 권리를 도입하면 그렇지 않은 나라와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EU가 잊혀질 권리를 도입할 경우, 개인정보의 보호 수준이 전체적으로 낮은 미국과 두 가지 영역에서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 EU정부가 미국의 구글, facebook과 같은 IT 기업에게 삭제 명령을 할 경우 기업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또 비용도 적지 않게 들 뿐만 아니라, 삭제명령에 따른 기업브랜드의 추락도 우려된다. 한편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국가 간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프라이버시보다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하고 있으며,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911테러 이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다른 나라 시민의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 한다는 비판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EU정부는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IT 기업들에 대한 개인정보 삭제권을 확보하려고 한다. 이러한 EU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 기업들은 비용과 기업활동 제약을 우려하며 입법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기업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우리 기업들이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 IT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카카오톡, 라인과 같은 모바일 서비스 기업이나 게임회사들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사용자가 작성한 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모바일 서비스 및 게임 기업의 EU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경우 EU의 잊혀질 권리에 따른 삭제명령이 적용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잊혀질 권리의 기술적 해결 가능성

많은 논란이 있기 때문에 EU에서도 영국 등 일부 회원국이 잊혀질 권리에 반대하고 있으며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원안보다 제한적으로 보호될 가능성이 크다. 프라이버시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도 ‘Do Not Track’ 법안에서 개인에게 광범위한 정보 삭제권보다는 불필요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는 방식을 취하려 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이미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잊혀질 권리를 무리하게 강화하기보다는 기존 법안을 수정 보완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이처럼 법률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터넷 업체들은 신기술 및 서비스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돌아가신 망자에 대한 잊혀질 권리 서비스를 들 수 있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잊혀질 권리는 생존해 있는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어, 고인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망자의 가족이나 친한 주변 사람에게는 돌아가신 분의 평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에 대한 니즈가 큰 편이다. 이러한 니즈를 반영하여 시큐어세이프(SecureSafe)는 클라우드 저장창고에 저장된 고인의 디지털 정보를 사후 유족이 삭제 및 관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구글도 올해 4월 돌아가신 분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는 휴면계정관리서비스(Inactive Account Manager)를 시작하였다.

쇤베르거가 주장했던 것처럼 정보 생성시 만료일을 지정하는 방법도 확산되고 있다. 물론 한번 공개된 정보를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원본을 제거함으로써 추가적 피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는 있다. 최근 미국에서 유행인 스냅챗(Snap Chat)이 대표적이다. 스냅챗은 사진 공유에 특화된 SNS 앱으로서 사진을 전송하는 사람이 보는 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처럼 5초후 메시지가 자동 삭제되는 것이다. 스냅챗이 돌풍을 일으키자 페이스북도 이와 비슷하게 전송 메시지의 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포크(Poke)’ 메시징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스마트폰 메모에 삭제 타이머를 제공하는 번노트(Burn Note) 앱이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트위터 메시지를 삭제해주는 스피릿포트위터(Spirit for Twitter) 등도 예로 들 수 있다.

자신의 온라인 이력을 관리하는 인터넷 평판 관리 서비스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구글 CEO인 에릭 슈미트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 각광받을 사업으로 온라인 평판관리 비즈니스를 뽑기도 하였다. 실제로 2011년 구글은 자신의 이름, 이메일 주소, 블로그 등 개인 관련 정보가 웹 상에서 타인에 의해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웹 세상의 나(Me on the Web)’ 서비스를 제공하여, 사용자들이 웹 상에서 자신의 평판을 인지하고 원치 않는 정보의 삭제를 돕고 있다. 또 돈을 받고 전문적으로 인터넷 평판을 관리해주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딜리트미(deleteme), 레퓨테이션닷컴(reputation.com) 같은 업체는 온라인의 부정적인 내용을 확인해서 지워주고,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온라인 평판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도와주기도 한다.

무리한 규제보다 기술적 접근이 우선 되야

사회 제도나 시스템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늘고 있다. 잊혀질 권리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무기한 보존과 무한한 확장으로 사람들의 피해가 발생하면서, 각국 정부도 이를 막기 위한 제도 마련에 고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법규로 규제하기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잊혀질 권리와 같은 논란이 많은 사안에 대해서는 발생 가능한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보만료 시스템, 온라인 평판 관리 시스템처럼 신기술 및 신서비스의 발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LG경제연구원 성낙환 책임연구원, 문병순 선임연구원]

* 위 자료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의 주요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언론보도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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