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통교는 조선시대 도성 제일의 다리로서 1410년(태종10) 정릉(貞陵,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의 무덤돌을 옮겨와 축조된 것으로 수표교와 함께 청계천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였다. 그러나 1910년 종로-남대문간 전차선로가 복선화되면서 콘크리트 도로 밑에 묻혔으며, 1958년 본격적인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시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었다.
서울시는 2002년 7월부터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하면서 광통교를 복원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역사문화분과), 문화재전문가들로부터 사전의견수렴과정을 거쳐 2003년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에 착수하였다.
서울시는 광통교 복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하여 문화재청의 권고와 추천으로 문화재위원 및 수리·토목·도시계획 전문가들로 구성된청계천문화재보존전문가자문위원회의 자문과 검토를 거쳐 기본방향을 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광통교는 복원방향 결정과정에서 복원위치와 복원방법을 두고 논란을 겪기도 하였으나 청계천문화재보존전문가 자문위원회와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의 현장답사, 시민의견청취 등을 포함 수차례에 걸친 토론과 고심 끝에 과거의 전통문화와 현재의 도시환경을 조화시키는 차원에서 광통교를 원래 위치에서 상류 약 155m지점으로 이전복원하고, 원래 광통교터는 향후 복원에 대비하여 보존하도록 결정하였다.
또한 다리 길이(12.3m)와 하천 폭(17m)이 맞지 않아 광통교를 어떤 모습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이 역시 향후 원래 위치 복원에 대비하여 광통교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 연결부분을 설치하되 광통교와 최대한 차별화하도록 결정하였다.
광통교 복원공사 과정에서 김동현(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김동욱(경기대학교 교수) 등 문화재위원들이 현장기술지도위원으로 참여, 세세한 부분까지 기술 지도를 하였으며, 6개 분야에 7개의 국내 최고 전문기관들이 참여하였다. 먼저 광통교의 학술적인 조사는 (재)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윤세영)에서, 복원을 위한 정밀실측조사 및 설계는 (주)삼성건축사사무소(소장 장순용)에서, 광통교의 안전성 검토를 위한 정밀안전진단은 (재)한국건설안전기술원(이사장 김경진)에서, 홍수시 광통교의 안전성과 주변 침수에 대비한 수리모형실험은 (주)한국종합개발공사와 한국수자원회에서, 도로 밑에 있는 광통교를 해체하고, 다시 재설치하는 복원공사는 (주)삼부토건(사장 정진우), 그리고 광통교 복원을 위한 하천 및 토목공사는 (주)대림산업(회장 이용구)이 맡아서 실시하였다.
이번 광통교 복원에는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된 유구와 창덕궁 및 탑골공원에 흩어져 있던 광통교 부재를 찾아 100% 활용하고, 나머지 유실된 부재에 대해서는 원래 광통교와 비슷한 석재를 활용하여 복원하였다. 광통교 복원에 투입된 비용은 해체·이전비용 12억원, 복원설계 등 5억원, 복원공사 42억원 등 총59억원이 소요되었다.
서울시에서는 당초 함께 복원하고자 하였던 수표교가 여러 가지 여건상 청계천복원사업과는 별도의 장기적인 문화재 복원과제로 남겨야하는 아쉬운 점은 있으나 광통교 복원을 청계천 복원공사 맞추어 마침으로써 청계천 복원의 역사적인 의의를 제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복원된 광통교는 문화재위원들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국가지정문화재로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자료]광통교의 역사와 문화
광통교의 역사
광통교는 도성 내에서 가장 큰 다리로 경복궁(창덕궁)-육조거리(돈화문로)-종루-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남북대로(南北大路)를 연결하는 도성 안 중심통로였으며, 주변에 시전이 위치하고 있어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였다. 광통방(廣通坊)에 위치하고 있어 광통교라고 하였으며, 대광통교, 북광통교, 광교, 광충교 등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도성 안 개천에서 여섯 번째 있었다고 하여 육교(六橋)라고도 하였다. 광통교는 처음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토교(土橋)였던 것을 1410년(태종 10) 8월 큰비로 다리가 유실되자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능인 정릉(貞陵) 옛 터의 돌을 사용하여 석교(石橋)로 만들었다. 이후 1762년(영조 38) 현재 노원구 마들 근처에서 돌을 캐와 증축한 사실이 있다. 광통교는 19세기말부터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종로에서 남대문구간에 전차노선이 신설되면서 광통교 동편에 전차선로가 놓이게 되었다. 이후 1910년 8월 이 노선을 복선화되면서 광통교 위로 전차가 통행하게 되었다. 이때 다리 위에 약 1m 정도의 콘크리트를 쏟아 붓고 선로를 설치함으로써 사실상 광통교는 도로 밑에 묻히게 되었다. 또한 콘크리트 교각을 추가로 설치하고 광통교 양편을 철근 콘크리트로 보강하였다. 1923년에는 청계천 암거공사와 관련하여 정릉의 신장석으로 이루어진 광통교 북측 교대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하수관을 박아 하수를 배출하였으며, 남쪽 교대에도 역시 하수배출을 위한 토관을 박았다. 해방 이후에는 1955년 광통교 상류쪽을 복원할 때 광통교 바닥에 견치돌을 거꾸로 깔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쳐쳤다. 1958년부터 본격적인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되면서 광통교 난간만 창경궁으로 이전하고, 일제강점기 전차선로를 가설할 때 콘크리트 도로 밑에 묻혀 있던 다리 본체는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시작할 당시에도 여전히 전차가 다니고 있었으므로 이전되지 못하고 그대로 도로 밑에 묻히게 되었다. 청계천 복원공사 시작과 함께 광통교 복원은 2003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복원장소를 놓고 여러 의견들이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청계천문화재보존전문가자문위원회〉와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의 현장답사와 수차례에 걸친 검토와 고심 끝에 원래 위치에서 상류로 약 150m 정도 옮겨 복원하도록 하였으며, 원래 터는 향후 복원에 대비하여 보존하고, 광통교 원형도 최대한 보존·유지하면서 복원하도록 하였다.
■ 정릉(貞陵)의 무덤돌로 만들어진 광통교
1410년(태종 10) 광통교를 만들 때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 옛 터의 무덤 돌을 가져다가 사용하였는데, 여기에는 태종 이방원과 신덕왕후의 원한관계가 상당히 작용하였다고 한다. 즉 1392년(태조 1) 신덕왕후는 정도전 등의 도움으로 자신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에 옹립함으로써 이방원과 깊은 원한을 싸게 되었다. 그러나 신덕왕후는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고 1396년(태조 6) 세상을 떠났으며, 아들 방석 또한 1398년(태조 7)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과 함께 죽음을 당하였다. 한편 신덕왕후를 무척 총애하였던 태조는 왕후가 죽자 지금의 중구 정동에 능을 조성하고 정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1408년(태종 8)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09년 옛 제왕의 능묘가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정릉만 도성 안에 있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고 하여 신덕왕후의 능을 지금의 성북동 정릉으로 옮겼다. 그리고 태종 10년(1410) 큰비가 내려 흙으로 만든 광통교가 유실되자, 정릉을 옮긴 후 그 터에 남아 있는 돌을 옮겨다가 다리를 만들었다. 현재 광통교 남북 양측 교대에는 정릉의 무덤 돌로 사용되었던 호석(護石)들이 남아 있는데, 구름문양, 당초문양, 보관(寶冠)을 쓰고 양소매를 부드럽게 내려 합장하고 있는 신장(神將) 등이 양각되어 있다. 석물에 새겨진 세련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보면 태조가 정릉을 얼마나 공들여 조성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 말 조선 초기 능원(陵園) 건축과 조각 양식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 광통교에 담긴 역사
광통교는 도성에서 제일 큰 다리로 어가행렬과 외국 사신행렬이 통행하는 주요 통로였다. 또한 주변에는 시전(市廛) 상가들이 즐비하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었으며, 광통교 주변 서린동, 다동에는 술집, 기방 등이 밀집한 대표적인 유흥가로서 서민문화의 중심지였다. 광통교는 수표교와 함께 전통민속놀이의 장소로서 매년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연날리기, 다리밟기이 펼쳐졌으며, 4월 초파일에는 연등행사가 열렸다. 조선시대 광통교 주변에는 책과 그림을 판매하는 가게가 즐비하였으며,〈천자문〉,〈동몽선습〉,〈심청전〉,〈숙향전〉등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서적간행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근대 이후에는 회동서관(滙東書館)과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와 같은 출판기관이 광통교 주변에 자리하였으며, 현재에도 대형 서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광통교는 우리나라 근대적인 금융기관의 탄생지로서 1897년 한성은행(현 조흥은행 본점자리), 1899년 대한천일은행(현 우리은행, 영풍문고 자리)이 모두 광통교 주변에 업무를 시작하였다. 현재에도 조흥은행 본점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점포인 광통관(현 우리은행 종로지점)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청 개요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은 600년 간 대한민국의 수도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서울은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공공서비스 리디자인에 참여시킴으로써 서울을 사회적경제의 도시, 혁신이 주도하는 공유 도시로 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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